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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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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로망스

: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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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56g | 128*174*20mm
ISBN13 9788961962360
ISBN10 8961962361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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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호텔방에 있었다. 좁은 방 안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걷다가 침대에 누워 동그란 화재경보기가 박힌 천장을 보았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천장은 비어 있었고, 흰 천장에 그 아이의 얼굴이 가득 채워졌다. (……) 오가는 사람들로 몽파르나스 기차역 광장은 활기찼다. 10여 년이나 봐온 풍경인데 낯설었다. 시간은 가지 않았고, 나는 가지 않는 시간을 등 떠밀어 보내려 애썼다. 지금, 그 아이는 무얼 하고 있을까? --- p.35~36

왜 나는 그 아이를 만났을까. (……) 지금 생각해보니 그 아이는 내게 여자 이상의 존재였다. 무엇보다 ‘나다움’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우리 관계의 주도권은 그 아이가 쥐고 있었다. (……) 그게 편하고 좋았다. 어쩌면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는데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았던 걸까. 크리스틴을 만나면 나는 내 수동성에 정직할 수 있었다. 큰 단점이라고 여겼던 부분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니 자기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었다. (……) 그녀는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대한 첫 사람이었고 비로소 나는 나를 직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삶의 이유이자 근거였다. --- p.90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쓴다면 그것은 연인과 열어갈 미래의 달콤한 상상이거나 행복한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다. 파리에 온 나는 매일 일기를 쓴다. 오늘은 그 아이와 헤어진 지 31일째다. --- p.112

검푸른 여름 하늘로 가늘게 날아올라 정점에서 숨을 고르듯 멈췄다가 꽃송이로 터지는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꽃은 침묵 속에서 피고 지지만, 화약으로 피워내는 인공의 꽃들이 피어나는 소리는 웅장했다. 피고 지는 순간의 그 꽃에는 어떤 고통도 없었다. 불이 어둠을 밝히듯, 밤하늘의 불꽃은 파리를 빛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쉼 없이 터지는 불꽃들은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 p.155

“인생을 좀 뜨겁게 살아봐. 왜 그렇게 포기가 쉬워?” (……) 그 아이의 물건들을 다 버리고나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뜨거운 것이 아니라 내가 미지근했던 것이었음을. 언젠가 그녀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마음 놓고 사랑하지 못했고, 나와 그녀 사이에 보호막을 쳤다. 그녀와의 미래가 어떠하든 그것을 선택할 용기가 부족했다. 분명 나는 그 아이를 평생 내 곁에 두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만은 아니기에, 내 사랑의 강건함으로 우리의 미래를 열어나갈 수도 있었다. 용기 없는 남자가 말하는 사랑은 허약했고, 행복은 허상이었다. 내 곁에서 그녀는 외로웠을 것이다. 모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 p.162

때를 놓친 욕망은 후회로 남는다. 후회가 쌓이는 게 인생이라고,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게 어른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은 핑계다. 행동으로 옮겼어야 했다. 제때를 놓친 ‘만약’이라는 모든 가정 앞에서 나는 초라하다. --- p.196

그 아이와 있으면 나는 밝아졌고, 때때로 내비치는 소녀의 불안은 온전히 내 안으로 밀고 들어와 나를 흔들어 놓았다. 살아 있으니 불안하지, 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이 담고 있는 차가움을 몰랐었다. (……) 나는 그 아이의 불안을 내 몫인 양 끌어안겠다고, 그것이 어른의 사랑이라 말하며 한껏 위선을 떨었다. 내 몫의 불안도 감당하지 못하며 쩔쩔매면서 사내의 허세를 떨던 시간들, 내가 아는 사랑은 고작 그런 것뿐이었다. 이별하고서야 사랑을 배운다. --- p.207

고통은 사랑만큼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리움은 눈물로 달랠 수 있지만 눈물로 이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혼자 들어 좋은 음악과 좋은 음악을 혼자 듣는 쓸쓸함이 슈베르트 안에서 부딪힌다. 늦은 밤, 그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파리를 걸었다. 걸을수록 아련함이 커져만 갔고, 공중전화기에 발이 걸렸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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