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집하는 잡지에는 수십 편의 원고가 실리기 때문에 고작 하나를 끝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마감 기간에는 보통 다음 원고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원고를 넘긴 뒤 한숨은 들리지 않게 한 번, 기지개는 크게 한 번 쭈욱 켰다. 그러고는 다음 원고를 찾는데, 원고가 없다! 저자 교정 중인 원고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운 좋게도 잠깐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당장 교정볼 원고는 없고, 오늘은 금요일이고, 어차피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니, 그렇다면? 퇴근인가!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가방을 한번 슥 보았다. 아침에 (금요일의 습관으로) 원피스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챙긴 내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금요일의 습관으로」중에서
샘 쿡의 [Shake , Rattle and Roll]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음악으로 딱이다. “Get out of that bed, go wash your face and hands.” 나도 시작해볼까? 춤을 출 때 첫 곡과 마지막 곡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대체로 첫 곡은 그날의 춤을 좌우하고 마지막 곡은 남은 하루를 좌우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무난한 곡으로 시작해 최대한 좋아하는 노래로 끝내려고 남몰래 노력하는 편이다. 어떤 강렬한 경험은 그다음 스윙 바에 올 때까지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마지막의 기억이 오래 남아서인지 특히나 마지막 곡에 의미를 두게 된다.
---「금요일의 습관으로」중에서
춤을 배우기 전까지 나의 ‘스텝’은 보통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만 쓰였었다. 어디에 가기 위해 걸었고 늦지 않으려고 뛰었지 ‘걸음을 위한 걸음’을 내딛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이 정해진 스텝에 목적과 의미가 생기는 것이었다. 내가 밟고 있는 이 약속된 스텝은 그 자체로 춤이 되었다. 게다가 한 걸음에 두 박자를 셀 수 있다는 건 다분히 충격적이었고, 그런 여유를 실은 걸음은 그 자체로 꽤 뜻깊게 다가왔다. 내 걸음이 걸음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이 걸음이 만들어내는 춤이 보람 있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당시에 내가 마음에 여유가 있고,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감흥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걸음이 춤이 되기를」중에서
10년 이상의 공백 후에 다시 돌아온 내게 사람들은 가끔 묻곤 한다. 왜 떠났나. 이렇게 스윙을 좋아하면서 왜 떠났고, 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나. 선뜻 대답하지 못한 사정은 이러하다. 나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떠났고, 직장인으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고, 직장인으로 잘 살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하는 데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을 뿐이다. 직장인으로 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 탓에 스윙을 그리워하는 세월이 너무 길어졌다.
---「바쁘게, 바빠서, 바쁘니까」중에서
어쩌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늘 그랬다. 모든 시작이 어려웠다. 그 예전, 스물두 살에 나는 어떻게 스윙을 시작했을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춤을 찾아, 처음 가보는 동네로 혼자 가서, 스스로 깔루아가 되었던 스물두 살의 나.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만 같다는 생각을 삼십대 중반을 (바쁘게) 넘어서면서 자주 했다. 삼십대 초반에는 (바빠서) 그런 생각을 조금 했고, 이십대 후반에는 (바쁘니까) 거의 하지 못했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십대 중반에 잃어버린 깔루아를 진짜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인데, 10년 동안 가끔 궁금해하고 그리워만 하다가 갑자기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김선영이 깔루아를 걱정한 건지, 깔루아가 김선영을 걱정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내가 나를 걱정했다는 것이다.
---「바쁘게, 바빠서, 바쁘니까」중에서
문제는 그것이었다. 늘 내 문제는 그것이기도 했다. 생각이 많다는 것. 춤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머리를 비우고 음악에 집중하고 그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게 중요한데, 나는 반대로 했다. 음악을 듣기 전에 몸에 힘을 줬고 머릿속은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잘될 리가 없었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잘하고 못하고가 따로 없는데, 나는 춤을 추면서 계속 이게 맞나, 내가 잘하고 있나, 틀렸으면 어떡하나만 생각했다. 남들 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속마음으로는 잘한다는 소리를 한 번쯤은 꼭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 춤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던 그때,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모를 대사가 날아들었다. “스윙 아웃이 진짜 이상한데?”
---「내 몸을 내 마음대로」중에서
스윙을 시작한 뒤로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스윙은 언제나 나를 확실하게 위로해주었다. 이제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면 스윙을 떠올린다. 댄서는 미워도 이 춤은 미워할 수가 없고, 즐거울 때보다 슬플 때 더 생각이 나는 게 스윙이 되었다. 이 쓸쓸한 세상에서 위안을 보장받는다는 건 얼마다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날, 구두 언니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언젠가 까르보나라에 소주를 마시며 물어보고 싶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