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관심은 아직 줄어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동시대적인 격분과 망상을 떨쳐버릴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멀리 떠나왔다. 나는 …… 어느 집단이나 나라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며 글을 쓰지 않는다. 또한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때 주어진 모든 증거를 신중하게 숙고한 후 판단을 내린다.” - 「저자의 말」 중에서
A. J. P. 테일러. 1,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다루며 그의 이름을 빼놓고 얘기하기란 힘들다. 20세기 역사학의 거장이면서, 20세기 가장 논란이 많은 역사가란 말을 듣는 그는 당대에도 그 이후에도 역사가들에게는 하나의 벽이었다. 전쟁사라는 한정된 분야에 집중한 학자들은 그가 쏟아내는 방대한 자료에 압도되었고, 외교사와 정치사로 확장해 탐색을 시도한 학자들은 무슨 수를 써도 그가 주장하는 치밀한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음모론을 단호히 배격하면서도 역사는 무엇보다 인간의 사건이라는 원칙에 충실했다. 그가 서술하는 전쟁사는 밀고 밀리는 전장의 현실이면서, 동시에 각 분야의 사람들이 얽혀 그려가는 신념과 실수와 오기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전쟁에 당위는 없었지만, 전쟁 당시에는 당위를 주장하는 인간들이 넘쳐났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당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갔고, 동시에 그 죽음들이 새로운 당위를 만들어냈다. TV에서든, 아니면 책이나 라디오에서든, 그는 당위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도덕을 끌어들이는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의 해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때론 경도되고, 때론 비난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가 하나의 벽이자, 흔들 수 없는 기준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역사가”(『더 가디언The Guardian』)이자 “가장 엄밀하며,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호소력 있는 역사가”(『트리뷴Tribune』). A. J. P. 테일러의 모든 연구 성과를 담은 대작,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과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이 페이퍼로드 출판사에서 한 묶음으로 출간되었다. “역사학의 마스터피스”(『옵저버The Observer』), “후대의 책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빛나는 역작”(『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이라는 찬사처럼 저자는 전쟁사와 외교사와 정치사라는 세 분야의 역사를 그야말로 거장다운 솜씨로 우리 앞에 풀어낸다. 미공개 사진과 화가들의 그림을 포함한 400여 장의 도판과, 전황과 전장을 상세히 묘사한 40여 장의 지도는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고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지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거의 모든 것들을 우리 앞에 보여줄 것이다”(『옵저버』) .
“여기에 전장에서 싸우고, 고통을 겪고, 죽어간 사람들이 있다. 요란한 전쟁 구호의 이면에 있던 인간들의 모습이다. ……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기도 했다. 우리가 이 전쟁을 더 잘 이해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당시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지만,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요란한 목적과 구호의 이면에 있던
전쟁과 인간의 참모습, 『제1차 세계대전』
“무명의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간략하게 언급된 것 말고는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은 사진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
- 본문 중에서
세계대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정작 우리에겐 낯선 사건이다. 개전 시기부터 논란이 있는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하면 제1차 세계대전은 시기와 범위가 분명한데도 그렇다. 그러나 현재 세계의 대부분을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었듯, 제1차 세계대전이 변화시킨 많은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을 만들었다. 군사적으로는 총력전이라는 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이기도 했고, 기뢰와 잠수함, 항공기가 전장을 뒤흔들어놓았으며 최초의 전차가 등장했다. 참호전이라는 양상은 기동전이라는 이전의 상식을 깨고 전쟁을 끝없는 소모전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름 모를 전사들이 명령에 따라 사선으로 들어갔고, 들어간 순서대로 전사자의 명단에 올랐다. 그 뒤에서는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이유로 의미 없는 전장을 만들어내는 장군들이 있었고, 그렇게 해야만 입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며 전쟁의 목적을 갱신해대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과거의 교리에 집착하는 장군들은 전선에는 가지도 않은 채 작전을 결정했고, 전장이 어딘지도 모르는 정치가들이 지도 위에서 전장을 결정했다. 어떤 장군들은 ‘필승의 전략’을 주장했지만, 정작 그걸 전장에서 선보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어리석은 아집과 이기적인 고집, 고지식한 선입견과 무의미한 혁신 사이에서 병사들은 희생되어갔다. 남은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병사들이 떠난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다. 그러다 점점 더 많은 병사들이 필요해졌고, 사회의 빈 곳도 그만큼 더 늘어갔다. 적의 가장 강한 부분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기동전의 교리 속에서 양측의 병사는 얻을 것 없는 소모전을 벌여야 했다. 일제 포격의 여파는 전장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고, 그 뒤 같은 자리에는 난공불락의 참호가 들어섰다. 참호 위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총이 병사들에게 빠르든 늦든 죽음을 예고했다. 최초로 독가스가 전장에 사용되었지만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이 화학 무기가 낳은 유의미한 결과라고는 진군하는 병사들의 군장에 무거운 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는 고충뿐이었다. 전장이 바뀌고, 참여 국가가 변할 때마다 정치인들은 숭고한 목적을 들이밀었지만, 모두 자신들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임기응변의 목적들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어느 전장에 군인이 있는 이유는 저자의 말을 따르자면 이랬다.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들이 있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유럽에서 시작되어 그 뒤 세계전쟁으로 확대된 제1차 세계대전의 전모를 다룬다. 당대 제일의 역사가이자, 가장 도전적이었던 역사가인 A. J. P. 테일러는 책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의미를 ‘대중’이라는 의미에서 찾아낸다. 그에게 전쟁은 국가들과 국가들이 각자의 명분 아래 국운을 걸고 싸우는 총력전이면서, 이전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바뀌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에게 전쟁은 의미도 없고 근거도 없는 이상이 전쟁의 이유로 탈바꿈하는 현실이기도 했고, 지난 세대의 낡은 상식들이 전쟁이라는 무대 위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가 서술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역사는 전쟁사이면서 정치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외교사이기도 했다. 책은 이 모든 것들을 200여 장의 사진과 지도와 함께 담아 전쟁과 그 전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변화를 역사라는 이름 앞에 담담하게 담아낸다. 출간 직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등극했고, 제1차 세계대전 개설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으며, 2007년 영국의 『스펙테이터』, 2009년 미국의 『뉴욕타임스』, 그리고 미국역사학회의 『미국 역사 리뷰American Historical Review』에서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고 있는 제1차 세계대전 연구의 정전이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완벽한 기록, 『제2차 세계대전』
“놀랄 만한 일이 거의 없었고 힘이 더 센 측이 승리를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세계대전이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게 싸우는 대결이었다.”
- 본문 중에서
2차 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지금의 우리가 이 전쟁의 그늘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일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일본 종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이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한일 관계에 놓여 있는 많은 문제들이 식민지배라는 큰 틀도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전시 총동원의 영향 아래 벌어진 일들이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으로 시작된 지난 70여년의 남북관계도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를 넘어서 중일관계, 미일관계 등 동북아 국제관계에도 제2차 세계대전과 종전처리의 영향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제정치사가가 쓴 전쟁사인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현재의 국제정치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나라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진 행동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바라본다. 군대들만이 아니라 나라들이 부딪치는 전쟁 수행의 정치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그렇게 전쟁이 진행된 결과로서 다시 나라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독일 문제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해결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유럽 질서가 무너지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으며, 대전이 유럽 전쟁으로 끝나지 못하고 세계적인 강대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참전하게 되고 전승국이 됨으로써 이후의 세계가 이 두 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 테일러의 큰 그림이다. 테일러는 이러한 큰 그림 안에서 영국과 프랑스, 특히 프랑스의 패배 이후 영국은 어떠한 전략을 구상했고 어떠한 행동으로 귀결되었는지, 반대편에서 히틀러는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해 나갔는지, 추축국의 공격을 당한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태평양에서 일본의 행동은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 서로 얽혀 있는 나라들의 관계에서 각 나라의 전략과 행동을 살펴본다.
테일러는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전략을 이끄는 데 군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고 이들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도 컸던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 특히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 히틀러가 정치와 전략을 결정했다고 분석한다. 제1차 세계대전 말에 프랑스 수상이 되어 전쟁을 마무리한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 중대한 일이라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결과뿐 아니라 전쟁 자체가 온 나라, 모든 국민들의 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중들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대중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했고 이들 지도자들만이 대중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었다고 테일러는 말한다.
또한 이 책은 전쟁이 내건 외면적 명분보다는 이들 전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 지도자, 정치인, 지휘관, 외교관 및 그 외 많은 인물들의 행동을 분석하여 치밀하게 분석한다. 전쟁 발발 위험에 대한 히틀러의 오판과 과신,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어난 사건의 규모에 끌려 다닌 연합국의 사람들의 신념과 실패가 책 전체에 걸쳐 흥미롭게 서술되며, ‘전쟁은 독재자들의 사악함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실수에도 기인’하며, ‘그릇된 신념만큼이나 바른 신념도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역사의 오랜 진리를 다시 우리 앞에 드러낸다.
한편, 전쟁은 테일러의 말을 빌리면 ‘부족한 정보 속에서 각자 최선을 다한 결과’ 벌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 최선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는 역사의 의문으로 남지만 말이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 국가였던 연합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에 2차 대전 최대의 사망자를 내며 독일을 막아냈던 소련을 자기네 편으로 받아들이기를 마지막까지 주저했다. 전쟁 기간과 전쟁 이후를 통틀어 이들 국가들은 독일보다 러시아를 더욱 더 적대시했다. 이러한 편견의 반대편에서, 소련은 오직 강대국으로 복귀하려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의 오해를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3의 세계 전쟁을 예고하는 이 극단적인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면서부터 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태로 전환해버렸다. 양 진영 모두가 서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한 시기는 종전 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70년대에 들어서였다. 결국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그것이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테일러는 평화 없는 전쟁의 결과에 낙담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테일러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평화는 제2차 세계대전의 목적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의 압제로부터, 그리고 좀 더 작은 부분이지만 일본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아무리 큰 희생을 치렀다 할지라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나의 성공이 따랐으면, 그 뒤 새로운 성공을 끌어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며, 그런 의미에서 테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아마도 다음 세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른 전쟁과 다름없는 또 다른 전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어낸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목적 면에서 정당화될 수 있고 그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 수반한 모든 학살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은 훌륭한 전쟁이었다.
★★★★★
새로운 사료와 연구결과가 반영된
후대의 책조차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빛나는 역작.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유럽에서 가장 급진적인 역사가.
『더 가디언The Guardian』
그는 항상 주류의 반대에 서서 주요 쟁점의 토대를
뿌리부터 뒤바꿔놓았다.
『더 파이낸셜 타임즈The Financial Times』
가장 엄밀하며,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호소력 있는 역사가.
『트리뷴Tribune』
중심을 잃지 않는 완벽한 서술…. 흠잡을 데 없는 걸작.
『옵저버The Observer』
이 책은 우리가 겪은 전쟁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럽고도 치밀한 조망을 제공해준다.
『뉴스위크Newsw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