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무도 없는 집, 아이를 기다려 준 건 무엇이었을까?
이불 속에 묻어 놓은 따끈한 밥주발?
밥상보 위에 놓인 엄마의 쪽지?
냄비 속 아직도 따뜻한 삶은 옥수수?...
어떤 음식은 우리를 특별한 시간으로 데려가 줍니다.
《토마토》를 펼치고, 어린 나를 위로해 준 유년의 양식을 떠올려 보세요.
여름 한낮,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대문을 열기 전, “엄마~!” 하고 불러봅니다. 곧바로 문을 열고 쾅! 거칠게 닫은 걸 보면, 이미 아이는 엄마가 집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 그래도 아이는 방이며 부엌문을 하나하나 열어 봅니다. 역시나 오늘도 엄마는 없습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열어 보니 토마토는 있습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 큼직한 걸로 하나 꺼내어 아~ 흡! 한 입 크게 베어 뭅니다. 상큼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 순간, 아이의 마음은 토마토가 여물어가는 밭가로 왔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도 거기 함께 있네요. 시설이나 규모로 보아 아마도 밭은 작은 텃밭 같습니다. 가장자리에 서 있는 옥수수 꽃이 막 피어나고 있는 걸 보면, 이제 막 빨개진 토마토를 첫 수확하는 날인 듯해요. 온 가족이 잠시 앉아 쉬며 한 입씩 베어 물고 웃고 있습니다.
토마토라도 웃으며 반겨 준다면...
‘나는 토마토가 좋다.’ 그 기억이 아이는 무척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아졌나 봐요. ‘토마토를 먹고 나니’ 마당에 꽃이 피었다네요. 수국이며 접시꽃,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 실은 내동 피어 있었을 텐데. 그제야 바람이 분대요. 실은 빨랫줄에 널어놓은 마른 빨래가 내동 팔락이고 있었을 텐데. 나무가 손을 흔들어 준대요. 실은 바람에 이파리가 흔들리는 건데. 파란 하늘의 구름은 토마토를 닮아가고, 아이는 어느새 구름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습니다. 지저귀는 새소리, 예쁘게 들립니다. ‘나는 오늘도 토마토를 먹었’으니까요.
아이는 자란다, ‘토마토’를 먹으며.
문득 궁금해집니다. 엄마는 왜 ‘오늘도’ 집에 없는 걸까? 아빠는? 할머니는? 이야기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공장일지 면사무소일지 밭일지, 다들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 있을 수 있겠지요. 혹 엄마든 아빠든, 아니면 둘 다든 어디 먼 데로 돈 벌러 갔는지도 모릅니다. 아, 이건 참 불행한 경우이겠습니다만, 어쩌면 세 어른 중 한둘이 이 세상에 안 계실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경우든, 그러나 토마토는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냉장고 안에서 신선하게 웃으며 아이를 맞아주었습니다. 그 토마토를 먹고 아이는 웃었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일지 내년 여름 또 기대되는 시간일지 모르겠으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빈 집 마루에 누워 잔잔한 행복에 잠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가 뛰어놀았을
까요, 집에서 숙제를 하고 동화책을 읽었을까요. 아이는 긴긴 여름 한낮을 나름대로 씩씩하게 보냈을 겁니다. 지금 곁에 있어 줄 수는 없지만,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해 줄 그 무엇. 그것을 어른들이 챙겨 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자라겠지요. 냉장고 속 토마토든, 이불 속 밥주발이든, 정성껏 적어 조촐한 밥상보에 얹어 둔 작은 메모든... “그러니 너무 쓸쓸해하지 말아요, 그러니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아요.” 《토마토》가 발갛게 웃으며 건네는 말인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