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고, 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 불쾌감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는 내 상사나 리더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친구일 수도 있다. 대놓고 공격적일 수도, 교묘히 공격성을 감출 수도 있지만, 내 감정을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종종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아이디어와 열정을 마구 뿜어내고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자신감이 넘쳐서 우리는 깜박 그들의 주문에 걸려버리기 일쑤다. 뒤늦게야 실은 그 자신감이 비이성적인 태도였다는 걸, 그가 낸 아이디어는 앞뒤를 제대로 재본 결과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시간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A권」중에서
사람들과의 교류는 우리를 감정적 소용돌이에 빠뜨리는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남들을 끊임없이 심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상대가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남들을 바꾸고 싶어 한다. 상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흔히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가 않고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속상해한다. 그러지 말고 사람을 하나의 현상처럼 대하라. 혜성이나 식물처럼 가치판단의 여지가 없는 대상으로 보라. 그들은 그냥 존재하고, 모두 제각각이고, 삶을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저항하거나 바꾸려 들지 말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하나의 재미난 게임으로 만들어라. 퍼즐을 푸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인간들이 벌이는 희극의 한 장면일 뿐이다.
---「A권」중에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관심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우리는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형성하는 유대관계에 나의 생존과 행복이 걸려 있다. 남들이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은 없다. 관심 중에는 실제 몸으로 느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야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는 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깊은 우울에 빠진다. 그런데 관심에 대한 욕구는 또한 아주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타인이 내게 주는 관심에 따라 우리는 그들이 나를 알아주고 인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느끼는 나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에게는 관심이 어찌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못할 일이 없을 정도다. 당신이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 첫 번째 동기는 언제나 관심에 대한 욕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A권」중에서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시간을 두고 관찰했을 때 보이는 상대의 행동이다. 상대가 아무리 지난 번 경험에서 큰 교훈을 얻고 그동안 딴 사람이 됐다고 말하더라도 상대는 틀림없이 앞으로도 같은 행동, 같은 의사결정을 반복할 것이다. 바로 그런 의사결정이 그들의 성격을 보여준다. 상대에게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이 있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거나, 중요한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거나, 도전을 받으면 갑자기 호전적으로 돌변한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책임을 부여받았을 때 능력을 잘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상대의 과거를 조사해보라. 지금 생각해보니 상대가 과거에도 이 패턴에 맞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상대가 지금 하는 일도 유심히 한 번 들여다보라. (중략)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절대 로 어떤 일을 한 번만 하지는 않는다.’ 상대는 변명을 시도할지 모른다. 그 순간 정신이 나갔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담컨대 그는 뭐가 되었든 그 바보 같은 일을 또다시 저지를 것이다. 그의 성격과 습관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완전히 어긋날 때조차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A권」중에서
천성적으로 우리는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내면의 비뚤어진 어떤 힘 때문에 무언가를 소유하는 순간 혹은 바라던 것을 얻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색다른 무언가를 향해 떠나버린다.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 새로운 대상이 더 갖기 힘들고 더 멀리 있을수록, 그걸 갖고 싶은 우리의 욕망도 커진다. 이것을 ‘남의 집 잔디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착시현상의 심리학 버전 말이다. 그 잔디에, 그 새로운 대상에 너무 가까워지고 나면 우리는 그 잔디가 실제로는 별로 푸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중략) 이런 현상은 일상 속에서도 벌어진다. 나보다 나은 것을 가진 듯한 사람이 계속해서 눈에 보인다. 저 사람의 부모는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저 사람의 직업은 더 흥미롭게 보이고, 저들의 삶은 더 쉬워 보인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 헤맨다. 내 배우자의 이 생생한 단점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A권」중에서
우리 성격의 여러 측면 중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면이 있다. 바로 사회적 인격이다. 집단 속에서 활동할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집단 환경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하는 말, 하는 행동을 흉내 낸다. 생각도 달라진다. 무리에 녹아드는 것을 더 걱정하고 남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 감정도 달라진다. 집단의 분위기에 감염된다. 위험을 더 잘 감수하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더 쉽게 한다.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격이 내 인격을 압도할 수도 있다. 남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그들의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 개성이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간다. 유일한 해결책은 집단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는지를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한 자각을 키우는 것뿐이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회생활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집단에 잘 녹아들고 고차원적인 협업이 가능하면서도, 독립성과 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B권」중에서
인간은 우리의 감정 경험이 단순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한다. 이 사람은 경외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경멸밖에 못 느낀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단순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거의 늘 양면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근간을 이루는 ‘팩트’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고, 존경심과 시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양면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평생의 패턴이 된다. 부모가 비교적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을 준 사람은 어린 시절이 좋게, 황금기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사랑과 보살핌에 의존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부모에게조차 분개했었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망각해버린다. 때로는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우리는 내 의지를 피력하고, 스스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모의 관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느낌은 부모가 사라졌을 때 과연 내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놓일 것인가에 대한 어마어마한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를 사랑하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적개심과 반항심을 느꼈다.
---「B권」중에서
우리의 진짜 본성을 알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부정적 의미에서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고, 도를 넘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나 자신의 적극적 충동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곤란을 아는 탓에 공격성을 억누르며 겸손과 선량함의 귀감이 되려고 하다가 오히려 행동에서 수동적 공격 성향을 더 많이 드러낼지도 모른다. 공격적 에너지는 부정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자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에너지를 통제해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목적에 쓸 수 있다. 그러려면 인간의 모든 공격성의 근원과 그것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과정,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남들보다 더 공격적인지를 알아야 한다.
---「B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