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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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6쪽 | 184g | 152*224*5mm |
ISBN13 | 9791197182204 |
ISBN10 | 1197182209 |
발행일 | 2020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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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6쪽 | 184g | 152*224*5mm |
ISBN13 | 9791197182204 |
ISBN10 | 1197182209 |
겨울서점 유튜브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요. 사실 어린 왕자는 매우 유명한 책이고 많이 접해본 책이지만 정작 읽어보진 않은 책이었어요. 몇년 전에 이북으로 구매해놓고 여태 읽지 않은 책이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용을 더 잘 이해한 상태로 경상도 사투리 버전인 책을 읽고 싶어서 먼저 어린 왕자를 읽어 보았습니다.
동화 같은 전개이지만 어린이를 위한 책은 아닌 어른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런 책으로 유명했던 책이지만 읽어 보니 새삼 그 사실이 다가왔어요.
같은 내용을 사투리로 읽으니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구요.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단어는 검색을 하며 읽었는데 표준어와는 다른 울림을 주었어요.
사투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좋은 취지의 책이라 읽으면서도 맘이 따뜻해지는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하면 1순위로 꼽히곤 하는 게 ‘어린 왕자’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물론 좋지만 가끔은 프랑스어로 된 원작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해 보고는 한다. 아무래도 번역자의 가감이 없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도 아닌 ‘애린 왕자’라고 적힌 제목이 독특했다. 그림은 분명 내가 아는 어린 왕자였는데. 책 하단 쪽에 글쎄 ‘갱상도’라고 적혀 있었다. 대체 이것이 무어란 말인가! 저자의 말부터가 격한 억양을 머금은 경상도 사투리로 돼 있다. KTX를 타면 서울에서 포항을 두 시간 반만에 갈 수 있는데, 왜 언어만큼은 서울말을 사용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지. 사투리로부터 탈피하려 애를 쓰다가도 어느 시점에선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방언에 대한 저자의 말에 싱긋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거주 지역과 상관없이 누구나 읽으며 성장했을 이야기를 이 참에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로 적어보는 참신한 시도라니. 프랑스어 버전보다 어쩌면 더 화려한 ‘애린 왕자’를 난 그렇게 읽게 됐다.
다 아는 내용이므로 처음에는 금방 읽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표현 하나하나에 매달리다 보면 ‘소화될 때까지 반 년을 들누바가 잠만 잔다카이 머 이린 기 있나 싶어가’ 같은 쉬운 문장 앞에서도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대체 ‘들누바’가 뜻하는 바가 무얼까? 겨우겨우 표현들의 의미를 유추해가면서 읽자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진지함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싶어 그 때부터는 잔소리하는 가상의 할머니가 날 붙잡고 이야기를 건네는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더 허패 디비끼는 기는 으른들이 속 비는 기나 안 비는 기나 보아뱀은 고마 치아뿌고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라카데.’ 서울말을 구사하건 타 지역 말을 내뱉건, 국영수를 중심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라도 되는 모양이다. 제 몸보다 훨씬 큰 코끼리를 집어 삼킨 보아뱀 따위는 이 세상 어른들 누구로부터도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문장을 읽으며 뜬금없이 깨달았다.
어린왕자가 구사하는 사투리는 살짝 놀랍기도 했다. 어른들이 죄다 사투리를 사용한다면 아이도 마찬가지인 게 당연할 텐데도 난 사투리 쓰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고려해 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이는 서울을 벗어나 살아 본 적 없는 이의 무지이자 오만함이었다. 어린왕자가 대구, 부산 혹은 경상도 어딘가에서 지구 언어를 익혔을 경우 가능할 것만 같은 대화를 엿보는 일은 신기했다. 이야기 안에 속한 등장인물들은 상대의 사투리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B612라는 정체불명 행성에서도 지구인과 같은 언어를, 그것도 사투리를 사용한다면, 어쩌면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덜 무궁무진할 수도 있겠다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은 실로 컸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길들이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은 백미다. 사투리로 이를 표현하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지를 확인할 수도 있었다.
“니는 여즉 내한테는 흔한 여러 얼라들하고 다를 기 없는 한 얼라일 뿌인기라. 그래가 나는 니가 필요없데이. 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제. 나도 마 시상에 흔해빠진 다른 미구하고 다를끼 하나도 없능기라. 군데 니가 나를 질들이모 우리사 서로 필요하게 안되나. 니는 내한테 이 시상에 하나뿌인기라. 내도 니한테 시상에 하나뿌인 존재가 될 끼고……”
진심은 통한다고 하였던가. 참 투박한 거 같은데 코끝이 찡한 까닭은 무언지. 이는 생텍쥐페리의 위대함 때문일까, 경상도 사투리의 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