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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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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54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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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58쪽 | 228g | 128*205*10mm
ISBN13 9788932037479
ISBN10 8932037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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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책장 그득 무르익은 시인의 노래] 데뷔 30년을 맞은 시인 허연이 다섯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청춘의 ‘불온한’ 얼굴이 되었던 그는 이제 새로운 허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시인이 말하는 이번 시집은, ‘시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세상에 그냥 있었던 거구나 하는 인정’. 여전히 예리한 감각, 꾸밈없이 진솔하고 담백한 목소리다. -시MD 박형욱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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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 「트램펄린」 중에서

어린 시절.
큰물이 쓸려 간 아침,
교각 밑에 살던 거지 소녀가 떠내려갔을까 봐
숨도 안 쉬고 달려갔던 교각
마음 졸이며 달려갔던,
그 슬픈 음화가 생각났다.

병에 걸린 걸까.
엉겨붙은 눈꼽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한다.
세상에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까
적어도 그것만은 알고 있으니까
공룡뼈 같은 교각 아래서
고양이들은 생을 불태운다.

교각 밑을 걷다 보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음화淫?로 바뀐다
녹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린 교각에는
설익은 유서들이 있고
누군가의 투항이 있고
어린 나이에 생을 마친 친구들과
그을린 맹세들이 있다.

스프레이로 쓴 억지스러운 구호 몇 개가
중년의 날 위협하고
이따금씩 덜컹대는 상판에서는
콘크리트 가루가 축복처럼 쏟아졌다.

트랙처럼 뻗어 있는 한강 다리 밑에 숨겨놓은
그 비밀스러운 음화를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음화였음을.
--- 「교각 음화」 중에서

중심을 잃는다는 것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회전목마가
꿈과 꿈이 아닌 것을 모두 싣고
진공으로 사라진다는 것

중심이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가장 막막한 일이다

어지러운 병에 걸리고서야
중심이 뭔지 알았다

중심이 흔들리니
시도 혼도 다 흔들리고
그리움도 원망도 다 흔들리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내게도 중심이 있어서
시소처럼 살았지만
튕겨 나가지 않았었구나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중심에 관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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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허연의 시에 대한 첫인상은 담백하고 슬픈 기운이었다. 맑으면서도 예술가적인 깊은 비애가 서려 있었다. 그가 독자나 평단으로부터 ‘반항의 시’를 쓴다는 평을 받는다거나 할 때 나는 그런 모습보다는 ‘푸른색’이 떠올랐다. 주머니에 푸른색의 추억과 상실로 날카롭게 닳고 닳은 유리구슬을 가지고 있는 그런 소년. 허연에게 시란 슬프고 더러워서 오히려 푸른 유리구슬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 박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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