“갯벌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어느 날, 바다가 닫혔어요!
갈매기 흰등이는 사람들이 던져 주는 새우 맛 과자에 길들여지기 싫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항구를 떠납니다. 그리고 긴 여행 끝에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갯벌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합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갯벌은 엄마 같았다. 배고프고 힘없을 때 내려앉으면 듬뿍듬뿍 먹을 것을 내어 주었다. 갯벌은 요술 식탁 같았다. 배가 터질 듯이 먹어 치워도 밀물이 들었다가 빠지면 새로운 식탁이 차려졌다. 토박이 갈매기들은 떠돌이인 내게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사람이든 갈매기든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본문에서
그런데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에 둑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럼, 바닷물이 꼭 필요한 수천억이 넘는 갯벌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또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흰등이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느닷없이 바위 벼락을 맞은 바다 동물과 물풀 들, 갯벌이 마르면서 하나둘 죽어 가는 조개와 게 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 찾아올 철새들은 얼마나 놀랄까요?
‘떠돌이 갈매기’에서 ‘위험한 갈매기’로, 그리고 다시 떠돌이가 되다
돈에 눈먼 사람들이 바다 가운데에 바위를 쌓고 둑을 만들자, 갯벌 생명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흰등이는 먹이와 삶, 심지어 생명까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자 흰등이는 갯벌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에게 똥을 날리고,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가는 갯벌 생명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이렇듯 갈매기 흰등이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는 존재에서 점점 사람에게 맞서는 ‘위험한’ 존재가 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갈매기 한 마리의 힘만으로는, 갯벌을 지키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작은 힘만으로는, 철벽처럼 높고 두터운 파괴자의 탐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 수문이 닫히고 온갖 생물이 가득했던 천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덤으로 바뀝니다.
저 넓은 바다를 어떻게 막을까 싶었는데 끝내는 두 둑이 만나고 말았다. 둑은 바다를 절반으로 나눴다. 갇힌 바다와 갇히지 않은 바다.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바다를 가둘 수 있을까? 둑 가운데에는 수문이 생겼다. ……수십 킬로미터나 되는 둑이 둘러싸자 갯벌에 사는 생물들은 그물에 걸린 고기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면 둑 가운데 있는 수문은 폭포 소리를 냈다. 갯벌에 사는 생명들의 거친 숨소리였다. -본문에서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곳을 찾아, 떠돌이가 되어 이곳을 찾았던 갈매기 흰등이는 갯벌을 파괴하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에 처하자, 위협적인 갈매기가 되려 했고, 결국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다시 떠돌이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생명의 이름 ‘새만금’
사람이 가장 두려운 세상
《위험한 갈매기》는 얼마 전까지 살아 숨 쉬던 갯벌 생명들이, 바다가 닫히고 갯벌이 마르면서 고통 속에 소리치며 죽어 갔던 새만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군산 비응도에서 부안 해창까지 이어진 새만금 간척 사업은 우리나라 최대 갯벌에 최대 공사, 세계 최대 방조제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의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자연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새만금에서는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파괴의 목소리와, 갯벌을 살리기 위한 생명의 목소리는 15년이라는 긴 싸움을 벌여 왔습니다. 결국 수문이 닫히면서 수많은 갯벌 생명들을 죽이고, 어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았으며, 어마어마한 자연파괴를 선택하는, 비극적인 결론이 나고 맙니다.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쓴 김남중 작가는 말합니다. 그 검은 삽질을 막지 못했다면, 제발 기억이라도 해야 한다고요. ‘새만금’을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 또 다른 새만금을 만들지 않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 검은 삽질을 말리지 못했다면 제발 기억이라도 해야 합니다. 굴러 들어올 눈먼 돈을 생각하며 어머니인 땅과 바다에, 그 따뜻한 가슴에 삽날을 대는 사람들. 우리는 새만금을 죽였고 4대강을 죽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무엇일까요? 두렵습니다. 사람이 두렵습니다.” - ‘글쓴이의 말’에서
《위험한 갈매기》는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동화로 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는 등대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서로 기대어 사는 생명들
또한 이 작품은 갯벌 생명들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개나 게와 같은 ‘먹이’를 인간들처럼 힘의 관계나 하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갯생물들이 살아야 그곳을 서식지로 삼은 뭇 생명들도 살고, 멀리서 찾아올 철새들 또한 살며,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갯벌이 말라 버린 뒤 수많은 새들이 이곳을 떠났고 남은 새들은 배고픔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 갯벌을 찾아올 철새들이 얼마나 놀랄까. 갯벌에서 쉬고 먹지 못하면 어떻게 긴 여행을 계속할까? 배고픈 것은 새들만이 아니었다. 날마다 갯벌을 오가던 어촌 사람들도 힘이 빠져 있었다. 갯벌을 떠난 어촌 사람들은 힘없고 작아 보였다. -본문에서
결국, 인간인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자연 그리고 다른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인간이 아닌 갈매기의 눈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생명의 고귀함과, 사람인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해 주는 ‘기억해야 할’ 작품입니다.
그림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갯벌의 고통
《위험한 갈매기》의 글에서 드러나는 갯벌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담아낸 조승연 작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주위를 살피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놀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빛나던 친구들이 지금은 갈 곳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떠밀리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그곳의 모든 생명들은 제 존재의 아름다움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힘내요, 내 어린 시절 친구들. - ‘그린이의 말’에서
이런 안타까움 때문인지 그림 한 장, 한 장이 마른 갯벌에서 죽은 생명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처럼 묵직하고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갈매기 흰등이가 항구를 떠나 폭풍을 만났을 땐 여행자의 고단함이, 갯벌과 사랑에 빠졌을 땐 풍경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갯벌 생명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쉴 땐 고통스러움이 느껴지도록 그림 하나하나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갯벌의 고통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여 탄생시킨 밀도감 있는 그림은, 이야기를 단지 보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하나가 되어 힘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