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눈치 봐야 할까?
일단 좋은 소문이든, 안 좋은 소문이든 돌기 시작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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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나와 상관없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그 뒤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붙어서 따라다녔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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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게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스스로 걸어갈 힘조차 어디선가 빼앗긴 채 어딘가에 기대어 있었다. 이렇게 더는 살 수 없을 거 같았다. 가방 한가득 여름옷을 대충 싸 들고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나를 마주 하고 싶었다. 벼랑 끝에서도 어깨에 달린 날개를 믿으며 내달렸던 젊은 날의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세월을 함께 보낸 날개가 다시 펼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풍파에도 잘려 나가지 않고, 꺾여있다 할지라도 어깨에 붙어있길 바라며 벼랑 끝으로 걸어갔다. 다시 펼칠 수 있을까?
--- 「내게도 날개가 있을까?」 중에서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던져 넣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시간을 모아 속도를 조절할 수는 없을까.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생활 속에서 나를 잃지 않고 나만의 모습을 지켜가며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그의 작품을 만난 것처럼, 오베르 쉬르 와즈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작품을 만난 것처럼, 이 땅에 발 딛고 서있지만 내 모습 그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과 휴식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꿈의 길 위에서 꿈꾸는 푯대를 향해 집중하고, 걸어가는 과정을 즐길 수는 없을까. 그 과정 자체가 꿈이 될 수는 없을까.
수많은 물음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 「프랑스의 작은 마을」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왜? 도대체 왜? 건축을 그만두었을까?’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졌다. 잠시 침묵이 흐르며 먼 산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며 웃었다.
‘잘했어! 잘살고 있어!’
한마디로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그 어떤 위로보다도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그 또한 그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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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슬며시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새로운 꿈에 대한 갈망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도 넘어지고 깨어지고 울었다. 새 궤도에 들어서고, 얼마지 않아 서로가 만나게 되었다. 너와 나, 혹시 필연?
--- 「그와의 만남」 중에서
건물 내부는 중정형으로 네 벽면을 따라서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고, 가운데 공간은 1층부터 4층까지 뻥 뚫려있었다. 빼곡이 진열된 것은 그로스(gross)였다. 인체의 각 조직을 박제한 것이다. 질병에 따라 조직이나 기관에서 각기 다른 특징적인 소견을 볼 수가 있다. 각 기관을 분류해 서로 다른 층에 배열하고, 수많은 질병에 걸린 그로스를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공부하다가 육안 소견을 배우기 위해 박물관에 와 있는 학생들도 몇 명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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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 꼭대기 층에서 예전의 꿈을 이루는 것을 상상하고, 의대 박물관에 와서 지금의 꿈을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갈지 그려보게 되었다. 꿈이 더 생생하게 그려지고, 이루어지는 현실까지 희미하게 마음에 그려볼 수 있었다. 예측 불가인 이 여행, 어디까지 나를 이끌고 갈까.
--- 「영국의 의대 박물관」 중에서
24일 동안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많이 했다. 스스로에게 참 괜찮은 일을 햇다.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서 실컷 보았다. 듣고 싶은 음악도 실컷 들었다. 다니다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들어가서 실컷 구경했다. 머무르고 싶은 곳이 보이면, 유럽인처럼 에스프레소를 하나 시켜놓고 멍하니 시간이 멈추는 경험도 하였다. 함께 있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살피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요구하고, 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시간을 보내었다. 여행할 때는 몰랐는데, 돌아와서 보니 나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 그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