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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윤채선

걷는사람 시인선-031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 판매지수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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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1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50g | 125*200*20mm
ISBN13 9791189128975
ISBN10 1189128977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원더우먼 윤채선과 윤채선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걷는사람 시인선 31번 작품으로 피재현 시집 『원더우먼 윤채선』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 이후 4년 만이다. 시인은 이 시집이 “엄마의 무덤”이라고 했다. 시집 전반에 그 의미가 위트 있게 또는 반어적으로 스며 있어 원더우먼 ‘윤채선’과 ‘윤채선들’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무적의 원더우먼’인 동시에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평생을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윤채선’의 이야기가 순정하고도 습도 높은 언어로 새겨져 있다. “아버지는 엄마를 끔찍이 사랑했는데요/가령 엄마는 꼼짝 안 하고도 살 수 있었지요/반찬도 사다 주고 은행도 잔칫집도 아버지가 다녔지요//엄마는 그래서 밭에서 부엌으로 난 길만 알면 됐지요/아버지가 얼마나 끔찍이 엄마를 사랑했는지/가령 아버지 죽고 엄마는 은행 가는 길을 몰라/밭에다 구덩이를 파고 돈을 묻었어요/어떤 날은 그 돈을 파내 처음으로/읍내 마트에 두부를 사러 갔지요”(「얘야 나는 그만 살고 싶구나」)라는 대목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무성영화를 보듯 사실적이다.

또한 슈퍼맨 같은 원더우먼은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안치고 마당에 난 풀을 뽑고 밥을 푸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해서 달빛에 널고 뚫어진 양말을 다 깁고 잠깐 적의 공격을 받은 양 혼절했다가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밥을 안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밥을 하고 일을 하고 빨래를 하고 또 밥을 하고 그 많던 왕골껍질을 다 벗겨서는 돗자리를 짜”(「원더우먼 윤채선」)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삶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그와 비슷한 윤채선들의 삶이기도 하다.

해설을 쓴 김대현 문학평론가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노년의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마음 어딘가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고 평하며, 이 시집이 “시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와 같은 현실을 겪을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기는 진혼곡”이라고 표현한다. 안도현 시인은 시집 『원더우먼 윤채선』에 대해 “그의 손에 확성기는 없고 시인이 자분자분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오로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연약하고 안쓰러운 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피재현의 사모곡은 어머니에게 칭얼거리고 싶은 소년의 마음과 닿으면서 적지 않은 물기를 만들어 낸다.”라고 헌사하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부 소반에 콩 고르듯이

봄바람처럼
제비들의 회의
밀당
원더우먼 윤채선
앞니
비밀번호
엄마의 태양계
소반에 콩 고르듯이
비틀거리다
기지떡을 왜 좀 안 줘서
간호사들은 왜 엄마에게 반말을 하나
간호사들은 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나
국수는 싫어
겨울은 여기서 나자
제비꽃 보면

2부 냉이가 벌써 끝물이라는데

돈벌레
끝물 1
끝물 2
가을볕
포도는 맵다
난 좀 일찍 죽었으면 해
입원
환한 꽃들이 줄을 서서
푸른 소금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아빠 놀자
사랑
아배를 보고 오다

3부 아이처럼 배시시

포옹
사탕을 주세요

콩 한 되
수상한 피자 냄새
아침
아이처럼 배시시
컨설팅
김대중컨벤션은 너무 커
오래된 냄새를 한 움큼 들고
나는 한때 물고기였다
샛노란 파랑
락앤락
동민 여러분
소문이라는

4부 얘야 나는 그만 살고 싶구나

나는 또 화가 난다
엄마는 불쑥
요양보호사 보호하기
엄마는 그때 어디 있었어
장마
지지리 궁상
명자
민들레
일 인치만 줄여 주세요
어린이날은 고추 심는 날
환절기
먼 기억은 오래되어서 낡고
우화羽化
빈혈
얘야 나는 그만 살고 싶구나

해설
우리를 위한 진혼곡
―김대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주 잠깐 사이 풍을 맞아
말씀이 어눌해진 엄마를 병실에 눕혀 놓고
수발드는 봄날

나물국에 밥 말아 먹은 엄마는
입가에 이팝꽃처럼 붙은 밥알도 떼어 내기 전에
약을 찾고
혈압약, 뇌경색약, 우울증약
인사돌, 영양제, 변비약까지 한 손바닥
가득 쌓인 약 알갱이
두 번에 나눠 삼킨다

내가 빨리 죽어야 니가 고생을 않을 텐데
말로만 그러고 죽을까 봐 겁나서
꽃잎 삼키듯 약을 삼킨다

병실 창밖 한티재에는 산살구꽃도 지고
마구마구 신록이 돋아나는데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 어쩌나
봄꽃 지듯 덜컥 죽으면 어쩌나

내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지 맘대로 분다
---「봄바람처럼」중에서

오늘 내가 안 가면 엄마는 환장할 것이다
날 이런 데 버려 놓고 와 보지도 않는다고
나는 고만 죽을란다고 내 죽으면 다 편할 일이니
수면제 탁 털어 넣고 죽어불란다고
온 병실 귀먹은 할망구한테도 다 들리게 소리칠 것이다
그럼 한 할망구가 나서서 여보소 김천댁,
아들도 먹고 살아야지 어예 맨날 들따보니껴
나랑 민화투나 한 판 하시더
하면서 엄마를 달랠 것이다
어떤 할망구는 고만 혼자 놀아도 되겠구만 또 저런다
지청구를 할 것이다 이런 참에 내가 나타나면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바쁜데 멀라꼬 왔노,
고만 가라, 가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허리며 다리며 아픈 곳을 주워섬기며
에구구구 죽는소리를 할 것이다
그럼 내가 바쁘다고 엄마 보러 안 오나? 하면서
짐짓 효자인 척 엄마 위세를 좀 세워 준 다음
어깨를 주무르며 내일부터는 내가 정말 바빠서
한 며칠 못 온다, 혼자 좀 있어라 하면
엄마는 또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외로 꼬고
괜찮다 일 봐라 돈 벌어야 먹고살지
일 봐라 할 것이다 나는 내일 저녁 무렵에나
몰래 와서 엄마가 뭐 하고 노시나 빼꼼히 들여다봐야겠다
고만고만한 것 같으면 그냥 돌아가야겠다
엄마가 너무 시무룩하여 엄마 없는 아이처럼 가여우면
‘짠’ 하고 나타나 병실에 복숭아 통조림 한 통씩 돌리고
엄마 위세나 세워 줘야겠다
그러면 엄마는 또 달짝지근한 복숭아 향에 취해
한 며칠 덜 아프게 살아질 것이다
---「밀당」중에서

할머니가 된 원더우먼 린다 카터를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때, 엄마 생각이 났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팽개치면 텔레비전이 있는 마당집에 모여 별무늬 반바지를 입은 원더우먼을 만났다 무적의 원더우먼! 엄마는 하루 종일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안치고 마당에 난 풀을 뽑고 밥을 푸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해서 달빛에 널고 뚫어진 양말을 다 깁고 잠깐 적의 공격을 받은 양 혼절했다가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밥을 안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밥을 하고 일을 하고 빨래를 하고 또 밥을 하고 그 많던 왕골껍질을 다 벗겨서는 돗자리를 짰다

린다 카터는 할머니가 되어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았다 무기는 더욱 강력해지고 그사이 새로 생겨난 영웅호걸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기도 한다 나의 엄마는 여전히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약을 먹고 밥을 하고 냉이를 캐고 약을 먹고 콩을 고르다가 밥때를 놓쳐서 아버지에게 된통 혼쭐이 나고 돌아앉아서 약을 먹고 이렇다 할 전투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끙끙 앓으며 잠을 잔다 무릎과 입안에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긴 했는데 별 효과가 없다 전동으로 움직이는 슈퍼카를 구입했지만 슈퍼맨을 만나기는커녕 평생 웬수 아버지와 산다 린다 카터는 은퇴를 선택했지만 엄마는 아직도 우리의 원더우먼, 쭈그렁 가슴이 무너져 내려도 별무늬 몸뻬를 입고 혼절한다
---「원더우먼 윤채선」중에서

엄마는 병원에 누워서 제일 먼저
돈 숨겨 둔 곳을 가르쳐 주었다

냉장고 밑바닥 물받이에는 오백 원짜리가
장독 밑에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뒤늦게 들어온
이웃 부좃돈이 봉투째 숨어 있었다

오래 비워 둔 집에서는 엄마가 말하지 않은
여러 곳에서 돈이 나왔다
싱크대 깔개 밑에서는 제법 큰돈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돈을 믿고 살았구나

남편도 자식도 아니고
엄마는 돈을 믿고 살았구나
악착같이 돈 모으는 재미로 아픔을 잊고
돈 좀 모이면 니 신세 안 진다
큰소리도 치며 버텼구나
---「돈」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시인의 말

곁이라는 말의 곁에

내 곁에 엄마가
엄마 곁에 아부지가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누운 적은 없다

아부지가 죽고 엄마가 죽고

이 시집은 엄마의 무덤이다

엄마, 얼른 나를 용서해 줘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자기를 겉으로 내보이지 않고 숨기면서 모호성의 문턱에 시를 데리고 가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때에 피재현의 시는 그와 정반대의 방향에서 자신의 거처를 만든다. 아예 다 보여 주겠다고 작정한 듯이 벌거벗고 거리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의 손에 확성기는 없고 시인이 자분자분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오로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연약하고 안쓰러운 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피재현의 사모곡은 어머니에게 칭얼거리고 싶은 소년의 마음과 닿으면서 적지 않은 물기를 만들어 낸다. 아주 사적인 체험이 보편적인 공감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시인이 애초부터 시를 통해 에헴, 하고 위세를 부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순정하고 습도 높은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관계를 탐구하는 시인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 준다. 시인이여, 부디 이 핍진성의 엔진을 오래 가동하시게나. 시간이 되거든 안동 풍산 장터의 중국집에 가서 독한 ‘빼갈’이라도 한잔하세.
- 안도현 (시인)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고맙고 반가운 시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p*****9 | 2021.01.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처음 빨간색 표지에 노란 V자가 강렬하게 디자인된 피재현작가의 시집을 보고 소개된 시집의 내용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집을 다 읽은 후, 강렬한 색채의 그 표지가 오히려 어머니를 더욱 생생하고 유쾌하게 시집 속에서 살아계시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무덤이 되었다는 이 시집에는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의 엄마가 생생하게 살아서;
리뷰제목
처음 빨간색 표지에 노란 V자가 강렬하게 디자인된 피재현작가의 시집을 보고 소개된 시집의 내용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집을 다 읽은 후, 강렬한 색채의 그 표지가 오히려 어머니를 더욱 생생하고 유쾌하게 시집 속에서 살아계시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무덤이 되었다는 이 시집에는 글자도 모르는 까막눈의 엄마가 생생하게 살아서 밭에 파묻어둔 돈을 호미로 캐어오고, 요양원에서 다른 할머니들에게 아들이 임플란트를 해준다고 자랑을 하고, 작은 간식거리 하나에 삐지고, 밀당하던 아들을 만나면 아이처럼 배시시 웃기도 하신다. 너무 비싼 앞니 임플란트는 못한 채 앞니 없이 소고기를 드시고 원더우먼처럼 많은 일을 하신다.

그렇게 펄펄 살아있던 엄마의 불씨가 찬 바람과 함께 꺼지고 난 후 시인이 시어로도 차마 다 표현하지 못했을 깊은 그리움과 슬픔이 온마음으로 느껴졌다.

시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었다. 고생했다고. 엄마는 그 아들이 있어 한 세상 조금은 더 기쁘게 살다 가셨을거라고.

시 한 편 한 편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생각에 잠기고 또 잠기며 마음을 쓸어내리듯 읽어나간 이 책은 그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게 했다. 어머니와의 하루 하루를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보냈을 작가의 하루 하루와 그 마음들이 시집 전체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분명히 마음 속에 있었을 어머니와의 이별에 대한 두려움, 안타까움, 아쉬움이라는 삶의 무거운 숙제를 조금은 가볍고 의연한 자세로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감당해나가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용기가 느껴졌다. 어찌보면 이 시집은 어머니께 드리는 사모곡인 동시에 어머니를 떠나보내야만하는 자신에게 주는 위로의 몸부림과 같은 것이다. 그의 독백에 담긴 외로운 고뇌의 싸움이 시간과 공간을 뚫고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내 어머니가 떠올라 더욱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에게 영원히 원더우먼이었으면 좋을 모든 어머니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병이 들고 힘을 잃고 때로는 생각마져도 잃는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 과정을 함께 겪고 아프게 지켜봐야하는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게다.
이 시집은 그것을 담담하고도 단단히 그려내고 있어서 내게 그러했듯이 읽는 이들의 마음에 많은 위로를 줄 것이다. 고맙고 반갑다.

빨갛고 노란 표지 만큼이나 밝고 씩씩한 얼굴로 아들의 시집을 들고 웃고 계실 것만 같은 원더우먼 윤채선님의 명복을 빈다.
분명 봄꽃처럼 환히 웃고 계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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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원더우먼 윤채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정*네 | 2020.12.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엄마는 얼마만한 존재일까요?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모두였습니다.#피재현 시인은 그 엄마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이름 없이 한 평생을 산 엄마의 이름을...그 엄마의 이름은 『원더우먼 윤채선』이었습니다.--- * 봄바람처럼 / 피재현 아주 잠깐 사이 풍을 맞아말씀이 어눌해진 엄마를 병실에 눕혀 놓고수발드는 봄날 나물국에 밥 말아 먹은 엄마는입가에;
리뷰제목

*

엄마는 얼마만한 존재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는 모두였습니다.

#피재현 시인은 그 엄마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이름 없이 한 평생을 산 엄마의 이름을...

그 엄마의 이름은 『원더우먼 윤채선』이었습니다.

---

 

* 봄바람처럼 / 피재현

 

아주 잠깐 사이 풍을 맞아

말씀이 어눌해진 엄마를 병실에 눕혀 놓고

수발드는 봄날

 

나물국에 밥 말아 먹은 엄마는

입가에 이팝꽃처럼 붙은 밥알도 떼어 내기 전에

약을 찾고

혈압약, 뇌경색약, 우울증약

인사돌, 영양제, 변비약까지 한 손바닥

가득 쌓인 약 알갱이

두 번에 나눠 삼킨다

 

내가 빨리 죽어야 니가 고생을 않을 텐데

말로만 그러고 죽을까 봐 겁나서

꽃잎 삼키듯 약을 삼킨다

 

병실 창밖 한티재에는 산살구꽃도 지고

마구마구 신록이 돋아나는데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 어쩌나

봄꽃 지듯 덜컥 죽으면 어쩌나

 

내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지 맘대로 분다

 

 

* 입원 / 피재현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키는 작지만 한때 사람 키만 한 우엉 뿌리를

쑥쑥 뽑아 올렸어요

내 참 기가 막혔거든요

지심 뽑느라 손마디가 휘고 더덕 같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칼국수의 달인으로 통했어요

그 일정한 두께며 칼질이라니

지금은 몹쓸 병에 걸렸어요

약을 안 먹으면 손을 떨어요 이빨도 다 빠지고

무릎 연골을 갈고 귀도 점점 어두워지네요

간호사님들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반말을 해도 좋아요 소리를 질러도 좋아요

그러나 엄마 팔에 주삿바늘을 꽂을 때는

소아과에서처럼 친절하게 엄마를 얼러 주세요

회진을 돌 때는 엄마처럼 작은 키가 되어서

엄마의 눈을 들여다봐 주세요

그러면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수줍게 웃을 테고

앞니 없이 웃을 때의 그 귀여움이라니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요 간호사님들

 

 

* 소반에 콩 고르듯이 / 피재현

 

엄마 옆 침상의 할머니는 엄마보다 열 살이

많아서 올해 아흔한 살이고

엄마의 병동에서 오 년 차 왕고참이다

 

어제도 오늘처럼 가을비가 내렸고

앞방 할배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데

엄마가 꼭 죽은 어매 같다는 왕고참 할머니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으면서 어제 죽은

영감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 내외가 같이 들어왔는데요

치매 걸린 할망구를 그 영감이 때때로

들여다보고는 죽을상이 되어서는 제 방으로

가곤 했는데요

한 며칠 안 보이더니 어제 죽었어요

좀 덜 바쁠 때 죽지, 꼭 명절 앞두고 바쁠 때

많이들 죽어요

여기는요

 

소반에 콩 고르듯이 사람이 죽어 나가요

저 보소 저 할망구

지 서방 죽은 줄도 모르고 뭐가 좋아서

또 춤을 추네요

 

소반에 올라앉은 콩처럼

여섯 할망구가 들어앉은 요양병원 병실에서

나는 모두들 실한 콩이 되어 오래오래

소반 위에 앉아 계시라고

두유 한 통씩을 돌리고는 엄마 자리로 돌아와

엄마는 아직 실한 콩인가 한참 들여다보았다

 

 

*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 피재현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 포옹 / 피재현

 

누가 나를 좀 안아 줘

나와 같은 체온이

내 밖에

또 있다는 것을

알려 줘

 

 

* 빈혈 / 피재현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 적 있었지요

아부지 죽고 한 열흘 지나 새벽에 일어나

엉엉 울었지요 아내 몰래 뒷방으로 가서

 

퍼질러 앉아 울고 나니 말갛게 해가 떴지요

어느 해 여름에는 파도치는 바닷가

빈혈로 노래진 등대를 붙잡고 펑펑 울었지요

그날은 하루 종일 울어서 해거름에는

나도 슬쩍 빈혈이 왔었지요

 

모과꽃 한창일 때 엄마 죽고 검은등뻐꾸기는

새벽마다 곡을 하는데 눈물이 안 나요

빨리 울어야 할 텐데 그래야 엄마도 날

용서할 텐데 그 많던 눈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과는 그사이 젖살이 올라

제법 대추 알만큼 컸는데 눈물이 안 나요

엄마랑 문지방에 나란히 앉아 먹던

쑥떡 생각 자꾸 나서 목만 막히고 눈물이 안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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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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