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르’라는 이름은 과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시절 색다른 작가명을 고민하다가 지었다. 누군가 포털사이트에서 내 작가명을 검색했을 때 다른 키워드와 중복되지 않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검색 결과 페이지에 딱 내 작가명만 나와야 홍보 효과가 있을 테니.
우선 내 본명의 성이 ‘이’ 씨라 ‘이’로 시작하는 색다른 이름을 생각했다. 그러나 도저히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하다가 문득.
“이… 이… 이…… 아, 모르겠다!”
“이…… 모르겠다.”
“이모르다?”
“이…모르? 이모르!”
이렇게 탄생했다.
--- p.20~21, 「이모르의 뜻이 뭐예요?」 중에서
내 팬들의 이름은 ‘모지리’다. 팬 중에 한 친구가 내 필명이 ‘모르’이기에 어감이 비슷한 ‘모지리’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모지리는 ‘머저리’를 지칭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뜻은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이 단어가 참 마음에 든다. 완벽함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완벽해 보이는 유명인들도 저마다 부족함에 몸부림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모지리다. 나조차도 모지리 중의 한 명이다.
사람은 우울할수록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 흔들리기 일쑤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수록 약점이 된다. 어리석거나 둔한 이미지로 비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안 우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울함은 계절처럼 돌고 도는 일이고, 언제나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약해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지리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매번 굳세고 야무진 인간일 수 없다.
--- p.67~68, 「우리는 모두 모지리다」 중에서
인간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나를 좋아한다. 반면 내가 노력해도 누군가는 항상 나를 미워한다. 인간관계는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항상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그 뜻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매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상대는 배신감을 느낀다.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우연 속에 일어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연일 뿐이다.
그러니 관계가 틀어졌다고 상대를 원망하지 말고 자책도 하지 마라.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것뿐’이라고 합리화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 p.92, 「우울할 때 잡생각 - 인간관계」 중에서
인간관계는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역할 놀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스피커와 리스너 둘 중에 누가 좋은가, 누가 잘났나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이상적인 관계는 스피커와 리스너의 관계가 고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에 따라 스피커가 리스너가 되기도 하고, 리스너가 스피커가 되기도 하는 유동적인 관계여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서로 질문을 제대로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질문의 개수가 균등하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는 한쪽으로 치우친다. 한쪽으로 치우친 대화, 치우친 관계는 별로 이상적이지 않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다. 그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끝내 자기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았다. 헤어질 때쯤에 그가 나에게 말했다.
“이모르 님은 사람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시네요. 뭔가 편하달까?”
칭찬은 고맙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전혀 편하지 않았다.
--- p.108~109,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 중에서
2. 모든 일을 잘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잘’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누가 정해놓은 기준일까? 그런데도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수많은 강박에 시달린다. 어떤 분야에서든 돈을 받고 일을 하려면 일 처리를 잘해야 한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잘해야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근데 굳이 그림까지 잘 그리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당신이 전업 화가가 아닌 이상 굳이 잘 그릴 이유가 없다. 전업 화가가 꿈이라면, 지금 당장은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이’ 그리는 게 중요하다. 많이 그리려면 한 장 한 장 그릴 때마다 재밌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은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즐겁게’ 그릴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 p.133~134, 「우울할 땐 잡생각 - 그림」 중에서
색다른 퍼포먼스 영상을 기획했다. 졸피뎀을 먹고 약에 취해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취지는 명확했다. 첫 번째는 약에 취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게 나올지 알아보는 것. 무의식을 기록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다. 두 번째는 약물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고발하는 것. 그러면 사람들이 물을 것이다. 그냥 얘기로만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위험하게 약을 먹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하지만 위험성을 알리려면 위험을 직접 보여줘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말로만 떠든다면 재미도 없고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촬영은 내 작업실에서 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림 재료들을 준비했다. 내가 약에 취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는 일이라, 만에 하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작업실 문을 꽁꽁 잠가 두었다. (나 스스로 위험해지는 건 솔직히 상관없었다. 오히려 ‘젊은 화가, 골방에서 약에 취해 그림 그리다 봉변…’ 따위의 기사라도 난다면 지난날 내가 그린 그림이 재조명받아 값어치가 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p.143~144, 「우울할 땐 잡생각 - 그림」 중에서
“아버지가 다혈질이셨어요. 어머니를 때리기도 하고, 심지어 저도 맞으면서 자라왔죠. 결국 두 분은 헤어지셨어요.”
그녀의 설명을 듣자니 전형적인 못된 아버지상이었다. 폭력은 어떠한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나쁜 짓이다. 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심정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절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아니지만, 중학생 시절 일진들에게 맞고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지금에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다.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오랜 시간 타인의 앞에 서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곤 했다. 가끔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그 시절 날 괴롭혔던 친구들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폭력의 잔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보배 씨에게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 크레파스로 아버지의 얼굴을 크게 그렸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아버지 얼굴을 인자하게 표현했다.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아버지가 좀 인자해 보이네요?”
“한 번도 다정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림으로라도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아요?”
“원망하죠. 그런데 이게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하다. 미워하다가도 정이 들 때가 있고, 사랑하다가도 증오심이 들기도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감정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흐르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인생은 혼란스럽다.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니….
--- p.172~174, 「마음은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념하는 것」 중에서
나는 아버지가 마시던 술병을 바닥에 던져 깨뜨렸다. 그리고 그 조각들로 아버지 앞에서 손목에 상처를 냈다. 첫 자해였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 제발 그만 좀 해달라는 절실한 호소였다. 손목에서 피가 흘렀고,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내 둘 다 지쳐서 쓰러져 잠들었는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잘 생각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 나는 자해를 처음으로 학습하게 되었다.
자해는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사실 자해하는 심리는 굉장히 복합적이다. 누군가와 갈등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에게 직접 화를 드러내지 못하니 나 자신을 향해 표출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자해는 발생했다. 모든 게 내 탓이고,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었다.
어떨 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했다. 그러면 묘하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피가 날 정도로 내가 나를 해하는데, 두려울 게 더 뭐가 있겠어?’ 하는 심정이었다. 또한 동정받고 싶은 마음에도 자해를 했다. ‘힘들고 우울할 때 누군가 내 자해 흉터를 보고 관심을 주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 p.209, 「10여 년의 자해, 그 시작」 중에서
버벅대면서 나의 힘든 점을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컴퓨터에 무언가를 기록했다. 15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고 나니, 의사 선생님은 잘 알겠다며 나가봐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별다른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료라는 게 고작 이런 건가 싶었다.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님에게 검사지를 받았다. 몇백 문항이나 되는 질문에 답을 체크하라고 쓰여 있었다. 간호사님은 다음 진료 때까지 해와야 한다고 했다. 첫 진료였기에 의사 선생님이 내가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란다. 다면적 인성검사와 문장 완성 검사지라는 것인데, 아마 정신과를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씩 해봤을 것이다. 그렇게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정신과에서의 첫 진료, 첫 상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시했다. 내가 힘들다는데 의사 선생님은 왜 힘든지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았고, 앞으로 힘들지 않기 위한 그 어떤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다. 문득 ‘내가 의사를 잘못 만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마음 한편에 후련함이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달까? 의사 선생님의 명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으나, 묵혀두었던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하면서 입 밖으로 내뱉는 단어의 개수만큼 마음속에 꽁꽁 얼어붙은 나의 고통도 하나씩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감정이란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 p.246~247, 「정신과에 처음 방문한 날」 중에서
오히려 우울한 글과 그림을 그리면서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마음껏 칭얼거릴 수 있는 자유 말이다. 보통 칭얼거린다는 표현은 어린아이한테 많이 쓴다. 어렸을 때는 마음껏 칭얼거릴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칭얼거리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러면서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부분이 생긴다. 칭얼거릴 수 없어서 힘든 부분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잘못된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 인간이 압력솥이라면 불로 가열하는 것은 스트레스고, 그렇게 생긴 부정적인 감정은 솥 안에 맴도는 증기다. 압력솥에서 증기를 빼주지 않고 계속 가열하면 뚜껑이 폭발한다. 누군가 다칠 수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은 주기적으로 뚜껑 밖으로 빼내야 한다. 표출되어야 한다.
--- p.273~274, 「칭얼거릴 수 있는 자유」 중에서
만약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가볍게 통원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데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기 의지로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기 일쑤다.
암에 걸렸거나 뼈가 부러졌다고 치자. “너 그거 그냥 병원 가지 말고 의지로 한번 견뎌 봐. 의지로 한번 나아 봐. 힘내 봐.”라고 얘기하는 미친 사람은 없다. 그런 경우엔 병원에 가거나 입원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러나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정신과 마음이 아픈데 병원도 가지 말고 의지만으로 극복하라고 한다면, 그건 그릇된 편견에서 오는 무지한 행동일 뿐이다.
--- p.284, 「우울할 땐 잡생각 - 우울증에 대한 편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