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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선 027이동
리뷰 총점9.5 리뷰 10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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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06g | 110*190*24mm
ISBN13 9791190885171
ISBN10 119088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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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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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술자리를 마치고 여자친구를 바래다주는 밤이면 서로 손을 잡지 못했다. 그런 밤, 길들은 미궁으로 변해 뒤섞이고 사물은 뾰족한 모습으로 변해 20대의 청춘을 찔렀다
---pp.21-22

사실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현실이란 이름의 괴물이 날리는 핵펀치에 굴복해 미리 세워놓은 그럴싸한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니 결론은 처맞기 전까지 더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는 것.
--- p.85

본부의 비밀 수장고로 이송될 만큼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해 극동아시아의 창고에서 언젠가 누군가가 키스로 깨워주길 바라는 백설공주처럼 곱게 잠들어 있던, 그러니까 마이스터 X의 조건에 들어맞을지 모르는 이페머러 한 뭉치.
--- p.87

마감 시간을 앞둔 대형마트에서 ‘1+1’ 특가 세일을 알리는 안내 방송처럼 경매 시작가가 선포되고, 고개를 쳐든 미어캣들이 히틀러 애인의 유골이라는 말에 잠시 충격에 빠져 입을 떡 벌리는 사이에─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디어파사드의 흑백 화면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더미에서 일단의 소련군이 중장비를 동원해 땅을 파헤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 pp.109-110

모든 시대에는, 모든 시대만의, 묵시가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소동을, 지켜본 기자가 대답했다. 묵시를 보는 데는, 나이가, 성별이, 금 그어진 국경이,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젊을수록 더 묵시를 본답니다. 어느 시대나, 연옥은, 청춘에게 가장 잘, 펼쳐지니까요.
--- p.175

모든 세대는 묵시를 본다, 모든 시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묵시록을 쓴다, 누군가는, B5 크기의 노트에 59쪽 분량으로 쓰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드디어 휴거 날 아침이다, 오늘 나에게, 누군가가 선뜻 말을 걸고, 부라보콘도 사줄 거다, 이후로 벌어질 일들이, 기다려진다, 무섭기도 하다, 라고 쓴다. 또 누군가는, 휴대폰 문자로, 손가락 한 마디 분량으로, 지금 나는 너무 무섭다고, 짧은 묵시록을 쓰기도 한다.
--- p.187

이페머러의 수호자들은 또한 모든 시대의, 모든 문명의, 모든 인민人民이 토해내는 묵시들의 수호자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나 역시, 이페머러의 수호자.
--- pp.198-199

조현의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는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 조현 소설의 제목을 다시 빌리면 ‘새드엔딩에 안녕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어쩌면 빙의 들린 언어, 언령의 생생한 체험담이자 문학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황당해 보이는 소녀의 묵시적 환상이 실린 공책과 식민지 젊은이들의 죽음과 부활을 기록한 애가, 그리고 광화문의 세 모녀의 가계부가 만나 빙의하는 순간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을. “내가 언어로 읽어낸 무수한 존재들이, 차원을 이격하여, 빙의하여, 한 몸으로 겹쳐”지는 언어의 고통스러운 황홀에 대한 신뢰라는 것을.
--- 「작품해설, 복도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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