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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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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474g | 140*210*18mm
ISBN13 9791160074864
ISBN10 1160074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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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이 좋았다고들 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달 없는 하늘 아래 칼에 찔리고 폭행당해 피투성이인 채로 내 사무실 앞 골목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경찰까지, 다들 같은 말을 했다. “운이 좋아 죽지 않았다.” 라고.
정말 그럴까?
--- p.11

우리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지만 나는 나이얼을 늘 내 집을 찾아온 손님처럼 대우하고 있다. 이를테면 친구처럼.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을 내가 좋아한다는 걸 그가 알면 좋겠다. 그가 환영받는 존재로서 이 집에서 편안히 머물기를 바란다.
여기는 그의 집이기도 하니까.
--- p.23

“이틀 전에 우편으로 열쇠를 받았어요. 이게 무슨 열쇠인지……?”
해리엇은 흡연자처럼 깊은 쇳소리를 내며 웃는다.
“농담도 참 잘하시네요.”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2주일 전쯤 저희를 찾아오셨잖아요.”
나는 몸이 굳어 조용히 듣고만 있다.
“원룸을 임대하고 6개월치 월세를 내셨고요. 설마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 p.33

내 행세를 하는 ‘또 다른 나’를 찾으려면, 합법적으로 내 것인 신분을 되찾으려면 정신이 맑아야 한다. 차분해야 한다. 섣불리 과잉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
예전엔 내가 사냥을 당했지만,
이젠 내가 사냥을 할 차례인지도 모른다.
--- p.35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이 여자가 누군지 알아내야 해요. 이 여자가 본인이 주장하는 신분이 아닌 게 너무나 확실하거든요.”
“아뇨, 아닙니다. 당신한테 필요한 건 사립탐정이 아니라 의사예요. 정신과 의사. 제정신이 아니구만요.”
두 뺨이 달아오르고, 속에서 열불이 인다.
--- p.43

그는 별거 중인 걸까?
전에 그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 내가 놓쳤나?
듣고도 잊어버린 걸까? 요즘 나는 툭하면 잊어버리곤 한다.
--- p.51

요즘 나는 머리를 자른 지 오래됐지만, 저 여자는 나와 똑같은 밤색 머리를 한때 내가 즐겨 했던 똑단발 스타일로 잘랐다. 각진 턱과 곧은 콧대도 나를 닮았다.
그리고 내 안경과 똑같은,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의 투명 테 안경을 썼다.
연하고 차분하고 클래식한 느낌의 회갈색 매니큐어. 다양한 해석의 여지와 시크함 때문에 나는 한때 회색 매니큐어를 좋아했다. 여자가 한쪽 귀 뒤로 머리를 넘기자 로즈골드 소재의 달랑거리는 줄세공 귀고리가 드러난다. 예전에 내가 즐겨 했던 스타일이다.
--- pp.71~72

요전 날 사립탐정에게 들은 말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 말을 되씹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 사립탐정은 돼먹지 않은 개새끼였을 뿐이다. 하지만 말투가 기분 나쁘기는 했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자는 나를 미친 여자 대하듯 했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봤다.
그 탐정이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설명을 잘 들어주기만 했어도…….
오늘 오후에 내가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만, 다른 이에게도 확인받고 싶다. 다른 이도 내가 본 것을 똑같이 본다면 나는 미치지 않은 거니까.
--- p.75

나는 앞에 앉은 잘생긴 나이얼을 바라본다. 그의 온화한 푸른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곧 편안해진다. 앰버의 유치한 행동에 마음을 쓰느라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다. 여기가 중학교도 아니고, 우린 성인들이니 우정이 끝났더라도 어린애처럼 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앰버와의 우정이 어쩌다가 끝나버렸는지 그 계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앞에서 보인 앰버의 행동으로 판단컨대, 내 기억에는 없지만 무언가 크게 사이가 틀어질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 p.87

또 다른 ‘브리엔’의 사진들을 마저 훑어본다. 이 여자와 나는 같은 곳에서 쇼핑하며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예전에 쇼핑했던 곳에서 이 여자가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 이런 사실에 처음에는 기함을 했지만 그것도 점점 익숙해진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가 즐겨 마시는 술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제락Sazerac 칵테일이다.
이 여자는 72주 전부터 줄곧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만든 게 72주 전이니 72주일 동안 브리엔 두그레이로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 p.9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강도 사건을 겪은 후 기억 장애를 비롯해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브리엔은 친절한 룸메이트 나이얼에게 의지해 집에만 틀어박혀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리엔의 이름으로 된 집 임대 서류가 날아온다. 혹시 강도가 자신의 신분증을 팔아넘긴 것일까 싶어 그곳에 가본 브리엔은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빌리고, 자신과 비슷한 외모와 옷차림, 같은 차를 몰고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자를 보고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심지어 브리엔의 지인들과도 SNS로 교류하고 있었다! 브리엔은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 알아보려 하지만, 사건은 파헤칠수록 점점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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