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개월 동안 들어온 수많은 얘기들은 내 책이,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짓에 대해 체념한 체 일체 침묵해온 학부모들의 대변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준다. 참여적인 교사들도 뭔가 변해야 한다면서 내게 동조했다. 나는 정처 없이 표류하는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권위적인 교사들의 모습에 절망하는 학부모들, 독단적이고 무절제하고 무관심한 교사들에게 매일매일 무력하게 내맡겨져 있는 아이들, 그리고 경직된 상황과 동료들의 무지에 절망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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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들이 지적이고 독창적이고 섬세한 자녀가 더 이상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경험한다. 곧잘 불만을 털어놓고 때때로 큰 소리로 분노를 표출하는, 열의 없고 불만투성이인 학생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처음에 호기 있게 밝혔던 포부를 무엇 하나 실현시켜주지 않는 사람들이 대표로 있는 기관에 자녀를 맡겨야 한다는 상상을 하면 겁이 덜컥 난다. 이곳에서는 교사들도 언제나 아주 많이 배울 거라고 연단에서 쾌활하게 말하는 노련한 여자들. 하지만 모두가 배우는 사람이라면 왜 그 중에서 교사들만 돈을 받고 학생들은 안 받는지, 그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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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벽에 있는 불길한 전조는 입학 첫날에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여럿 둔 엄마로서 쌓은 경험 덕분에 눈이 날카로워질 때에야 비로소 그 전조는 점차 두드러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 입구 위에 쓰여 있던 글귀를 오늘날에는 모든 교문 위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에 들어서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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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어떤 고객을 유치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 고객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 점은 사설 보습학원들이 학부모를 유치하는 태도에서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저런 현대적인 홍보 카피가 다음과 같은 점을 증명한다.
낮은 점수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아이이든 공부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시간당 최소 2~3만 원이면 자신감 강화와 개인별 맞춤 교육, 시험 대비와 수업 내용 복습이 전부 가능하다.
대체 이런 초현대적인 아웃소싱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우리는 사실 원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고용된 교사들이 이 정도의 기분 좋은 교육 열정을 보여주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기대했었다. (……)
다른 곳에서는 어디든 서비스가 평가받지 그 수혜자는 평가받지 않는다. 학교와 교사들만이 상황을 매우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뒤집는다. 학교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학생의 탓일 뿐, 절대 불합리하고 무미건조하고 무능력하고 유치하고 게으른 교사들의 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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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교사가 형편없는 자동차 제조업자, 형편없는 수공업 마이스터 또는 형편없는 세일즈맨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한 가지다. 경제계에서는 어디에서나 형편없는 기업들이 자신들의 무능력의 비용과 결과를 스스로 책임진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파산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반면에 우리는 형편없는 교사들을 퇴직 때까지 먹여 살리고 그들이 날마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내버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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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머리와 가슴, 손으로 하는 총체적 학습을 꿈꾼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생각’ 없는 체험 교육법은 학생들을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 방법으로 가장한 채 계몽주의 전통의 본질적인 요소를 파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머리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대신에 감정의 지껄임을 조장하는 것이다.
열린수업 원칙의 가장 좋은 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학습으로 학생들을 일찌감치 해방시켜주는 것이 그만큼 교사의 부담을 대폭 덜어준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저희끼리 수업의 일부를 준비하여 진행하고 서로 채점에 적극 참여하고 우등생이 열등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다들 함께 학급회의에서 논쟁 능력을 훈련할 때, 교사는 학생들 틈에 아무 데나 앉아 있거나 창가에 서서 쉽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자신의 일을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 학습 과정에 대한 관찰로만 국한시킬 수 있다. 이런 식의 수업은 옛날의 교사 중심 주입식 교육보다 훨씬 더 즐거울 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현저한 학습 교과도 유발한다. 유감스럽게도 학생보다는 교사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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