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06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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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0쪽 | 486g | 124*195*24mm |
ISBN13 | 9791190885157 |
ISBN10 | 1190885158 |
출간일 | 2020년 06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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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0쪽 | 486g | 124*195*24mm |
ISBN13 | 9791190885157 |
ISBN10 | 1190885158 |
악몽보다 섬뜩한 현실의 초상 남미 전통 미신과 주술 의식, 부조리한 세계가 공존하는 호러 소설집 “라틴아메리카 고딕 리얼리즘의 여왕”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소설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소설(nueva narrativa argentina) 세대를 이끄는 70년대생 작가군의 선두 주자로, 지금까지 스페인어 문학 전통에서 없었던 호러 문학 장르의 지표를 제시하고,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환상 문학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발전시킨 작가로 꼽힌다. 2016년 발표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엔리케스의 이름을 세계 문학계에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이 책에는 군사 독재, 폭력과 납치, 경제 불황으로 점철됐던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역사와 가정 폭력 및 여성 혐오, 계층 간 차별 등 부조리한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호러로 풍자한 열두 편이 실려 있다. |
더러운 아이 오스테리아 호텔 마약에 취한 세월 아델라의 집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 : 페티소 오레후도를 떠올리며 거미줄 학기말 우리에게는 한 점의 육신도 없다 이웃집 마당 검은 물속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한국어판 저자 후기 작품 해설 | 죽은 자가 꿈을 꾸면서 기다리고 있다 : 공포의 집과 괴물-여성 |
친구들과 때때로 이런 농담을 했다. "세상이 범죄 스릴러인데, 누가 범죄 스릴러 책을 읽으려 들겠어." 그런데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를 보면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느끼는 세상은 '공포'이다. 목이 잘린 시체, 사람의 손톱과 치아가 진열장에 장식된 폐가, 아기만 살해한 연쇄 살인마의 환영, 슬럼가의 오염수 탓에 고양이 코를 가지게 된 아이 등 갖가지 기괴한 소재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상당수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한때 부유했지만 군사 독재와 경제 불황의 시기를 겪으면서 오갈 곳을 잃은 빈민들이 급증하고, 강도와 살인 등 약자를 향한 폭력이 만연해진 아르헨티나 사회는 우리 모두가 지닌 사회적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마리오와 동거하던 아파트에서 그녀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그녀는 몸의 70퍼센트에 화상을 입었다. 싸움을 벌이던 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그가 그녀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지하철 여인과 마찬가지로 마리오도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의 몸 위로 알코올 한 병을 다 부어버렸다. 그런 다음 성냥을 그어 그녀의 벌거벗은 몸에 불을 붙였다. 그녀의 몸에서 벌겋게 타오르던 불길을 몇 분간 지켜보던 그는 마침내 이불로 그녀를 덮었다. 지하철 여인의 남편처럼 그도 그녀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거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중
2011년 아르헨티나에서 한 남성 의사가 병적인 질투심으로 대학생이었던 열한 살 연하의 여자친구의 몸에 알코올을 붓고 불을 지른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이 소설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에 불을 지르는 일이 끊이지 않자, 많은 여자들은 '불타는 여성들'이라는 조직을 형성해 스스로 불길에 몸을 던지는 분신 의식을 거행한다. "앞으로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남자들은 습관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될 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나처럼 되고 말 거예요. 목숨을 건진다면 말이죠. 그렇게 되면 꽤나 멋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의 아름다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p.331) 작가는 만연한 여성 혐오 범죄에 더욱 극악한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여성들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디어 속보가 올라왔다.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는 살갗이 벗겨진 채 뼈가 훤히 드러났지만, 머리카락은 그 주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의 눈꺼풀은 실로 꿔매져 있었고, 혀는 심하게 깨물린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게다가 시신에서 고문을 당한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상체가 온통 담뱃불로 지진 자국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다. 현장 조사한 검시관들의 1차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행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범행 시간은 새벽 2시경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 「더러운 아이」 중
창밖 거리에는 임신을 한 채 마약에 취해있는 엄마와 아이가 길거리에 매트리스 하나만 깔아놓은 채 살고 있다.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지하철 승객들에게 엑스페디토 성인 판화를 주면서 돈을 구걸한다. 어느 날, 늦은 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문을 두드린 더러운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아이는 해골 성상 제단이 있는 건너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인근 주차장에서 목이 잘린 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죽은 아이가 더러운 아이일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왜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던 걸까? 그 불쌍한 것을 엄마에게서 떼어낼 방법을 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아니면 왜 아이를 씻겨주지도 못했던 걸까?"
이 이야기들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접수된 데이트 폭력 2만 건, 담뱃불로 손등 지지고 테이블로 머리를 가격해도 벌금형이 그쳤던 사건들. 부모에 의해 쇠사슬에 묶인 채 갇혀있다 탈출한 창녕의 아이와 7시간 넘게 여행 가방에 갇혀 숨진 천안의 아이. 호러 소설보다 끔찍한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잃은 것들은 무엇일까.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이 단편집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의 제목입니다. 하지만 이 단편집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어떤 종류의 불 속에서 무엇인가를 잃은 우리의 상실, 좌절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불은 대개 "공포"이며, 혹은 믿었던 누군가에 대한 큰 실망, 좌절, 어디에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는 공동체 성원들의 절망, 가난과 범죄, 불신이 빚은 무기력, 증오 같은 것으로 이어집니다.
<더러운 아이>는 빈민가에서 온갖 사회악과 범죄에 노출된 어느 아이, 아주 어린 아이에 대해 주인공 여성이 느끼는 타자의식(죄의식 가득한)을 담습니다. 처음에 주인공은 이 아이가 어느 여성의 소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상상도 못할 잔인한 방법으로 죽고 그 시신이 발견된 후 조금 다른 진상을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접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알게 됩니다. 자신만의 편안한 안식처에서 듣고 보게 되는, "바깥 세상의 온갖 끔찍한 소식"들이란 사실 실감이 크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가, 한때 잠시나마 바깥 세상(가난이 지배하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마주친 누군가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잠시, 이웃 대부분이 고생 중인 지옥이야말로 현실이고, 편안한 곳에 고립된 자신이 혹 환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난 아들이 없단 말이야!" p54에는 역주를 통해, 원문의 se는 복수일 수도 단수일 수도 있다고 설명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단수, 즉 산 라 무에르테에게 이 미친 여인이 아이를 바쳤다는 뜻이라면, 범죄자는 그 어머니(혹은 큰이모일 수도 있습니다)이겠습니다. 끔찍한 가난은 여인을 광신으로 내몰며, 인륜의 기본을 까맣게 망각하고 짐승만도 못한 범행을 저지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혹 이게 마약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도, 어떤 초월계의 악마가 아닌 현생의 마귀들에게 비슷한 공양을 했다는 뜻이겠죠. 사실 se는 단수든 복수든 별 뜻의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오스테리아 호텔>에서 개인적으로 저는 몇 년 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 영화 <신데렐라>가 떠올랐습니다. 오래된 호텔, 투숙객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호텔은 동네에서 볼 때 살짝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어린 여자아이는 "담배 연기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고 하지만(p57), p64에서는 "낙엽을 태우면서" 그 고소한 향기를 즐기기도 합니다(이 대목에서 이효석의 어떤 수필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낭만적인 후각적 심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 호텔은 금세 공포의 발원지가 됩니다.
주인공은 행실이 나쁜 여동생 랄리 때문에 약간의 고민거리를 가졌는데, 로시오라는 (이름도 남자 같은) 친구가 생기면서 다소의 탈선을 시도합니다. 이 건물이 과거(대체로,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혹은 언급되는 군사 독재 시절은 "과거"일 뿐입니다)에 경찰학교로 쓰였다는 설명이 있지만(p66), 아마 그날밤 두 꼬마가 마주친 무서운 군중은 그 시절 희생된 민중의 원혼이 아니었을까 저는 짐작했습니다. 사장 엘레나는 아이들의 설명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혼을 내는데, 저는 읽으면서 행여 엘레나가 아이들의 환각에 공감했다면 많이 김이 샐 뻔했다고 안도했습니다. 호러, 고딕에는 인물 사이에 개연성 없는 공감이 과하게 이뤄져서는 안 되니 말입니다.
<마약에 취한 세월>에서는 1인칭 화자가 (앞 작품들과는 달리) 빈민층에 속한 가망 없는 밑바닥 인생입니다. 독특하게도 화자는 1980년대말~90년대 초를 회상하는데 그만한 지성이 없어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의외인 구성이고 언급입니다. 앞의 "대통령"은 알폰신이겠고 뒤에 전화를 깔아준다는 공약을 한 후임자는 메넴이겠죠. p90에서 주인공은 아무 무서운 눈빛을 한 아이를 만나는데 "...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여자아이가 누군가의 딸이었다고 믿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습니다(즉 악령 비슷한 존재였다는 뜻이겠죠. 자신에게는). 이 아이는 p104에 어떤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어떤 불량 청소년 집단에서 유치한 비행에 몰입할 수 있는 건 그 또래들끼리 같이 지내다 보면 수치심과 객관화를 깡그리 잊을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다가 멀쩡한 이성친구라도 생기면 여태까지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는데, 나머지 멤버들에게는 친구의 이성친구가 죽이고 싶도록 밉겠죠. 결말에서 그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이처럼 단순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주제는 빈곤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구조적 타락과 그로 인한 공포이겠습니다. p93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여러 약품"은 과거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습니다(마약류까지는 아니지만). p96에서 나스카 유적 어쩌구는 읽으면서 고개가 갸웃했는데 역시 의도된 유머였습니다.
p99에서 낙태가 금지된 시절 오히려 미혼모들이 길에 영아를 버리거나 아예 개한테 먹이로 준다는 끔찍한 풍속도(작품에서도 소문일 뿐이라고 합니다만) 같은 서술은 민주화 이행 후에도 여전히 혼란에 싸여 있던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사회상을 드러냅니다(심지어 지금도?). p101에 "쐐기풀에 베여 다리에 피가 송송 맺힌다"는 묘사는 한국에서도 공감할 만한 풍경의 묘사겠죠. "드라곤시토"가 일종의 애칭을 만드는 축소사라는 역주 설명이 있는데 저 뒤 다른 작품의 p333 "실비니타"라든가, p236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부르는 "파울리타" 같은 예도 나옵니다.
<아델라의 집> 역시 어떤 건조물이 빚는 공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델라는 나면서부터 한쪽 팔이 없는 아이인데, 주인공의 오빠 파울로와 친해지고 나중에 미스테리어스한 사건을 겪게 됩니다. 제 생각에 이 작품집에 수록된 중 고딕 호러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작품 같았습니다. p102에 "캘리포니아에 가면 머리에..."는 역주 설명에도 나오는데, 이건 작가의 착오일까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작품 중에서 그렇게 바꾼 걸까요? p114에 "자기 아내를 토막내서 냉장고에 숨긴..."에서는 정말로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p125의 "누렇게 말라죽은 정원", p118의 "누런 이", p119의 "누렇게 말라 있었다" 등이 비슷한 느낌을 환기합니다. p110에서 "뇌가 뼈에 눌려 광기로 발전하는 도베르만"과, p119의 "무엇인가 안에 갇혀 못 나오고 있는" 같은 문장 들을 잘 연결하여 읽어야 작가의 의도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다. p131 가면, 빈껍데기가 스페인어로 서로 비슷한 발음임을 이용한 말장난도 흥미롭습니다.
(이하 내용 누설이 조금 있습니다)
<파블리토가 못을 박았다>는 약간의 반전(제 생각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성실한 가이드이며, 최근에 결혼도 하고 아내는 갓 아이도 낳은, 행복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내와의 사이는 예전 같지 않고, 어려서 많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이 와중 그는 관광객들에게 과거의 어느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며 흥미를 돋우는데, 불필요하게 그 끔찍한 인간들에 과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당황합니다. 어느 순간 그는 이 과몰입을 직업에의 헌신 모드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며 안도하는데 독자의 입에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 유일한 결말이더군요(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니라면 - 혹은, 이 가이드의 전생이라는 소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어차피 선량한 일상인들일 듯한 그들 관광객은 왜 그렇게 "시그니처 액션"이니 뭐니 하며 오버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 이게 우리들 평균의 자화상이겠죠. p156의 각주에 나오는 빠른 발음 말장난은 우리 식이라면 "간장 공장 공장장"이라든가 "쇠창살" 어쩌구 하는 놀이와 같겠죠.
<거미줄>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배경이 아르헨티나 북쪽 국경 파라과이인 작품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비록 여전히 경제와 사회상이 불안합니다만 일찌감치 민주화로 이행한 데 반해,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파라과이는 여전히 군사 독재의 상흔을 말끔히 떨치지는 못한 모습입니다. 저 뒤 <검은 물속>은 배경이 아르헨티나이긴 하나 공권력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잘 표현됩니다.
마지막의 그 "실종"은, 아내와 처제에게 완전한 환멸을 느낀 남편의 자발적인 행동("결별")일까요, 아님 그 트럭 운전수들과 여인들이 공모한 일종의 범죄일까요? p175에서 "여기엔 모두 범죄자들뿐이라고!"라며 소리지르는 남편은, 여성들이 영원히 거리감을 느끼는 타자적 남성상, 압제자, 소통 불능의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p164에는 과라니어(語)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본디 남미는 원주민들이 오랜 세월 살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몹쓸 짓을 한 역사가 있죠. 작가가 다분히 이를 의식하여 삽입한 코드이겠으며, 앞 <오스테리아 호텔>에는 p73의 역주에 "케추아어로 물에 젖게 하다라는 뜻"이란 설명도 나옵니다.
일본 애니나 드라마, 소설을 보면 "자해하는 여고생" 테마가 자주 등장합니다. <학기말>도 기괴한 분위기의 어느 왕따 학생이 얼굴과 사지에 자해를 하는 이야기가 주된 줄기인데,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이 과한 반응을 일으켜 주인공 역시 "무엇인가에 홀려" 같은 패턴으로 자해를 한다는 결말이 충격입니다. 저 뒤에 나오는 <초록색 빨간색 오렌지색> 역시 서두에 일본 문화 코드 몇을 언급하는데 결국 히키고모리의 사이버 범죄 이야기로 이어지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본래 남미에는 일본인 이민자들이 많이 살았죠. 특히 <초록색...>은 최근 한국에서 터진 손 아무개의 다크웹(이 작품에는 "디프웹"이란 용어가 나옵니다) 범죄라든가 N번방 사건을 연상시키는 묘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시사적이기까지 합니다(시기는 이 작품집이 훨씬 먼저지만).
<이웃집 마당>에는 체구가 작은, 마치 고양이 같은 남자아이가 공포를 유발하는데 아동학대 이슈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소설집에는 남성의 성*가 대체로 일관된 심상을 유발하는 듯합니다. "발*한 성*가 18cm나 되었다"라는 묘사라든가(<파울리토가 못을 박았다> p152), 앞 <거미줄>에서 "어딘가 남성의 성*를 연상시키는 살잠자리(p168)", 또 바로 이 작품에서 "남자아이의 고추가 보였다(p241)"는 문장 같은 건, 남성기가 여성을 향해 자아내는 이질감, 공포감 등을 드러냅니다. 반면, 역자 후기 중 특히 p365에서 "집"을 두고 바기나 덴타다를 언급하는데 오타이며, vagina dentata가 맞습니다. p249에 "트럭 운전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나오는데 앞의 <거미줄>에서도 그랬습니다. 광활한 대륙에서 도로 위의 난폭자 노릇을 하는 이들에 대한 나쁜 인상은 북미나 남미나 비슷한 듯합니다.
살찐 몸에 대한 어떤 불편한 의식이 드러나는 문장으로는 p219의 "걸을 때 허벅지가 서로 스칠"이라든가, p84의 "걸을 때마다 살이 쓸려 짜증.."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중세의 마녀사냥과 현대의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듯한 "아내 혐오 범죄"를 연결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 진취적인 행동파에 키 큰 여성이었던 분을 일종의 롤 모델로 삼습니다. 앞의 다른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그 부모와 불편한 관계이기도 했던 점과는 대조적입니다. 사회적 약자로서 "불에 타는 의식"으로 부당한 혐오의 대상이 되고 박해를 받는 여성들의 분노를 담았습니다. p200의 <거미줄>에 보면 주인공이 그전날밤 꿈에서 본 "불에 타는 노파" 심상과도 이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서 빚어지는 공포는, 등장인물, "작품 자체"와 그 배후에서 작가인 포가 협업하여 빚어내는, 그야말로 순수 공포의 원형입니다. 반면 이 작품의 호러는, 비참한 가난과 사회적 폭력 따위가 인위적으로 지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아무튼 온갖 사회악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이겠지요.
워낙에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좋아해서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또는 어딘가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또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가정을 생각해봐도 남미의 어느 나라는 없었던것 같다. 그건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대한 기대보다도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나 그보다 더 심각하게 와닿는 치안 상태 때문일 것이다.
종종 뉴스를 통해 듣는 남미의 소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TV 속 남미 여러 나라의 모습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멋지거나 신기해도 역시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섣불리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나라나 주술적인 면모는 고대부터 존재했고 현재도 소위 미신이라 불리는 부분은 없어지지 않은게 사실인데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상황들이 그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내 상상이나 우려에만 속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동시에 정말 이 정도인가 싶은 궁금증도 들게 한다.
책 속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작가인 마리아나 엔리케스 (Mariana Enriquez)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소설가인 동시에 언론인으로 이미 그녀는 전작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표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첫 작품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사회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약물 중독자, 그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들, 특히 고스란히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 중 한명과의 인연을 통해 그 아이를 돕지 못한 여주인공의 후회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그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기에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 작품이다.
또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시절과 연관된 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연쇄살인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곳곳에 등장하는 약물 중독 이야기나 경찰의 부패, 범죄로부터 무방비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정말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모습인가 싶은 의문과 함께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나는 암울하고도 절망적인 분위기가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를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중하게 대우받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로부터 가학적인 폭력을 당하는 가운데 그 여성들이 '불타는 여성들'이라는 조직을 통해 그들의 폭력에 항거하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다.
폭력, 절도, 약물중독, 인신매매, 살인, 부패 경찰 등등....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문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그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던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