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싸움을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렇게 해보니 되더라고, 동성애자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성미산학교의 남학생과 웃으며, 세상이 변하긴 변하더라, 살다 보니 달라지더라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동화 속 공주님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아니더라도, 레즈비언 할머니 부부는 드디어 건강보험료를 같이 낼 수 있게 됐다는 해피엔딩이면 좋겠다.
--- p.10
나는 대체 언제부터 레즈비언이었던 걸까? 처음으로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칭하기 시작했을 때?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 질문을 한 주체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성애자는 자신이 언제부터 이성애자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하긴, 나한테 굳이 그런 질문을 한 것을 보면 그러함이 분명하다. 설마 본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레즈비언은 소수자니까 특수한 계기가 있을 거라고 무례하게 지레짐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 확립 시점에 대해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자인 나는, 계속 성찰을 반복할 수밖에.
--- p.18~19
“엄마 아빠, 나 할 말이 있어. 그런데 얘기하면 다들 좀 놀라고 싫어할 수도 있어.”
“너 설마 임신했니?”
엄마가 예상 밖의 화두를 던졌다. 내 방 벽면에 붙어 있는 수많은 걸그룹 포스터와 책장을 빼곡히 채운 동성간 사랑에 대한 서적을 보고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임신이라니, 내가 꺼내려는 얘기와 너무나도 먼 주제였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면 차라리 임신인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하게 아니라고 정정해주며, 내가 사실 레즈비언이고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짧은 정적이 흐르고 엄마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꺼내려던 찰나, 아빠가 개입했다. 할아버지 주무시는데 큰소리 내지 말고, 일단 자자고 했다. 내 커밍아웃은 이렇게 실패로 끝날 것인가.
--- p.39
걱정과 달리 조심스럽지만 화기애애한 말이 오고 갔다. 아빠가 주책맞게 자신이 대학생 때 인기가 많았다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으나 무척 즐거워 보여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 아빠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결혼 비밀보다는, 이 결혼을 지지해주기 위해 아빠가 자신과 동성 커플의 공통점을 찾아서 해줄 말을 열심히 골랐다는 점에 놀랐다. 정말 맞는 말이기도 했다. 동성동본 혼인 금지, 호주제와 같이 지켜야만 할 절대적 가치로 보였던 일들이 2, 30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별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의 결혼도 30년 뒤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니, 결혼 승낙 발언으로 들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말이었다.
--- p.104~105
청첩장 디자인이 완성됐다. 드디어 회사에 휴가 및 경조금 신청을 할 때가 왔다. 전무님과의 일련의 대화 후 인사팀에서는 별도로 얘기가 없었고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정식으로 물어본 것은 아닌 만큼 인사팀에게 따로 문의 메일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 다음에도 결혼하는 사내 동성애자들이 나타날 텐데 혜택 수령 가능 여부를 미리 정리해두면 그들도 편해지리라 생각했다. 메일을 보내기 전에 부장님에게 논의를 드렸다.
“부장님, 첨부한 도표와 같이 각종 혼인 관련 혜택 적용 여부를 인사팀에 문의하려고 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이게 무슨 얘기지. 큰일을 만들지 말라는 뜻인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려는 찰나, 부장님이 말을 이어갔다.
“청첩장만 첨부하라고 규정에 적혀 있는데 규진이라고 굳이 따로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어요. 나는 승인할 테니까, 기안하세요.”
순간 울컥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남들 이상으로 증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 p.116~117
반지를 교환하고 키스를 한 뒤, 사회자가 우리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사진 촬영과 함께 부케 던지기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우리 결혼식은 여느 웨딩처럼 키스와 함께 170명분의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원했던, 가장 보통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우리 부부의 결혼을 위한 여정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결혼, 정말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나의 혼인서약서로 대신한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 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안 되겠지.
함께하다 보면 분명 힘든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마일리지 합산이 안 된다면 내가 언니 카드로 적립을 할게.
신혼부부 대출이 안 되지만 1주택 세금으로 2주택을 보유할 수 있어.
수술 시 동의를 못 하게 하면 아는 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가자.
사망 시 상속 순위가 밀린다면 미리 공동 명의로 법인을 설립할게.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지금 서로가 골라준 웨딩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축하해주는 하객들 앞에 서 있어.
결혼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의 결혼은 행복할 거야.
나랑 즐겁게 살아보자.
사랑해.
2019년 11월 10일
신부 김규진
--- p.134
결혼기념일을 눈물과 좌절로 보낼 수는 없는 법이죠. 퇴근한 언니와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에서 만났습니다. 힘들지는 않았냐, 얼른 맛있는 거 먹자는 얘기를 나누다 언니가 편지를 건넸습니다.
“우리가 뉴욕에서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 자기를 만나고 나서 항상 나보다 얼마나 용기 있고, 사랑이 가득하고, 솔직한 사람인지 느끼고 있었어. 하지만 오늘 자기가 나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부딪혀보려는 모습에 다시 한번 반한 것 같아.”
저도 이 편지를 읽고 언니에게 다시 한번 반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랑 결혼하길 참 잘했어요. 행복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언니가 병뚜껑 열기 담당입니다. 항상 제가 먼저 열겠다고 덤벼들지만, 생각보다 사지에 힘이 없는 스타일인지라 결국에는 실패하고 넘기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언니는 대신 병을 열며 “자기가 다 돌려놓은 건데 내가 마무리만 한 거야”라고 저를 북돋아주곤 합니다.
오늘 구청에 가며 왠지 저 생각이 났습니다. 굳게 닫혀 있는 병을 한 명씩 돌려도 보고, 뜨거운 물도 붓고, 그 모습을 보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시도하다 보면, 제가 열지 못하더라도 결국에 병은 열리게 되어 있지 않을까요? 분명 그럴 겁니다.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