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왼쪽 손목에 언제 첫 번째 줄을 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첫 번째 줄이 그때만큼은 꿰맬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대략적인 내 삶을 뒤돌아 봤을 때, 내 왼쪽 손목의 첫 번째 줄은
아마도 고등학교 입학 직후일 것이라 짐작한다.
--- p.17, 「첫 번째 줄은 기억나지 않는다」 중에서
언니의 소개로 찾아간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키가 아주 크고
서양인처럼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에 멋진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40대 중후반 남자였다.
내가 자라 온 이야기와 내가 겪은 사건들을 모두 듣고 난 뒤,
선생님은 내게 여러 가지의 심리 검사를 하자고 했다.
심리 검사 결과 내가 받은 진단명은 생각지도 못하게 많고 다양했다.
그중에는 예상대로 대인기피증, 곧 사회공포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경계성 성격장애였다.
선생님의 표현을 따르자면 경계성 성격장애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살을 하게 될지 모르는 중증의 병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나는 그랬다. 하루걸러 자해를 하기 일쑤였고, 밥을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매우 충동적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선로에 진입하는 열차를 보며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
아파트 10층인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나는 온통 충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 p.57~58, 「해서는 안 될 말」 중에서
16일의 입원 기간에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웠던 일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참지 못하고 연이의 멱살을 잡고 소란을 피운 날이,
멱살을 잡힌 채 동그랗게 눈을 뜬 연이의 순진무구한 표정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때때로 연이를 떠올린다.
지금은 서른이 넘었을 연이.
이제는 더 이상 환청에 시달리지 않는 연이를 만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녀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
--- p.85, 「연이」 중에서
그는 내 앞에서 울기를 잘했다.
그 곱고 예쁜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충동적인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가 흘린 눈물은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던 것임을
이제 나는 안다
--- p.104, 「충동」 중에서
왜 나를 두고 그분을 데려가셨는가.
그때의 나는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그분의 남은 삶을 내가 빼앗아 오기라도 한 듯 극렬한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그와 함께 내가 의자 위에 올라섰을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살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자살 기도를 하지 않았다.
미신적이지만,
혹여 그분의 몫이었던 남은 생이 내게로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자살 기도가 되기를,
내 인생의 자살 기도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람에 흐르듯 소상히,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하루하루 빌고 있다.
--- p.108, 「마지막이 되어 주소서」 중에서
모 공모전에 원고를 보냈는데,
정말이지 수상 소식을 전해 받았을 때의 그 기쁨과 설렘과 두근거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원고는 우수상을 받았다.
잘하면 동상 정도 받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우수상이라니!
날아갈 듯이 기뻤다. 수많은 고배 끝에 얻은 기쁨의 순간!
자신감을 얻은 나는 글쓰기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뒤 그림책 원고로 한 번 더 수상을 했다.
수상을 하는 것 자체도 좋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자존감이(비록 일시적일지라도) 한층 올라간 듯싶어 기뻤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길 글을 씀으로써 치유하기도 한다는데,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선 동화나 그림책 원고보다는 동시 쓰기에 푹 빠져 있다.
고 짧은 글줄이 품은 묵직하고 기품 있는 매력,
동시를 쓰며 깨달은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양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우리 인생 역시 그러하다는 것,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하기 때문에,
나는 살아야 한다.
--- p.119~120, 「수상」 중에서
“아프면 비명을 지르세요”
아프다고, 나 아프다고, 나는 상처받았으며,
그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 소리쳐야 한다.
죽음은 잠시 미뤄 둬도 괜찮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가까운 지인이든 아무도 없다면 대중에게라도,
나라에라도 소리쳐야 한다.
가해자를 찾아 가해자가 엄벌을 당하는 모습을 당신은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니 당신은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잘못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돌보고 당신 스스로를 보살펴주고 당신 자신을 안아 주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나는 아프다.’라고 소리쳐 말해 널리 알리는 것.
아픈 건 죄가 아니다.
아픔을 참지 마라.
나는 쓸게없이 아픔을 잘 참는 아이였다.
나 하나만 아프면 된다고,
내 가족까지 상처받고 아파선 안 된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아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독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기대했듯 내 가족이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당신을 아프게 했다면, 당장 비명을 질러라.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20여 년 혹은 그 이상 오랜 세월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을 살게 될지 모른다.
--- p.192~193, 「비명을 지르세요」 중에서
저는 대충 이렇게 저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보다, 평범했던 날들보다 아팠던,
눈물이 났던, 슬펐던 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또, 그 잣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요.
살아온 날들을 복기하며 과거를 꼼꼼하게 돌이켜보며 글을 쓴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내심 저는 예전보다 제가 많이 좋아졌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썼던 글 가운데 한 문장이 기억나시나요?
어느 정신과 의사가 제게 말했다고 했지요.
‘몸은 다 자랐지만 제 자아정체성 나이는 여섯 살에 머물러 있다.’고요.
맞습니다. 저는 그대로입니다. 조금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순간 저는 다시 여섯 살의 어린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곧 목 놓아 울곤 했습니다.
글을 쓰는 몇 개월 동안 밤마다 울었습니다. 때로는 근무 시간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우는 일로 그쳤다면 참 다행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 p.194~195, 「고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