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것에 대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지.”
남자는 시라도 읊는 듯이 말을 이었다.
“……평생을 걸고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손에 넣은 궁극의 은총. 그 손짓은 한없이 다정하고, 치유는 끝이 없으며, 아낌없이 주기만 할 뿐 앗아가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마치…….”
노인이 그 뒤를 이었다.
“깨끗하고 순수한 눈옷을 걸친, 천사와도 같은…….”
--- p.13
노인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가 무참히 살해당했다는데, 내 가슴에는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군. 마치 작년 12월에 하얗게 얼어붙었던 호수처럼 말이야.”
이상하다는 듯이 노인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이제 슬픔에 가슴 아파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게 된 걸까. 아니, 그저 슬퍼하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된 걸까.”
그 중얼거림에 총을 겨누고 있던 남자의 눈이 빛났다.
“진짜였군?”
흥분한 탓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의 ‘최후의 레시피’가 만들어내는 하얀 약물은 오로지 순수한 평온만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 p.15
“이 미친 세상에서 저를 데려가주세요! 저를 구원해주세요!”
그러자 갑자기 내 몸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체중이 사라져가는 것만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등에는 천사님과 마찬가지로 순백의 커다란 날개가 돋아 있다. 아, 당장이라도 몸이 공중에 떠오를 것만 같다. 아주 살짝 발로 지면을 박차면 그대로 하늘 높이 쭉쭉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천사님! 저를 어디론가 데려가주시는 거죠? 저를 이 세상에서 구해주시는 거죠? 아아, 천사님!”
천사님은 미소를 띤 채 하늘 위에서 부드럽게 나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 p.25
“아마도, 천사의 모습을 본뜬 도안으로 보입니다.”
또 천사냐……. 상을 찌푸리는 진자이에게 미즈키 쇼코는 설명을 계속했다.
“이 도안은, 설국의 아이들이 쌓인 눈 위에 누워 팔다리를 위아래로 휘저어 만드는 눈의 천사와 모습이 매우 비슷합니다.
때문에 저희는 이 합성 약물을 ‘스노우 엔젤’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스노우 엔젤…….
--- pp.70~71
“약팔이와 커넥션을 만들어라, 그 말인즉.”
진자이는 확인했다.
“당연히, 당신네와 마찬가지로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라는 거군?”
미즈키 쇼코의 대답은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다.
“뭘 하든, 저희가 당신을 고발하는 일은 없습니다. 살인 이외에는.”
살인 이외에는 뭐든지(Anything other than murder), 영화에서나 들어본 대사였다.
--- pp.89~90
이사는 바싹 다가서며 진자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은 지금까지 위험한 일만 해왔어. 그런데도 정직하고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야. 의리가 깊고, 동료를 배신한 적도 없어. 그렇죠?”
“뭐, 그럴지도.”
진자이는 애매하게 수긍했다. 위험한 일을 해왔던 건 사실이다. 형사만큼 위험과 이웃하고 사는 밥벌이는 없다.
“음, 내 생각대로군.”
이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어? 날 믿어도.”
진자이는 거듭 확인했다.
“그러다 언젠가 널 짭새한테 찌를지도 모른다?”
그러자 이사는 후후, 하고 웃었다.
“못 할걸요. 왜냐면 슈 씨, 당신,”
거기서 일단 말을 끊고, 이사가 진자이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사람을 죽인 적 있죠?”
--- p.133
“약물을 합법화하면 어둠의 자금원을 잃은 마피아가 힘을 잃고 약물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논리죠. 요컨대 현재 위법인 약물을 담배나 술처럼 해금해서 국가가 관리하여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심보인데…….”
이사는 빨아들인 수증기를 맛없다는 듯이 후우, 하고 토해냈다.
“그런데 약물을 합법화하면 이번엔 세수를 늘리기 위해 매상을 올리려 들 테니까, 담배나 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정착해버릴 거란 말이죠. 요컨대 국가란 놈은, 어떤 국가든 국민의 건강보다는 돈이 중요한 거예요.”
--- pp.190~191
“화이트 오일…… 하얀 석유?”
초로의 남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젊은 남자는 설명을 계속했다.
“사막의 나라에 황금비를 내리게 하는 것, 그것이 석유입니다. 그리고 석유처럼 황금비를 내리게 하는 하얀 것, 그것이 하얀 석유입니다. 이 하얀 석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영원히 무한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모르겠군. 하얀 석유란 대체 무얼 말하는 게지?”
난감한 듯 고개를 꼬는 초로의 남자에게 젊은 남자가 말했다.
“하얀 석유의 효과는 일찍이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부를 빨아올림으로써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설마…….”
초로의 남자는 긴장한 듯한 표정이었다.
“마약인가?”
“그 표현은, 그다지 적절치 않군요.”
--- p.334
제사의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 것. 모두 일을 쉬고 참가할 것. 그리고 제사를 올리는 동안에는 계속 불을 사르며 기도할 것…….
마치 올림픽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초막, 즉 임시 거처 또한 올림픽을 위해 지어지는 시설이라고 봐도 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올림픽이란, 신의 축복을 기도하는 제사인 것이다.
그리고 천사는 이제 곧 날아오른다. 성스러운 땅, 기요스에서…….
어린아이처럼 우쭐해하는 초로의 남자를 보면서 젊은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기요스란 성스러운 땅, 성서의 땅. 그리고 하얀 천사가 태어날 땅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 p.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