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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

문하연 | 평단 | 2020년 07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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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64g | 128*190*20mm
ISBN13 9788973435258
ISBN10 897343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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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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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아온 그는 이후 매일 찾아왔다. “이 여자가 내 여자다.”라는 대자보가 교문 앞에 일주일에 두 번은 붙었고 만나주지 않자 집 앞에서, 학교에서 자해 소동까지 벌이는 게 다반사였다. 달콤꽁냥 샤방샤방한 멜로를 꿈꿨던 나는 이후 졸업할 때까지 ‘추격액션 공포스릴러물’을 찍었다. 가요제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했으니, 꿈은 물 건너갔다. --- p.19

활동성 결핵 환자였던 그로부터 나는 결핵에 감염되었다. 내장이 딸려 나올 지경까지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고 진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감기가 아님을 직감한 나는 검사를 받았고 결핵 판정을 받았다. 그날로 나는 병원을 나왔다. 병원 생활 5년만이었다. --- p.36

얼마 전까지도 내가 드라마를 볼 때면 세상 한심한 눈으로 날 보더니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었다. 몇 년 새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거실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편의 뒤통수를 보면 맘이 짠하다. 저 인간이 외로워서 저러나 싶어서. 그렇대도 일일이 헤아리고 싶지는 않다. 모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의 무게가 있는 거니까. 그 무게만큼 깊어질 거라 애써 생각한다. --- p.53

하루가 다르게 그녀는 의식을 잃어갔고 그의 시름은 깊어갔다. 그는 그녀가 깨어날 때마다 뭐가 먹고 싶은지 얼굴을 부비며 물었고, 차로 두 시간도 더 걸리는 수산시장에 가서 홍어를 사다가 쪄 오거나 회를 떠 오거나 생선을 구워 왔다. 물론 그녀는 전혀 먹지 못했지만 그는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제발 한 입만이라도 먹어봐요.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요.” --- p.82

그런 엄마를 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백내장이 와서 눈빛이 혼탁했다. 게다가 얼굴 절반이 마비라 엄마의 입가에서 침이 흘렀다.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무리 그렇게 음흉한 눈으로 군침을 흘려도 우린 근친이라 안 돼요. 다음 생을 기약하세요.” --- p.117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로 한 내 친구는 지난여름, 다급히 전화해서 브래지어를 깜빡하고 안 입고 나왔다며 아직 출발 안 했으면 하나 챙겨 나오라고 내게 부탁했다. 속이 살짝 비치는 실켓 블라우스에 노브라라니! 항상 나보다 한 발 더 나가서 내 실수를 묻히게 하는 좋은 친구이다. --- p.140

나는 맘속으로 그 친구에게 입힐 빨간 드레스를 생각하고 있다. 지적이고 점잖은 그의 동공이 확대되며 말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어머 이게 뭐야? 깔깔깔, 이거 나한테 어울려?”
나는 대답한다.
“응 암만, 어울리고말고.” - pp.159~160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C의 목소리가 쓸쓸했다. 나는 지금 노안 때문에 눈이 아주 시고 부셔서 못 살겠다고 했다. C는 빵 터졌다. 내친김에 나는 비장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상담료 받을 거야.”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상담료라며 캐러멜 하나를 차에 두고 내렸다. 캐러멜을 까서 입에 넣었다. 진하고 달고 슬프고 아팠다. 오늘 하루 같았고 살아온 인생 같았다. --- p.165

성형외과에 오는 사람들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 구절을 몸소 확인해준다. 간호사의 얼굴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다음 성형을 했는지, 어디서 한 건지 꼭 묻는다. 어쩌면 예쁜 곳을 찾을 때까지 보기 때문에 예쁘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떤 날은 내 눈이, 또 코가 심지어 귀가 예쁜지를 알았다. 그런데 “언니 너무 예뻐요.”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부조화의 얼굴을 가진 나는 ‘이건 무슨 운명의 조화’인지. - pp.188~189

그 위태로운 길 위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그의 말투와 몸짓에 내 눈은 커졌다. 그리고 새삼스레 되뇌었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크기의 고민을 한다는 것을. 다들 고만고만한 돌멩이를 가슴에 얹고 사는구나 싶으니 내 가슴을 짓누르는 돌멩이가 견딜 만한 것이 되기도 했다. --- p.212

이거 뭔가 냄새가 난다. 아니, 그런 사사로운 감정 말고 좀 그럴싸한 이야기 없냐고 묻는 내게 꽥 소리를 지른다. “지금 당장 그것이 시급하다고!”
드라마가 앞서가야 제도가 따라갈 것 아니냐며 나더러 작가정신이 없다고 난리이다. 이건 뭐, 현장에서 민원을 접수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 p.229

비로소 생각이 들었다. 시체가 알로샤일지도 모른다는. 그러고 보니 그다음 대사도 인상적이다. 검시관은 자식의 죽음을 부정하는 부모들을 많이 봐왔다며,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유전자 감식을 해보자고 한다. 제냐는 극렬히 저항한다. 아닌데 왜 하느냐는 거다. 그리고 남편 보리스는 벽에 기대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오열한다. 제냐도 보리스도 어쩌면 알았구나. --- p.240

이 영화의 엔딩이 수정되었다는 글을 보았다. 원래는 머리 잘린 미진이 죽기 전 더 괴롭힘을 당하고, 심지어 죽고 나서도 마지막 두 남자의 격투 장면에서 그녀의 잘린 머리가 흉기로 쓰이는 엽기적인 장면이 있었단다. 너무 잔인해서 수정했다는 글을 읽고 이 명대사가 떠올랐다. “고만해라, 마이 무따.” --- p.256

자인은 사하르를 변기에 앉히고 그녀의 피 묻은 속옷을 빨아 입히며 “부모에게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는 순간 가임기 여성으로 간주되어 팔려 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자인은 입고 있던 민소매 티를 벗어 돌돌 말아 건네며 사하르에게 속옷 사이에 끼우라고 알려준다.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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