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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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560g | 140*210*22mm |
ISBN13 | 9788954671774 |
ISBN10 | 8954671772 |
도스토옙스키 인물 카드 엽서 증정 (포인트 차감)
출간일 | 2020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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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560g | 140*210*22mm |
ISBN13 | 9788954671774 |
ISBN10 | 8954671772 |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189번으로 출간됐다. 도스토옙스키를 세계적인 작가로 끌어올려준 작품으로, 본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였으나 유형생활 이후 사상의 변화를 겪은 작가의 문학세계가 본격적으로 구현된 걸작이다.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려 살인을 저지른 젊은 대학생 라스콜니코프와 몸을 팔아 돈을 벌지만 고귀한 신앙을 잃지 않은 소냐를 대비시켜, 이념과 관념의 한계, 그리고 사랑과 진정한 구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
제1부 제2부 제3부 |
나에게 고전 명작이라고 하면 먼가 재미없는 딱딱한 어려운 이런 이미지가 강했다
아직 많은 고전명작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건 나름 읽을만 했다 그리고 여기에 숨어 있는 많은 의미들을 다는 알지는 못하지만 인물들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진행되는 스토리는 좋았다
조금 이름들이 길고 낮설어서 읽을때 앞 페이지에 이름 소개를 왔다갔다하며 읽는게 좀 불편하고 또 사실주의로서 소설속 가난과 사람들의 상황이 너무 않좋아서 너무 잘 묘사가 되서 읽기 불편할때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중성을 잘 적어서 나한테서도 그런점이 았는지 생각해 볼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죄와 벌[지은이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옮긴이 이문영, 펴낸 곳 문학동네,
901쪽]을 읽고
쥐어짜고.
쥐어짜고 쥐어짜고 쥐어짜서 결국 살인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냈지.
현관문 옆 벽 뒤쪽 구석에서 상자 안에 담긴 귀고리를 주웠다는 니콜라이를,
아무튼 그를 어떻게나 쥐어짜댔는지.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소설은 잠깐 그렇게
흘러가기도 한다.
죄(罪)는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이다.
벌(罰)은 잘못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주는 고통이다.
죄와 벌은 함께 존재한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하는 라스콜니코프를 작품에서 만나 다시
확인했다.
그는 아름다운 눈과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몸매를 지닌 빼어나게 잘생긴
청년이지만, 가난에 짓눌려 산다.
옷차림은 너무 형편없어서, 그런 누더기를 걸치고 벌건 대낮에 거리를
나다니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낡은 시계를 1루블 반에 저당 잡혀야 한다.
이자를 제하고 나니 1루블 15코페이카.
선술집을 찾아 어둡고 지저분한 구석자리, 끈적거리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주문해서는 첫잔을 허겁지겁 들이켠다.
그 곳에서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를 만나 그를 집에 데려다 준다.
그의 험한 삶을 보며 술을 마시고 남았던 돈, 전당포에서 빌렸던 돈을
아무도 모르게 창가에 놓아두고 나온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고 금방 후회하면서.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 살아서였을까?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
사람들은 취해 있고, 교육받은 젊은이는 하는 일 없이 실현 불가능한 꿈과
몽상으로 소진된 채 이론에 취한 불구가 되는 곳.
어디선가 유대인이 몰려와 돈을 챙기고, 남은 자들은 모두 타락에 물드는 곳.
그렇게 이 도시는 처음 순간부터 그에게 충동의 냄새를 풍겼는지 모르겠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그 동생까지 잔인하게 죽이도록...
왜 죽였을까?
‘난 감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단지 감행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난 그냥 죽였어, 자신을 위해서, 나 하나만을 위해서 죽인 거야.
그 노파는 악마가 죽였어, 내가 아니야.‘
공포가 그를 점점 더 사로잡았고, 특히 전혀 예기치 않는 이 두 번째 살인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살인을 하고 불안 속에 방황하는 그의 행동과 심리들을 따라가 보아도 분명한
이유를 찾긴 어렵다.
그가 이상주의자라서?
아니면 나폴레옹에 지독하게 심취했으니까?
다시 말해, 아주 많은 천재적인 사람들이 개개의 악에 아랑곳하지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걸 넘어섰다는 사실이 그를 특히 매료시킨 탓인가?
하지만 라스콜니코프의 속마음은 이렇다.
‘사실 누가 알겠어! 어쩌면 난 정말로 미쳤고, 요즘 일어난 모든 일이 다,
다 어쩌면 단지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소냐의 아버지 죽음을 겪으면서 문득
‘살 수 있다, 아직 삶이 남아 있다. 내 삶이 늙은 노파와 함께 죽어버린 건
아니다.’라고 느끼기도 한다,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자라 할지라도 평생 용기 있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할 거라고 동생에게
말하기도 한다.
새벽 여명 속에서 네바 강을 굽어보며 비열한 인간이라는 걸 자책하고.
그는 고백하기 위해 그녀를, 소냐를 맨 처음으로 찾는다.
그에게 사람이 필요했을 때, 그녀에게서 사람을 찾았다.
아마 사람다운 향기가 다가왔을 터다.
소냐는 그로부터 처음엔 동정을 받았다 해도 무심한 듯 따뜻한 그 신호를
알았을 거고, 그래서 그녀도 운명이 이끄는 대로 그의 뒤를 따르게 된다.
미사가 끝난 후 소냐는 불쑥 그의 두 손을 잡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 친밀한 동작을 이해할 수 없어 라스콜니코프는 충격까지 받았다.
이상하기조차 했다.
그녀의 손길엔 그에 대한 조금의 반감도, 조금의 혐오감도, 조금의 떨림도
없다.
그야말로 무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였다.
소냐는 그에게도 성호를 그어준 후 그의 가슴에 삼나무 십자가를 걸어준다.
십자가를 걸어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지는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살인자인 그에겐 그나마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분류될 여지가 남을 수밖에
없다.
소냐의 말을 떠올리며, 광장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면서
그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게 인도한다.
소냐는 몸을 숨긴 채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었기에 그의 슬픈 여정에 쭉
동행해야 했다.
심장이 온통 뒤집어졌으므로 따라갈 준비를 했다.
그녀와 라스콜니코프 사이에서 한 번도, 한 마디도 언급된 적이 없었지만,
두 사람 다 그렇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소설도 서서히 결론을 지어야 하므로 라스콜니코프는 경찰서로 올라간다.
일리야 페트로비치에게 조용히, 띄엄띄엄,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 노파와 그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라고.
이후 재판에선 범죄 자체가 어떤 일시적인 정신착란 상태에서, 강도 살인에
대한 병적인 편집증 상태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자신의 열악한 상황, 지독한 가난, 의지할 곳 없는 처지 탓이었으며.
살해를 결심한 건 원래 경솔하고 소심한 성격인데다 궁핍과 불운으로 화가 난
탓이라고 그렇게.
배경은 바뀌어 시베리아이다.
광활하고 황량한 강가에 있는 도시의 요새 안에 있는 감옥에, 그는 팔 년의
제 2등급 유형 징역수로 수감되어 있다.
라스콜니코프와 소냐에겐 아직 칠 년이 남았다.
그때까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하지만 그는 부활했고, 그 사실을 알았고,
새로워진 자신의 온 존재로 그걸 온전히 느꼈으며,
그녀는 그녀야말로 오로지 그의 삶 하나만으로 살고 있다.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뒷이야기]
너무 길다.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와 소피야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주인공 둘의 성과 이름이다.
더구나 로쟈, 로젠카 그리고 소냐, 소네치카라는 애칭으로도
표현하고 있으니,
너무 헛갈렸다.
자꾸 헷갈렸다.
많이 참아야 한다.
《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문영 옮김
[문학동네] | (2020)
‘한 순간도 혼자일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를 발견하다’ - [I]
올해는 세기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남긴 5대 걸작 중 가장 먼저 세상에 나왔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소설은 《죄와 벌》이다. 한 달 전에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정리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한동안 책표지만 들여다보고 시작하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새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감날이라는 마음으로 독후 기록을 남겨본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었다. 앞부분은 무엇보다 소설을 이해하는 배경 혹은 단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듯하다. 보다 개인적인 생각들은 뒷부분에서 정리해갈 계획이다.
이 소설은 도스토옙스키가 8년의 시베리아 유형살이를 마치고, 도박으로 더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았던 시기에 절박하게 써내려가야 했던 작품이었다. 유럽에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급속하게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19세기 중반의 러시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페테르부르크의 도시 빈민 지역에 세 들어 살던 로디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이하 ‘로쟈’)는 망설이며 광장으로 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가난에 짓눌려있던 법학부 대학생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더위 때문이었을까. 로쟈는 자신의 물건을 맡긴 전당포 고리대금업자 자매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 나온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분명함에도 추리심리소설처럼 읽힌다. 소설의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른 청년이 사건 후 여러 사람들과 엮이며 벌어지는 약 2주 간의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죄자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을 묻고 있기도 하다.
그는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처럼 소설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소 지루하지만 명료하게 읊곤 하는 톨스토이와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많은 정보를 인물의 내면 의식이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지독한 가난을 겪고 있던 배고픈 청년이 살인을 저질렀다. 독자는 그의 살인 동기를 텍스트에서 캐내야 한다. 가난만으로도 살인의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로쟈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그의 입에서 말하는 ‘살인의 이유’는 역사에서 등장했던 혁명가의 ‘진실‘에 더 잘 부합하는 듯하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청년이 낙인찍히고 감옥에 가지만,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은 사람들이 우상을 세우고 숭배까지 받는 현실인 것이다. 나폴레옹은 한 공동체를 파괴하고, 학살을 자행했으며, 자신의 군대를 버리거나 무모한 전투에 수 십 만 명의 부하를 잃었는데도 말이다. 이보다 더 부조리한 현실이 있을까.
로쟈에게 이 문제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는 이와 관련한 논문까지 써서 발표하기도 했으니. 논문에서 그는 인간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열등한(평범한) 부류’와 ‘비범한 부류’로. 평범한 부류는 인구를 늘리고 공동체의 재료가 되는 사람으로, 예의바르고 순종적이다. 반면 비범한 부류는 재능과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로, 사회에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양심에 따라 기존의 법과 질서를 뛰어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움직이고 인도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고대 서양 철학의 ‘질료와 형상’과 같은 전통적인 이분법 논리의 전통에서 형성된 가치관처럼 여겨진다. 여기서 ‘형상’은 ‘본질’ 혹은 ‘내재 원리’ 혹은 ‘이데아’에 가까운 개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인물로 로쟈는 예수, 마호메트, 나폴레옹 등을 언급한다. 로쟈는 이들이 기존의 법과 질서를 파괴한 이들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타인을 파괴할 권리’가 부여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사회에 아무 쓸모없고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인 전당포의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여서 그의 재산을 수많은 이들의 극빈해결에 사용하는 것이 ‘선’이라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을 뒷받침한다. 공리주의의 기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이는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인류사의 한 시기를 특징짓는 사상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확장해가던 서구 문명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또 위력을 발휘했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로쟈는 자신이 한 행위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와 같은 존재를 죽인 것뿐이라고 말이다. 수많은 선행을 위해 하나의 범죄쯤은 불가피하다는 궤변으로 들린다. 다만 역사 속 ‘위인’들의 행적을 보면 로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대의를 위해 일어선 모든 혁명가는 대개 그랬으니까.
하지만 소설의 후반에서 로쟈는 소냐에게 자신이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죽였어. (...) 난 이미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은 셈이지.’(제2권, 230)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살인의 동기가 공리주의적인 대의를 지향하긴 했지만, 자신은 이런 일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고한 전당포 자매를 왜 죽어야 했을까? 로쟈는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지점에서 범행에 대한 정당성을 상실하고 만다. 러시아어로 ‘범죄’가 ‘선을 넘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소설의 후반에서 로쟈는 자신이 예수나 나폴레옹과 같이 선을 넘을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살해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역사의 메시아처럼 타인을 죽이는 일을 성공시켜 하나의 ‘예술’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을 ‘비열한 쓰레기’라고 비하하면서 스스로를 ‘미학적 이’라고 부른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로쟈는 자신이 인간을 죽인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 ‘거사’에 실패한 자신에게 실망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미학적 수치’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조롱한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김연경은 《살다, 읽다, 쓰다》에서 로쟈의 살해 동기를 ‘메시아 콤플렉스’(117)로 설명한다. ‘내가 예언자이자 혁명가인가 시도해보았더니 아니더라’라는 거다. 그러므로 김연경은 로쟈의 살인을 ‘오만한 자기중심주의와 자폐적인 선민의식의 산물’(같은 책, 118)로 표현한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로쟈에게 소냐는 자수를 권한다. 이에 로쟈는 ‘놈들(일차적으로 경찰과 사법당국일 듯)이야말로 수백만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기꾼에 비열한이며, 자신을 겁쟁이, 바보라고 비웃을 것’이라고 하면서 경찰서에 가기를 거부한다. 로쟈는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를 더 두려워하는 듯하다. 이에 반해 소냐는 “너무 괴로울 거야.”라며 로쟈를 걱정한다. 소냐는 이 문제가 로쟈 자신의 문제라는 것, 자신에게 거짓된 상태로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의 모티프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서 얻었다.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중년 여성 두 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되기 직전에는 한 대학생이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보고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이야기가 ‘현대성을 입증한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제정의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현실, 자본주의로 인한 급속한 빈부격차,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울한 징후를 예민하고 면밀하게 읽어냈다.
여기까지는 소설의 배경을 이해해보고자 역자 해설과 다른 책을 참고해서 정리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다층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할 만한 실마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읽고 《죄와 벌》에 대해 글을 썼다. 당대의 사상과 문학 이론은 여러 훌륭한 평론가의 글을 참조하면 될 듯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눈에 들어왔던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 개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을 두 번째 읽고도 곧바로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주목했던 부분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지엽적인 것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소설의 제목과 관련한 철학적인 논의의 주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독서에서는 처음 소설을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도시라는 공간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인간에게는 숨 쉴 수 있는 공간과 공기가 필요하다
우선 소설 속의 인물들에 주목하기 전에 이들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낫겠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다. 발트해에 접한 항구도시로, 20세기에는 주로 레닌그라드로 알려졌던 곳이다. ‘페테르(Peter)’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의 이름과 같은 ‘베드로’를 뜻하면서 동시에 ‘돌, 바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흔히 페테르부르크를 ‘반석 위의 도시’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대한 암반 구조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알고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19세기 중반에 이 도시는 러시아의 행정수도로서 유럽으로 나아가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도시는 거대한 국가의 수도로서 화려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발트해를 바라본 북부의 도시라는 예상과 달리 찌는 듯한 7월, 불길한 전염병이라도 돌 듯 한 날씨가 이어진다. 타지에서 막 도착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로쟈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는 페테르부르크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도시가 만들어졌을까요. (...) 관청직원들과 온갖 부류의 신학생들의 도시지요! (...) 지금은 오로지 해부학 하나에만 희망을 걸고 있지요, 정말이오!”(제2권, 16) 이 말에서 도시와 시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무신론적 분위기, 이를 테면 유물론과 니힐리즘 사상, 맬서스의 수학 공식에 따르는 인구 증가의 법칙, 다윈의 진화론과 여기에 얽힌 논쟁 등. 이성에 보다 큰 가치를 두는 사상 조류가 마치 ‘끓는 가마솥’처럼 부글대며 뒤섞여 있던 대도시를 연상케 한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로쟈와 대화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이곳은 미친 자들의 도시더군요. (...) 페테르부르크만큼 사람의 영혼에 음울하고 강렬하고 기괴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드물 거요. 기후가 주는 영향 하나만 봐도 그렇지요! 무엇보다 이곳은 전(全) 러시아의 행정 중심지니, 그 성격이 모든 것에 반영될 수밖에요.”(제2권, 306) 숨 막히게 하는 더위 속에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이자 암울한 사건과 사람들의 우울한 영혼을 거머쥔 도시. 소설을 읽는 내게 도스토옙스키가 바라본 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은 돌무지로 만든 고분 같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로쟈가 세들어 사는 골방은 천장도 낮고 매우 좁은 공간이었는데, 오죽하면 로쟈의 어머니 풀헤리야 라스콜니코바가 아들의 방을 처음 보고 “네 방은 어쩜 이렇게 형편없니, 로쟈, 꼭 관 같구나.”(358)라고 하지 않았는가.
살인을 저지른 로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반면, 사람들이 이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기절하거나, 앓을 정도로 소심하고 병약하다. 로쟈가 머무는 공간은 그의 기분을 옥죄듯, 인물의 심리를 압박하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집에 돌아온 로쟈는 마당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 못 같은 것을 두들겨 박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마치 ‘관’과 같은 자신의 방에 누워있던 로쟈는 누군가 관에 못을 받는 듯한 소리를 듣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시시각각 갇힌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자각한다. 소설 전체에 걸쳐 로쟈는 ‘1아르신의 공간’에 대해 강박적으로 생각한다. 1아르신은 약 71 cm에 해당하는 길이로, 성인의 신체 너비에 해당하는 길이단위로 보인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보면, 1아르신의 공간이란 ‘관’의 너비에 해당하는 길이라고 연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관과 같이 좁은 공간에 갇혀 간신히 몸을 누인 청년을 말이다. 이 숨 막히는 공간에서 누가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을까. 그럴만한 공기도 충분하지 않았을 테다. 살인 전에는 ‘가난’이라는 현실에, 살인 후에는 ‘법과 규범’이 그의 영혼을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 여기에 찌는 듯한 7월의 더위는 로쟈를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한다.
사람이 회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삶을 포기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안의 모든 갈등 요소들을 억누르고 권리를 포기한 다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당장 행동 혹은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 앞에서 로쟈는 강물에 뛰어들 욕구를 물리치고 ‘1아르신의 공간’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 사실을 고백하는 로쟈의 말을 엿들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에게 “사람은 누구나 공기가 필요한 법이지요, 공기, 공기가... 그 무엇보다 말이요!”(제2권, 264)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로쟈의 친구 라주미힌의 친척형이자 예심판사인 포르피리는 로쟈의 범행 사실을 알고 그를 압박하는 동시에 자수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맹세컨대 삶이 당신을 이끌어줄 겁니다. (...) 지금 당신에겐 오로지 공기가 필요할 뿐입니다, 공기, 공기가!”(제2권, 295) 그러니까 두 사람은 로쟈에게 ‘1아르신의 공간’을 탈출하여 삶을 택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쉬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드디어 자수를 결정한 로쟈가 소냐를 다시 방문하자 그녀는 십자가를 로쟈의 목에 걸어준다. 로쟈는 곧바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센나야 광장 한복판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땅에 입을 맞춘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삶을 선택하기로 한 그는 경찰서에서 자백을 하고 시베리아의 감옥에 수감된다. 또다시 관과도 같은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감옥에 갇혀 자유로워진 지금”(제2권, 424)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된다. 로쟈는 찌는 듯이 무덥고 답답한 페테르부르크의 ‘관’과도 같은 공간에서 센나야 광장을 거쳐, 추운 겨울이 지배하는 시베리아의 감옥으로 이동한다.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1아르신의 공간을 탈출한 댓가로 로쟈는 삶을 얻는다. 이제 소설은 범죄를 저지른 한 청년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이야기,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다음 글은 내년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