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3년 08월 0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65g | 140*200*20mm |
ISBN13 | 9788993928655 |
ISBN10 | 8993928657 |
출간일 | 2013년 08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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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65g | 140*200*20mm |
ISBN13 | 9788993928655 |
ISBN10 | 8993928657 |
『보통의 존재』 이석원의 첫번째 장편소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평생을 반대 방향으로 달려온 한 남자의 이야기 사 년 전, 서른여덟의 작가 이석원은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통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한 인간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가 꺼내놓은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외로움과 심연을 맞이했고, 그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와 같음을 느꼈다. 그렇게 ‘보통의 존재’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던 작가 이석원이 사 년 만에 장편소설 『실내인간』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실연의 상처를 간직한 채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간 용우가 앞집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호기심 많고 활달하면서도 한편으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용우는 매사에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를 친형처럼 따르게 되는데 실내인간은 바로 용우가 만난 사내 김용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용우의 시선을 통해 본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삶을 통해 자신이 쌓은 탑에 갇혀버린 한 존재의 허망한 모습을 속도감 있는 서사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소설 『실내인간』은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소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옳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또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착각인지를, 그리고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를. |
워리의 사형식 아침 이사 옥상 첫 밤 교활한 노인네 새 집 새 생활 친구 발명가 제롬 카페 루카 질문 초대 크리스마스 모임 해프닝 개 살해 사건 작은 눈 두번째 만남 2인조 혼란 방세옥 음모 재회 봉투 비망록 인터뷰 곽소영 용휘의 사생활 아이들과의 전쟁 소영과 술을 마시다 실내인간 낙엽 사재기 톰과 제리 제안 소영의 이야기 고라니 거부 가짜 권순원의 꿈 폐허 소문 사고 결심 재규어 권과 용 거짓말쟁이 혹은 정신병자 혹은 몽상가 소원 초대 용휘네 집 용휘의 일생 해바라기 마지막 순간 누가 꽃밭을 흔들어놓았나 용휘의 사형식 꿈 Au revoir 마지막 질문 |
어찌 어찌 작가 이석원의 지금까지 나온 책을 모두 읽었다.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요즘 열심히 읽고 있다니 왕자 오라버니가 "니가?" 라는 대단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의외다. 정유정, 김언수, 백민석, 배수아 이 후 한국작가 책을 전작으로 읽어 버린 작가가 또 생겨 버리다니. 이 분이 한 꼭지씩 맡아 쓴 다른 책들도 있던데 그건 열외라고 하자.
아주 오래 전에 왕자오라버니가 내게 너는 왜 한국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럼 오라버니는 그리 흉을 보면서 왜 그리도 한국작가의 책을 열심히 읽느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 오라버니가 의리를 빙자한 이로저로한 이야기들과 경험들을 이야기 하다가 말미에 한국인으로서의 정서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답을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케케묵은 손 편지가 들어 있던 오래 된 책들을 우루루 선물로 보내 준 적도 있었지.
Anyway. 사우스파크를 보면서(요즘 넥플릭스에 사우스파크가 풀려서 매우 기쁘다! 이런 드럽고 되바라진 놈들! 반갑다!)거기 나오는 쌍욕들을 본문 그대로 깔깔 거리면서 줄줄 외던 내게(아! 이거 좀 이상한가....) 그 설명은 사실 그닥 설득력이 있거나 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얼마 전 부터 저 정서적 동질감이라는 말이 꽤나 설득력있게 다가오길 시작했다.' 기실 생각해 보면 이언뱅크스 보단 백민석이, 스티븐킹 보단 정유정(특이 28일!)이, 딘쿤츠 보단 김언수가, 세다리스 보단 이 이석원이라는 작가의 문장들이 더 맘에 꼭 들더라는 말이다.
아무래도 한 뼘 더 늙은 모양이다. 왜 우리나라에서 이민자에게 복수국적을 만 65세 부터 인정을 하는지... 알거 같은 이 기분...
ANN의 권유로 시작 된 이 작가의 책을 읽은 순서는 보통의 존재 ->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 언제들어도 좋은 말 -> 실내인간 순이다.
실내인간을 너무 마지막에 읽은 탓에 실내인간 이라는 소설 자체에 집중하기가 처음엔 조금 버거웠다. 앞선 세 책들로 인해 작가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책에 그려낸 그의 인간상과 책에서 조곤조곤 이야기 해주던 그의 습성들을 책 내 주인공들에게 너무나 골고루 나눠 주고 있어서 말이다. 마치 서유기의 손오공이 분신술을 부린것 처럼 작가 이석원이 분신술을 부려 이 놈 에겐 이 모습을, 저 놈 에겐 저 모습을, 이런식으로 골고루 나눠주고 이를 극대화 시켜서 한 편의 파티를 열어 준 느낌이랄까? 주인공은 애인과 헤어진 궁상맞은 이석원, 방세옥은 책을 잘 읽지 못하면서 책을 쓰고, 책을 사는 행위에 몰두하는 이석원, 제롬은 이것 저것 호기심 많은 따지기 좋아하는 이석원, 심지어 너무나 해 맑은 멍멍이 워리. 이 해맑은 녀석의 이름이 걱정이 란다. 아.. 이 이미지들을 무시하느냐고 초반에 퍽이나 애를 써야 했다.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로 오롯이 즐기는 것을 소설 읽기의 주요한 목표로 생각하는 내게 이런 성가신 그림자들이란~ 이런이런~ 당황스러움.
기실 내가 작가 이석원을 알아야 뭘 알겠는가? 어쨋든 아니 에르노의 말을 빌리자면 어차피 작가 이석원이 글을 쓴 시점과 내가 그 글을 읽은 시점 자체의 괴리감이 무척이나 클 것이고 그의 글에 표현된 그가 글로서 가공된 글 속의 이석원일 텐데 그것이 과연 그 라고 나는 어찌 단정 할 수 있단 말 인가 말이다.
보이스 문학의 선두주자 라고 불리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들도 나올 때 마다 편향 됬다는 둥 주관적이라는 둥 오만가지 비판의 소리들이 들려 오는 걸 보면, 글로서 누군가를 존재 하게 한다는 건 바로 그런거라고 생각하니까.
어차피 나라는 사람 자체가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걸 알면서도 아 이 부분은 어느 책에 있던 문장이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초반에 책에 집중을 못하는 바람에 퍽이나 당황 스러움이 스멀거려서 초반 70여 페이지 정도를 책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 했었다.
어쨋든 초반 인물 소개가 끝나고 그림자들을 훠이훠이 물리 친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개인 적으로 실내인간이 언제들어도 좋은말 보다 좋았다. 이야기 자체가 더욱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언제들어도~ 이 책을 여전히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여러 이유로.
방세옥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잉? 황비홍의 그 방세옥? 하면서 혼자 낄낄 때면서 아주 재미나게 몰두한 경우랄까? 이 분의 연륜이 묻어나는 이 작명센스~ 크크크 이랬다는. 책이 팔린 것만 봐도(재판 수가 어마어마해서 깜짝 놀랐다.) 언제들어도~ 가 작가에겐 효자 책으로 보이는데, 떡밥을 회수하는 솜씨나 이야기를 끌어 가는 솜씨들이 실내인간 보다 덕욱 세련되고 유려해 졌다곤 하나 이야기적 새로움과 즐거움은 실내인간이 내겐 더욱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겠다.
이리 말하고 나니 자신의 책과 경쟁하는 작가야 말로 극한 직업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책에서 방세옥의 집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책 좋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꿈꿀만한 구조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거슨 작가의 워너비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지. 나도 지금 사는 집이 작아 나만의 서재를 꾸미겟다는 야심으로 미친 듯이 주택을 보러 돌아 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층간 소음도 미친듯한 괴로움이었고 말이다. 맨 꼭층에 살고 있음에도 아랫층에서 올라오는 소리 때문에 미칠거 같았는데, 지금은 아래층이 여러 이유로 싸그리 비워져 있다.(나 때문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여러 이유로 가진 재산을 싹털어 일을 좀 도모해 볼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긴한데...밍기적 거리는게 내 특기이니... 매년 어디선가 책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몇 백권씩 보내기도 하면서 그럭 저럭 살고 있지...
여튼 책은 재미 났었고, 그의 소설을 좀 더 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더불어 책 말미에 Maninthebox라는 네이버 카페를 소개하던데 미공개 원고들을 올려 두었단다. 그래서 들어가 봤지. 이거 지금 유지하고 있는건 맞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운영을 하지 않으면 개정판 때 주소를 없애시던가 아님 글을 공개로 바꿔 주시던가 아님 가입승인 을 좀 해주시던가... 궁금하단 말이다. 내가 이 글들을 못 읽어서 무척이나 막 궁금해 하니까 배작가 그런다 그게 덕질이라고. 내가 심각한 너드들 집단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말에 심각한 알러지를 가지고 있는데... 음?
Ps. 그리고 책들이 참으로 표지들이 하나같이 때깔이 곱다. 책장에 꽂아두기도 하고 쌓아 두기도 해보니 보시기에 차암 좋았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우리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 기억을 잃어버린다. 언젠가 기억이 되돌아올 일을 만나면 자연스레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 되살아난다. 그 사람은 결코 기억의 합이다. 내가 살았던, 그리고 그 사람도 살았던 그 시간들이 모두 그 사람으로 남는다. 우리는 사랑했거나 또는 너무나 미워했던 사람들을 떨쳐내고 잊으려 애를 쓰지만 삶을 통쨰로 잘라내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한 때 마음속 깊이 들어왔던 사람을 잊지 못한다.
방세옥은, 김용휘는 누군가를 평생 잊지 못한 채 살아가야할 운명이다. 주인공 용우 역시 7년 간 만났던 지난 연인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난 자신이 만든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특히 미친 듯이 책을 써내는 용휘는 자신만의 고집을 부리며 지난 사랑을 놓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나서야 할 때마다 자기가 아닌 뭔가를 만들어 자신을 대신하게 하는 습성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누구도 자길 봐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61쪽
그는 이별의 이유를 자신의 초라함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된다면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우습게도, 그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는 그녀가 ‘사랑받을 만한’ 잘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데, 자신이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는데,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랑은 돌아오고 자신 역시 행복해질 거라 믿는다. 무작정 믿는다.
용휘의 삶은 그 작은 맹점 하나가 좌우한다. 미친 듯이 ‘팔릴 만한’ 글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자신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잊히지 않기 위해 질리지도 않고 책을 써낸다.
“예나 지금이나 그가 믿는 사랑이란 오직 상대가 우러러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 사랑을 놓치고,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팔아도 그는 자신이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265쪽
그럼에도 그는 공허하다. 옛사랑의 그림자 끝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지평선만 바라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길 끝엔 결코 사랑이 서 있지 않다. 그는 이미 너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사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랑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는 어설픈 사람이다.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글을 쓰는 ‘실내인간’이다. 자신의 마음 안에 갇힌 ‘실내인간’이다. 그는 어리석고, 멍청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잘생기지도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못나기 그지 없는 뚱뚱한 중년의 아저씨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어리석은 모습에 조소를 날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어리석은 일을 하고, 그 일들로 생각보다 행복하게 잘 견뎌내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또 어설픈 사랑과 이별과 발버둥들로 방황하기 때문이다.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270쪽
난 용휘도, 용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는 일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나 역시 그들만큼 답답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