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페르시아는 개들에게 있어서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오늘날의 의미에서 보면 이른바 동물복지 개념까지 존재했던 지역이었다. 당시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아베스타는 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1. 집 근처에 임신한 개가 있으면 새끼가 태어나 홀로 자랄 수 있을 때까지 6개월 동안 잘 보살펴 주어야 한다. 만약 돌보지 않아 개가 죽게 될 경우 살인 행위로 처벌받는다.
2. 개에게 주기적으로 고기와 우유 및 기름진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3. 개에게 너무 딱딱한 뼈를 주거나 너무 뜨거운 음식을 주어 목을 다치게 하면 처벌받는다.
4.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는 세 입 분량의 음식을 반드시 남겨 개에게 주어야 한다.
5. 누구든 개를 죽이는 자는 500~1000회의 채찍형에 처한다.
6. 개에게 좋지 않은 음식을 주는 자에게는 개의 견종과 지위에 따라 50~200회의 채찍형에 처한다. 어떤가? 오늘날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없는 정책 아닌가? 만약 오늘날 이 정도의 정책을 실행한다면 길거리의 유기견이나 모든 유형의 반려견 학대는 완전히 사라질지 모르겠다.
--- p.36, 「동물 복지의 나라, 개들의 천국」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세파를 벗어나 개처럼 살자’라는 모토를 가진 그리스 견유학파의 이름이 바로 개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견유학파의 추종자들은 ‘키니코스’로 불렸는데, 여기저기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철학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견유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안티스테네스는 키노사르지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이는 ‘하얀 개의 마을’이란 뜻이었다. 견유학파들을 ‘키노코스’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안티스테네스의 제자인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하자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서라”라고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영어 단어 cynical (냉소적인, 비꼬는)이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먹고살 것만 해결되면 어떤 명예나 재물 욕심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 이것이 견유학파의 좌우명이었던 것이다. 생활신조가 정말 개를 닮았다. 개가 욕심을 부리던가? 배부르면 그저 즐겁고 인간에게 충실하니 말이다.
--- p.60,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괴물 그리스」 중에서
근대 이후 사람들은 신과 인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물은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인간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근대 유럽에서 개의 지위는 어떻게 보면 더욱 악화되었다.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 신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동물과 인간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17세기 초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영혼이 없는 동물은 ‘자동인형’ 혹은 ‘움직이는 자동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키친 도그는 개를 ‘움직이는 자동기계’로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게다가 18세기에 탄생한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성을 가지지 못한 동물은 그저 기계장치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개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애초에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 p.97, 「쳇바퀴 돌리는 키친 도그의 비애」 중에서
개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윤회를 통해 더 좋은 카스트 계급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다. 힌두교에서 개는 소만큼이나 특별한 동물인데,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힌두교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야마 신인데, 이 신은 이집트의 아누비스나 그리스의 케르베루스처럼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이것은 아마도 힌두교의 내세관 윤회 사상 때문일 것이다. 사실 힌두교에서는 지옥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업에 따라 더 높은 혹은 더 낮은 계급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받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후 세계로 가는 심판자의 모습을 굳이 무서운 모습으로 둘 필요가 없다. 사후 세계로 가는 심판자는 단지 생전의 업만을 판단하면 될 뿐이니 말이다. 개가 사람이 죽어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연결고리인 셈이니까 개에 대한 대접이 좋을 수밖에 없다. 네팔의 디왈리 축제에서 개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온갖 장식을 해주는 것은 사후에 자신의 업을 잘 판단해서 더 높은 카스트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일종의 뇌물이 아닐까?
--- p.142, 「절대 만지면 안 되는 개, 언터처블」 중에서
또 다른 신화는 개가 인간에게 곡물의 씨앗을 전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쓰촨성의 티베트족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곡물은 매우 크고 잎이 풍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용변을 본 후 그 잎을 위생용으로 사용했는데, 이를 본 하늘의 신이 화가 나서 곡물의 씨를 모두 회수해가려 했다. 이때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울면서 간청했다. 이에 감동한 신은 곡물의 씨앗 몇 개를 남겨주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주식인 곡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는 티베트족뿐만 아니라 부이족, 거라우족, 하니족, 수이족, 좡족 등이 믿고 있다. 한편 묘족의 전설은 이렇다. 원래 개는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곡물을 훔치다가 간수에게 걸려 여덟 개의 꼬리를 잃었다. 하지만 하나 남은 꼬리에 씨앗을 감추어 지상에 내려왔고 그것을 인간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좡족과 거라우족은 곡물의 머리 부분이 개의 꼬리처럼 구부러져 있고 털이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에게 곡물을 빚지고 있으니 이 신화를 믿는 민족들은 추수를 하면 꼭 개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 p.149, 「하나 남은 꼬리에 곡식을 숨겨온 천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