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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조금 불편한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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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16g | 135*205*20mm
ISBN13 9791162181164
ISBN10 116218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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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용서는 선물이다. 베푸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관용의 미덕에,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겸양의 미덕에 의지하는 행위가 용서다. 비범하고 장엄하며, 거의 신적이라 부를 만한 행위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만난다. 여성 신학자 베아테 바인가르트(Beate Weingardt)는 이 행위를 진정으로 ‘창조적인 일’이라 말한다. 용서라는 말에 담긴 ‘포기의 부정성’이 ‘선물의 긍정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인가르트는 용서의 “도덕적 무게가 더 무거운”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 p.18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침묵한다. 용서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동기를 이해하고 자신이 그 입장이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p.21~22

얀겔레비치 역시 아렌트처럼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용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나아가 그는 애당초 용서의 가능성을 고민하려면 죄인의 참회가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없지 않은 조건이다. 과연 참회는 언제 진실한가? 참회를 하는 것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 p.24

용서가 현실적일 수 있으려면, 용서의 개념이 애당초 배제시킨 그 조건들을 통해 용서의 순수성이 ‘더럽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조건적일 때만 용서는 현실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성을 잊지 않고 용서의 순수성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데리다의 도전이다. “은혜롭고 무한하며 비경제적인 ‘무조건적인’ 용서”라는 유토피아적 요구와 “범죄를 인정하고, 명백히 용서를 구하는 죄인의 참회와 변화를 보고 판단한 조건적 용서"의 근본적인 긴장이 용서에 스며드는 것이다.
--- p.28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용서란 망각한다는 뜻일까?’는 개인적인 의미에서도, 정치적인 의미에서도 종지부를 찍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흔히들 ‘용서와 망각’이라는 말을 묶어서 많이 한다. 하지만 마음 깊이 상처를 입은 사람이 과연 다 잊어버릴 수 있을까? 정말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상처가 다 아물까? 정치적으로 망각의 문제는 사면이라는 불협화음 많은 규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망각을 통해 평화가 구축될 수 있을까? ‘기억하지 않기’를 명령할 수 있는 것일까?
--- p.30~31

“용서한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이 더 이상 나의 존재를 무너뜨릴 정도로 상처를 내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그녀는 무방비 상태였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객체였다. 하지만 용서할 수 있는 힘은 그녀의 강함을, 그녀의 행동 권력을, 주체의 위치를 입증한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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