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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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404g | 140*215*20mm |
ISBN13 | 9791186757628 |
ISBN10 | 1186757620 |
발행일 | 2020년 07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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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404g | 140*215*20mm |
ISBN13 | 9791186757628 |
ISBN10 | 1186757620 |
MD 한마디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모두는 남과 자신을 구별하고 타집단을 차별한다. 차별과 편견이 심해지면 혐오가 작동한다. 오스트리아 사회학자가 쓴 이 책은 젠더와 계층, 인종, 국적 등을 경계로 발생하는 차별과 편견 양상을 분석하고 불평등을 고민한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들어가는 말 독선과 멸시의 작동원리 chapter 1 일(job) 1.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지상 명제 ― 흔한 성공론에 숨겨진 엘리트주의 ― 열정에는 급여가 없다 ― 자발성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2. 머리와 손의 분리 ― 육체노동자는 단순 무식하다? ― 수직적 노동 분업과 권력 ― 새로운 직업 정체성: 장인에서 디자이너로 ― Do it yourself: 손수 만들기의 행과 불행 chapter 2 성(gender) 1. 같은 행동, 다른 평가 ― 워킹 맘은 있어도 워킹 대디는 없다 ― 누가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가 ― 여성이 저음으로 말하려는 이유 ― 비용 부과는 많이, 인정은 박하게 2. 남자다움의 신화 ― 성별 구분 교육, 뭐가 문제일까 ― 아픔을 드러내면 약점이 된다 ― 폭력은 남성성을 재생산한다 ―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유 ― 우는 남자를 위하여 chapter 3 이주(immigration) 1. 이곳에 머물 자격이 있는 자는 누구인가? ― 세계인을 울린 사진 한 장 ― 불쌍하거나 용감하거나 2. 이방인과 열린 사회 ― 기득권자가 된 이주민 ― 경계 짓기의 역설 ― 명칭의 문제: 국외 거주자, 이민자, 난민, 탈출민 ― 타인 비하, 근대성과 관련 있다 chapter 4 빈부 격차(poverty and wealth) 1. 실업은 개인의 실패 ― 나는 상황 탓, 너는 네 탓 ― 지원이 아닌 처벌을 한다 ― 실업을 개인화한 결과 ― 상징적 폭력과 낙인 ― 성과는 임금으로 증명하라 2. 기업가 정신의 독재 ― 리스크를 짊어진 자영업자들 ―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 창업하면 자유로울 거라는 환상 ― 스타트업, 새로운 형태의 노동 착취? ―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가 무너지다 ―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자아 chapter 5 범죄(crime) 1. 하류 계층의 범죄자들 ― 법 앞에 만인은 불평등하다 ― 높으신 범죄자들과 피해 규모 ― 법 위에 선 영웅들 2.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멸시의 한 방법 ― 공정한 세상 가설 ― 성범죄는 당한 사람 탓? ― 왜 피해 예방에 애써야만 할까 ― 언어에 반영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 chapter 6 소비(consumption) 1. 과시 소비: 상품을 이용한 신분 투쟁 ― 청바지를 입은 백만장자 ― 무얼 소비하느냐가 나를 말해준다 ― 쿨함과 운동화의 신분 상징 ― 상품이 되어 더 높은 곳으로 2. 도덕적 우월감 ― 유기농이라는 사치 ― 나는 구입한다. 고로 나는 지속 가능하다 ― 시민 계급의 신분 상징: 유기견 입양, 자전거, 요리 포스팅 ― 환경 보호도 특권이다 chapter 7 관심(attention) 1. 외향성이 규범 ― 내향인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 누구하고나 격의 없이 친해져라 ― 사회성을 가르치는 각종 코치들 2. 인기 있는 디지털 자아 ― 산책도 인테리어도 ‘좋아요’를 위해 ― 소외, 질투, 우울 ― 관심의 양이 모든 걸 좌우한다 ― 해시태그, 온라인 자아의 이벤트화 ― 네트워크 감옥과 자기 검열 chapter 8 정치(politics) 1. 정치적으로 다르면 무조건 적 ― 다양성이 피를 흘리고 있다 ― 적개심은 복잡함을 줄인다 ―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가짜 뉴스 ― 자유주의 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정치적 무관심 2. 유권자들의 경시 ― 사실이 틀려도 나는 옳다 ― 이해가 곧 동의는 아니다 ― 해석의 권리는 특권층에게 있다 ― 대중의 불안보다 실제 현실에 주목하라 ― 정체성 정치와 건강한 토론을 막는 문화 나가는 말 독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주 |
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전까지는 굉장히 자신만만했다.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차별적 언어를 구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프롤로그에서 혈압이 수직상승하는 부끄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들이 의식도 못하고 사용하던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을.
놀란 마음에 살펴보니 그 표현 말고도 여러 개가 드러났다. 나름 업데이트하고 반복 학습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생각 없이 튀어나올 때도 있고, 모르고 사용하는 표현들도 많을 것이다.
가능한 부지런히 책도 읽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으며 자신을 잘 살펴야한다는 평생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경험이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2020년 번역 출간된 유럽 사회학자의 글이니 ‘차별주의’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리란 기대가 크다. 필요하고 궁금한 내용의 반가운 제목이다.
특히 사람을 벌레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편한 ‘라벨링’에 대해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서도 다른 나라의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태어난 사회학 책은 귀중한 학습 자료이다.
“극우 정당을 찍는 유권자는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는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는 중년 남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르지만 원칙은 같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는 ‘우리’와 ‘남들’의 구분을 기틀 삼아 경계를 짓는다. 다만 남들이 단순히 우리와 다른 차원을 넘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인간은 긍정적 자아상을 구축하고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자신이 겪어봤으니 상대의 어려움을 누구보가 잘 이해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남들’이 상징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 더 나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남들’을 깎아 내리면 만족감도 더해진다.”
“남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사회적 지위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던 남을 향한 경멸과 혐오는 어디에나 있다. (...) 성공과 소비, 비교가 대세인 사회에선 누구나 남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교육 역시 이런 의식적, 무의식적 교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사람들은 자신을 높여 자존감을 키운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남을 향해 독선의 눈길을 보낸다.”
반성, 반성, 반성을 하는 와중에, 저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고 확신하는 우리도 독선에 취약하지 않은가’라고 해서 다시 또 반성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곧 그의 의견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 몰래 조용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도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표현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쪼ㅊ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 열정을 바친 직업은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행위이다. (...)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말하는 그 꿈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만든 책임자나 이해 집단, 노동 조건, 정치나 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탈정치화되며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 생산 도우미로 전락하고 만다.”
“인턴 자리 하나 얻으려고 (...) 해외 연수를 다녀왔고 컴퓨터 자격증을 땄다. (...)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인턴들과 모여 근로 조건을 논의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쁠 것이고, 기껏해야 요가나 몸에 좋다는 샐러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것이다.”
“번아웃과 혁명은 서로를 배제한다.” 한병철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는 삶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치우며 사는 것보다 더 좋고 바람직하다고 가능한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여러 번 말로 글로 반복한 처지라 심각한 기분으로 읽었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천천히 읽어야겠다. 차별주의의 뿌리는 내 안에서도 아주 넓고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몇 십 쪽 읽고 나중을 기약한 한병철 교수의 책도 다시 펼쳐 봐야겠다.
기대한 이상으로 뼈 맞고 혼나는 통찰들이 가득하고 그럼에도 쉽게 읽히고 즉각적으로 푹푹 꽂히는 멋진 책이다.
부지런히 배워야겠다. 배울수록 할 수 없는 일들만 더 많아지니 사는 게 힘겹기는 하지만, 천천히 조심하며 사는 모습이,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내게 가능한 삶이다.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인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삐딱한 시선과 생각들을 이 책을 통해서 지적받게 되어 낯이 뜨겁더라구요.
또 그렇게 차별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딱딱하게 굳어져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생각을 가지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라우라비스뵈크의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끊임없이 선을 긋고 우월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여러 사회적 이론을 근거로 하여 위트있게 해부한 작품이다. 그런데 필자는 읽어가면서 머지않아 의아함이 들었다, 제목 『내 안의 차별주의자』와 담고 있는 내용이 어쩐지 개연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기로 했다. 물론 독일어를 모르니 읽을 줄도 모르고 뜻도 모르지만 궁금했다. 원제를 찾아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그 결과 원제는 <더 나은 사회> 였다. 번역기의 정확성이 얼마나 좋을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엔 <더 나은 사회>라는 제목이 도서가 담고 있는 내용에 더 적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왜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더 나은 사회>라는 원제를 생각하며 읽어 보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제목이 내용과 달라 너무 마케팅 적인건 아닌가? 했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시작했다.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하는 생각들이 편견이고 차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 되어야 한다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일, 성, 범죄, 소비, 정치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한 만연한 태도들, 그리고 생각들에 대하여 저자는 요목조목 짚어낸다. 그 중에는 필자가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들도 있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던 것들도 있었으며,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이 중 생각조차 못한 것과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던 부분들에 있어서는 얼마전 읽었던 <판결의 재구성> 중 '비판받지 않은 논리는 독선에 빠진다.'는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우리는, 필자는 얼마나 독선에 빠져있었는가?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나 그렇다는 것인지, 오스트리아 사회가 우리나라와 어쩐지 닮아있는 것인지 책의 내용은 크게 낯설지 않다. 저자 이름을 분명 확인하고 구매했음에도, 한국 작가가 쓴건가? 착각 들 정도로 닮아 있었고, 쓰인 문장도 단어도 한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왜 일까? 내용이 어렵게 서술된 것도 아닌데 자주 몰입이 깨졌다. 그리고 자주 표지를 들여다 보았다. 아마도 책의 초반부 느꼈던 내용과 책의 제목의 거리감 때문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필자가 제목에 영향을 좀 많이 받는 편이기 때문이다.
비록 필자의 몰입이 자주 깨졌다하더라도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누구나 한번쯤 읽고 고민해보고 깨닫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편견 속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그것이 잘못인지 모르고 얼마나 자신을 확신하는지, 타인에게는 얼마나 엄격하며 자신에겐 관대한가? 우리는 책을 통해서라도 깨닫을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