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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 까칠한 글쟁이의 달콤쌉싸름한 여행기

[ 리커버 에디션 ]
리뷰 총점9.1 리뷰 18건 | 판매지수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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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7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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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20쪽 | 572g | 143*206*28mm
ISBN13 9788950987657
ISBN10 895098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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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회조직을 두고 한 매우 유의미한 그 실험이 러시아인들이 아닌 영국인들의 손에 맡겨졌다면 훨씬 더 잘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혹독한 사회주의 체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영국인들에게는 고스란히 제2의 천성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대처 부인이 증명해 보였듯이 독재정권도 용인하며 수술이나 생필품 배달이 몇 년이나 늦어져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기다릴 사람들이다. 중얼중얼 권력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절대로 반항하는 법이 없는 재주도 갖고 있다. 부와 권력을 쥐었던 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만족감을 느낄 줄도 안다. 이들은 스물다섯 살만 넘으면 동독 사람들처럼 옷을 입는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를 시행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란 뜻이다. --- 「5장」 중에서

버지니아 워터는 영국에서 가장 특이하고 별난 지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미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똑같이 섞여 지내기 때문이다. 상점주인들이나 지역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이는 태도 역시 정말 존경스럽다. 그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지냈다. 파자마를 입고 수세미 머리를 한 남자가 제과점 한쪽 구석에 서서 벽을 쳐다보고 큰소리로 열변을 토해내거나, 눈동자를 굴려가며 연신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튜더 로즈 선술집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한 진한 스프에 각설탕을 떨어뜨리고 있는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건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 「6장」 중에서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영국식 태도에 당황하곤 했다. 단호하기 짝이 없으며 지칠 줄 모르는 낙관주의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불완전한 국면에 닥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달라질 거야.” “불평을 해서는 안 돼.” “더 나쁠 수도 있었는데 이만한 게 다행이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싸니까 기분 좋잖아.” “이 정도면 정말 괜찮은 거지.” 나도 점차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물들어가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황량한 바닷가 길을 산책 나갔던 어느날 축축해진 옷을 입고 추운 카페에 앉아 있다가 밀크티 한 잔과 케이크가 나오자 ‘오,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나 역시 같은 부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호텔에서 토스트를 더 달라고 한다든가 막스앤스펜서 매장에서 푹신한 모직 양말을 산다든가 바지 한 벌이 필요한 데 두 벌의 바지를 사게 되었을 때 나는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내 삶은 풍족하고 부유해졌다. --- 「7장」 중에서

포틀랜드 공작 5세인 스코트 벤팅크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영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년의 벤팅크는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은둔자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별 이상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 웅장한 집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마련해 머물면서 방문을 뚫어 메시지 상자를 달고 그 안에 쪽지로 글을 적어 하인에게 전하는 식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음식은 부엌에서 식당까지 조그만 철로를 만들고는 그 위로 운반했다. 어쩌다가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공작은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면 하인은 가구라도 되는 것처럼 모른 척 하고 그곳을 지나갔다. 이것은 모두 사전에 미리 준비된 훈련에서 나온 것이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은 하인은 공작의 개인 스케이트장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 「16장」 중에서

솔테어는 1851년에서 1876년 사이에 타이터스 솔트 경이 세운 공업단지다. 그는 19세기가 배출해낸 산업주의를 지향하는 자본가로서 절대금주주의자이고 독선적인데다 하나님을 숭배했다. 한마디로 그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가 지은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고 그가 다니는 교회에 예배를 드려야 했으며 그의 지시를 일언반구의 어김없이 따라야 했다. 마을에는 선술집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았고 지역의 공원에서는 고성방가, 흡연, 오락 등의 꼴사나운 행동을 철저히 금지했다. 사람들은 싫든 좋든 아주 맑은 정신을 유지한 채로 부지런하고 얌전하게 지내게 되었다. --- 「18장」 중에서

오래전부터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씩 꺼내보고 좋아하는 신문 스크랩이 하나 있다. 〈웨스턴 데일리〉의 일기예보 기사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날씨 전망,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입니다. 하지만 비가 조금 내려 기온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날씨를 완벽하게 표현한 의미심장한 문장이다. 〈웨스턴 데일리〉에서는 이 기사를 매일 고대로 내보내도 틀리는 법이 거의 없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신문사라면 정말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24장」 중에서

애버딘이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히 거슬리는 것이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나는 천천히 새로 들어선 쇼핑센터 주위를 따라 상당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두들 특색 하나 없이 금방 잊힐 건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애버딘이라기보다는 현대 영국의 특성에 있었다. 영국의 도시는 한 벌의 트럼프카드 같다. 마구 뒤섞이다 끝없이 다시 나눠진다. 같은 카드인데 순서만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다른 나라에 있다가 애버딘에 처음으로 왔다면 매우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도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날로 번영하며 깨끗한 도시라고. 서점과 극장, 대학 등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확신한다. 다만 다른 곳과 너무나 닮아 있을 뿐이다. 영국에 있는 도시니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 「27장」 중에서

나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돌집 하나가 있었다. 나의 조국보다 훨씬 더 오래된 우리집 이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하마터면 울 뻔했다. 하지만 이 매혹적인 작은 나라에는 이곳 못지않은 장소가 너무도 많다. 갑자기, 순식간에, 영국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좋든 나쁘든 영국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래된 교회도, 시골길도, “불평하지 마” 라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죄송한데요” 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내가 모르고 팔꿈치로 툭 쳤는데도 먼저 사과하는 사람도, 병우유도, 토스트에 들어간 콩도, 6월에 건초를 만드는 일도, 바닷가 부두도, 왕립지도제작원에서 만든 지도도, 차와 핫케이크도, 여름 소나기도, 안개 자욱한 겨울날도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모두 사랑했다.
--- 「30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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