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러스는 박제된 멧비둘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지하실은 무덤처럼 괴괴하고 고요했다. 천천히 드나드는 숨결에 새의 깃털이 흔들릴 뿐이었다.” --- p.21
“소년이 마대자루 끈을 풀기 시작했다. 사일러스의 눈동자가 소년의 손가락을 좇았다. 자루 안에 갇혔던 공기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달큼하면서도 지독한 고기 비린내. 적어도 개 두 마리라고 사일러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다리를 들어 올린 뒤에야 목덜미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목이 하나. 머리도 하나. 두개골은 아직 여물지 않았다. 사일러스는 숨이 막혔다. 웃음이 절로 났다.” --- pp.26-27
“왼쪽 강아지의 복부를 살짝 절개하고 균일하게 힘을 가하며 가죽을 벗겼다. 치아 사이로 얕은 숨이 식식거리며 새어나왔다. 가죽과 그 아래 장기에 구멍을 내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했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무렵, 결국 가죽을 온전한 한 조각으로 벗기는 데 성공했다.” --- p.42
“요즘은 온통 거짓투성이에요. 우리는 요즘처럼 배경이 거무죽죽하고 맥 빠지는 그림이 아니라, 더러운 발을 한 예수를, 턱에 사마귀가 난 요셉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그게 진짜니까.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거죠.” --- p.138
“아이리스는 살면서 한 번도 선택이라는 사치를 누려본 적도, 인생을 바꿀 권리가 있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 p.140
“아이리스는 자신의 그곳을 수치스럽고, 은밀하고, 숨겨야 하는 원초적인 부위로 여기도록 배웠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게 음모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위협하던 그 덫이 이토록 매혹적인 거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 p.333
“그들에게 아이리스는 재미로 바라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이 허리에 팔을 두르면 친근함의 표시였고, 귓전에 휘파람을 불거나 강제로 볼에 입을 맞추면 추켜 세워준 것이니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리스는 그런 남자들의 관심을 고마워하면서도 동시에 슬쩍 거부해야 했다. 관심을 부추기면서도 그 관심을 거절해야, 순수함과 선의에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고 남자들을 무시한다는 인상도 주지 않았다.” --- p.379
“설터 부인은 여전히 반은 인간이고, 반은 알약이야?” “아편 때문에 헛것을 보는 게 부쩍 심해졌어. 오늘 아침에는 도자기 인형이랑 애정 행각을 벌였다고 나를 꾸짖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