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기관의 설계와 운영체제의 특징, 지식의 성격 변화, 주요 교육-학습 방법 변화 등의 측면에서 근대학교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설계되었는지 다시 살펴보고, 근대 산업사회에서 설계된 근대학교는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멀티미디어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현대사회에 더 이상 효용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또, 새로운 지식정보의 생산, 유통, 활용 방식에 적합하고,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로 무장한 포노 사피엔스에게 효과적인 새로운 학교의 건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았다.
부적응 학교를 변화된 환경에 적응시키는 것도 좋은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학교 시스템이 변화에 맞춰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었으니, 교정의 치료법이 아닌 단종(斷種)의 대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근대학교의 ‘종말’이라는 단어와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를 위한 학교의 ‘탄생’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단종을 통해 종말시키려는 학교는 ‘종이에 인쇄된 이론과 개념 중심의 국가 교육과정-지식전달 중심의 수업-관리와 통제 중심의 관료적 교육행정 시스템-줄 세우기식 상대평가’로 구성된 근대적 국민 교육을 위한 근대학교다. 근대학교는 강제로 교육시키는 학교, 공부를 지루하고 어렵고 하기 싫은 것으로 만드는 학교, 서로가 협력하지 못하게 하는 학교, 한 곳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학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지지 못하게 하는 학교, 통합과 융합을 방해하면서 분할하고 파편화하는 학교,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착각과 냉소를 키우는 학교다.
새롭게 탄생하는 포노 사피엔스 학교는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정보에 기반하여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학습 시스템을 통해 지식과 정보 활용 역량을 키운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면서 미래를 만드는 즐거운 배움의 연대가 꽃 피는 학교다. 현대사회의 지식은 입체적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삶과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지식은 학습자의 관심을 통해서만 제대로 습득되고 활용된다. 운전할 때 지나치는 주변풍경은 모두 눈에 들어오지만 대부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근대학교의 교육방식은 마치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게 하면서, 주변 풍경을 모두 외우라고 하는 편집증적인 광대 짓과 같다. 부적응 학교를 극복하고 학교와 교육을 혁신해야 하는 일이 당위였다면,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밀레니얼 세대, 포노 사피엔스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학습문화의 출현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를 태어나면서부터 접한 밀레니얼 세대들, 포노 사피엔스들은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습득할까? 그들의 방식과 인쇄된 매체, 종이책 중심으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고, 재생산하던 사람들과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며 활용하는 방식이 같을 수 있을까? 사고방식이 유사할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 시대에는 어떤 방식의 학습법이 좋을까? 아니,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 시대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포노 사피엔스들은 어떻게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관리하고, 학습하는가?
첫 번째 특징으로 이들은 지식과 정보를 순차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책의 첫 페이지, 머리말부터 차근차근 학습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은 포노 사피엔스들의 배짱(gut feeling)에 맞지 않는다. 이들은 직지심체(直指心體), 곧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 그 핵심은 학문이나 이론, 개념의 핵심이 아니다. 그들 마음, 관심의 핵심이다. 포노 사피엔스들은 ‘궁금한 것’에 바로 뛰어 들어간다. 가령, ‘우주 배경 복사’란 말을 들었는데, 그게 궁금하면 바로 구글이나 위키피디아에 접속해서 바로 검색한다. 온갖 모르는 단어들이 쏟아지겠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만 우선 이해하고 모르는 것들 중에서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하이퍼링크를 눌러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면 된다. 그러니 굳이 고대의 우주론부터 시작해서 빅뱅이론까지 순차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교과서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진화론과 창조론이 궁금하다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창에 타이핑하고 검색 버튼을 누르면 된다. 굳이 처음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발생과정, 세포의 형성과 진화, 하등동물에서 포유류까지 진화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생물 교과서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
포노 사피엔스들의 학습이 순차적일 필요가 없고 무작위적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네트워크다. 인쇄매체가 지식을 평면적으로, 선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디지털 네트워크는 지식을 입체적으로, 다차원적으로, 그물망 구조로 보여준다. 마치 우주에 수많은 별들과 행성들이 펼쳐져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인터넷 속에 구현되어 있다. 어디에서 시작하든 필요한 지식들은 빛의 속도로 찾아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각 노드마다 잘 모르는 지식이나 정보를 만나게 되면 그 노드와 연결된 다른 노드들을 통해 그 노드를 이해하고 위치 지울 수 있기 때문에 겁을 먹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을 하이퍼링크로 옮겨 다니면서 학습하는 방식은 인쇄된 매체에 기반해서 수형도를 따라가는 학습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학습법이다. 인쇄매체 기반의학습법은 장기적 에너지의 투입과 인내심, 자신을 비우고 타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겸손함(?), 전체적인 지식과 정보의 구조를 암기할 정도의 기억 용량 등을 요청했다면,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 학습법은 자신의 관심과 흥미, 재미와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는 동기, 자신의 방식으로 무모하게 네트워크를 헤집고 다닐 수 있는 담대함, 스스로를 연결된(connected)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 활용 역량이 필요하다.
포노 사피엔스들의 디지털 네트워크 학습은 이미 융합적인 학습법이다.
--- 「아무데서나 시작하고 하이퍼링크로 날아다닌다」 중에서
포노 사피엔스들은 근대학교의 교육법과 학습법을 따르지 않는다. 포노 사피엔스들은 반대로 배운다. 비유하자면 나뭇잎, 자신이 깊게 관심을 가지고, 자기에게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것, 현실의 지엽적인, 혹은 생활상 가까운 문제, 혹은 자신이 크게 관심을 가진 문제를 부여잡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그 나뭇잎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뭇잎이 달려 있는 샛가지를 살펴보고 그 안쪽의 굵은 가지를 살펴볼 뿐만 아니라, 나뭇잎에 쏟아지는 햇빛도 보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도 보고, 저 아래 나뭇잎이 떨어지게 될 땅도 쳐다보고, 심지어 나뭇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도 살펴보면서 신나게 돌아다닌다.
근대학교의 나뭇잎 수업 시간은 생물학에 머무는 반면, 포노 사피엔스들의 나뭇잎 학습법은 생물학에 머물지 않고 화학, 물리학, 지질학, 기후학, 지리학, 사회학 등등 수많은 것들과 그물망처럼, 마치 맑은 샘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 방울이 물속으로 퍼져나가듯이 3차원 공간, 다차원 지식정보망으로 번져 나간다. 밀레니얼의 학습법을 표현하자면, 정해진 길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전방향 교육법에 견주어 후방향 학습법(backward learning), 수형도를 따라가는 평면적 교수법(2D teaching)에 견주어 다차원 학습법(multi-dimensional learning), 혹은 브라운 운동형 학습법(Brownian Motion learn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학교의 전뱡향 교육법이 인쇄매체에 기반했기 때문이라면, 포노 사피엔스의 후방향, 다차원형, 유영형 학습법이 가능한 기반은 인터넷과 디지털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정보의 결합은 그동안 선형적(순차적)이고 평면형이었던 지식이 입체적으로구성되고 표현되고 제시될 수 있는 세계를 열었다. 이제 지식은 입체 그물망형 구조를 갖게 되었고, 포노 사피엔스들은 지식과 정보를 다차원적으로 인식하는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 「초점에서 사방팔방으로 네트워크를 유영한다」 중에서
이제 육체적인 힘을 써야 하는 고단한 노동에서 인간은 해방될 것이며 “마음을 쓰는 사람들”, 즉, 창조적이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맹자가 표현했던 “힘을 쓰는 사람들(노력자)”은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이상에 비추어 말하자면, 누구나 폴리스의 정치를 위해, 폴리스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노예들이 수행했던 일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이미 기계가 수행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의 선두에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밀레니얼에게 노동은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의 장이며, 수많은 사람과 함께 소통과 공유의 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은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우주를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재미와 놀이를 만들어 낸다.
약간 관점을 바꿔 말하자면, 밀레니얼은 창조적인 노심자, 지식과 정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인, 인공지능과 로봇과 함께 네트워크 속에서 즐겁게 협업할 수 있는 기계 친화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밀레니얼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삶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나아가 이제 근대 산업사회의 출현과 함께 제작되었던 자본주의적 직업윤리도 종말을 고할 것이다. 새롭게 형성되는 직업윤리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명확한 것은 이제 직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노동을 통해서만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더 이상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격언은 통용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물고기는 사람보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설계된 배가 다 잡아들여 더 이상 사람이 잡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제 물고기를 잡으려는 욕망과 고기잡이를 잘하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할 줄 아는 역량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는 ‘기본소득’ 담론은 귀담아 듣고, 우리나라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주제가 되었다.
밀레니얼을 위한 학교는 그들이 자유자재로 유영할 수 있는 무한한 지식과 정보의 우주와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밀레니얼을 위한 학교는 어른, 아이, 남녀, 선후배, 전문가와 초보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개방과 소통, 공유와 협력을 통해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하나가 되는 조직이다. 밀레니얼을 위한 학교는 피라미드형 관료체제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학교, 교육기관과 산업체, NGO-NPO 활동가와 교사-학생 등등이 서로 횡단하고 협력하며 연결되는 탈관료적인 네트워크다. 이제는 피라미드형, 수형도형 조직이 아니라 그물망 조직으로 연대하는 학교가 필요하다. 산업사회의 직업윤리를 대체하는 삶의 가치는 폴리스의 자유시민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시민정신이 될 것이다. 이제 밀레니얼 앞에서 근대학교는 종말을 고해야만 한다.
--- 「노동의 종말은 근대학교의 종말을 부른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