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었다. (주-군바현/群馬縣과 니이가다현/新瀉縣의 접경지역인 기요미즈/淸水 터널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은 니이가다현의 온천이 주무대이다.)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 신호소 앞에서 기차가 멎었다.
발단부
은하수가 아래로 드리워지는 어두운 산 쪽으로 고마코는 달려가고 있었다. 옷자락을 걷어 올렸는지 팔을 흔들 때마다 빨간 속옷자락이 별빛이 밝게 내리비치는 눈 위에 펄럭거렸다. 시마무라는 단숨에 쫓아갔다. 고마코는 발걸음을 늦추더니 옷자락을 놓고 시마무라의 손을 잡았다.
'가시겠어요, 당신도?'
'그래.'
'호기심도 많으시네.'
고마코는 눈 위에 질질 끌리는 옷자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놀림을 당할 테니까 돌아가세요.'
'알았어. 하지만 거기까지만이라도.'
'거북하잖아요. 불난 곳까지 당신을 끌고 가면 마을 사람들이 흉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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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실을 뽑고, 눈 속에서 옷감을 짜며, 눈으로 씻고, 눈 위에서 바래고, 하여간에 실 뽑는 데서부터 옷감을 다 짜기까지 모두 눈 속에서 하였다. '눈 있고 지지미있나니, 눈은 지지미의 어미'라고 옛사람도 책에 쓴 일이 있다.
눈에 갇힌 기나긴 겨울 동안에 마을 여자들은 길쌈을 했다. 눈나라의 삼(麻) 지지미를 시마무라도 애호하고 있어서 헌 옷집을 뒤져서 여름 옷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춤의 연고로 노(能)의상의 헌옷을 파는 가게도 알고 있어서 질이 좋은 지지미가 나오거든 언제든지 보여 달라고 부탁할 만큼 지지미를 좋아하여 홀겹의 속옷으로 입기도 했다.
방설용 발을 걷어 올리고 눈이 녹는 봄철이 되면 옛날엔 지지미의 첫 장(初市)이 섰다고 한다. 멀리서 지지미를 사러 오는 삼도(에도시대에는 교토, 에도, 오사카를 가리켰음)의 포목상들이 묵는 단골 여관까지 있었다고 한다.
처녀들이 반 년 동안이나 정성을 다하여 길쌈하던 것도 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원근 마을의 남녀들이 모여들고 장사치들이 늘어서서 마치 도회지의 명절처럼 붐볐다고 한다. 지지미에는 길쌈한 사람의 이름과 장소를 적은 쪽지를 붙여 그 솜씨를 1등, 2등 하는 식으로 등급을 매겼다. 그것이 며느리 선택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길쌈을 익혀 온 15, 6 세부터 24, 5 세까지 젊은 여자가 아니면, 질이 좋은 지지미를 짜내지 못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 짜내는 천에 윤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처녀들은 손꼽히는 직녀가 되려고 열심히 기술을 연마했을 것이다. 음력 10월부터 실을 뽑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 중순쯤에는 바램을 끝냈다. 이 일은 따로 할 일이 없는 눈 내리는 겨울 동안의 수공업이었기 때문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제품에도 자연 애착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었다.
--- pp.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