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10대의 사랑은 덜 여물고, 성숙하지 못하고, 유치하기 쉬운 감정의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른들의 난폭하고 일방적인 기준에 의하면 그렇다. 10대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10대는 정말로 어.리.기.만. 할까?
여기, 10대가 쓴 10대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다소 과격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소설은 동갑내기 고등학생들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이다. 공부엔 취미 없고,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잔소리는 귀찮기만 하고, 친구와의 우정은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적’에 대한 응징은 철저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지닌 아이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놈은 멋있었다」의 ‘그놈’, 은성은 어른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불량학생’이다. 고등학교 4대천왕의 우두머리이고 하는 짓은 깡패를 연상시킬 정도로 막돼먹었다. 카리스마는 천성, 담배와 술은 기본, 주먹질과 자동차 운전은 옵션이다. 단순무식한 그의 성격도 매력적인 개성으로 보일만큼 ‘무섭게 잘생긴’ 그에 대한 여학생들의 열렬한 관심은 H.O.T. 저리 가라다. 그런 멋진 그의 마음을 훔친 사람은 어이없게도 평범한 여고생, 예쁘지도 않고 이렇다할 특기도 없으며 놀고먹을 고민밖에 하지 않는, 평범하다 못해 안쓰러운 18세 소녀 예원이다. 이거 어찌 보면 할리퀸 문고의 전형적인 구도를 닮았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여자가 부자에 미남에 다소 동물적인 남자를 만나 이러구저러구 해서 열정적이고 진실한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는 식의. 그러나 또한 할리퀸에서 ‘그놈’과 ‘그녀’는 크게 벗어나 있다. ‘그놈’은 성숙하고 똑똑하며 여자를 다룰 줄 아는 어른이 아니라, 유치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어서 귀여운, 꽃미남 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녀’ 역시 작품 끝까지, 미모를 인정받는 일은 결코 없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에는 은근함이 없다. 계산이 없고 손익분기점을 따지는 위선도 없다. 이들의 사랑은 너무 ‘솔직’해서 적응하기 쉽지 않다. 상대방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애쓰고-그 과정 또한 참으로 단순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지닌 상처까지 껴안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일견 대견해보이기까지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순수하지만 또한 성숙했다. 그런 면에서 어른들의 사랑보다 더욱 빛이 난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전형적인 멜로공식을 취하고 있어 익숙하면서도, 10대가 쓴 10대의 사랑이야기이기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발칙함’을 여과 없이 담아내고 있다. 사랑 이야기 외에 (부수적이긴 하지만) 친구들과의 우정, 가족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10대 특유의 소외에 대한 두려움은 남자주인공 지은성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은성은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며 예원에게도 항상 옆에 있어 줄 것을 종용한다. 예원이 잠시라도 한눈을 파는 것을, 그는 참을 수 없어 한다. 결국 그가 지니고 있던 심리적 문제는 불안정한 가족관계로 설명된다. 이처럼 서로를 보호해 주는 한편 상처를 입히는 가족이라는 굴레의 양면성이 소설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데, 부모의 말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정도로도 취급하지 않고(그러면서도 어머니의 매타작만큼은 두려워한다), 오빠는 자신의 형제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식일 뿐이며, 존재감마저 희미한 아버지와의 진한 포옹은 그저 부담스러울 뿐인 주인공 예원을 통해서도 이는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이는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역시, 현시대 대다수의 10대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하게 다루어질 법한(혹은 그러함이 마땅한) 이러한 고민들도, 소설 속에서는 껌을 씹듯 가볍게 다루어진다. 골치 아픈 것은 그냥 피해버리기. 어쩌면 이것이 10대 아이들이 선택한 갈등 해소 방법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랑의 쟁취에서만큼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