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임신 중에 예쁜 아기 사진을 많이 보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남편 얼굴을 많이 보면 아빠를 닮고, 거울을 많이 보면 엄마를 닮는 거 아니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자 아내는 “제일 많이 보는 얼굴이 모리인데, 모리 닮으면 동글동글 진짜 귀엽겠다!”라며 웃었다. 자기 얘기인 줄 아는지 옆에서 말똥말똥 쳐다보는 모리에게서 아기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우리는 모리 얼굴로 태교 사진을 대신하기로 했다. 동글동글 예쁜 얼굴로,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모리는 ‘얼굴 태교’를 도맡아 준 소중한 존재였다. 모리의 힘이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동그랗고 귀여운 딸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 p.57
아내가 임신 7개월쯤 되었을 무렵, 갑자기 부모님이 “아기랑 고양이를 같이 키워도 괜찮은 거니?” 하며 걱정스러운 내색을 하셨다. 그동안 차마 하지 못한 질문을 꺼내신 듯했다.
“동물이랑 같이 지내면 아기의 면역력을 키워주기도 해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대요” 하고 말씀드렸지만 내심 ‘나도 예외가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들이 수의사니까 당연히 부모님도 이해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나마 내가 수의사여서 이 정도로 끝나는구나 싶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부터 부모님과 모리가 친해질 수 있게 노력했어야 했는데…. 다행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사위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말씀해 주셔서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아기와 동물을 함께 키우는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지만, 출산할 때가 다가오니 “고양이를 아기랑 어떻게 같이 키워?” “털도 날리고 위험할 텐데, 부모님 댁에 맡기는 게 어때?”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우리 부부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란 걸 알기에 “우리한테 모리는 가족이라서 다른 데로 보내는 건 안 돼요”라고 말하며 넘겼다. --- p.61
힘들어하는 아내가 마음 쓰여 새벽에 수유하는 동안 옆에서 깨어 있겠다고 했지만, 아내는 “한 명이라도 푹 자야지”라며 출근하는 나를 배려해줬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은 깨어 있었지만, 새벽이면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길 수 없었다.
적막한 새벽, 홀로 잠과 싸우며 수유하는 아내 옆에는 나 대신 모리가 있어 줬다. 아내는 수유를 시작하면 모리가 침대 위로 폴짝 올라와 수유등 옆에 엎드려 있다가, 수유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모리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회상한다. 한 손으로는 소은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곁에 있는 모리를 쓰다듬으며 보낸 새벽 시간이 외롭지 않고 든든하기까지 했다며. --- p.87
모리를 응시하는 소은이를 보다가 문득 소은이 눈에는 모리가 어떻게 비칠까 궁금했다. 우리는 모리를 ‘동물, 고양이, 수컷, 브리티쉬 숏헤어’ 등 이미 정해진 관념 아래 바라보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처음인 소은이에게는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 모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 발로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큰 노란 털북숭이. 졸린 얼굴로 누워 있는 시간이 많지만, 밥때가 되면 움직임이 많아지고 야옹야옹 크게 우는 야옹이. 아직 미숙한 아기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기처럼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면, 점점 더 각박해지는 이 세상도 좀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 p.97
언제부턴가 이불을 펴면 소은이가 돌돌이를 들고 온다. 매일 밤 그걸로 이불 정리를 하는 엄마를 보며 배운 것 같다. 몸집에 비해 커다란 돌돌이를 고사리손으로 굴리는 모습을 보면 마냥 귀여워 웃음이 난다. 소은이가 우리를 보며 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볼 때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떠올라 책임감을 느낀다. --- p.112
나에겐 소은이가 기기 시작한 것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성장으로 느껴졌지만, 모리에겐 고생길의 시작을 알리는 반갑지 않은 변화였다. 소은이가 처음 움직일 때는 “어? 얘가 이제 움직이네?”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느리게 움직이는 소은이 모습에 여유 있게 앉아 있던 모리였지만, 날이 갈수록 기어 다니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느새 옆에 다가온 소은이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달아날 때가 많아졌다. 아기와 같이 사는 고양이라면 피할 수 없는 ‘아기 피하기’라는 고충이 모리에게도 시작된 것이다. 소은이가 성장할수록, 우리는 모리가 안전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고민해야 했다. --- p.118
소은이가 태어나면서 매 순간 엄마로서 몸을 아끼지 않는 아내를 보며,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모두가 이런 사랑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도 귀하게 보였다. 내가 오늘 많은 일을 능숙하게 하는 건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실수투성이에다 서툴던 나를 포용하고 기다려 준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손가락 하나로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얻는 시대에 살다 보니 점점 남의 실수와 기다림을 못 견디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빚을 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미숙하고 서툴다는 건 아직 사랑이 필요하다는 뜻이니까. --- p.151
“소은이는 모리가 자기 물건을 건들면 ‘아아아아~’ 소리치고 손을 휘휘 저으며 뺏어오고, 내가 모리를 만져주면 ‘또은이, 또은이’ 하며 내 손을 가져가 자기 머리를 만지게 한다. 내심 이런 모습들이 반갑다. 소은이와 모리가 진짜 관계를 맺어가고 있구나 싶다. 그렇게 좋아도 하고 질투도 하고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며 좋은 친구로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
언젠가 아내가 적은 글이다. 소은이가 외동이라 형제간에 생기는 갈등과 화해를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염려하던 아내는 형제처럼 곁에 있어 주는 모리에게 고마워했다. 모든 것을 독차지하며 단조로울 수 있는 소은이의 마음에 다양한 감정의 진동이 일어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 p.158
“소은아, 잘 잤어?” 아침 인사를 건네고 소은이를 안은 채로 뒹굴뒹굴하며 조금이라도 더 이불 속에 있어 보려고 장난을 쳤다. 잠에서 깬 아내가 그런 나와 소은이를 함께 안으며 “소은아, 아빠랑 엄마랑 소은이랑 같이 꼭 안으니까 너무 좋다. 아빠랑 엄마랑 소은이랑 우리는 가족이야” 하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소은이가 우리 팔에서 빠져나오더니 벌떡 일어나 “모디! 모디!” 하면서 거실로 뛰어나갔다. ‘가족’이라는 말에 모리를 찾으러 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다가오는 소은이를 보며 모리는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은 뭉클했다. --- p.214
어느 날 갑자기 소은이가 모리를 안아주며 “모디야, 사앙해” 하고 말했다. 그런데 소은이 자세가 이상했다.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양팔로만 모리의 몸을 안아주고 있었다. 모리의 꼬리를 밟지 않으려고, 또 자기 체중으로 모리를 누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기습적인 포옹을 당한 모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소은이의 노력을 아는지 피하지 않고 가만히 안겨 있었다. 그래도 너무 포옹이 길어지자 부담스러웠는지 소은이 품에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소은이는 아쉬워하며 모리를 따라가 다시 안아줬다.
“모디야, 사앙해.”
자신의 사랑을 모리가 불편해하지 않는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소은이를 보며 내가 고민했던 사랑이 저기 있구나 생각했다. --- p.224
우리 역시 그토록 모리를 예뻐했지만, 소은이가 태어나고 1년간은 이전만큼 관심을 쏟기 어려웠다. 신생아를 키우는 아내는 먹고, 자고, 화장실에 가는 생리적 욕구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었고, 나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남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출산과 동시에 이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면서, 육아란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하면서 부모로 성숙해가는 어렵고 힘든 과정임을 깨달았다.
우리도 SNS 속 사진을 보며 아기와 고양이의 아름다운 공존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런 풍경은 신기루처럼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래도 그 순간이 주는 위로 덕분에 끝없는 육아의 수고로움을 잊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