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004 - 산책 - “느릿느릿 혼자, 또는 왁자지껄 함께”
나는 느린 걸음으로 온갖 해찰을 하며 빈둥거리며 걷는 산책을 그림책만큼 좋아합니다.
“나는 편안하게 걷다가 마음 내킬 때 멈춰 서는 것을 좋아한다. 날씨가 좋을 때 서두 르지 않고 아름다운 동네를 걷는 것. 그리고 다 걷고 나서 유쾌한 대상을 만나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내 취향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이다.”
18세기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산책에 대해 했던 말입 니다. 루소는 삶의 끝자락에서 산책을 통해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그 내적 성찰의 기록을 남깁니다. 그 기록이 바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문학동네)이란 책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이라는 가정문을 제시하면 끔찍하다, 암흑이다, 도저히 상상조차할 수 없다 등 더 이상의 강한 감정 표현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결코 산책할 수 없다는 명령이
나에게 내려진다면 바로 책이 없는 세상만큼이나 끔찍하고 앞이 깜깜할 것 같습니다.
『걷기의 인문학』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걷기’라는 가장 보편적인 행위가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행위라고 예찬하는데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걸으면서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 걷기의 장점에 대해 끝없이 수다를떨 수 있으니까요.
화산이 폭발할 듯 화가 났을 때 현관문을 열고 바깥 공기가 스미는 순간 화가 스르르 녹는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느끼며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 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된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풍요로워지며 창작의 에너지가 샘솟는다, 마음속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어 외롭지 않다, 산책길에 만난 고양이, 곤줄박이, 이제 막 피어난 매화꽃이 가슴에 들어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피어난다….
걷기에 관한 한 무한한, 하염없는, 대책 없는 사랑 때문에 걷기라든가 산책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책은 자석에 이끌리듯 마음의 주머니에 담습니다. 혼자 걷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걷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걷고 맑은 날엔 흘러가는 구름과 함께 걷습니다. 코가 떨어져 나갈 만큼 추운 날엔 산책에 관한 책을 읽다가, 어느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너처럼 나도』 - 장바티스트 델 아모 글, 폴린 마르탱 그림, 문학동네
동글동글 귀엽고 친근한 그림과 쉽고 간결한 글 속에 공감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왼쪽 면에는 각기 다양한 동물들이, 오른쪽에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동물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처럼 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너처럼 나도 때 론 행복하고 슬픈 감정이 있고, 캄캄할 때 혼자일때 너처럼 나도 겁이 나고, 너처럼 나도 나만의 개성이 있고, 너처럼 나도 아름답고 부서지기 쉬운 이세상의 일부라고요. 모습은 달라도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가지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요.
너처럼 나도, 나도 너처럼이라는 말, 소리 내어 말해볼수록 연대의 따스한 기운이 스미며 왠지 위로 받는 느낌이에요. 너와 나를 옆에 나란히 두는 마음 결은 성숙한 공감의 시작점이자 기본입니다.
--- 본문 중에서
Theme 014 - 뭉클, 와락, 울컥 - “잔잔하다가 또르르”
자고 일어나면 흉포한 사건, 사고가 쏟아집니다. 힘들고 지친 삶에 여유가 없다 보니 어떤 인내나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불행한 뉴스는 사람들 마음을 그늘지게 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이야기가 절실한 이유이지요.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아픈 상처에 공감해주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자리에 좀 더 민감한 편인 출판계에서 힐링 에세이가 대세인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슬며시 마음으로 흘러든 따듯한 이야기는 마음을 순하게 하는, 마음에 잠깐의 여유를 갖게 하는 마법이 있습니다.
SNS에서 만났던 사진 한 장이 떠오릅니다. 비 내리는 날 오들오들 떨며 우산 속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 길을 가다 빗속에 떨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고서 쓰고 있던 우산을 고양이에게 씌워주고 빗속을 뛰어갔을 그 누군가의 마음결에 스르르 스며들고 맙니다. 창가에 놓인 식물이 햇살을 향해 뻗어나가듯, 사람들 또한 햇살처럼 따뜻한 이야기에 저절로 감화합니다.
삶의 공간에서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다면 더없이 좋겠지 만,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면 따듯한 그림책을 자주 들여다보는 수밖에요. 바람이라면 산
들바람 같고, 비라면 보슬비 같고, 계절이라면 애기쑥 뾰족뾰족 올라오는 봄날 같고, 물이라면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고, 그 옛날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둔 하얀 공깃밥 같고, 소곤소곤 귓속말 같은, 무엇보다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그림책들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저녁 어느 때, 마음 둘 곳 없이 허허로울 때, 따듯한 그림책을 품어보세요.
『그해 가을』 - 권정생 원작, 유은실 글, 김재홍 그림, 창비
글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읽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글과 그림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태준의 단편소설이 김동성 화가의 그림옷을 입고 새롭게 탄생한 그림책 『엄마 마중』이 떠올랐어요.
권정생 선생님의 산문을 유은실 작가가 매만지고 다듬어 김재홍 화가의 그림으로 『그해 가을』은 재탄생했습니다. 세 분의 만남이라니, 읽기 전부터 가슴이 울렁거렸지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예배당 문간방에 사는 청년 권정생이 지체장애를 가진 열여섯 살 창섭이를 만난 이야기예요.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이곳에 창섭이가 가끔 찾아오곤 했답니다. 비 오는 어느 해 가을, 흙투성이 바지도 걷어 올리지 않은 채 찾아와 배고프다고 말합니다. 그때서야 글쓰기에 몰두해 있던 청년 권정생도 허기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참기 위해 나란히 누워 찬송가를 불렀는데…. 창섭이가 문간방 앞에 서 있어도 쉬이 말을 걸어주지 않자 창섭이가 내뱉은, “서새니도 냉가 시치?”라는 말. 청년 권정생의 가슴에 화살처럼 내리꽂혔습니다.
그림 하나하나 시선을 뗄 수 없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세 장면이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본문 속에 등장하지 않은 표지만을 위한 표지 그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슬픔 가득한 창섭의 눈빛, 그리고 마지막 성경책 그림. 하필이면 계절이 가을이었고, 하필이면 비까지 내렸을까요?
--- 본문 중에서
『7년 동안의 잠』 - 박완서 글, 김세현 그림, 어린이작가정신
요즘 개미마을엔 흉년이 들어 광이란 광은 텅 비어 있습니다. 부지런한 일개미들은 멀고 험한 곳까지 헤매고 다니지만 저녁이 되면 지칠 대로 지쳐 빈손 으로 돌아오기 일쑤였지요. 이런 힘든 시기에 어린 일개미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어요. 그 무엇과 비할데 없이 엄청 크고 싱싱한 먹이를 발견했대요. 늙은 개미와 다른 일개미들이 어린 일개미를 따라 먹이가 있는 곳으로 갔어요. 그런데 마을에서 존경받는 늙은 개미가 먹이를 찬찬히 살피더니 매미의 애벌레라고 합니다. 순간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지요. 일개미들은 자신들이 땀흘려 일할 때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온종일 노래나 부르는 이 팔자 좋은 놈을 얼른 가져가서 먹자고 하는데…. 어딘지 연륜이 있어 보이는 늙은 개미의 생각은 다르지 않을까요? 한철 노래부르기 위해 어두컴컴한땅 속에서 7년을 기다려온 매미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 한국적 미를 담뿍 담은 김세현 화가의 그림으로 또 한 권의 멋진 그림책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림책을 즐기는 독자로서 그 기쁨의 크기란 가늠할 수가 없네요. 항상 정성에 정성을 더하는 김세현 화가는 이번에도 자연을 그대로 담고자 애쓰셨다는데요. 땅은 안동 찰흙으로, 매미는 천연 광물성 안료로 채색하셨다니, 깊은 색감과 개미 한 마리 한마리에 생동감이 가득한 그림을 기대하세요.
『수박이 먹고 싶으면』 - 김장성 글, 유리 그림, 이야기꽃
푹푹 찌는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싶습니다. 크기도 큼직해서 여럿이 나눠 먹기 에도 풍족하고요. 그렇게 더운 여름날, 수박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냐고요? 맞아요. 집에서 가까운 가게에 가서 사오면 되는걸요. 요즘엔 바로 시원한 수박을 먹을 수 있도록 냉장 보관한 수박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게의 수박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수박한 조각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수많은 땀과 시간과 날씨가 필요하답니다. 봄에 심은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온 땅을 덮을 기세로 쭉쭉 넝쿨이 뻗어 나가고, 바로 그즈음 초록색 이파리 사이에서 보일 듯말 듯 노란 꽃을 피웁니다. 그러고는 시든 노란 꽃자리에 쥐눈이콩만 한 수박이 열리더니 귤 크기만 하게 자라고, 사과 크기만 해지고 어느새 멜론 크기 만큼 쑥쑥 자라더니 진짜 수박이 됩니다.
우리 입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곡식과 과일은 날씨의 도움을 받으면서 오랜 시간 기다림과 누군가의 수고로운 땀방울과 정성이 이루어낸 또 하나의 생명들입니다. 당당하게 돈을 낸 대가로 가져온 수박이지만 수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가슴 가득 차오르게 됩니다.
『이제 곧 이제 곧』 - 오카다 고 글, 오카다 치아키 그림, 천개의바람
두 번 반복해서 말하는 ‘이제 곧 이제 곧’이라는 말속에 설렘과 기대, 서두르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요?
매일 도토리만 먹으며 겨울을 나고 있는 토끼 가족이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는 아직 봄을 모르는 보보에게 말해 주었지요. 이제 곧 봄이 오면 날이 따뜻해지고,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다고요.
봄이 오면 또 보보가 더 높이 뛸 수 있고, 좋아하는 나무에도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요. 나무에 올라가면 바다도 볼 수 있고요. 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보보는 궁금하기만 합니다. 봄이 오는 건 어떤 건지, 이제 곧은 언제인지. 어느 날 아침, 밖으로 달려 나갔다가 돌아온 보보는 기쁜 목소리로 외쳤어요.
“엄마, 나 봄을 만났어요!”
벌써 봄이 온 걸까요? 보보가 만난 봄은 어떤 모습 일까요? 봄을 모르는 아이에게 봄에 대해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림책 북큐레이션 목록 수첩 만드는 법
『그림책의 책』은, 1. 그림책 북큐레이션이 필요한 분들에게 작은 팁을 제공하고, 2. 그림책 활동가들에게 수업계획안을 위한 실마리가 되어 주고, 3. 그림책 육아를 꿈꾸는 엄마들에게 좀 더 친숙하고 체계적으로 그림책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이 책은 15년 간 기록한 제님씨의 그림책 수첩에서 길어 올린 것입니다. 이 책을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만의 그림책 수첩을 만드는 것입니다.
첫 번째, 편견 없이 그림책을 고릅니다.
유명 작가와 멋진 그림이 주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그림책은 그저 읽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의 생명은 교감입니 다. 아이와 함께, 또는 친구와 함께 나누는, 그리고 기어이 나의 마음이 온전히 그림책을 통해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림책과 마음으로 교감해보세요. 말을 걸어오는 그림책을 만나게 될 겁니다.
두 번째, 그림책을 읽을 때 작가가 장난스럽게 숨겨놓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해 보세요.
여러 방향과 관점에서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데에 그림책의 묘미가 있습니다.
세 번째, 그림책과 일상을 연결 지어 보세요.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 그림책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 아이와 나눈 이야기, 그리고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들. 모두 그림책 에서 비롯된 새로운 이야기들이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그림책의 책』을 읽을 때는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볼필요는 없습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보고 싶은 걸보면 됩니다.
100가지 주제에 매일 쏟아지는 신간들을 추가하거나. 100가지 주제를 요리조리 요리하면 200가지가 넘는 주제를 가지치기 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새로운 주제가 만들어도 좋고요.
그림책 수첩에는 다음의 내용들이 담깁니다.
1. 책 제목, 작가, 출판사, 출간일 등 기본적인 서지사항, 2. 그림책의 키워드, 3. 읽은 날짜, 그림책 읽기 전, 읽는 중, 읽은 후의 여러 상황과 감정이 만들어 낸 짧은 단상. 아이와의 교감.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신에게도 그림책 수첩 한 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