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로 돌아가는 퇴각 행진은 전설이 되었다. 10월 말에 첫 서리가 내렸고, 11월 4일에 첫눈이 내렸다. 12월이 되자 기온은 영하 34도까지 내려갔다. 러시아군에 쫓겨 모스크바에 올 때와 같은 길로 돌아가게 된 위대한 군대는 가는 길 내내 불에 탄 벌판과 시체들을 봐야 했다. 러시아군은 코사크 기병대의 유격대 작전으로 병사들을 고립시키고는 낙오한 병사들을 학살했다. 병사들은 선 채로 얼어 죽었다. 몇 년 후, 어느 병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많은 사람이 지팡이에 의지해 걸었고, 수염과 머리카락에는 고드름이 달렸다. 쓰러져서 도와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될까 두려웠다.”---p.39 ‘나폴레옹 전쟁’
하지만 40마일 64km 가량 떨어져 있는 전선으로 이들 추가 병력을 보낼 방법이 없었다. 트럭은 부족하고 철도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때 갈리에니는 파리의 총알택시를 떠올렸다. 독일군이 천천히 파리 북쪽과 동쪽을 흐르는 마른 강 쪽으로 퇴각하면서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갈리에니는 병사들을 파리 전역으로 보내 모든 택시를 세우고 승객을 내쫓은 다음 택시 운전사들을 앵발리드 광장에 모이게 하라고 지시했다. 광장에 도착한 갈리에니는 택시 1대에 병사 5명씩 태운 다음 그들을 멀리 떨어진 최전방으로 보냈다. 운전사들이 누가 돈을 낼 거냐고 묻자 갈리에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가 지급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포화가 두려운가?” 택시들이 광장을 떠나자 수백 명의 프랑스 시민이 환호했다. 이런 식으로 전쟁터에 도착한 프랑스군은 겨우 6,000명이라 실질적으로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웅적인 파리택시의 전설은 이후의 긴 전쟁에서 프랑스 인의 사기를 높이는 촉매가 되었다.---p.243 ‘제1차 세계 대전’
‘우리는 권력이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오쩌둥은 당시에 이렇게 적었다. 그가 총이라면, 중국 인민은 총알이었다. 수많은 고난에도, 국민당군보다 병력이나 화력에서 열세임에도, 마오쩌둥과 그의 동료는 계속해서 싸우고 목숨을 부지하고 또 싸웠다. 대장정과 장제스의 납치로 대표되는 내전 1단계에서, 마오쩌둥은 힘겨운 승리를 얻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 내전 2단계는 사실상 일본과의 전쟁 중에 승패가 갈린 셈이었다. 그는 장제스처럼 맹렬한 싸움을 벌이지 않고, 중국 산간벽지에서 게릴라전을 벌여 일본군을 괴롭히면서 병력을 보존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제스보다 지략과 전투력 면에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에 미국이 중재했으나 결국 실패한 평화 회담 당시 칵테일파티에서 장제스는 마오쩌둥을 가리키며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보게, 개천에서 용 난 격 아닌가?” 그러나 결국 그 ‘개천에서 난 용’이 중국 전체를 차지했다.---p.293 ‘중국 내전’
그런데 예상했던 반격이 없었다. 독일군 사령관들은 여전히 연합국의 진짜 목표가 파드칼레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노르망디가 그저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속임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몇 주가 걸렸고, 그 사이에 연합군은 해변을 따라 가로 120마일(193km), 세로 10마일(16km)의 교두보를 확고하게 차지했다. 그리고 더 많은 병사와 물자가 노르망디에 만든 연합군의 임시 항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디데이에 상륙한 17만 5,000여 명의 병사 중에 약 1만 명이 죽거나 부상당했지만, 이 비싼 대가는 히틀러 독일의 궁극적인 몰락을 이끌어 냈다. 아직도 전투가 수없이 남아 있었지만, 디데이는 중요한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p.327 ‘제2차 세계 대전’
1980년대 중반,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가 수백 대의 스팅어를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CIA 작전 팀은 무슬림 전사들에게 스팅어 사용법을 가르쳤다. 무자헤딘의 손에 스팅어가 주어지자 효과가 굉장했다. 스팅어는 1만 2,000피트(3.6km) 상공에 있는 헬기까지 격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련군은 저공비행으로 공습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무자헤딘의 공격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소련 야전군 지휘관들은 부상자를 위한 구급 헬기를 부르는 것조차 꺼렸고, 소련군의 사기는 더더욱 저하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처럼 효율적인 무기였던 스팅어는 전쟁이 끝나자 CIA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스티브 콜의 책 《유령 전쟁》에도 실려 있듯이 CIA는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간 스팅어가 여객기를 격추하는 데 이용될까 봐 걱정했다. 콜의 책에 따르면, CIA는 ‘냉전 후 현금 환급 체제’를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반군 지도자들에게서 스팅어 미
사일을 1대당 8만~15만 달러 정도에 되샀다.
---p.392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