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만 바뀌어온 낡은 인문학을 벗어날 경계 너머의 사유
최진석은 2013년 방한한 지젝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1부 (불)가능, 또는 정치의 아포리아’를 열어젖힌다. 이는 ‘낡아빠진’ 공산주의와 레닌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는데, 저자에 의하면 레닌을 반복하는 일은 ‘재현’이 아니라 ‘수행’이다. 붉은 광장의 묘석 내부에 눕혀져 전시되어 있는 그를 살려내 그가 했던 행적들을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이 하지 않고 남겨놓은 잠재성을 찾아내 그것이 현행화될 수 있는 조건들을 지금-여기서 다시 수행하는 것. 이런 맥락에서 우리 앞에 호출된 공산주의는 1991년 해체된 소비에트연방의 그것과 동일한 것일 수 없다. 새로 탄생하는 공산주의라는 (불)가능한 이름. 그 괄호 안의 단어를 없애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라는 이분법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2장, 「자크 데리다와 (불)가능한 정치의 시간」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사람들의 탄식과 분노, 체념과 질타가 뒤섞인 어떤 물음들, 가령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또다른 시간의 계열들, 역사의 다른 길에 대한 의문들이다. 만약 그 어떤 날에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넘어 청와대로 행진했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다른 사람이 당선되었다면? 그저 가능성으로만 머문 (불)가능한 정치의 시간들. 레토릭에 갇힌 이 말을 현재 속에 풀어놓음으로써, 그것의 작동을 현실로서 상상하고 미리 실험해보는 ‘낯선’ 경험을 실행해볼 것을 최진석은 제안한다.
3장「발터 벤야민과 역사유물론의 미-래」로 1부를 마무리한 후 시작되는 2부는 ‘무의식과 욕망의 분열분석’에 관해 다룬다. 4장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유물론」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를 경유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탐구하고, 이어지는 5장 「트랜스-섹슈얼리티의 정치학」에서는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실수로 생식기를 잃은 브루스/브렌다의 이야기를 통해 LGBTQ를 넘어서는 n개의 성에 관한 사유를 시도한다. 6장 「가장 뜨거운 모더니티」는 포그노그라피와 정치가 쌍생아적 관계에 있으며, 그 연대가 언제나 비대칭적이고 폭력적이었음을 지적한다.
3부는 ‘휴머니즘 이후의 인문학’이라는 제목하에 7장 「우리는 결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 8장 「기계는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9장 「누구를 위한 인문학인가」를 통해 인간과 휴머니즘에 대해 탐구하며 인간화된 기계, 혹은 기계화된 인간에 관해 살펴보고 특히 9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현실에서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부딪친 문제에 관해 다룬다.
4부 ‘급진적 문화연구의 계보학’에서는 10장 「예술-노동의 문화정치학」과 11장 「급진적 문화연구는 실패했는가」를 통해 예술과 노동의 관계에 관한 문제와 한국의 문화연구 현실을 살펴본다. 문화연구의 시초부터 현재 한국의 인문학이 처한 현실까지 비판적인 동시에 건설적으로 논의한다.
진부한 휴머니즘을 넘어서서
결국 이 모든 글들을 아우르는 것은 지금까지의 인문학은 시간이 지나며 낡은 틀이 되었으며, 이제는 이를 벗어나야 한다는 대주제다. 근대의 인문학은 모두 ‘인간을 위한 학문’, 즉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류세란 말이 낡은 것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신이 죽은 이후 인간도 죽었다는 말이 어쩌면 이제는 사실처럼 들린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유사 이래 늘 확장되어왔지만 그럼에도 비좁은 개념이었고, 이를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사유의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지금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와 부흥이 동시에 운위되는 이상스런 역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 인문학은 실제적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무용한 학문으로 치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파에 지친 대중에게 달콤한 유혹과 환상, 위로를 줄 것으로 기대되는 형편이다. 이 이중의 역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가 창궐한 시대 상황과 합류하면서 인문학의 존재 가치와 방향 설정에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역사와 사유, 방법과 전망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인문학의 발판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학문의 성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인식과 통찰에 충실하고, 외적인 유행을 추종하지 않으면서도 부단히 외부와의 교섭력을 잃지 않아야 하는 불가능성의 인문학. 지금 우리는 이를 직시하고 성찰해야 할 시간에 놓여 있다.
저자는 비인간, 그로테스크, 감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인간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이상 인간 자신만이 인간의 주요한 관심사로 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조건을 동시에 사유함으로써 유일한 현재의 굴레에 결박되지 않는 것, 여기에 인문학의 잠재성이 놓여 있진 않을까.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세계에 대한 더 내밀한 이해에 도달하며, 마침내 근대 인문학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불가능한가? 그렇다. 진작 유효기간이 지난 쿠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인간적 가치를 위해 인간 밖의 모든 것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인문학, 문화를 창달한답시고 권력의 시종이 된 인문학에 장래를 걸 이유는 없다. 인문학은 가능한가? 진정 그렇다. 인문학을 배반하는 인문학, 휴머니즘이라는 철 지난 깃발을 걷어내고 인간성의 경계 너머로 인간을 돌려보내는 인문학, 문화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짓는 경계선을 지워내는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인문학, 실선과 직선의 논리학을 점선과 곡선 그리고 뫼비우스의 비논리로 감응하는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인문학을 넘어서는 인문학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 최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