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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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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보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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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452g | 131*187*20mm
ISBN13 9788973816484
ISBN10 8973816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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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쓸쓸하다.
왜인지는 모른다. 아니, 나는 그것이 진짜 쓸쓸함인지조차 잘 모른다.
처음 시작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였다. 수업 중이었다. 내 자리에서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뚝 떨어져나간 듯한 느낌, 아랫도리가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한없이 허무한 느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은 ‘싸했다’였다.
비 오는 날이면 찾아오는 그 망막하고 미묘한 감각은 마음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신체적인 무엇―두 허벅지에 힘을 꽉 주지 않을 수 없는―이어서 나는 더욱 불안했다. 그 증상은 몇 년이나 계속되었다.

아빠 의견은 이렇다. 소요 언니는 이미 ‘법적으로 쓰게 집안의 사람’이니 쓰게 집안사람이 미야자카의 집에서 자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빠에게는 언제나 사리에 맞고 맞지 않고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 미야자카 집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면, 그러고 싶을 때 서슴없이 돌아오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엄마 의견은 다르다. 엄마는 ‘마음이 있는 곳’이 중요하단다. 소요 언니의 마음이 쓰게 씨에게 있는 이상 ‘365일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단다.
“그러니까 만의 하나.”
언젠가 엄마는 소요 언니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만의 하나 네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면, 그 때는 거리끼지 말고 그 사람 품으로 가거라.”

“태풍 캠프 같네.”
나는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태풍 캠프는 우리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다. 태풍―또는 큰 비가 쏟아지거나 바람이 몹시 불거나 지진이 나거나 정전이 되었을 때―이 왔을 때, 모두들 책상 밑에 비집고 들어가 캠프(흉내)를 하는 것이다. 라디오를 듣고 봉지에 든 과자를 먹고, 손전등 불빛에 책을 읽는다. 우리는 그런 평소와는 다른 사건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독서 놀이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말했다. 독서 놀이란, 간단히 말하면 그저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놀이’를 좋아하니까, 대부분의 일을 ‘놀이’라 여기기로 한다. 그러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각자 책을 읽는 경우에도 처음부터 “독서 놀이하자.”하고 읽기 시작하면 다 같이 노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다.

그 순간이었다.
리쓰가 후카마치 나오토 몫의 그레이프 젤리를 보자마자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는 집게손가락으로 투명한 포도색 젤리를 콕콕 찔렀다. 누구보다 리쓰 자신이 가장 놀랐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을 만큼 크고 시원스럽고 옛날식으로 단단하고 탄력 있어 보이는 젤리였다.
“……리쓰?”
나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족 아닌 사람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리쓰를 처음 본다.
“맛있겠는데.”
속으로는 놀랐을 후카마치 나오토가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스푼을 들었다.
나와 리쓰는 침묵했다. 매너나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비밀을 엿보인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에 대해, 그 동안에 생기는 일과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 갈 장소와 가지 않을 장소에 대해, 그리고 지금 있는 장소에 대해.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 안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굴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미야자카가에는 아빠, 엄마, 큰딸 소요, 둘째딸 시마코, 셋째딸 고토코 그리고 막내아들 리쓰 이렇게 6식구가 살고 있다. 설날이나 생일 등 거의 매달 있는 가족 행사에는 모든 가족들이 꼬박꼬박 모일 정도로 유난히 화목한 집안이라는 것 외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귀가하기 전에 항상 미리 전화를 거는 아빠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후면 항상 화장을 지우고 아빠를 맞이하는 엄마와 과자나 케이크를 굽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스러운 큰딸, 월급날이면 꼭 가족들의 선물을 사오는 둘째딸,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밥을 먹기 위해 왼손 사용법을 연습하는 셋째딸, 조립식 여자 인형 만들기 같은 섬세한 것을 좋아하는 막내아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둘째 언니 시마코가 가족들이 모두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 소중한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가족들은 시마코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올 거라며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나타난 손님은 시마코가 다니는 회사의 여직원이었고, 시마코는 그 여자가 임신을 했으며 자신이 그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시집가서 잘 사는 줄로만 알았던 큰언니 소요가 갑자기 여행 가방을 싸들고 친정으로 돌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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