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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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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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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년 0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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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만자, 약 4.7만 단어, A4 약 94쪽?
ISBN13 978899843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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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힘의 과시가 아니라 이해를 위한 다리로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역량으로
읽기와 쓰기뿐 아니라 듣기와 보기의 가능성까지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응용언어학자 김성우가 함께 나눈
좋은 삶을 가꾸는 리터러시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지식검색을 하는 것도 아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유튜브 채팅 기능으로 소통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리터러시의 정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세대에 따라, 성에 따라, 서로에게 ‘난독증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단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려는 낌새만 보여도 ‘꼰대’가 ‘가르치려 든다’고 경계한다. 리터러시가 혐오를 정당화하는 무기가 아니라 성찰의 도구가 될 수는 없을까?

젊은 세대의 읽기 능력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최근 몇 년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읽기 영역에서 한국 학생들의 순위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거나 ‘문해가 매우 취약한 수준’의 비율(38%)이 OECD 국가 중 하위권(2018년 조사)이라는 수치가 제시된다. “우리 아이가 책은 안 읽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학생들이 교과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경험도 근거가 된다. 과연 젊은 세대의 문해력 수준이 떨어진 것일까? 이것을 문해력의 위기라 할 수 있을까?

삶이 말에 스며드는 방식에 천착해온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말이 삶을 빚어내는 모습을 탐색해온 응용언어학자 김성우가 문해력/리터러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리터러시의 상황을 ‘위기’로 부르는 평가가 정당한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인간의 몸과 사고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리터러시를 경쟁의 도구가 아닌 공공의 인프라로 만들어갈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폭넓게 논의한 기록이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에 담겼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시작하며
지금 여기에서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김성우 8

Literacy 1
리터러시, 위기인가 변동인가 14


문해력? 리터러시? / 위기인가, 변동인가 / 문자로는 시험공부, 세상 보기는 영상으로 / 리터러시를 정의하는 권력 / 이모티콘과 느낌표가 내용보다 중요하다 / 리터러시를 보는 또 다른 렌즈 / 다른 사람의 난독증을 문제 삼는 것 / 리터러시는 스펙트럼이다 / 리터러시가 바벨탑이 아니라 다리가 되려면

Literacy 2
읽기는 여전히 유효한가 74


읽기는 혁명이었다 / 문자는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나 / 개인의 탄생과 읽기 / 글이 영상보다 자유로운 이유 / 읽기/쓰기로만 가능한 것과 그 대가 / 우리는 읽기/쓰기를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 ‘시험을 위한 읽기’에서 ‘읽기를 돕는 시험’으로 / 리터러시의 불평등, 민주주의의 위기 / 사유역량은 읽기의 특권인가 / 텍스트의 아우라와 진입장벽 / 리터러시는 사회의 역량

Literacy 3
읽기에서 보기로, 미디어와 몸 140


다른 매체가 다른 신체를 구축한다 / 세 줄 요약과 읽기의 호흡 / 보기가 만들어내는 몸 / 검색하면 다 나온다? / 리터러시가 다룸의 역량이 되려면 / 앎이 삶을 방해하는 역설 / 리터러시는 어떻게 윤리적 주체를 세울 수 있는가 / 개운하지 않아도, 담아두고 숙성시키기

Literacy 4
리터러시,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 190


학교, 평가, 리터러시 / 공정성에 갇힌 평가, 시험 기술만 익히는 수업 / 평가의 공정성에서 배움의 공공성으로 / 미디어를 변환해보는 이유 / 과학 지식과 내러티브, 두 가지 앎 사이의 변환 / 삶을 두껍게 읽어내는 리터러시

Literacy 5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을 향해 224


수업의 호흡이 길어진다면 / 독서토론으로 학교가 살아나다 / 자기 삶과 닿아 있을 때 글쓰기는 어떻게 바뀌는가 / 소통의 속도를 줄이고 리터러시의 방향을 잡다 / 성과로부터 자유로운 토론 / 자율성을 키워주는 구조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 리터러시의 위기는 기쁨의 위기 / 조망, 일상, 반복, 관계, 윤리, 교차, 호흡 /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

마치며
말 걸기에서 응답하기로, 삶을 향한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대담 / 엄기호 284

참고문헌 294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게 외적인 변동이라면, 그 상황 속에서 일종의 자기 성찰성에 대한 긴박한 요구가 있는 거 같아요. 제도 차원에서 리터러시를 정의할 수 있고, 리터러시를 평가하는 도구를 선정하며 특정한 지표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들, 지배적인 리터러시의 형태들을 체화하여 사회문화적 자본으로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상황, 이것을 리터러시 내부의 변동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54

뭔가 활발하게 가르치는 것 같고 배우는 것 같지만, 사실 강도만 세질 뿐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저는 이렇게 도약이 일어나지 않는 것 자체를 비문해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터러시를 상태가 아니라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한 상태에서 계속 강화만 되는 것은 비문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리터러시의 위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73

언어를 통해 머릿속에 내가 상상하는 그 무엇도 로딩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순식간에 가능하죠, 상상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로딩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게 인간에게 커다란 자유를 줘요. 그런데 이걸 글로 하면 로딩과 시뮬레이션의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지는 겁니다. 구술 시대라면 방 안에 가구 몇 개 들여오기 정도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했다면, 이젠 철학사도, 장편소설도, 시즌 10개로 이루어진 드라마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겁니다. 글이 있으니까요.
--- p.99

반면 유튜브는, 처음엔 요거만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이것도 딸려오네, 저것도 재밌겠네 하면서 계속 보게 되는 거죠. 동영상을 보는 행위 하나하나는 읽기와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흐름은 우리가 읽기에서 처음에 상상했고, 또 읽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에요.
--- p.121

같은 텍스트를 읽을 때라도 종이책으로 세계문학전집을 읽을 때와 모바일 기기에서 웹소설을 읽을 때 눈의 움직임이나 손가락의 까딱임, 책을 넘기기 위한 제스처가 다 다를 수밖에 없죠. 결국 다른 매체의 사용은 다른 신체를 서서히 구축해가는 거예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뇌가, 눈이, 손가락의 움직임이 바뀌는 거죠.
--- p.142

자기의 타당성과 정당성에 대해 쉽게 공격을 받고 쉽게 무너지는 상황이라 공부 자체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바뀐 듯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정당화해주는 말과 글만 선호하는 거죠. 그를 통해 다름을 생각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자기의 옳음을 확신하고 강화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성장의 기쁨, 배움의 기쁨이 없어요.
--- p.219~220

시간에 대한 대중의 감각이 너무 짧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기사 헤드라인을 보면 당장 말을 해야 될 거 같고, 내가 원하지 않는 정치적인 입장을 가진 글이 올라오면 당장 ‘참전’해야 될 거 같죠. 이건 소통의 속도에 관한 문제인데요. 뉴스나 소셜미디어 포스트가 업데이트되고 그것을 소비하는 속도, 그 속도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빨리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p.245

이를 위해서 저는 각자의 몸, 그리고 그 몸에 새겨진 무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글과 책이 어떤 시대에 어떤 세대의 사람들에게 몸이었고 그 몸에 새겨진 무늬였으며 몸의 변신 수단이었고 그 사람들의 말이었다면, 지금은 이미지와 유튜브가 몸이고 그 몸에 새겨진 무늬이자 말이며 변신 수단이 된 시대인지도 모르겠어요.
--- p.27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리터러시, 위기인가 변동인가

문해력, 혹은 문식성이라는 번역어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뉴스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환경 리터러시에서처럼 리터러시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빈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며, 이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사람들조차 제각기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 문제적 단어, 리터러시(literacy)의 정의부터 먼저 살펴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유네스코의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이라는 정의다. 그러나 리터러시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그 방점이 다르게 찍혔다. 고대에는 ‘문학에 조예가 있는 학식 있는 사람’, 중세에는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자신의 모국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터러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리터러시를 둘러싼 지금의 환경은 어떨까? 초등학생들이 숙제를 할 때 책이나 백과사전, 심지어 검색엔진도 아닌 유튜브를 검색한다고 한다. 책을 만지기 전에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조작해본 디지털 네이티브가 늘어나고 있다. 교과서와 ‘전과’를 중심으로 기초교육을 받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정보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저자들이 리터러시의 위기라기보다 ‘변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리터러시에 대한 평가는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익숙한 이미지, 동영상이 아니라 여전히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문자매체에 기반해, 교과서와 선다형 시험을 통해 이뤄진다. 이런 평가는 젊은 세대(또한 문해력을 제대로 키울 기회가 없었던 노년 세대)에게 공정하지 않다. ‘공부할 시간을 반밖에 주지 않고 평가한 다음에 왜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비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리터러시를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이다. 이 권력을 특정 세대, 특정 계층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문자에서 이미지로, 읽기에서 보기로

근대 이후 리터러시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에 기반해왔다. 문자라는 매체와 읽기라는 행위는 사유의 길이와 스케일, 체계성을 획기적으로 키워주었으며, 그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개인,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탄생했다. 저자들은 읽기/쓰기 행위가 가진 이런 장점의 핵심인 ‘추상성’이라는 진입장벽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이나 신문 등을 진득하게 읽어내고 거기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뽑아내는 데는 기호체계의 습득, 태도나 의지, 주의집중 등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계급적으로 분배될 가능성이 높은 자원이다. 경제자본?문화자본이 풍부한 가정의 자녀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며 정보 습득, 학습, 엔터테인먼트 등을 위해 좋은 콘텐츠를 선별해서 활용하지만, ‘방치된’ 아이들은 웹을 떠돌며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기 일쑤다.

한편, 리터러시가 무기처럼 휘둘러지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최근 인터넷상의 논쟁이나 SNS의 댓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문해력/리터러시다. 서로를 “이런 문해력 딸리는 것들” “독해도 안 되는 주제에”라는 말로 조롱한다. 리터러시가 상대방을 조롱하고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가 된 것이다. 리터러시가 있고 없음으로 혐오 또한 커진다. “노인네들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좀 읽어라, 신문 좀 읽어라.” 같은 말에서 드러나듯이, 특정 집단의 지적 능력에 대한 비하를 통해 혐오를 정당화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저자들은 리터러시의 위기가 있다면 이런 성찰성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소통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다.

읽기에서 보기로? 멀티미디어 시대의 리터러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짧은 동영상’에 빠진 어린 세대의 문해력 부족을 한탄하는 시선 반대쪽에는 읽고 쓰는 능력이 여전히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 이제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까지 가르쳐야 하느냐는 조바심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매체가 몸과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먼저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책으로 읽을 때와 영화로 제작된 것을 볼 때 뇌가 활성화되는 방식이 다르다. 「슬램덩크」를 만화책으로 볼 때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을 볼 때가 다르다. 이처럼 우리 뇌는 ‘같은 내용’뿐 아니라 ‘다른 매체성’을 경험한다.

다른 매체성은 ‘호흡’의 문제와 연결된다. 영상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텍스트를 읽는 양으로 보면 이전 시기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텍스트가 탑재된 매체와 플랫폼은 책이 아니라 모바일이다. 기성세대는 10~20대가 유튜브 영상만 보고 책은 읽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헤드라인만 보고 판단해버리거나 ‘세 줄 요약’만 읽고 내용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40~50대 또한 마찬가지다.

문자를 중심에 둔 리터러시는 상상력의 크기와 추상성이라는 유익을 준 한편, 현실을 다루는 힘은 약화시키는 제약도 준다. 저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매체를 익히고 다루면서 균형을 자븐 것, 즉 멀티리터러시(multi-literacies)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멀티리터러시에는 미래에서 오고 있는 ‘보는 것’과 ‘가상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여전히 오고 있는 것, 끊임없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인 ‘말하고 듣는 것’의 리터러시, 즉 말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럴 때에야 리터러시를 앎의 문제가 아니라 다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다룸을 통해 타자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리터러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저자들이 나눈 이야기는 ‘삶을 위한 리터러시’로 요약할 수 있다. 말과 글, 영상의 효과와 가치를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 탐색하며, 탑처럼 쌓아올려 개인의 경쟁력과 권력으로 귀속되는 리터러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다리를 놓고 소통의 기반이 되는 리터러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려면 리터러시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회적 역량’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이가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환경적 인프라를 갖출 뿐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리터러시 경험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두 저자는 이런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지, 학생들을 가르쳐온 자신의 사례와 일선 교육현장의 사례 등 구체적인 방법을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읽기/쓰기 행위가 단지 시험 대비로 그치지 않도록 수업의 호흡을 늘리고, 독서와 토론에 비경쟁 원리를 도입해 성과에 얽매이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텍스트와 이미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타인의 말과 생각을 굳이 반박하지 않고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지금이 바로 리터러시의 변동과 그 영향에 대해 숙고해야 할 적기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어진 교육의 성과와 과오를 검토하고 각자도생의 능력이 아니라 ‘좋은 삶’에 복무하는 리터러시에 대한 논의를 여는 초대장이 될 것이다.

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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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오용되는 리터러시의 정의를 바로 잡고, 유의미한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시킨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s******0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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