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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 난다 | 2013년 06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70건 | 판매지수 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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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3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40g | 135*205*30mm
ISBN13 9788954621496
ISBN10 89546214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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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황현산, 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서두부터 호들갑을 떤다고 뭐라 하실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안도되는 어떤 바가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저랍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현대시도 그가 읽어주면 달랐습니다.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모른 채 골방 속에서 시와 함께 곰팡내를 풍겼던 우리 시인들 가운데 그가 끄집어내어 볕에 몸 말리게 한 사람 또한 몇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황병승 시인이 그러했고, 김이듬 시인이 그러했으며, 그밖에 그의 해설로 다시금 재조명되어 한국 시단의 새로움이 된 시인들로 치자면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울 정도니까요.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을 펴내며

제1부
과거도 착취당한다
모자 쓴 사람은 누구인가
상상력 또는 비겁함
소금과 죽음
군대 문제
몽유도원도 관람기
김지하 선생을 추억한다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영어 강의도 사회문제다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
김연아가 대학생이 되려면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나는 전쟁이 무섭다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
삼학도의 비극
기억과 장소
태백석탄박물관
방법과 치성
또다시 군대 문제
승리의 서사
체벌 없는 교실
두 국사 선생
죽은 시인의 사회
[고향의 봄] 앞에서
봄날은 간다
김기덕 감독의 한
스위스 은행의 전설
맥락과 폭력
금지곡
역사는 음악처럼 흐른다
내가 믿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
덮어 가리기와 백사마을
폭력에 대한 관심
낙원의 악마
황금과 돌
시대의 비천함
영어 강의와 언어 통제

제2부
전원일기
강원도의 힘
겨울의 개
찌푸린 얼굴들
빈집

제3부
당신의 사소한 사정
내 이웃을 끌어안는 행복
시가 무슨 소용인가
장옥이 각시의 노래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
익명성과 사실성
밑바닥 진실 마지막 말
윤리는 기억이다
사투리의 정서
먹는 정성 만드는 정성
자유로운 정치 엄숙한 문화
헌책방이 있었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
논술고사 답안지를 넘겨보며
아버지의 삶과 자식의 삶
홍상수와 교수들
돌덩이의 폭력
한글과 한자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
11월 예찬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이수열 선생
귀신들 이야기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총기 사건의 공적 시나리오와
사적 시나리오
바닥에 깔려 있는 시간
춘천의 봄
밀림의 북소리
어려운 글 쉬운 글
복잡한 일
은밀한 시간
두 개의 설날
문학적인 것들
고향의 잣대
금지된 시간의 알레고리
삼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는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과거도 착취당한다」중에서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상상력 또는 비겁함」중에서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중에서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폭력에 대한 관심」중에서

협객은 경공술로 날아가도 벼는 천천히 크고 천천히 익는다. 늙은 농부에게는 벼 크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러고 보면 농부야말로 눈먼 무사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강호의 협객이다.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우리 문학과 우리 사회가 믿는
우리 미래의 힘과 깊이가 바로 그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의 생애 첫 산문집


황현산, 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서두부터 호들갑을 떤다고 뭐라 하실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안도되는 어떤 바가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저랍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현대시도 그가 읽어주면 달랐습니다.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모른 채 골방 속에서 시와 함께 곰팡내를 풍겼던 우리 시인들 가운데 그가 끄집어내어 볕에 몸 말리게 한 사람 또한 몇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황병승 시인이 그러했고, 김이듬 시인이 그러했으며, 그밖에 그의 해설로 다시금 재조명되어 한국 시단의 새로움이 된 시인들로 치자면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울 정도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지요. 그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 정의의 이름으로 바로 서지 못하는 순간순간을 목도하고 그때마다 더 크게 부릅뜬 눈으로 그 안타까움과 분노를 글에 새겼습니다. 그가 밤마다 눈물로 써나간 글은, 그러나 아침이면 우리들 몸속에 피로 돌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운명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이 세상을 희망으로 껴안을 수 있게 인도하는 참 ‘어른’의 운명으로 지금껏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밤이 선생이다』를 펴냅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선생은 밤에 일하는 자로 유명합니다. “어둠 속에서 불을 얻어온다”라는 말을 문학에서 쓰듯 어둠을 불로 쓰는 것인데,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선생님의 속내로 보자면 타당성이 더할 것 같아 살짝 옮겨봅니다.

“내가 비평할 때 분석하는 이유는 분석이 안 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예요. 깊이가 있다는 말은 나는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바위 속에 혼이 들어있다는 건 그 안에 귀신이 있다는 건데, 다시 말해 그 속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단 거죠. 그게 곧 깊이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입니다. 때로는 그 가능성 자체가 문학이죠.”
-『GQ』와의 인터뷰 중에서

이번 책은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처음 엮는 선생의 첫 산문집입니다. 1980년대부터 2013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십여 년의 세월 속에 발표했던 여러 매체 속 글 가운데 이를 추려 1부와 3부에 나누어 담았고, 그 가운데 2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두 사람인 강운구, 구본창의 사진 가운데 이 책을 말하는 데 있어 그 기저의 비유가 될 수 있는 몇 컷을 골라 글과 함께 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둠은 더욱 많아집니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이죠.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나이가 들면 어둠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용서하게 된다는 거예요.”


선생의 산문을 보자면 놀랍게도 그의 연배를 잊게 합니다. 어떠한 미사여구의 도움 없이 단문으로만 치고나가는데 참으로 강골 있으니까요. 선생의 산문은 위에서 누르는 식의 ‘말씀’이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하고 보폭 맞추는 ‘행동’이라고 해야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우리를 절로 깨어나게 하거든요. 그렇게 자리에서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거든요. 예컨대 이러한 문장들 앞에서 우리 각자 무릎 탁 친 연유 뒤에 할 일이 무얼까 하고 보자면 말이지요.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p21「소금과 죽음」 중에서

그런데 묘합니다. 송곳보다 더 뾰족하고 망치보다 더 단단한 선생만의 ‘일침’ 뒤에 묘하게 남는 게 어떤 ‘슬픔’인 걸 보면요. 때로는 화를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때로는 애정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로 그 감정의 묻어남이 사뭇 절절한데도 왜 지렛대의 가운데자리에 서지 않았냐고 평론가인 그에게 따져 묻지 못하는지…… 우리 시대에 진심을 다해 진실을 말해주는 스승이 어디론가 다들 숨어버린 까닭에 선생 혼자 그 감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눈 없고 귀 없다 해도 삶이야 살아지겠지요. 그러나 ‘현재’라는 말을 그 앞에 붙인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눈 없고 귀 없이 지금의 ‘오늘’을 사는 거라 말할 수 있을까요? 선생의 산문은 바로 그런 ‘정의’를 말해왔습니다. 순전히 순정으로 옳다, 하는 방향으로만 시선을 모을 때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 그 움틈이야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유행을 좇고 돈 앞에 머리 조아리며 권위 뒤로 숨는 우리들 삶의 유일한 본보기가 아닐는지.

『밤이 선생이다』에는 총 여든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선생의 말마따나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한데요, 저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밑줄을 쫙 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라는 구절이었는데요, 이렇듯 선생이 평생을 걸고 싸운다는 그 ‘전망’, 모름지기 저마다 여러 단어들로 대입이 가능한 그 ‘전망’ 앞에 나는 어떤 싸움을 해왔던 것일까 오래 되새김질을 해보게도 되었습니다. 아, 이렇듯 평생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어떤 대거리가 있어 선생은 그토록 젊고 유연한 사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문득 도통 늙을 줄 모르는 그 ‘감각’에 부러움이 일기도 하였고 말이지요.

책 표지는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고 있는 팀 아이텔의 그림을 삼았습니다. 로마어, 독일어, 철학에 회화를 전공하여 미술 뿐 아니라 문학에도 지대한 관심이 많다는 그는 자신이 그려낸 인물과 선생이 이토록 닮을 수 있음을 미처 알지 못할 것입니다. 밤에 일하는 자들의 표정은, 그 뒷모습은 이처럼 숭고할까요. 이는 편집자의 사담이었습니다만.

작가의 말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내가 처음 엮는 책이다. 지난 4년간 한겨레신문에, 그리고 2000년대 초엽에 국민일보에 실었던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지난 세기의 80년대와 90년대에 썼던 글도 여러 편 들어 있다. 결과적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발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문학동네의 편집진과 김민정 시인에게 감사한다. 이 놀라운 재능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거나 어쭙잖게만 출간되었을 것이다.

2013년 6월
황현산

회원리뷰 (70건) 리뷰 총점9.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최고 지식인의 조언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민* | 2022.10.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최고 지식인의 조언들 _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을 읽고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던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이다. 짤막한 길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명쾌하고 간결하게 담긴 수준 높은 명작으로 수필의 정수라 할 수 있겠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독서로 거듭 권유를 받은 터라 열심히 읽었다. &n;
리뷰제목

최고 지식인의 조언들

_ 황현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을 읽고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던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이다. 짤막한 길이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명쾌하고 간결하게 담긴 수준 높은 명작으로 수필의 정수라 할 수 있겠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필독서로 거듭 권유를 받은 터라 열심히 읽었다.

 

머리글에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문학비평이 아닌 글로는 내가 처음 엮는 책이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2,000년부터 4년간 한겨레 신문과 2000년대 초엽에 국민일보에 실렸던 칼럼을 위주로 엮은 책이다. 올바른 글쓰기의 표본인 만큼, 비문과 오탈자가 없고, 정확한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의 두 번째 산문집인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주문해 놓고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글쓰기에서 의성어, 의태어를 남발하지 말자고 말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일면, 생생한 표현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사용의 남발은 플로베르가 주장한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일물일어설에 의하면 그 사물이나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작가의 게으름이라고 일갈한다. 동시를 주로 쓰는 나로서는 의성어, 의태어를 쓰는 일을 지양하고 더욱더 적확한 표현을 찾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와 시, , 인물 등 현대의 시대 상황에 맞는 이슈들을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경험담과 함께 주장을 펼쳐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찬찬한 그의 글을 읽고 있자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끌림이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고향 목포 비금도를 사랑하고 추억하며 애정을 드러낸다. 자신의 생각의 터전, 밑바탕이 된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감동을 준다.

 

소금과 죽음에서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 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며 좋은 소금을 사겠다고 진짜 소금을 외면하는 세태를 한탄한다.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살아있는 삶을 강조한다.

자연과 인간 본성을 외면하고 물질 만능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한탄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가 고루한 사람은 아니라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개방적인 인식의 소유자다. 프랑스 유학과 교수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더 가능했을 터다.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 참 어른의 다독임, 먼저 살아간 선배 문인의 소회 등 배울 점이 정말 많은 귀한 책이다. 나도 가까이 배움으로 따르는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황현산 선생님 가까이에서 따르고 지도받는 제자들의 입장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컸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는 용산참사에 대한 내용을 쓴 글이다. 이 참상 앞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인, 소설가, 비평가 192인이 작가 선언을 발표한 것을 책으로 묶었다고 한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고 말하며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그런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가 무슨 소용인가에서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시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3부까지 편집된 글인데 2부는 특별코너로 사진을 배경으로 그 사진에 대한 글을 적었다. 전원일기, 강원도의 힘, 겨울의 개, 찌푸린 얼굴들, 빈집이 그것인데 사진을 해독하는 능력과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는 능력이 특출나다. 사진 속 설명은 물론, 그 이면까지 상상을 더 해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어서 마치 그가 사진 속 배경에 다녀온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었다.

인간 본성을 일깨우고 바른 삶의 자세, 생각의 자세, 마음의 자세를 다독이듯 알려주는 찬찬한 가르침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귀한 경험을 안겨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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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으로부터 배운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t****************s | 2022.05.1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산문(散文)은 한자로 '흩을 산(散)'자를 쓰고 있지만 실은 모든 좋은 산문은 '흩어짐'과 거리가 멀다. 물론 그 散 자가 외형적 규범과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이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지만, 혹자는 그 자유로움을 글의 내용에까지 적용하여 산문집이란 일관된 주제가 없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야기나 쓴 글을 모아 둔 것이라고 오해할지도 몰라 굳이 이렇게 적어 본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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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망각에 대한 애도와 치유를 위한 밤의 시간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초*공 | 2022.02.2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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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의 세상 읽기: 망각에 대한 애도와 치유를 위한 밤의 시간들

-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2013)를 읽고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지리를 파악할 겸 산책할 때였다. 이 지역은 낮은 언덕과 평지가 이어지는데, 언덕에는 주로 단독주택과 재개발된 소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모여 있었다. 반면 평지에는 재래시장과 주변의 대규모 뉴타운이 인접해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가다가 단독주택 지역과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길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파트 단지는 언덕 위로 하늘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고, 높은 담이 단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한쪽 담벼락에는 도로변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아파트 단지 내의 보도를 따라 산책해보려고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을 위한 시설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용 키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 단지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 담 주위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아파트 단지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요새처럼 보였다. 이런 구조가 주변 지역과의 분리와 단절을 불러온다고 생각되었다.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들은 황현산의 칼럼집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되살아났다.

 

해방 직전에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저자는 신안 앞바다의 한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칼럼집은 저자의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그는 이 때의 기억을 마련해준 고향 섬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삶의 준거가 되고 있다고 밝힌다. 1986년부터 2012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쓰인 글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정서는 망각에 대한 저항이었다. 저자의 외할머니는 가마솥에 바닷물을 넣고 불을 때어 얻는 화염과 햇빛에 말려 얻는 천일염 맛을 구분했던 분으로, 화염을 넣어 만든 제대로 된 오뉘죽 맛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안방의 술을 익게 하는 귀신’, 건넛방의 메주 띄우는 귀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이제 세상의 편리와 자본의 논리에 덮여 사라져 버리고 저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만 남게 되었다. 저자는 글 속에서 자신의 오랜 기억을 심심찮게, 때론 집요하게 소환해내었다.

 

저자는 무슨 까닭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이들을 기억하고자 했을까? 사람은 태어나 언젠가는 세상을 뜨기 마련이고, 개인의 기억은 사라진다. 인류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된 이 과정에 한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 대수인가. 하지만 계속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말하는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단의 기억까지 포함하는 듯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191)

 

유독 유행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글에서 저자가 현대인의 망각에 줄곧 저항하는 이유를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기억의 필요는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향하고 있었다. 저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집안의 여러 귀신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이자 세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내력’(252)이었다. 우리 몸이 시간의 역사를 담고 삶을 기억하는 매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사라져버리면, 공동의 기억을 매개로 하던 사람들의 관계망 역시 콘크리트로 덮이듯 은폐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영영 잊혀 지게 된다. 우리가 관계하던 땅과 그 땅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사라진다는 의미다. ‘요새처럼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왕래가 차단된 아파트 단지를 걸을 때 내가 느꼈던 생각들과 다르지 않다. 한 지역에 거주하는 세대수는 월등히 많아졌지만,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장소와 관계 맺기를 하지 못한다면, 삶이 줄 수 있는 가능성과 상상력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화염과 천일염의 소금맛이 아니라 그저 짠맛만 남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달리 맞은편 주택가의 소규모 재래시장 주변에서는 꽤나 분주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요새처럼 폐쇄적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에서 장소에 대한 기억과 상상력의 소멸을 우려한다.

 

저자는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204)고 예술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가 말하는 기억은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상상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각인된 기억이 사라질 경우, 저자는 우리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용산 철거 시위 사건을 두고 192인의 문인들이 공동 선언을 하고 이를 글로 쓴 일은 무엇보다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들의 선언은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기도였을 것이다. 또 집단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동체의 공감하는 능력을 지켜내려는 다짐이기도 했을 테다. 재개발 아파트 단지가 불러온 단절, 대규모 뉴타운의 인적 없는 거리와 임대간판이 내걸린 수많은 빈 가게들을 보면서 했던 생각은, 저자가 밝고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폐허’(51)라고 언급한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기억을 덮고 사람의 자리를 외면한 개발의 결과는 결국 사람이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는’(51)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징후를 읽고 글로 말하고 있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 기억을 지닌다는 말은 삶의 깊이를 지니고 사람과 그의 삶을 존중하는 맥락’(97)을 고려한다는 의미다. 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장소와 시간의 복원을 전제한다. 인간을 획일적인 소비 대상으로 치부해버리는 무감각에 저항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이에 공감하는 상상력을 확보하여 어디에나 사람이 있음’(244)을 감지하는 일이다. ‘요새와 같은 아파트 단지는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들의 기억을 차단하고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빼앗아 가버린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지, 내 안에 타인이 설 자리를 애초에 지워버린다. 따라서 시간 속에서 장소와 관계 맺어온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길이다. 저자는 이를 시를 읽을 때처럼 우리가 잠시나마 비로소 사람이 되는’(245)일 이라고 표현했다.

 

앞서 언급한 아파트 단지의 개발 방식과 뉴타운의 모습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게 만드는 사례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청계천 복개 과정을 이야기한다. 청계천 복개 후 정리 과정에서 개발 주체 및 관련자들은 상인들과 주민들을 불암산 자락으로 내몰았다. 이 관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로 이어졌다. 정부와 개발 주체가 주도하여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구럼비 바위와 맺어온 기억을 파괴한 셈이다. 이는 공동체에 망각을 강요한 폭력이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눈앞의 현안으로 이를 가려버릴 때, 저자가 말하는 덮어 가리기 근대화’(111)의 모습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에서 저자가 기억을 붙들고 저항하고자 했던 이유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영원히 망각해버리고, 슬픔을 함께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마저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심지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59)고 말이다. 인간이 삶에서 관계 맺은 모든 것들에 대해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 정체성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밤이 선생이다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 혹은 잃고 있는 대상에 대한 애도하기를 일관된 태도로 보여준다. 청계천 복개 사업이나 강정마을 미군기지 건설에서와 같이 덮어 가리기 근대화는 집단적인 망각을 초래했고, 고통과 상처를 남겨놓았다. 저자는 공동체 앞으로 다가온 망각에 끊임없이 저항했다. 우리는 삶에서 늘 패배하곤 하지만, 이따금 누군가는 공동체가 떠안은 상처와 슬픔을 치유할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문학비평가인 저자는 시에 그 희망을 걸어 보기도 한다. 삶에서 얻은 좌절과 슬픔, 분노를 시를 통해 왕성한 생명력과 더불어 기억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삶의 깊이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시는 기억술’(204)이라는 말을 믿는 이유다.

 

저자가 주목한 관점 중 인상적인 것 하나는 그가 갈구하는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이 밤의 시간에 속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낮의 시간은 이성과 사회적 자아의 시간인 반면, ‘밤의 시간은 상상력과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또 밤의 시간은 낮에 발생하고 겪었던 슬픔과 상처를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치유하고 봉합하며, 새살을 돋게 하는 소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밤의 시간은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이기도 하겠다. 이미 150년 전에 보들레르는 잘 정비된 도시의 모습에서 기억이 사라지고 상상력이 소멸된 폐허의 모습을 어둠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했고, 괴테는 그보다 더 일찍 밤의 말이 지닌 힘을 간파했던 것 같다.

 

하늘 높이 머물러라, 사랑스러운 루나여,

언제까지나 밤이도록 자비를 베풀어라. 낮이 우리를 쫓아내지 않도록!

 

이 대목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요정 세이렌들이 에게 해의 바다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노래하는 대목이다. 이 세이렌들처럼 저자는 독자들이 각자의 은밀한 시간을 통해 기억과 상상력을 회복하고,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며 소생해나갈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만 그가 떠나고 없는 이 세계는 어둠의 입을 통해 기억을 전하던 그리오 Griot한 명을 더 잃게 된 셈이다.

 

 

 

 

[책 속으로]

[1]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쓰는 사람이 된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32)

-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2009) 중에서

 

[2] 그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야 한다.”(37)

-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2010) 중에서

 

[3] 뱀처럼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광장으로 바뀐 자리에서 제 삶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제 땅에서 망명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50)

-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2010) 중에서

 

[4] 강에 댐을 쌓고 하안 공사를 하고 난 후 나루터가 없어지고 나니 거기서 일하던 기억도 사라지고 말았다고 늙은 사공들은 대답했다.”(60)

- 기억과 장소(2010) 중에서

 

[5] 어떤 비평가는 작가의 윤리와 작품의 윤리를 구별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윤리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훌륭한 작품을 썼기에 훌륭한 작가로 인정된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이 예는 적절치 않다. 발자크는 자기 안에서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기 시대 비판의 창조적 열망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훌륭한 작가로 성장하였다. 반면에 친일 작가들의 친일 행위는 그들이 애초에 지녔던 창조적 열망까지도 메마르게 만들었다.”(84)

- 고향의 봄앞에서(2011) 중에서

 

[6] 김수영 시인이 사랑의 변주곡에서 말했던 것처럼 제 마음 속의 복숭아 씨와 살구 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그 힘을 창조력의 밑받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고 선택하기 전에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가려놓은 채, 생명에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발라 둑을 쌓아둔다면, 거기 고이는 것은 창조하는 자의 사랑이 아니라 굴종하는 자의 증오일 것이다.”(100)

- 금지곡(2010) 중에서

 

[7] 이 주소의 역사는 서울이 그 주변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와 관련된 서민들의 삶을 식민화한 역사와 같다.”(111)

- 덮어 가리기와 백사마을(2011) , 중계동 104번지에 있던 백사마을을 언급하며

 

청계천 복개는 내가 덮어 가리기 근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111)

 

[8] 표절이 명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준 대학이 학위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아닐 것이며, 그 사람이 계속 교수로 남아 있는 대학도 대학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124)

- 시대의 비천함(2012) 중에서

 

[9]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152)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겨울의 개중에서

 

[10]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163)

- 사진가 강운구의 사진을 다룬 찌푸린 얼굴들중에서

 

[11] 사람의 마음 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191-192)

-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2002) 중에서

 

[12]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의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204)

- 윤리는 기억이다(2003) 중에서

 

[13] 오페라 심청의 대본을 쓴 사람(윤이상)에게 정작 그 착상을 도와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한 구절,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220)

-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2003) 중에서

 

[14]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 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244)

-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2004) 중에서

 

[15] 이 신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와 함께 그 영검이 깊어졌으며, 또한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그것들은 우리와 숨결을 교환하고 냄새를 교환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의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들이며, 세상과 사랑을 나누는 내력들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의 시간들이었다.”(252)

- 귀신들 이야기(2003) 중에서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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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91건) 한줄평 총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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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P57 생각을 소비하는 시대에?생각을 생산하게 하는책~~곁에 두고 읽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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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m******6 | 2022.11.09
구매 평점5점
곁에 두고 늘 읽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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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민* | 2022.10.09
구매 평점5점
지인 추천으로 구매했는데. .. 주옥같은 글귀와 황현산 선생님의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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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j******1 |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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