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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성찰하다

: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리뷰 총점9.0 리뷰 9건 | 판매지수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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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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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54g | 135*210*20mm
ISBN13 9788967358198
ISBN10 896735819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1964년에 밥 딜런은 ‘시대가 변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시대는 변했다.’ 하지만 시대는 예상했던 방향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_ 서문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유럽을 성찰하다』를 펴냈다. 원제가 ‘세상이 변했다고 말해야 한다Il Faut Dire Que Les Temps Ont Change’인 이 책은 68혁명 이후 이 세계의 변화에 대해 총체적으로 성찰한 진중한 인문에세이다. 특히 오랜 시간 세계 질서를 주도했던 유럽적 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질되고 쇠락했는지, 바뀐 세계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 찾기 질문을 여러 방면으로 담아놓았다. 유럽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자, 포퓰리즘과 극우주의 등 극단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글로벌한 합리성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만하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

제1부 떠나다, 돌아오다

1장 현대의 신화들
1. 싫증내는 청년?
2. 마르크스 혹은 프로이트

2장 잃어버린 환상 1
1. 행복 추구
2. 위험한 일탈

3장 보수 혁명
1. 계몽주의의 배신
2. 콘드라티에프, 내 사랑(잃어버린 환상 2)

제2부 타락한 시대

4장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1. 끔찍한 해, 2016년
2. 역사는 돌고 돈다
3. 고독한 50년(잃어버린 환상 3)

5장 이주민 공포증
1. 야만의 극치(울티미 바르바로룸Ultimi Barnarorum)
2. 포스트모더니즘의 폭력
3. 폭력의 세 번째 시대

제3부 미래로 돌아가기

6장 21세기의 큰 희망
1. 나의 로봇이 나를 사랑하게 될 날
2. 호모 디지털리스
3. 로봇과 악마
4. 가능한 두 세계

7장 아이폰 세대
1. 알고리즘 세계
2. 우리 앞의 생

결론: 딜런에서 딥 마인드까지

저자 소개 (2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첫 번째 트라우마: 68혁명 세대의 좌절

서문에 나오는 코엔의 시대 진단은 좌파와 우파라는 두 이념세력의 공통된 실패를 주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한 세상에서 앞선 시대와도 완전히 낯선 다른 세상으로 건너왔다. 눈부신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던 자리에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자리를 잡았다. 과거의 좌파가 행하던 비판의 메가폰 역할을 포퓰리즘이 이어받았다. 영원한 현재의 공간에 갇혀서 앞날을 생각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 오늘날 청년 세대의 상황이야말로 지난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정신적 외상의 증상이라 할 수 있다.(서문)

코엔이 보기에 50년 전 1968년 5월 혁명은,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처럼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당시 대학가인 라탱 구를 행진하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르주아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문제였다. 하지만 68년 5월 혁명에서는 어떤 이도 처형되지 않았으며 마치 즐거운 파티와 같았다. 프랑스 대혁명에서는 빵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부를 차별없이 ‘거리낌 없이 즐기는 것’이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 파리, 베를린의 신세대들은 단조롭게 되풀이되는 노동과 물질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랑과 로큰롤로 이뤄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이 중단되고 기나긴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1960년대의 열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준비하며 공장에 잠입했던 좌파 청년들에게는 경악스럽게도, 당시 산업은 섬유, 야금, 조선소의 위기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 세대의 열정은 이렇게 무너졌는데, 이것이 지난 50년 동안에 있었던 첫 번째 트라우마일 것이다.

두 번째 트라우마: 보수혁명의 배신

경제 위기는 68혁명의 반대자들에게 역습의 기회를 제공했다. 아일랜드의 토머스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무절제와 악덕’의 사슬을 풀어놓아 젊은 세대들이 ‘지혜와 미덕’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보수주의자들도 같은 실수를 범했다. 68혁명 세대들이 ‘금지를 금하기를’ 원했지만,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모든 사회는 규칙과 금지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불가능을 요구하기’를 원했지만, 인간 조건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68혁명에 대한 비판은 ‘무력감과 쾌락주의와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을 한시바삐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쾌락 원칙에대한 현실 원칙의 설욕으로 보였다. 레이건은 경제가 아닌 도덕적 혁명의 기수였다. 하지만 레이건은 68혁명 세대만큼이나 순진한 환상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도덕성 회복을 통해서 자본주의는 자동 조절되리라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당선 이후 실제로 실현된 것은, 아무런 절제도 없는 가운데 터져나온 부의 불평등과 탐욕의 승리였을 뿐이다. 보수주의 혁명의 이 배반은 우리 시대가 겪은 두 번째로 큰 헛된 기대와 착각이었다.

포퓰리즘, 이 시대의 또다른 환상

196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한 것은 인간 욕망의 양극단 사이에서 이뤄진 진부한 왕복운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 욕망의 양극단은 보들레르가 ‘이 세상 밖 어디든지’라고 불렀던, ‘스스로에게서 해방되어 멀리 떠나고자 하는 마음’과, 이 역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2 지난 반세기 동안의 변화는 이처럼 깊이 왜곡된 대립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전통에 대한 찬사는 타인 기피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변했고, 기존 질서에 대한 즐거운 이의 제기는 경쟁적인 개인주의 속에 쓰러져 있다. 해방과 전통이 대립하는 이 현장에서 우리는 승자와 패자의 커다란 분열을 목격했다. 관습에서 해방되어 자율적인 존재가 된 승자와, 전통이 제공해주지 않는 보호책을 전통에서 찾고 있는 패자가 그것이다.

지금의 포퓰리즘은 바로 이런 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산업사회가 제공해주던 지표를 잃어버리고 끝없는 모험을 펼친 끝에 민중은, 지나친 도덕적 관용주의라며 좌파를 비난하는 한편, 부자가 될 생각만 한다고 우파를 비난하면서 저항하고 있다. “좌파는 서민을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위기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도덕 회복 정책으로 선출된 우파는 서민들을 탐욕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104쪽) 마침내 민중은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자유주의의 종말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노동계급이 포퓰리즘 정당으로 넘어간 것은 68세대의 희망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유럽 포퓰리즘은 그들이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라 주장하는 두 계층, 즉 위로는 사회 엘리트와 아래로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응집시킨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운동에는 엘리트 혐오라는 위를 향한 증오, 즉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는 급진 좌파 성향은 있었지만, 외국인 혐오라는 두 번째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우파에 뒤졌다. 스웨덴의 ‘민주당’, 덴마크의 ‘인민당’,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당’, 오스트리아 ‘자유당FPO’, 그리스의 ‘금빛 새벽당’, 이탈리아의 ‘북부 리그당’은 모두 외국인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민족전선’도 마찬가지다. 좌파보다 더 급진적인 경제 정책과 우파보다 더 급진적인 도덕 정책으로 세계화에서 낙오되고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지지가 파국 이외에 무엇을 이뤄낼 것인가. 코엔은 “포퓰리즘 부상이 빚은 두 번째로 끔찍한 사건은 2016년 10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110쪽)라고 한탄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 번째 환상”이다.

후기산업사회의 마지막 모색도 결국 실패

그렇다면 연속으로 나타나는 이런 위기와 단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시대가 소리 없이 보여주는 현상들은 과연 어떤 병일까? 그 대답은 산업세계라는 문명의 붕괴와 더 이상 후계자를 찾기 힘든 진보 사회의 커다란 어려움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대를 부르는 ‘후기산업사회’라는 명칭이 많은 오해를 낳는 것 같다. 후기산업사회를 두고 좌파는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으로, 우파는 노동 가치라는 기본 가치로 복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두 시각 모두 틀렸다. 후기산업사회의 참된 의미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최근 들어 걷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엔은 산업사회를 지나오면서 생겨났던 환상,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9년에 발간된 장 푸라스티에의 중요한 저서 『20세기의 큰 희망』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경제학자에 따르면,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산업사회에서는 물질을 가공했다. 그런데 이제 많은 시간을 물건보다는 건강이나 교육, 여가와 같이 사람에게 쏟는 이 새로운 사회의 희망은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이었다. 인간화의 길을 걷던 경제학의 이런 염원은 그러나 배반당하고 만다.

푸라스티에는 오늘날 사회의 불굴의 성장 욕구를 과소평가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서비스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 있을 수 없다. 전자의 소득이 후자의 소득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다. 유치원 교사나 간병인 같은 인적 서비스는 새로운 세상의 깃발이라기보다는 아주 낮은 임금의 영역에 맡겨져 있던 것들일 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동했듯이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1950~1960년대 산업사회에서처럼 더 이상 15년마다 소득이 2배로 오를 수는 없게 되었다. 구매력 상승이 가능하려면 연극 무대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감으로써 관객의 숫자를 대폭 증가시키는 연극배우처럼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디지털 사회는 산업사회 상처의 치료약인가?

탈산업사회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명칭인 ‘디지털 사회’라는 제대로 된 길을 이제는 찾은 것 같다. 규모의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정보가 취급할 수 있는 정보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이 강제로 거대한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 사전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있으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무한대의 고객을 돌보고 배려하고 충고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미래를 예고하는 영화 「그녀Her」에는 ‘감정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한꺼번에 수백만 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 즉 호모 디지털리스가 예고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때 우리의 의문은 치료약이 병보다 나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냐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면서 근심거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플랫폼 위에서 이뤄지는 컨베이어벨트 식의 연쇄노동이 사람에 대한 테일러주의 시스템 관리로 변하지는 않을까? 산업사회의 해묵은 문제가 이를 대체한 사회 한가운데에서 시간의 엄청난 굴절로 인해 다시 제기되는 중이다. 도덕 붕괴나 금융 위기와 같은 그 모든 단계를 다시 밟아야 할까? 우리는 그때보다 잘 할 수 있을까? 그 의미를 잘못 알지 않았다면 역사는 지금 쓰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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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성찰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k*******2 | 2020.10.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4위 러시아, 스페인 6위, 프랑스 7위,영국 11위, 이탈리아 15위.이 순위는 2020년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상위권에 랭크된 유럽의 대표적인 나라들이다.이들 이외에 독일,벨기에,체코, 네덜란드 등이 있으며,그들은 유럽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들과 엮이고 있었다.전세계가 매우고,본받아야 하는 모범적인 유로사회가 이제는 고쳐야 할, 이기적이고, 배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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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러시아, 스페인 6위, 프랑스 7위,영국 11위, 이탈리아 15위.
이 순위는 2020년 전세계 코로나 바이러스 상위권에 랭크된 유럽의 대표적인 나라들이다.이들 이외에 독일,벨기에,체코, 네덜란드 등이 있으며,그들은 유럽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들과 엮이고 있었다.전세계가 매우고,본받아야 하는 모범적인 유로사회가 이제는 고쳐야 할, 이기적이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 유럽 사회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위기의 본질,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 중심주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시작은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이다. 더 나아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럽 사회의 통합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총집합된 나쁜 선례였다.


즉 이런 것이다. 유럽은 68 혁명이후,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현실이 되었다.프랑스 혁명이후 ,두번째 맞이하는 유럽사회의 대격변,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미국 뿐 아니라 유럽사회를 강타하게 되었으며,마르크스주의자들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인식제고가 있었다.그 과정에서 포퓰리즘이 전셰계주요국가에 실험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콜롬비아, 방글라데시,베네수엘라가 포퓰리즘의 허구와 실제를 볼 수 있는 하나의 표본지표가 되었다. 저자는 1968년 보았던 68 혁명,그리고 그 이전이었던 1918년이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였다. 지금 우리는 1968년에서 50년이 더해진 2018년 이후를 살아가고 있으며,앞으로 50년 뒤인 2068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성찰하지 않으면,사회적인 모순,사회적인 위기가 도래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나 예방이 힘들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를 양산하는 공장 역할을 해왔던 유럽사회의 문제점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차후 우리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즉 2020년 유럽사회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분석하고,그안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노력들을 아끼지 않아야 할 때이다. 더 나아가 유럽 중심주의, 미국중심주의의 맹점과 허구의 실체에 접근할 때,그 과저에서 우리는 사회적 오류를 바로 잡아갈 수 있다. 1918년에 보여주었던 외국인 혐오증,그리고,1968년,2018년에도 여전히 외국인혐오증이 유럽사회에 현존할 것이며,앞으로 미래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였다.더 나은 유럽사회,위기를 극복하고,사회적인 회복을 할 수 있는 유럽사회의 중요성을 다시한 번 제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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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유럽을 성찰하다]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 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도*비 | 2020.10.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지금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시련의 시대를 맞았다. 시리아 등 난민들이 몰려오고, 이들과의 적대적 관계가 된 일부 극우 세력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방역을 위해 국경 폐쇄까지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국가의 음모'라고 반발하고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 각국의 정부는 방역 활동과 방역 조치 완화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과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함으로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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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시련의 시대를 맞았다. 시리아 등 난민들이 몰려오고, 이들과의 적대적 관계가 된 일부 극우 세력은 코로나 재확산으로 방역을 위해 국경 폐쇄까지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국가의 음모'라고 반발하고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 각국의 정부는 방역 활동과 방역 조치 완화를 주장하는 일부 시민과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함으로써 이중고를 겪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EU로 통합을 이룬 유럽은 영국의 EU 탈퇴로 자중지란의 상태에 놓였는데도 이렇다 할 뾰족한 수를 못 찾고 눈앞에 닥친 코로나 방역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968년 '68혁명' 이후 사회 변혁 주도세력이 퇴보하는 현상이라는 진단도 나와 전 세계 질서의 변혁을 예측하기도 한다. 68혁명이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을 일컬으며 '5월혁명'이라고도 한다. 1968년 3월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파리 사무실을 습격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되자 그 해 5월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이어지면서 발생하였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겹치면서 프랑스 전역에 권위주의와 보수체제 등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학교와 직장에서의 평등, 미국의 반전, 히피운동 등 사회전반의 문제로 확산됐다. 시위대는 정부가 대학교육문제와 유럽공동체 체제하에서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68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독일 등 국제적으로 번져나갔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유럽을 성찰하다』를 펴냈다. 원제가 ‘세상이 변했다고 말해야 한다(Faut Dire Que Les Temps Ont Change’인 이 책은 68혁명 이후 이 세계의 변화에 대해 총체적으로 성찰한 진중한 인문에세이다.

특히 오랜 시간 세계 질서를 주도했던 유럽적 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질되고 쇠락했는지, 바뀐 세계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 찾기 질문을 여러 방면으로 담았다. 유럽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자, 포퓰리즘과 극우주의 등 극단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글로벌한 합리성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만하다.

“1964년에 밥 딜런은 ‘시대가 변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시대는 변했다.’ 하지만 시대는 예상했던 방향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서문에 나오는 코엔의 시대 진단은 좌파와 우파라는 두 이념세력의 공통된 실패를 주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한 세상에서 앞선 시대와도 완전히 낯선 다른 세상으로 건너왔다. 눈부신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던 자리에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자리를 잡았다. 과거의 좌파가 행하던 비판의 메가폰 역할을 포퓰리즘이 이어받았다. 영원한 현재의 공간에 갇혀서 앞날을 생각하기가 너무나 어렵게 된 오늘날 청년 세대의 상황이야말로 지난 반세기 동안 쌓여온 정신적 외상의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짧은 기간 민주주의와 산업 발전을 이룬 우리에게도 곧 닥칠 문제여서 주목할 만하다.





코엔이 보기에 50년 전 1968년 5월 혁명은,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처럼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당시 대학가인 라탱 구를 행진하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르주아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문제였다. 하지만 68년 5월 혁명에서는 어떤 이도 처형되지 않았으며 마치 즐거운 파티와 같았다. 프랑스 대혁명에서는 빵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부를 차별없이 ‘거리낌 없이 즐기는 것’이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 파리, 베를린의 신세대들은 단조롭게 되풀이되는 노동과 물질의 문제에서 벗어나 사랑과 로큰롤로 이뤄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7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이 중단되고 기나긴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1960년대의 열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준비하며 공장에 잠입했던 좌파 청년들에게는 경악스럽게도, 당시 산업은 섬유, 야금, 조선소의 위기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 세대의 열정은 이렇게 무너졌는데, 이것이 지난 50년 동안에 있었던 첫 번째 트라우마로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 위기는 68혁명의 반대자들에게 역습의 기회를 제공했다. 아일랜드의 토머스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무절제와 악덕’의 사슬을 풀어놓아 젊은 세대들이 ‘지혜와 미덕’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보수주의자들도 같은 실수를 범했다.

68혁명 세대들이 ‘금지를 금하기를’ 원했지만,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모든 사회는 규칙과 금지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불가능을 요구하기’를 원했지만, 인간 조건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68혁명에 대한 비판은 ‘무력감과 쾌락주의와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을 한시바삐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쾌락 원칙에대한 현실 원칙의 설욕으로 보였다. 레이건은 경제가 아닌 도덕적 혁명의 기수였다.

하지만 레이건은 68혁명 세대만큼이나 순진한 환상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도덕성 회복을 통해서 자본주의는 자동 조절되리라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당선 이후 실제로 실현된 것은, 아무런 절제도 없는 가운데 터져나온 부의 불평등과 탐욕의 승리였을 뿐이다. 보수주의 혁명의 이 배반은 우리 시대가 겪은 두 번째로 큰 헛된 기대와 착각이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한 것은 인간 욕망의 양극단 사이에서 이뤄진 진부한 왕복운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 욕망의 양극단은 보들레르가 ‘이 세상 밖 어디든지’라고 불렀던, ‘스스로에게서 해방되어 멀리 떠나고자 하는 마음’과, 이 역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2 지난 반세기 동안의 변화는 이처럼 깊이 왜곡된 대립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전통에 대한 찬사는 타인 기피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변했고, 기존 질서에 대한 즐거운 이의 제기는 경쟁적인 개인주의 속에 쓰러져 있다. 해방과 전통이 대립하는 이 현장에서 우리는 승자와 패자의 커다란 분열을 목격했다. 관습에서 해방되어 자율적인 존재가 된 승자와, 전통이 제공해주지 않는 보호책을 전통에서 찾고 있는 패자가 그것이다.

지금의 포퓰리즘은 바로 이런 위기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산업사회가 제공해주던 지표를 잃어버리고 끝없는 모험을 펼친 끝에 민중은, 지나친 도덕적 관용주의라며 좌파를 비난하는 한편, 부자가 될 생각만 한다고 우파를 비난하면서 저항하고 있다. “좌파는 서민을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위기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도덕 회복 정책으로 선출된 우파는 서민들을 탐욕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104p)

마침내 민중은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자유주의의 종말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노동계급이 포퓰리즘 정당으로 넘어간 것은 68세대의 희망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포퓰리즘은 그들이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라 주장하는 두 계층, 즉 위로는 사회 엘리트와 아래로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응집시킨다.

저자에 분석에 따르면 이탈리아 포퓰리즘 운동에는 엘리트 혐오라는 위를 향한 증오, 즉 첫 번째 요구를 만족시키는 급진 좌파 성향은 있었지만, 외국인 혐오라는 두 번째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우파에 뒤졌다. 스웨덴의 ‘민주당’, 덴마크의 ‘인민당’,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당’, 오스트리아 ‘자유당FPO’, 그리스의 ‘금빛 새벽당’, 이탈리아의 ‘북부 리그당’은 모두 외국인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민족전선’도 마찬가지다. 좌파보다 더 급진적인 경제 정책과 우파보다 더 급진적인 도덕 정책으로 세계화에서 낙오되고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그러한 지지가 파국 이외에 무엇을 이뤄낼 것인가.

코엔은 “포퓰리즘 부상이 빚은 두 번째로 끔찍한 사건은 2016년 10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110p)라고 한탄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 번째 환상”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연속으로 나타나는 이런 위기와 단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시대가 소리 없이 보여주는 현상들은 과연 어떤 병일까? 그 대답은 산업세계라는 문명의 붕괴와 더 이상 후계자를 찾기 힘든 진보 사회의 커다란 어려움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대를 부르는 ‘후기산업사회’라는 명칭이 많은 오해를 낳는 것 같다. 후기산업사회를 두고 좌파는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으로, 우파는 노동 가치라는 기본 가치로 복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두 시각 모두 틀렸다. 후기산업사회의 참된 의미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최근 들어 걷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코엔은 산업사회를 지나오면서 생겨났던 환상,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9년에 발간된 장 푸라스티에의 중요한 저서 『20세기의 큰 희망』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경제학자에 따르면,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산업사회에서는 물질을 가공했다.

그런데 이제 많은 시간을 물건보다는 건강이나 교육, 여가와 같이 사람에게 쏟는 이 새로운 사회의 희망은 인간이 인간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이었다. 인간화의 길을 걷던 경제학의 이런 염원은 그러나 배반당하고 만다.




푸라스티에는 오늘날 사회의 불굴의 성장 욕구를 과소평가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서비스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 있을 수 없다. 전자의 소득이 후자의 소득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다. 유치원 교사나 간병인 같은 인적 서비스는 새로운 세상의 깃발이라기보다는 아주 낮은 임금의 영역에 맡겨져 있던 것들일 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동했듯이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1950~1960년대 산업사회에서처럼 더 이상 15년마다 소득이 2배로 오를 수는 없게 되었다. 구매력 상승이 가능하려면 연극 무대에서 텔레비전으로 옮겨감으로써 관객의 숫자를 대폭 증가시키는 연극배우처럼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탈산업사회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명칭인 ‘디지털 사회’라는 제대로 된 길을 이제는 찾은 것 같다. 규모의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정보가 취급할 수 있는 정보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이 강제로 거대한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 사전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있으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무한대의 고객을 돌보고 배려하고 충고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미래를 예고하는 영화 「그녀Her」에는 ‘감정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한꺼번에 수백만 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 즉 호모 디지털리스가 예고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이때 우리의 의문은 치료약이 병보다 나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하냐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면서 근심거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플랫폼 위에서 이뤄지는 컨베이어벨트 식의 연쇄노동이 사람에 대한 테일러주의 시스템 관리로 변하지는 않을까? 산업사회의 해묵은 문제가 이를 대체한 사회 한가운데에서 시간의 엄청난 굴절로 인해 다시 제기되는 중이다. 도덕 붕괴나 금융 위기와 같은 그 모든 단계를 다시 밟아야 할까? 우리는 그때보다 잘 할 수 있을까? 그 의미를 잘못 알지 않았다면 역사는 지금 쓰이는 중이다.

저자 코엔의 진단과 평가, 대안은 마치 대한민국에 곧 닥칠 문제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분석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우리가 21세기 들어 겪었거나,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해 부응해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이 책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저자 : 다니엘 코엔(DANIEL COHEN)


오늘날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학자.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파리1대학, 파리경제대학, 파리고등사범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저서를 통해 경제 현상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고 바람직한 경제 정책에 대한 사회적 발언도 활발히 하고 있다. 경제학자로서 개발도상국 경제에 중심 관심을 두고 특히 개발도상국의 부채 및 성장 문제에 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해왔다. 시장방임주의적 담론에 비판적이며 스스로를 실용적 경제학자로 규정하는 코엔은 프랑스 정부와 국제기구의 정책 수립에도 적극 관여해왔다. 『악의 번영』은 2009년 초 출간되어 프랑스 아마존 종합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프랑스 총리 지원 기관인 경제분석위원회 위원과 OECD 개발센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르몽드』 편집위원이다. 대표적인 저서로 『화폐, 부, 부채』 『세계화와 그 적들』 『악의 번영』 『호모 이코노미쿠스』 『출구 없는 세계』 등이 있다.


역자 : 김진식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울산대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비판』(2005), 『알베르 카뮈와 통일성의 미학』(2005), 『세계 프랑스어권 지역의 이해』(2009), 『르네 지라르』(2018), 『모방이론으로 본 시장경제』(2020) 등이 있다. 역서로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공역, 1993), 『희생양』(1998),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2004), 『문화의 기원』(2006),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2007), 장-미셸 우구를리앙의 『욕망의 탄생』(2018)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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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유럽을 성찰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m**********m | 2020.10.2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우리는 현대사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뤘으며 또 다른 관점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과 현실적인 요소를 감안한 다양한 정책, 사회변화를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을 이뤄 왔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며 세계가 갖는 공통적인 요소로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세상은 서구 중심적인 사고, 그들의 이념이나 정치제도,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등 우리가 보편적;
리뷰제목

 

 

우리는 현대사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뤘으며 또 다른 관점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분과 현실적인 요소를 감안한 다양한 정책, 사회변화를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을 이뤄 왔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며 세계가 갖는 공통적인 요소로 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세상은 서구 중심적인 사고, 그들의 이념이나 정치제도,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등 우리가 보편적으로 여기며 당연시 하는 가치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우월성을 답습하며 경제성장이나 발전, 번영적 요소를 경험해 왔다.

 

하지만 모든 자원에는 한계적 요소가 존재하듯이 경제성장과 발전에도 선진국들이 갖는 장점이 사라지며 신흥국들의 엄청난 추격과 지나친 다극화 사회, 경쟁적 요소로 인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모여서 만든 정치라는 결과물이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거나 또 다른 혐오와 차별, 차이를 양산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극우주의의 등장이나 민족주의의 유행, 유럽 중심의 사고가 무너지며 그들이 갖는 내재적 불만이나 후발국이나 주자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속내나 심리적 요소가 매우 위험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경제라는 대립이나 경쟁을 통해 지역분쟁이나 패권경쟁 등으로 이어지며 자칫 극단적 상황을 통해 또 다른 인류의 재앙,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기에 우리는 이들의 정치나 사회모습에도 관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는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책을 통해 유럽이라는 지역 단위가 어떻게 저런 블록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했으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만이 무엇이길래 이런 니즈를 풀어주거나 악용하기 위한 그들의 정치인이 등장하는지, 갈수록 심해지는 포퓰리즘 현상이나 극우세력이나 정당의 성장세를 주목해야 한다.

 

극단주의자들이 선동하는 순간, 한 지역이나 국가 단위가 몰락하거나 또 다른 위험세력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바로 세계대전이 그랬고, 역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비슷한 패턴적 모습인 지도 모른다. 유럽을 성찰하다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미래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의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방안은 없는지,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여러 주체들 간의 대화와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책을 통해 그들이 만든 제도속에서 느끼는 또 다른 불안감과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는 기준이나 관점이 무엇인지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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