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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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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356g | 130*195*20mm
ISBN13 9788954674492
ISBN10 8954674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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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작가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어린시절 제주의 한 부속 섬에서 만난 두 소녀가 성인이 되어 재회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는 작가의 말처럼, 다치고 상처 입어도 또 연대하고 서로를 보듬으며 그렇게 다음을 살아갈 우리, 『복자에게』는 그런 모두를 향한 위로와 응원의 소설이다. -소설MD 박형욱

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모든 넘어짐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단단한 시선과 위트 있는 문체로 인간의 보편적 불행과 슬픔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가 출간되었다. ‘우울이 디폴트’인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찬란한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해내는 김금희의 소설은 무심한 듯 다정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장면들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수많은 독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왔다. 평단의 끊임없는 지지와 더불어 2015년 신동엽문학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7년 현대문학상, 2019년 우현예술상,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김금희는 이제 ‘언제나 믿고 읽는’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다.

김금희의 신작 『복자에게』는 2020년 8월 한 달간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작가의 육성 낭독으로 절찬리에 연재되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으로, 예약판매 기간에 이미 3쇄를 제작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첫 장편 『경애의 마음』(2018)에서 모든 이들의 마음의 안부를 물었던 작가는 『복자에게』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꺾이고 무너지게 만드는 ‘실패’에 대해 쓴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제주의 한 부속 섬으로 이주해야 했던 소녀 ‘이영초롱’이 훗날 판사가 되어 또 한번 제주로 좌천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영초롱과 그 곁의 소중한 사람들은 미처 봉합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아프도록 선명하게 마주한다. 그러나 김금희의 인물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활에 서서히 녹아들면서, 어떤 실패들에 걸려 넘어졌던 마음을 다시금 일으켜세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치유해나간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고모는 그중 작은 무덤들은 아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옛날 섬에서는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았다고. 죽을 이유는 얼마든지 많지 않겠니, 그 어리고 여린 것들이 말이야. 제주에는 아예 그렇게 가여운 애기들을 가리키는 설룬애기라는 말이 있고 서럽고 불쌍한 엄마를 가리키는 설룬어멍이라는 말도 있다. 슬픔이 반복되면 그렇게 말로 남는 거야. 나 같은 어린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던 나는 고모의 말에 콧날이 시큰했다.
--- p.18

그렇게 펄펄 뛰는 자연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은 전혀 다른 주파수로 움직이는 듯했다. 할망신은 당연히 있을 것 같았다. 작은 굴, 실타래, 물때가 낀 돌바닥, 구멍이 숭숭 난 현무암과 모든 것들이 그런 분위기였다.
--- pp.23~24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 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습설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 p.39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빠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몸을 기우뚱하고 있다가 잠시 허리를 세웠다.
“나는 아빠를 안 미워했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진짜 사회지도층 인사가 됐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아빠는 그걸 들었는지, 아니면 무심코 그랬는지 아주 잠깐 이가 보이도록 웃었다.
--- p.61

나는 한 계절 몇 달 만에 그렇게 멀어져버린 그곳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가 따귀를 갈기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이를 꽉 물고 그런 마음을 내리눌렀다. 그리고 복자처럼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꼿꼿이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도시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몸 자체를 쥐고 흔드는 바람의 세기에 적응하고 싶었다. 그 힘을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것, 에워싸이고도 물러서지 않는 것, 바람이 휘몰아쳐도 야, 야, 고복자! 이렇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 춥거나 햇볕이 따갑다고 엄살떨지 않는 것.
--- pp.86~87

흐린 날 중문의 바다가 보여주는 그 웅장함, 더이상 휴가나 해수욕 같은 인간이 즐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여가의 대상이기를 거부하는 회색 물결들을 보며 달리다가 나는 그 흉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달이 꽤 차서 아이를 잃은 복자에게는 수술 자국이 남았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차를 세우고 서서 벼랑으로 몰아치는 파도의 포말들을 간신히 바라보았다.
--- p.187

복자 걱정은 너무 하지 마. 할망을 꼭 닮았으니까. 복자네 할망은 고고리섬에서 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해녀였어.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망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
--- p.189

하지만 나중에라도 그런 섬에 갈 때는 말이야, 셀린, 꼭 네가 왔다는 걸 알리고 인사를 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알려야 해, 너라는 사람이 여기 와 있다는 것을.
(…)
특히 섬의 오래된 신과 보리밭에, 해녀들에게, 고양이를 닮은 돌과 어설픈 낚시찌는 도무지 물지 않는 물고기에게, 뿔소라 껍데기로 장식된 담장과 설운애기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에게, 온전히 걸어야만 이동할 수 있어서 좀 화가 난 관광객들과 태풍이 불면 보름쯤은 모두 사라졌다가 가장 작은 개체부터 나타나 다시 삶을 시작하는 갯강구들에게, 아무리 잘 빗어놓아도 머리를 다 흩뜨려놓는 바닷바람과 부두에 정박한 배들에게, 오늘도 끊이지 않는 민원들을 해결하느라 스쿠터를 타고 바쁠 미혜씨와 꿈의 변경이 용인되어 섬으로 돌아와 있는 오세에게, 그리고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말할 줄 알았던 현명한 나의 친구, 복자에게
--- p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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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모든 넘어짐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단단한 시선과 위트 있는 문체로 인간의 보편적 불행과 슬픔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두번째 장편소설 『복자에게』가 출간되었다. ‘우울이 디폴트’인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찬란한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해내는 김금희의 소설은 무심한 듯 다정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장면들을 다채롭게 그려내며 수많은 독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왔다. 평단의 끊임없는 지지와 더불어 2015년 신동엽문학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2017년 현대문학상, 2019년 우현예술상,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한 김금희는 이제 ‘언제나 믿고 읽는’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다.

김금희의 신작 『복자에게』는 2020년 8월 한 달간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작가의 육성 낭독으로 절찬리에 연재되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으로, 예약판매 기간에 이미 3쇄를 제작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첫 장편 『경애의 마음』(2018)에서 모든 이들의 마음의 안부를 물었던 작가는 『복자에게』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꺾이고 무너지게 만드는 ‘실패’에 대해 쓴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제주의 한 부속 섬으로 이주해야 했던 소녀 ‘이영초롱’이 훗날 판사가 되어 또 한번 제주로 좌천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영초롱과 그 곁의 소중한 사람들은 미처 봉합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아프도록 선명하게 마주한다. 그러나 김금희의 인물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섬사람들의 강인한 생활에 서서히 녹아들면서, 어떤 실패들에 걸려 넘어졌던 마음을 다시금 일으켜세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치유해나간다.

“복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온통 물러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것이 힘을 쓰고 싶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소설은 1999년 초봄, 야무진 열세 살 초등학생 이영초롱이 남동생 대신 제주 본섬에서도 한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의 고모에게 맡겨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영초롱은 자신이 서울에 남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적은 제안서까지 써서 부모에게 호소해보지만, 절망적인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고고리섬에서 침울한 나날을 보내던 이영초롱은 어느 날 섬 둘레를 혼자 걷다가 우연히 또래 여자아이 ‘복자’와 마주친다. 당차고 무람없는 성격을 지닌 복자는 섬에 왔으면 할망신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며 이영초롱을 할망당으로 안내한다.

“우리집이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복자 쪽에서 약간 움찔했다. 하지만 일단 입을 열자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울에서 나쁘게 지냈습니다. 아빠 친구라고 해서 문을 열어줬는데 남자들이 신도 안 벗고 들어와서 욕설을 하였고 싸웠습니다. 아빠가 신발을 벗으라고 하자 남의 돈을 안 갚는 집은 사람 새끼들 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베란다 창고에 숨어 노래를 들었습니다. 영웅이는 거실에서 다 봤습니다.”
“아, 경헸구나.”
듣고만 있기 뭣한지 복자가 맞장구를 쳤다.(24쪽)

엉겁결에 일생일대의 비극을 타인에게 털어놓게 된 이영초롱, 그리고 처음 본 아이의 슬픈 사연에 진심으로 반응해준 복자. 두 아이는 그날부터 단짝이 된다. 복자는 이영초롱에게 낯선 섬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어느 날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을 어른들 사이의 갈등에 휘말려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게 된 그들은 줄곧 화해하지 못하다가 이영초롱이 서울로 돌아가면서 결국 소식이 끊기고 만다.

시간이 흘러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영초롱은 이제 법관의 소임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끼는 판사가 되어 있다. 법의 엄정한 언어가 때로는 개개인의 세세하고 애달픈 사연을 평면화해버린다는 사실을 이영초롱은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착잡함과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법정에서 욕설을 쏟아낸 끝에 제주의 법원으로 징계성 인사발령을 받은 이영초롱은, 열패감을 안고 회귀한 유년의 장소에서 복자와 재회하게 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복자는 지금 그곳에서 거대한 불합리와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들었겠지. 모두가 들었으니까.”
복자가 여전히 얼굴을 밤하늘에 마주한 채 답했다.
“우리가 지금 삼십대가 됐잖니. 그런데 인생이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그렇지?”
“맞아.”
“누구는 그런 말도 한다. 아이를 유산한 나 같은 경우에는 산재가 인정될 확률이 높다고, 그 돈으로 건강해져서 얼른 아이 다시 가지라고. 근데 나 있잖아, 다시 건강해진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 다시 그렇게 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어떻게 내가 다시 그렇게 돼.”(138~139쪽)

제주의 ‘영광의료원’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디며 간호사로 근무하다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복자는 같은 피해를 입은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 산업재해 인정을 받아내고자 한다.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내놓지 않는 의료원과 끝까지 투쟁하는 복자. 소중한 친구의 싸움을 아프게 지켜보던 이영초롱은 이번엔 자신이 복자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고 법의 대리자로서 소송에 뛰어든다.

맑고 시린 풍광을 채우는 생생한 활력과 넉넉한 위트
일하는 사람들의 섬, 제주를 수놓는 강인한 발걸음


소설의 중심에 놓인 복자의 소송은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산재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복자에게』에는 그밖에도 제주4.3사건, 국정농단 사건,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 등 다양한 사회적·역사적 문제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작가는 현실의 ‘나쁨’에 대해 더이상 아무것도 미화하지 않겠다는 듯 냉철한 시선으로 그 사건들을 그린다. 이러한 자세는 김금희 소설의 캐릭터 변화로도 나타난다. 모난 인물들을 묘사할 때도 일말의 애정을 놓지 않았던 김금희는 이 소설에 싸늘하게까지 느껴지는 ‘진짜 악역’을 세워놓는데, 영광의료원 원장의 부인으로 등장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엘리사벳’이 그 인물이다.

“우리가 하기 전에 부장님이랑 의논해서 재판 회피, 하세요. 저희가 기피 신청을 해버리면 기사 나고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그게 우리 내과 병동에서 일 잘했던, 신실했던 그 직원을 위한 일일 거예요. 내가 그 직원 임신했다고 했을 때 선물도 했어. 우리 시어머니 입원했을 때 극진히 간호를 해서. 저도 한이 있겠고 어디 단체에서도 부추겼겠지만 친구까지 합세해서 이러면 안 되잖아요? 내가 그 일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 아니야. 그런데 결국 법은 칼이 아니라 저울 아니에요. 공정하게 측정해주셔야지 편을 들면 돼요?”(204쪽)

그러나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힘”을 믿는 김금희 소설의 긍정성은 이러한 악함과 대비되며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복자를 비롯한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건실한 노동으로 삶을 책임지는 그들의 넉넉한 위트에 감화되며, 이영초롱은 실패한 지난 시간을 서서히 매만지고 회복해나간다. 김금희의 인물들은 섬 안에서 서로 파도처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들은 그 모든 갈등을 끌어안으며 함께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복자에게』는 작가가 제주에서 지냈던 나날들에 영감을 받아 완성된 소설이다. 작가가 탄생시킨 가상의 공간 고고리섬은 맑아서 시리기까지 한 풍광과 사람들의 생기로운 목소리가 풍부하게 어우러지며 생생한 현장감을 획득해낸다.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살아 숨쉬는 이 섬에서 모든 실패는 살아가기 위한 움직임이 남긴 증거로서 위로받고 포용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학업과 생활에서, 성공을 위한 도전에서 실패를 겪은 모든 이들에게, 이곳은 삶을 용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북돋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김금희가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듯이.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지난봄 마침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고고리섬’에 있었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그때 나 혼자 청보리밭에서 상상해봤던 섬의 소년 소녀들이 이 소설의 주연이다. 향긋한 귤꽃이 피고 진 자리에 엉글엉글 청귤이 맺혀 노란 귤로 영글던 지난날들이 파도친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하면서 작가는 한 번도 사랑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사랑이었던 날들에 대한 슬픔을 참는다. 그날들은 찬란한 그대로 비어 있는데 어른이 된 우리는 쓸쓸한 일들이나 치고받으며 나이가 차고 마는 것일까. 김금희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어쩔 수 없음을 난감해하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재편하고 파고든다. 그 아름다움을 더 먼 곳으로 보내놓고 온전히 감당하려 한다. 고고리섬의 유일한 유적인 바람…… 작가가 제주에서도 한번 더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그 섬의 바람을 우리 앞에 펼쳐놓은 것은 그곳이 우리의 소중한 한때를 비밀스레 파묻어놓은 청춘의 집 한 채이기 때문일 것이다.
- 이병률(시인)

우리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음이 아프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마음은 풍경이 아닐까, 라는. “슬픔과 기쁨 사이에 걸려 있는” 어떤 기억이 만들어지던 풍경을 마음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김금희 소설을 읽은 덕분에 하게 된 생각들이다. 『복자에게』가 그리는 고고리섬의 여러 풍경이 우리에게 마음을 만들어 그곳에 기대게 한다. 용감해지라고, 자기 무게에 걸려 넘어져도 끈질기게 “기꺼이”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고 덧붙이며. 힘을 내고 싶은 인물들의 여러 마음이 섬의 풍경으로 재현된 『복자에게』는 그 자체로 이미 풍족한 선물이 되겠지만, 김금희 작가가 오래오래 써주길, 계속해서 마음의 풍경을 환하게 환기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그 선물에 보탠다.
- 조해진(소설가)

회원리뷰 (58건) 리뷰 총점8.9

혜택 및 유의사항?
복자에게 - 김금희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다*앤 | 2022.01.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누군가의 선의를 알아채지 못해 상처받고, 믿지 못하고, 과거에 계속 머무르는 건 나를 끊임없이 아프게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던 오세의 말과 실패가 아니라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하는 거라던 영웅의 말,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다던 복자의 말은 내게 오래 남는다. 위로가 되는 그 말들;
리뷰제목

누군가의 선의를 알아채지 못해 상처받고, 믿지 못하고, 과거에 계속 머무르는 건 나를 끊임없이 아프게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던 오세의 말과 실패가 아니라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하는 거라던 영웅의 말,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다던 복자의 말은 내게 오래 남는다. 위로가 되는 그 말들을 품에 안고, 실패를 미워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야지. 누군가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가득 보내줘야지. 수많은 복자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줘야지.

 

 

제주에는 아예 그렇게 가여운 애기들을 가리키는 설룬애기라는 말이 있고 서럽고 불쌍한 엄마를 가리키는 설룬어멍이라는 말도 있다. 슬픔이 반복되면 그렇게 말로 남는 거야. (18p)

 

결국 분노의 목적과 명분은 사라지고 그냥 분노라는 상태만 남아 활활 탔다. 화는 눈덩이처럼 뭉치고 뭉쳐져서 차가운 불면의 밤이 왔고 병원의 처방약이 없으면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37p)

 

사람을 한번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랄까, 비극이랄까, 고통이랄까 하는 모든 것이 옮겨오잖아. 하물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억울하고 슬프고 손해보고 뭔가를 빼앗겨야 하는 이들이야. 이를테면 판사는 그때마다 눈을 맞게 되는 것이야. 습설濕雪의 삶이랄까.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빨리 털어내야 한다고.” (39p)

 

고통은 그렇게 단련되기는커녕 어느 면에서는 더 예각화되었다. 노출되면 될수록 예민하게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워졌다. (40p)

 

사장은 바구니에 담긴 귤을 가리키며 공짜니까 가져가라고 했다. 귤들은 푸릇했고 점무늬가 있기도 했지만 싱싱해 보였다. ‘비닐봉지 제공 불가.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욕심내기라고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나는 누가 비닐봉지까지 달라고 하냐고 사장에게 물었다. 아주 양심이 불량하네, 하고.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사장은 주방 쪽을 향해 패마농 주문허카 말카?” 하더니 네네하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게 사람이죠.” (47p)

 

나중에도 도시 곳곳에 흔하게 놓여 있는 음료 자판기들은 내게 아주 복잡한 고통 같은 것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어느 때에는 그렇게 가족들이 어떤 곤경과 맞서보려고 했던 때가 대책 없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66~67p)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81p)

 

왜 뭔가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파 

왜 마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아파 

나는 일기장에 이런 말들을 쓰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100p)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메스를 든 의사와 같다는 말이었다. 의사들에게 인체를 찢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삶을 찢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110p)

 

사람들은 말이다. 맘이 있지? 그러면 절대적으로 반응이라는 것을 해. 그리고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늘 범위 안에 있어.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니? 콘택트, 연결, 접속이 항상 있어야지. (123p)

 

인터뷰를 하는 간호사가 복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부분은 복자인 듯했고 어느 부분은 복자가 전혀 아닌 듯했다. 불행의 표피가 너무 단단해서 말이 그 안을 드러낼 수 없을 듯한 부분은 복자의 것이면 안 될 것 같았고, 유채꽃처럼 예쁘잖아요 할 때는 당연히 고고리섬 풍경이 떠오르면서 복자일 듯했다. (130p)

 

별은 불변이구나라고 한 건 복자였고, 그 느리고 느린 인공위성이 만드는 작은 움직임이야말로 인간의 힘처럼 느껴진다고 말한 건 오세였다. 위대한 건축이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라는 어느 건축가 말을 반복해서 믿게 된다고. 저기 인공위성 역시 인간이 우주공간에 지은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자기는 그것이 조금씩 어둠을 밀며 움직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139~140p)

 

복자의 엄마가 복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가 어려워 곧잘 무너져내리고 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1999년 내가 복자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복자는 그걸 잘 알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래서 씩씩하고 많이 웃고 더 진취적인 아이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속일 수 있기를 바라는 힘으로 어른이 되는 아이들이. (143p)

 

여름이 한창이었다. 생선 가게 주인이 한 팔을 내밀거나, 선풍기 바람이 비닐봉지들을 펄럭일 때마다 매대에 내려앉았던 파리떼가 와하하 일어났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생선을 토막 내고 오징어를 손질하는 주인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파리떼가 그의 유일한 아우라 같았다고 고모는 적었다. 오직 그것만이 토막 난 생선처럼 종결되지도 않고 차양 아래 오징어처럼 다 물러지지도 않은 채 생이 계속된다고 증언하는 듯했다. 그 비린 것에 달라붙는 파리떼처럼 칼과 도마와 고무장갑에 내려앉았다가도 공기 중으로 와락 떠오르며 우리도 산다고, 우리가 이렇게 구차하고 끈질기게 기꺼이 산다고. (163p)

 

많은 기억들이 흔들리고 부유했다. 기억을 되살린다는 건 그렇게 한없이 풍성해지는 일인 듯했다. 통제를 벗어난 많은 것들이 나의 재단을 훼방하고 흐트러뜨려놓는 상태,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여름을 닮은 시간들이었다. (167p)

 

오세는 드론을 띄워서 찍은 고고리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바다 위에 그 작은 고고리섬이 떠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연속해서 몰아치는 파도를 견뎌가며 섬은 마치 가지를 뻗듯 선착장과 부두를 만들고 꽃처럼 다채로운 지붕의 집들을 피우고 보리밭과 해바라기밭을 보듬으며 거기에 있었다. 해안의 거친 바위들, 섬의 유일한 공장인 보리 도정공장과 밭둑의 고인돌들까지, 그렇게 위에서 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드론이 점점 내려앉아 지붕의 시점이 되고 잠자리들의 시점이 되고 우리의 눈높이가 되고 갯강구들의 자리까지 내려와 착륙하면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181p)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망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 (189p)

 

선배는 실무관실에 연락해 일정을 조정한 다음,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물론 법복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옷 안섶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그 옷을 선배는 유독 아꼈으니까. 그걸 입고는 사무실 의자에도 앉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입는 사람에게도 그 옷의 권위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법정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면 당연히 벗어서 그 권위가 일상의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스스로 삼가는 것. 자신을 롤 모델로 삼지 말라는 선배의 말과는 달리, 나는 그런 선배에게서 어떤 마음을 옮겨 받고 있었다. (201p)

 

영초롱아, 저기 나무 보이니? 저게 새별오름에서 요즘 제일 유명한 나 홀로 나무. 사람들이 그렇게 사진을 찍어 올린다더라, 오세가. 왕따 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 홀로랑 왕따랑 느낌이 참 다르지? 어쩌면 그게 그거처럼도 느껴지고.”

그래, 그게 그거 같다.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일 뿐.”

근데 그러면 엄청난 차이 아니냐? 스스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 (213p)

 

우리 할망이 물질을 오래해서 귀가 안 좋았잖아. 그래서 크게 크게 소리를 질러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다보면 마냥 우울하고 슬플 수가 없었어. 할망! ! ! ! ! 소리치고 나면 슬픔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듯하고 그냥 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괜찮은 듯하고. (215p)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에 불과하다고 네가 내게 멋진 말을 알려주지 않았니. 그렇다면 법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면면도 최소한에 불과한 거야.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너가 말할 수 있니? 주민들 중에 이참에 땅이고 집이고 다 비싸게 팔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섬을 지키기 위해 연륙교 착공을 힘 모아 저지한 일은 어떻게 설명할 거니? 몸 지지러 갔다가도 섬의 고넹이돌을 단번에 알아본 그 마음은 어떻게, 싹 무시하면 되는 일이니? 너는 최소한의 도덕을 다루지만 나에게는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한번 기울어진 채로 시작된 관계는 복구가 되지 않을지도.” (220p)

 

보낼 수 있다면 복자야, 나는 너에게도 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넘치도록, 자꾸 넘쳐서 네 머리맡에 그것이 고이도록, 그렇게 해서 너가 파도가 치나 아니면 태풍이 올 참인가 싶어서 잠결에 잠깐 눈을 뜨도록. 그러면 태풍이 올 리가 없으니 이 밤 아주 편안하게 자고 있던 흰둥이가 귀찮은 듯 네 방문을 잠깐 보고. (230p)

 

그래, 실패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인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사표를 낸 것과 너가 더 이상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하지 않는 것.”

영웅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생각하더니 글쎄,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라고 결론 내렸다. 영웅의 그 말은 그 무렵 읽고 있던 볼테르의 책과 함께 내가 힘껏 잡고 놓지 않는 것이 되었다. (233p)

 

내가 놀라웠던 건 볼테르의 마지막 물음이었다. “이렇듯 가장 거룩한 신앙심도 지나치면 범죄를 낳는다. 해서 어떤 이들은 자비나 관용, 그리고 신앙의 자유란 사실상 기만이라고 냉소하지만, 그러나 진정으로 반문하건대 자비나 관용, 신앙의 자유 자체가 과연 그같은 재앙을 초래한 적이 있었던가?” (235p)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말할 줄 알았던 현명한 나의 친구, 복자에게. (237p)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복을 약속하지만 소설은 무엇도 약속할 수 없어 이렇듯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242~2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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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똑똑했던 그 많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후일담이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책*****우 | 2021.12.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고고리섬으로 전학을 간 건 1999년이었다. (p.7)   소설 속에서 '고고리섬'은 제주도의 부속섬 중 하나로, 대정읍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극중 '나'는 가죽 도매상을 하던 부모의 부도로, 이 섬의 보건소 의사인 고모와 함께 살기 위해 일종의 경제적 피난을 가게 된다.   은희경의 『새의;
리뷰제목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고고리섬으로 전학을 간 건 1999년이었다. (p.7)

 

소설 속에서 '고고리섬'은 제주도의 부속섬 중 하나로, 대정읍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극중 '나'는 가죽 도매상을 하던 부모의 부도로, 이 섬의 보건소 의사인 고모와 함께 살기 위해 일종의 경제적 피난을 가게 된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진희가 있었다면, 『복자에게』는 이영초롱이 있다!

 

이 소설은 꽤나 많은 인물들의 서사로 엮여져 있다.

 

우선은 고고리섬으로 전학 간, 다부지고 영리하고 조숙한 소녀인 '나' 이영초롱 서사가 있다.

그리고 판사가 된 '나' 이영초롱의 서사가 있다. 나는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나와 판사가 되지만, 피치 못할 사유로 제주로 좌천된다.

그렇게 어릴 때의 '나'와 어른이 된 '나'의 서사가 제주에서 연결된다.

 

그리고 고고리섬에서 유년시절의 나와 함께 한 고모의 서사가 있고, 고고리섬에서 유일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며 내게 다가왔던 '복자'의 서사가 있다.

 

소설은 성인이 되어 제주로 내려간 '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과거의 인물들과의 관계가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면서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복잡해진다.

 

 똑똑했던 그 많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후일담이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IMF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했던 소녀가 커서 서울대에 가고 판사가 되었다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인간 승리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수재들은 대체로 다 여자아이들이었는데,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그들은 종적을 감추고 사라져버린다. 똑똑하고 영리했던 그 많은 소녀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여성의 성공담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문대에 간다고, 판검사가 되었다고, 성공한 그 시점에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인생은 계속되며, 삶이란 대체로 영광의 순간보다는 '던적스럽고' 구차한 순간들이 더 많다. 더욱이 여성이라면 사회생활을 하면서든 일상생활을 하면서든 그런 순간들을 더 많이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영초롱도 그렇다. 서울대를 나오고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판사가 된 그의 이력은 영광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나,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재판을 하면서 인간의 온갖 추찹하고 더러운 면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그것이 '직업'의 세계이다. 밖에서 보는 것과 내부자로서 경험하는 세계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영초롱이 좌천되어 제주로 내려가게 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승승장구를 위해선 줄을 잘 서야 겠지만, 그런 '정치적 놀음'을 태생적으로 못 하거나,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성공하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다면 성공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세상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판사로 일하다가 제주로 좌천된 이영초롱이 그렇고, 보건소 의사의 삶을 선택한 영초롱의 고모의 삶이 그러하며,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한 복자가 그러하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셋은 모두 여성이다. 그리고 이 세 여성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세 사람의 인생만큼이나 고고리섬의 해녀 할머니들의 삶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약자들끼리 연대하는 삶. 제 한 몸을 건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먹여살린 억척스럽고 생명력 강한 여성들의 삶.

 

작가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의 경이에 대하여,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 묵묵히 매일매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그 모든 지리하고 던적스럽고 때로는 모멸스럽기까지 한 모든 삶들의 총합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 자신이라는 것에 대하여.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만, 김금희가 직조해낸 인간(들)의 삶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어우러져(그러나 기억하자.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혹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걸 포함한 것이 자연이고, 우리는 종국엔 자연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한다), 비극과 희극을 초월한 그 무언가가 된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김금희는 소설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p.243)

 

김금희가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일텐데,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비로소 이 작가가 '인간적으로' 좋아졌다. 

이런 위로와 메시지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소설을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청춘의 긴 미로 속을 방황하고 있는 MZ 세대에게도,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혹은 경험하고 있는) 스스로의 가정을 만든 장년들에게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이와 같은 중년과 노년 세대들에게도 각자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위로를 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고고리섬의 포용력이 주는 깊은 위로를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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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리섬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A***e | 2021.12.1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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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복을 약속하지만 소설은 무엇도 약속할 수 없어
이렇듯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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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77건) 한줄평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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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마음 읽고 좋아서 주문했어요 잘읽었습니다 술술읽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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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2021.12.26
평점5점
똑똑했던 그 많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후일담이자 현재진행형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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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 | 2021.12.17
구매 평점5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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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 |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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