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한 우리 시대의 명저 『한시 미학 산책』 완결개정판이 발간되었다. 1996년 초판이 발행된 지 15년 만이다. 옛 시인들의 한시 쓰기에 대한 글에서 시작된 『한시 미학 산책』은 한시의 세계를 풍성한 예화로 정겹고 운치 있게 말해주는 한시입문서, 한시의 다양한 형태미와 내용 분석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고급교양서로 자리매김하여, 여러 영역의 독자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명저가 되었다. 한시를 통해 시의 미학적 원리를 깊고 넓게 탐구하여 전문 연구자들도 만만히 접근할 수 없었던 한시와 미학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유익하고 흥미롭고 감상할 수 있는 열린 텍스트가 된 이 책은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고전 읽기라는 새로운 장(場)을 열어주었다. 전적(典籍)의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한시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 한시에 대한 관심이 회고나 호사 취미로 여겨졌던 우리 풍토에서 1996~2010년까지 15년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시의 짙은 시향과(詩香)과 아름다움, 옛글의 정취, 그리고 ‘지금 여기’와의 소통을 향한 여정은 지은이의 애씀으로 15년 만에 완결개정판을 발간하면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고 있다. 초판 발행 때 서른 여섯의 혈기 왕성한 소장학자였던 지은이는 15년 전의 문장을 거의 모두 새로이 쓰다시피 했고, 그간의 연구에서 발견한 성과를 토대로 몇 부분을 새롭게 다시 집필했고, 없었던 글을 새로 추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완결개정판에서는 전에 없었던 도판을 추가하여 시와 그림의 예술적 전통의 연관성을 실감할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인다. ‘시 읽기’와 함께 ‘그림 읽기’가 지닌 예술적 감수성의 같음과 다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초판을 펴내고 15년이 지났다. …… 젊어 쓴 글이라 과욕과 치기가 더러 보인다. 전에 안 보이던 부분이 새로 짚인다. 인용 작품도 더 적절한 예가 눈에 띄곤 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냈다. 대부분의 문장을 고쳤다. 내용은 특별히 손대지 않았다. 책은 나름의 운명이 있는 법이다. 틀을 그대로 둔 것은 그동안 이 책을 아껴준 독자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기도 하다. 개정은 주로 덜어내고 깎아내고, 관점을 교정하는 일에 주안을 두었다. 선시(禪詩)와 잡체시를 비롯한 몇 항목은 새로 쓰다시피 고쳤다. 한시와 현대시를 비교해 읽은 글은 앞서 없던 것이다. 시 번역을 모두 바꿨고, 제목도 통일을 기해 손질했다. 도판을 여럿 넣어 눈을 즐겁게 한 것이 특별히 자랑스럽다. 보기가 한결 시원하다. 혹 지난 책을 아껴 읽어주신 독자라면 달라진 부분을 견줘보는 일이 필자에게처럼 기쁨이 되었으면 싶다. ― 본문 4쪽, 〈개정판 지은이의 말〉에서 천 년의 시향詩香에 짙게 드리운 ‘우리 시대 인문 정신’ ― 『한시 미학 산책』의 특징 1천 년이 넘는 문학 전통을 지닌 한시의 세계! 그 시향(詩香)의 세계를 15년 동안 독자와 함께 때로는 깊게, 때로는 넓게 탐험한 『한시 미학 산책』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 책일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지은이의 유려한 글쓰기와 감동스런 해석, 옛 시인의 빛나는 사유, 넘쳐 흐르는 삶의 통찰 등이 독자들의 눈과 귀를 붙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시에 대한 기초 입문서이며 동시에 높은 안목을 보여주는 비평서이고, 창작의 원리와 현묘함을 다룬 창작론이며 전통 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문화론이기도 한 『한시 미학 산책』의 완결개정판 발간을 준비하면서, 또 하나의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천 년의 시향 가득한 책 속에 단아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우리 시대 인문 정신’이었다. 지은이의 학문과 삶에 대한 참다운 애정과 삶을 바라보는 통찰을 보았고, 시와 그림의 행간에 스며들어 있는 우리 인문학이 현실, 이념과 현실의 괴리, 지식인의 역할과 놓인 자리 등 시대와 지식을 바라보는 성찰이 아로새겨 있었다. 지은이는 흐른 것은 시간일 뿐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고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에게 고전은 ‘오래된 미래’의 보물창고였다. 『한시 미학 산책』에는 시대의 변화상과 생각의 흐름, 삶의 전체성과 다양성, 열린 텍스트로서 이종 영역 간의 융합성 가능성, 개구쟁이 같은 놀이 정신, 놀랄만한 해학과 풍자 등 실용과 순혈의 잦대 아래 잊혀진 ‘우리 시대의 인문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고전이라고 해서 아무 고전이나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옛 시에도, 옛 그림에도 수준이 있고, 지금 글씨에도 높낮이가 있다. 무턱대고 옛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옛것이라야 한다. 높은 수준에서는 양(洋)의 동서도, 때의 고금도 없다. 이것이 고?이 지금에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이다. 하지만 그대로는 안 되고 솜씨 있게 가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치열한 사유와 글쓰기를 통해 이룬 텍스트의 개방성은 오래된 것을 가장 모던한 감각으로 풀어내는 소통의 인문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때 당장 필요한 것은 ‘기(機)’를 읽어내는 안목이다. 기는 말 그대로 기회(機會)요, 기관(機關)이며 기축(機軸)이고, 기능(機能)이요 기지(機智)입니다. 기(機)는 비밀스러워 기밀(機密)이고 기는 자칫 위태로워 위기(危機)이죠. 기가 모이면 기회(機會)가 되고, 기의 중추(中樞), 즉 기추(機樞)는 문의 지도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심(機心)은 따져 분별하는 마음이에요. 기는 그러니까 이것과 저것이 갈라지는 분기점입니다. 사람은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잘해야 한다지요. 그런데 임기응변이란 “그때그때 그 시기에 임하여 적당히 일을 처리함”이 아입니다. 대충 때워 넘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기에 임하여, 즉 어떠한 판단이 필요한 지점에서, 상황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자면 적절한 판단이 필수적이겠지요. 임기(臨機)해서 응변(應辯)하고, 응변하여 작제(作制)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에 부응하여 그 상항에 가장 알맞은 방식[制]를 창출해내야 합니다.― 〈보도자료 6. 지은이 인터뷰〉에서우리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스물네 가지 한시 이야기― 『한시 미학 산책』의 특징 2『한시미학산책』은 동아시아의 한시 이론을 빌려 중국과 한국 한시를 주제, 형식, 작법에 따라 스물 네 개의 테마로 분석하고 해석한 책이다. 중국의 두보, 이백은 물론이고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정지상, 이규보, 조선의 이덕무, 이옥, 그리고 현대의 박목월과 조지훈 등 국문학사를 장식한 대시인의 작품과, 계몽기의 언문풍월 등을 포함해 소재의 공간적ㆍ시간적 스펙트럼이 광대하다. 우리 시학의 근원을 탐색하는 한시 이야기는 모두 스물네 편이다. 한시의 언어 미학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비롯하여, 당시[唐音]와 송시[宋調], 정경론(情景論), 시안(詩眼)과 시마(詩魔), 잡체시와 파격시를 거쳐 선시(禪詩), 여기에 완결개정판을 위해 새로이 쓴 〈한시와 현대시 같고도 다르게〉에 이르기까지 이 봉우리 저 골짜기엔 구름도 많고 물길도 여럿이다. 한시를 왜 읽고 배우는지, 오늘을 사는 사람은 어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숙고하는 에필로그로 기나긴 한시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한시의 여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시를 보고 읽고, 그 아름다움과 뜻을 친절하고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이러한 한시의 미학을 ‘체험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책에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한시가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지은이가 공들여 읽고 깊이 추구한 뒤에 내놓은 것이라 독자에게 결코 생경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예시가 되어 한시 전체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 역할을 한다. 그런 치열한 탐구와 엄격성이 있었기에 잘못 논증된 부분에 대한 비판이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태백의 유명한 구절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반박하고, 또 권필이 의주에서 그를 찾아온 형 권겹을 만나 감격하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의 7구를 잘못 해석하여 완전히 다르게 오역한 사례를 비판하며 적실한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전반부에선 주로 한시의 미학을 논했다. 반면 중반부 이후에는 시에 얽힌 시인들의 사연, 문자 유희에 가까운 시들, 그리고 조선후기 한시의 변천과정에서 보여주는 파격과 해체 등 '이야기'가 풍부하다. 시는 현실에 맞선 자기 성찰과 혁신의 산물이며 시인은 떳떳한 기상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 또 잡체시는 한시만이 가질 수 있는 문자 유희의 재미를 보여주는 데, 재치와 언어구사력이 흥미롭다. 조선 중후기에는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한시에 대한 의도적인 해체나 파격이 성행하는데, 그 대표적 인사가 김삿갓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창작된 수많은 시들을 시대 상황과의 관련 속에 살피면서, 저자는 그 시들의 묘미를 인정하면서도 시대정신의 몰락이 가져온 문화의 하강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이 모든 과정에서 그는 말과 글이 가고자 하는 곳을 노려본다. 왜 이렇게 치열할 정도로 한시와 문장론에 집착하는 걸까? 왜 문장론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박지원의 문장을 샅샅이 연구하며, 한시에 매달리는 걸까? '말' 혹은 '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그리워하며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리고 말과 글은 어떻게 드러나고 숨어야 하는가? 이것이 애초의 화두였던 바, 한시는 이러한 문장의 미학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 문장도 예외 없이 고치다― 『한시 미학 산책』의 특징 3정서적 미감의 상실 시대에 우리 고전의 가치를 새펷게 인식하고 그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한 『한시 미학 산책』! 1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가 변했고, 지은이도 변했다.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또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 고전을 현대어로 옮겨오는 데 있어서도 눈금의 조정은 당연하고 마땅하다. 옛것을 그대로 따라 해서도 안 되고, 옛것과 완전히 달라서도 안 된다. 그대로 하면 알아듣지 못할 말이 되고, 완전히 다르면 굳이 옛것이라 할 이유가 없다. 같고도 다르게, 다르지만 같게 하려면 상동구이(尙同求異)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같음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다름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같은 것은 정신이요 알맹이다. 다른 것은 껍데기요 형식이다. 『한시 미학 산책』의 완결개정판도 마찬가지다. 세월 따라 생각이 바뀌고 안목이 달라졌고, 과욕과 치기가 앞선 곳도 있었고, 전에 안 보이던 부분이 새로 짚였다고 한다. 인용 작품도 더 적절한 예가 눈에 띄었고, 그래서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냈다. 한 문장도 예외 없이 고쳤다. 선시(禪詩)와 잡체시를 비롯한 몇 항목은 새로 쓰다시피 고쳤다. 한시와 현대시를 비교해 읽은 글은 새로이 추가했다. 특히 시 번역은 가능한 한 새로 했고, 스물네 개의 제목도 통일을 기해 손질했다. 특히 전에는 없었던 도판을 컬러로 70여 컷 이상 수록하여 눈을 즐겁게 한 것이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