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변화 속에서도 드라마의 본질은
매력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진솔한 글쓰기로 귀결된다
“솔직하고 과감하게 써라. 그게 단지 바람직한 예술가의 자세이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덕분에 작품이 별안간 현실성을 띠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가득 채운 드라마들에 압도되어 더 새로운, 더 자극적인, 더 눈길을 끄는 이야기를 쓰려고 머리를 짜내는 작가들이라면, 더글러스의 말에 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패멀라 더글러스는 넷플릭스를 위해 글을 써내는 현대의 작가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수백 년 전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스가 하던 일과 다르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희로애락과 성장의 서사를 진솔하게 엮어내는 일 말이다.
SF에서 휴먼 드라마까지 작가로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한 더글러스는, 이질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조차도 기본적으로 인물 개개인의 욕구와 그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며 ‘인간으로 사는 것의 의미’ 그 자체를 탐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 드라마의 ‘명문가’로 알려진 HBO의 프로그램 편성 부문 사장 마이클 롬바르도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인용한다. “HBO는 훌륭한 글쓰기에서 출발합니다. 거기엔 어떤 속임수도 없어요. 글쓰기에서 출발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많은 소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우리에게 그것(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철학)은 여전히 글쓰기로 귀결됩니다.”
더글러스의 이러한 메시지는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같은, 주류 드라마의 변방 세계에 있는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동일하게 전달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몰두하며 쓰고, 그 진정성과 열정을 타인에게 전할 방법을 찾고, 작중 인물들의 진짜 소망과 목표에 집중하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를 이해한 작가 및 지망생 들을 위해 아주 구체적으로 다음 스텝을 제시한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다양한 단계의 대본을 쓰는 법, 명작 드라마 대본을 분석하는 법, 업계 관계자들 앞에서 피칭하는 법, 스태프 사다리를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며 시스템의 중추에 접근하는 법까지. 더글러스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한 차트 등 본서에 수록된 자료를 보면 왜 이 책이 판을 거듭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 작가를 성장시키며
시리즈의 장기 지속을 가능케 하는 협업 시스템의 힘
패멀라 더글러스는 작가 개인의 가능성에서 더 나아가, 미국 드라마 산업의 시스템이 가진 힘을 강조한다. 세계 도처에 탁월한 스토리텔러들이 있음에도 유독 미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글러스는 그 가장 강력한 비결은 “쇼러너를 중심에 둔 협업 시스템”이라고 단언한다.
미국 드라마 산업에서 쇼러너는 작가이자 프로듀서이며, 관리자이자 교사이기도 하다. 쇼러너를 중심으로 다수의 작가가 서로 아이디어와 의견을 교환하며 집단 집필을 하고, 이것이 입체적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작가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상호작용한다. 특히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씩 이어지기도 하는 시즌제 드라마에서는 작품의 핵심이 되는 철학 위에서 캐릭터들로 하여금 여정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탄탄한 협업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모든 나라가 미국의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 말미에는 패멀라 더글러스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드라마 산업을 탐방한 기록이 담겨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각 나라의 고유한 구조와 문화에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지를 짚어낸다. 중요한 것은 선진 시스템을 그대로 끌어와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배운 것을 각자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키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는 한 가지 정답을 단선적으로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펼쳐 보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도록 안내하며 독려하는 책이다. 드라마 산업에 진입하기를 꿈꾸는 사람이건, 그 안에서 현실과 씨름하며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사람이건, 이 책의 지침들에 집중한다면 저마다 원하는 방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근원에서 실질적인 지식 습득을 통해
수용자 스스로 영감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도레미 인사이트’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는 도레미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이는 예술 총서 ‘도레미 인사이트’의 두 번째 권이다. ‘도레미 인사이트’는 예술 지망생들과 현업 종사자들로 하여금 해당 분야의 근원으로 내려가 가장 본질적 원칙을 고찰하도록 돕고, 실질적인 지식을 제공해 스스로 영감을 포착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취지에 기반하여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에는 한국 드라마 산업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주석을 다수 추가하였다.
도레미엔터테인먼트는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술적 영감과 현실적 지침을 동시에 제공하는 책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도레미 인사이트’가 예술계에 신선한 자양분과 동력이 되고, 현업 종사자들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는 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