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3년 09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479g | 152*225*20mm |
ISBN13 | 9788994418612 |
ISBN10 | 899441861X |
발행일 | 2013년 09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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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479g | 152*225*20mm |
ISBN13 | 9788994418612 |
ISBN10 | 899441861X |
머리말 감수의 글 순수한 혼합 결정체 단결정 만들기 영성에 대하여 뒤에서 힘을 보태주는 중성자 이야기 겸손에 대하여 홀로 존재해도 완전한 단원자분자 고독과 외로움 플라즈마의 산화 정신 빛으로 승화한 순교자의 삶 이온결합과 공유결합 우리 가족은 어떤 결합을 하고 있습니까 정제염과 천일염 그리스도의 향기를 머금은 삶 물의 유연함과 용해성 버림받은 여인이 얻은 생명수 필수원소와 독성원소 선을 가장한 악 제설제와 부동액 기도와 눈물의 어머니 양쪽성 물질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되기 활성화 에너지 묵주기도의 에너지 촉매의 희생 정신 더해주는 삶 금속의 녹 사랑을 실천하는 노년을 위하여 고분자의 점탄성 두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탄소의 혼성오비탈 생명 나눔으로 이룬 부활 전자쌍 반발이론 저의 큰 탓이옵니다 결정과 비정질의 중간물질인 준결정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헤모글로빈의 산소운반 집착을 버리고 내어 맡기기 |
화학에서 영성을 만나다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란 책의 저자 황영애 교수님의 2번째 책이다. 교수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주업(화학 연구 및 교수)을 통해서 경험하고 만난 영성(또는 신앙)을 참으로 겸손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할 때면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해 보인다. 신앙 자체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남의 신앙에 동감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녀도 누군가의 신앙 고백을 듣게 되면 졸음이 쏟아 지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화학 교수님이 자신의 20년 연구생활 속에서 만난 영성을 그냥 듣기에도 부담되는 화학 실험들과 연관지어 이야기를 하면 과연 눈동자가 넘어가지 않을까? ^^; 쉽게 상상이 가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은 그런 상황에도 그저 놀랍고 신기한 화학 현상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황교수님의 간증 세미나에 참석한다면 처음에는 졸면 어쩌나 염려했다가 그 전하는 말씀 한마디 마디에 너무도 집중해서 가슴뛰는 상황이 일어날 것 같다.
책 속의 몇몇 전문적인 내용들을 거론해 보려 한다. 중성자라고 들어 봤는가? 보통 원자력이나 원자폭탄을 이야기할때 중성자 이야기가 흔히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실 원자나 전자도 들어는 보았지만 정확히 뭐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화학은 일상 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학문이 되어 버렸다. 어찌 되었건, 중성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구성한다. 전자는 이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데 이 전자와 원자핵을 원자라고 말한다. 불과 수십년 전에는 원자핵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원자핵 조차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성자는 전자가 앞에 나서서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양성자를 한 군데로 모아 원자핵의 구조를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바로 겸손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불평없이 천천히 기다리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예수님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게 한 세례요한을 연상시키는 존재이다.
신앙심이 깊고 자신의 업에 깊은 성찰이 있어도 이런 식의 해석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나는 IT 업을 십년 넘게 하고 있지만 이런 성찰을 할 겨를이 없다. 글쎄 매 순간순간 급변하고 진화하는 정보기술이 영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잠시 잠깐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단순한 기술조차 출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놀라운 신기술들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불편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오늘의 편리한 기술을 낳은 원동력이다. 또한 어떤 기술도 혼자서는 가치가 없다. 몇가지 기술들이 함께 더 큰 모습을 가췄을 때 보다 가치있는 존재가 된다. SNS 조차 나홀로는 불가능하다. 작은 구성원들의 참여로 인해 지금과 같이 거대한 네트워크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이해의 결과를 다시 영성과 연결하기에는 나의 신앙심은 너무도 얕고 보잘 것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화학을 좀더 알게 되었고 성경 말씀과 그 속의 많은 일화들이 근본적으로 왜 이야기된 것인지 다른 방향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족보(누가 누굴 낳고, 또 다시 누굴 낳고 같은 내용)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년 동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책에서 해답을 얻은 것도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까 싶다.
나와 다른 직업의 달인에게서 신앙을 배운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잔잔한 감동과 함께 자신의 직업에 좀더 애정을 쏟아보자는 결심도 해보게 되었다.
사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을 일게 된 것은 저자가 황영애 교수여서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라는 책으로 저자를 만난 기억이 있기에 이번에는 화학으로 우리들 삶에 가져야 할 또 어떤 지혜들을 들려줄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여러 가지 예기들 중에서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을 예기하는 부분이었다. 학창시절 화학시간에 배운 이온결합과 공유결합을 우리 가족의 결합으로 연결하는 부분은 참으로 신선했다. 부모의 자식 간의 결합을 이온결합으로 비유해 부모가 사랑이라는 전자를 내주고 양이온이 되고, 자녀는 사랑을 받아서 음이온이 된다는 것, 그리고 성인이 되어 물이 되어서 세상에 나가니, 자식에게 대한 집착도 하지 말라는 예기를 해 주고 있다. 또한 남녀간의 사랑을 공유결합의 그림으로 묘사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공유결합이나 이온결합 모두들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서로 신뢰해야 한다는 지혜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데, 정말 찬찬히 싶어서 음미할 만한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고대에는 철학자들이 모두 수학자, 과학자 이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화학자이면서 이런 저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45년간 화학 연구를 통해서 과학과 철학의 맥이 통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우리들에게 예기하고자 이런 책을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하듯,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노년을 위해서는 금속의 녹이 가진 성질을 이해하고 노년의 삶에서 우리들이 이웃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 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이 가진 물질이나 부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헤모글로빈의 산소운반을 통해서 집착을 버리고 내어 맡기기를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함을 예기하고 있다.
삶을 살아오면서 한번쯤 가져 보았던 인생에 대한 질문, 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화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달해 주는 이 책은 저자가 단순한 화학자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고대의 철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책은 과학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되는 것이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으면 긴 여운을 즐겨 본다.
외계의 언어만큼이나 낯선 영역, 원소 기호를 외웠던 게 화학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지만
나와 다른 영역에도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에 손에 들어본 책.
어린시절 과학자들은 하느님을 부정할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이 신비로운 기억으로
간혹 뇌리에 떠오르곤 했지만 생물이나 의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가능한 일이겠으나
화학이라는 물질의 영역을 종횡무진 하는 이들에게는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의혹의 한자락을 풀 수 있는 책이어서 더 선뜻 마음이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실험실에서 마주하는 여러 물질에서 반응을 끌어내고 약품들을 사용하여 정확함을 요하는 실험에서
신비함이라는 걸맞지 않아보이는 영역으로 들어간 저자의 화학과 영성의 아우름들을 읽어가며
"고순도의 단결정을 얻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용액과 오랜 시간, 충격 요법 등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화학자의 입장에서 잠시 창조주의 입장으로 옮겨가봅니다."(p.26)라며
창조주의 시각으로 시련과 불행을 이해하며 풀어가는 저자는
순도높은 결정이나 맑은 물이 되어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들마저 가감없이 드러내어
실험실 안의 영성으로 읽는 이를 끌어들이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자들의 구조를 통해 제각각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 안에서
나는 어떤 모습 어떤 자리에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보게 하기도 하고
현대인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병폐들과 천일염이라든지 물 등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삶들을 짚어보기도 하면서
우리 삶 속에 화학 아닌 것이 없듯이 하느님의 손짓 아닌 것 또한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낯선 원소들과 결합과 분열들 그로 인한 결과들에서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며
"여인은 곧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여인의 태도 변화가 놀랍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으러 왔던 여인이 당당히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처럼
무심히 넘겨가던 복음의 구절들을 삶의 자리로 데려다주거나 성인의 삶과 기도문들을 통한 묵상을 나눠주기도 한다.
나는 어느 자리에 설 것인가. 촉매제나 플라즈마 같은 순교자의 삶을 살고 싶은가,
중성자의 겸손을 닮고 싶은 것인가, 녹과 같은 사랑을 닮고 싶은가, ...
모든 것은 그분의 손안에, 나의 성실한 노력과 응답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안에
매순간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서로의 부족을 채워가는 보석이 되고픈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