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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일기

: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위근우 | 한울 | 2020년 12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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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습니다] 미리 만나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 한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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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40*205*30mm
ISBN13 9788946069961
ISBN10 894606996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섬세하고 치열한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


여성혐오와 일상의 폭력이 난무하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필연적인 프로불편러”여야 한다고 말하는 웹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가 섬세하고 치열하게 3년 반 동안 써온 글 85개를 선별하여 『프로불편러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다. ‘#1 새 시대의 야만’, ‘#2 프로불편러 일기’에는 동시대의 시민이 프로불편러로 거듭나게 하는, 일베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고 여성혐오 등 다양한 분야의 비이성적이고 반맥락적인 품위 없는 양상에 대해 비판하는 글들을 담았다. ‘#3 그들과 나와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대중문화 및 인물 비평을 통해 불편함과 불합리함 너머의 긍정적인 모델들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 세상에는 여전히 부당한 것들이 많기에, 함부로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프로불편러’ 선언이 자기긍정의 표현인 이유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위근우 같은 섬세하고 치열한 프로불편러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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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도 프로불편러일까3

#1 새 시대의 야만

일베, 새 시대의 야만 12 / 〈방과 후 전쟁활동〉,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 16 / 디스패치는 옳은가 19 / 국정원이라는 슈퍼히어로의 맨얼굴 24 / 오심하는 야구에는 희망이 있을까 28 / 윤서인과 〈조선〉, 이토록 후안무치한 세상 32 / ‘개저씨’라는 말이 싫어요? 36 / 아이돌 각자도생의 시대 41 /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달관을 강요당하는 청춘으로 산다는 것 45 / 〈뷰티풀 군바리〉, 이토록 어글리한 만화 49

#2 프로불편러 일기

#2-1 문명인이 됩시다
웰컴 투 더 〈송곳〉 월드 54 / 〈미생〉, 삶의 가장 비루하고 아름다운 순간 57 / ‘뇌섹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61 / 우리 밖의 일베와 실전에서 싸우는 법 65 / 이지성의 인문 고전 독법, 믿을 수 있을까 70 / 이번 주에도 타일러는 살아남았습니다 75 / 그 진중권은 어디로 갔을까 80 / 메갈리안, 분노가 이긴다 84 / 아이유의 잘못, 평론가의 불성실, 대중의 선택 88 / 문명인이 됩시다 96 / 〈장도리〉와 〈본격 시사인 만화〉, ‘헬조선’의 독자를 위하여 100 / 인디 음악계는 왜 여성을 존중하지 않나 104 / 평양냉면이라는 권력 108 / 〈시사IN〉을 절독하는 정의의 파수꾼들 112 / 여중생 A, B, C의 사정 116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보다 오래된 병 126

#2-2 저는 레드라이트입니다
〈마녀사냥〉, 저는 레드라이트입니다 132 / 너무 아픈 드라마들 136 / 걸 그룹 ‘먹방’을 마음 편히 볼 수 없게 된 이유 140 / 〈어쩌다 어른〉, 어쩌다 꼰대 144 / 〈수방사〉, 못난 수컷이 되고 싶지 않다면 148 / 〈K팝스타〉와 〈복면가왕〉은 왜 이렇게 ‘역대급’이 많아? 152 / 〈맥심〉은 세상에 무해한 잡지일까 156 / 옹달샘은 과거를 어떻게 세탁하는가 160 /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여성의 패배를 원한다 164 / 김제동의 공감 토크에 공감하기 어렵다 168 / 〈외모지상주의〉, 대중을 기만하는 1등 웹툰 172 / 최진기의 조선미술사 강의는 왜 잘못됐는가 177 / 걸 그룹 극한 직업 181 / 〈아는 형님〉, 아재들을 위한 야자타임 185 / 〈미운 우리 새끼〉, 아버지 없는 가부장 예능 190 / ‘샤샤샤’는 이제 그만 194

#2-3 언론이라는 이름의 환자
대안 언론은 ‘기레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0 / JTBC 뉴스의 외롭고 의로운 싸움 205 / TV조선, 우민화를 꿈꾸는 1등 신문의 재림 209 / 이영돈 PD가 간다 그런데 어디로? 213 / 기자들은 왜 ‘갑질’을 하게 됐나 217 / KBS라는 이름의 환자 222 / 언론의 젠더 의식은 언제쯤 개선될까 226 / MBC 기자는 어떻게 ‘일베’의 스타가 되었나 230 / 올림픽 중계, 더 느리고 더 낮고 더 무기력하게 235

#3 그들과 나와 우리의 이야기

#3-1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왕좌의 게임〉, 이토록 품격 있는 막장 242 /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247 / 지금 자기 자리에서 세월호의 짐을 나눠 진다는 것 252 / 〈무빙〉, 날아오를 아이들을 위하여 256 / 레서판다의 ‘움짤’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260 / 응답하라, 시그널에 265 / 〈대니쉬 걸〉과 〈캐롤〉이 내게 가르쳐준 것 269 / 〈캡틴 아메리카 3〉, 아이언맨을 옹호한다 273

#3-2 한낱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라도
중2병이라도 괜찮아 278 / 르포- 덴마크 우유 장인 김현복을 찾아서 282 /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흑역사였다 287 / 기쁘다 가스파드 오셨네 291 / 아이폰과 갤럭시 사이, 넥서스 유저를 위한 나라는 없다 295 / 백종원의 집밥 개혁 299 / ‘라면 먹을래요?’라는 마법의 주문 303 / 기쁘다 〈요츠바랑!〉 오셨네 306 / 〈복학왕〉과 기안84, 이 시대 청춘의 리얼리티 310

#3-3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칠봉이, 좋은 사람 좋은 남자 316 / 가인은 다 옳다 319 / 김수현, 이토록 완벽한 이방인 323 / 민호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판타지 327 / 조석, 이라는 사람 331 / 박보검, 어른의 세계를 견뎌내는 희동이 335 / 김연경, 한국 예능에 대한 크러시! 339 / 유아인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 343

#4 이 죽일 놈의 공놀이
이 죽일 놈의 LG 트윈스 348 / 아스널, 고집쟁이 장인의 승리 352 / 우리 호날두 까지 마요 357 / 제라드와 메시가 없어도 응원할 수 있을까 361 / 심수창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365 / 김성근이라는 딜레마 369 / ‘엘롯기’는 사랑입니까? 373 / 김성근 신화, 꿈에서 깨다 377

에필로그: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381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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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로 지칭된 이들은 오히려 프로불편러가 어때서, 라는 당당한 태도와 함께 그 말을 상대방으로부터 뺏어왔다. 우리의 불편함은 부당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당당하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드러내겠다는 선언. 꼭 여성혐오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에서 프로불편러는 불합리함과 부당함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에 대한 자기긍정의 표현이 되었다.
--- p.4, 「나도 프로불편러일까」 중에서

일베의 헛소리 중 그래도 진보 진영에 대한 무시와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역사의 진보를 의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건 ‘찌질한 키보드 워리어’들이 아닌, 새 시대의 야만이다.
--- p.14, 「일베, 새 시대의 야만」 중에서

〈디스패치〉뿐 아니라 많은 매체들이 독자의 알 권리(right to know)를 이유로(사실 그 개념도 굉장히 왜곡해서 쓰지만) 자신들의 보도를 정당화하지만, 매체의 공익성에서 알 권리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건 독자의 알 필요성(need to know)이다. 독자에게 이 팩트를 알리는 게 정말로 필요한 일인가? 이 고민은 결국 철학의 문제다.
--- p.23, 「디스패치는 옳은가」 중에서

즉, 윤서인은 시장 논리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기에 가능한 한국의 높은 의료 복지를 찬양하면서 시장 논리 역시 옹호하느라 바로 그 의료 복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성숙한 시민들을 의료 복지의 무임승차자로 왜곡하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논리적으로는 파탄에 가깝지만, 기본적으로 무임승차를 혐오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식의 공격은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알고 한다면 악의적이고, 모르고 한다면 무지하고 악의적인 것이다.
--- p.34, 「윤서인과 〈조선〉, 이토록 후안무치한 세상」 중에서

에두를 것 없이 〈뷰티풀 군바리〉는 비윤리적인 작품이다. 만화의 배경에 대해 2006년이라는 구체적 시간을 명시해 당시 실제 의경이 겪던 폭력으로 수아가 겪는 폭력을 정당화하되, 반대로 이건 가상의 대한민국이라며 폭력의 구체적 맥락이 없는 부실함을 눙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여성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되 비난은 피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이 만화는 ‘뷰티풀’하지 못하다. 성찰 없이 묘사한 대상은 얄팍하다. 제아무리 가슴을 크게 그린다 해도.
--- p.52, 「〈뷰티풀 군바리〉, 이토록 어글리한 만화」 중에서

개인의 권한과 책임이 조직 시스템 안에 명확히 정립된 회사라는 판 위에서 돌 하나로 판세를 뒤바꾸는 신묘한 수란 존재하기 어렵다. 대신 아직 온전하게 짓지 못한 집이나마 지켜내고 다음 수를 위해 인내할 뿐이다. 드라마 미생〉은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수의 의미를 더 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유예된 패배가 아니다. 내일이란, 오늘을 견뎌낸 자의 전리품이다.
--- p.58, 「〈미생〉, 삶의 가장 비루하고 아름다운 순간」 중에서

너는 어느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예스 혹은 노를 말하는 대신 왜 그런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옳은 질문에서 항상 옳은 대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틀린 질문에선 절대 옳은 대답이 나올 수 없다.
--- p.75, 「이번 주에도 타일러는 살아남았습니다」 중에서

끊임없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존재에게 때로 과격함은 주체가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된다. 존중은 연민이 아닌 두려움으로부터 온다. 메갈리아의 반대자들이 그들을 ‘여자 일베’라 칭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또한 그에 대한 메갈리안들의 반박 논리이기도 한 ‘미러링’ 개념은 그래서 지금에 와선 오히려 논의를 공회전시킨다. 물론 단순한 남성혐오와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는 맥락이 다르며 폭력의 질 역시 다르다. 하지만 실천적 차원에서 어쨌든 이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 윤리적 빈틈을 파고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러링’ 개념으로 방어하지만, 사실 현재 메갈리아의 분노에 찬 남성혐오는 남성들에게 사실 너희가 하던 게 이런 것이었다는 걸 비춰주는 정적인 거울이 아니다. 그보단 우리도 너희에게 아픔과 쪽팔림을 줄 수 있는 주체라는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선언에 가깝다.
--- p.85, 「메갈리안, 분노가 이긴다」 중에서

대체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인가. 옹달샘은 잘못했을지언정 잘못되진 않았다. 지금 옹달샘과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장면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자주 보던 풍경들을 재현한다. 어떤 잘못을 해도 긴밀히 얽힌 카르텔이 있으면 대충 뭉갤 수 있다. 뭉개다 보면 조금씩 잊힌다. 잊히면 미디어의 조력을 받아 잘못 자체를 지우거나 희석해버린다. 이것은, 진실의 문제다. 망각과 권력의 합작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문제.
--- p.162, 「옹달샘은 과거를 어떻게 세탁하는가」 중에서

여전히 왜 한국 대중을 위한 팬 서비스는 애교를 당연시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귀여운 걸 보고 싶은 감정과 귀여운 걸 제공하는 게 당연하다는 믿음은 같지도 비슷하지도 않다. 상식이 당연해지는 것만큼, 잘못된 관습이 당연해지지 않는 것도 진보다. 그러니 대단한 건 아닐지라도 당장 ‘샤샤샤’부터 좀 줄여나가는 건 어떨까.
--- p.196, 「‘샤샤샤’는 이제 그만」 중에서

다수 TV 저널리즘이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것(want to know)을 쫓는 상황에서, 그들은 고집스럽게 대중이 알 필요가 있는 것(need to know)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종종 잊히는 사실이지만, 언론의 등대는 대중의 관심이 쏠린 곳이 아닌, 대한민국의 가장 어두운 곳을 비춰야 한다. 세월호가 여전히 가라앉아 있는 심연의 바다처럼. 어쩌면 이것은 외로움을 감수하기에 의로운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 p.207, 「JTBC 뉴스의 외롭고 의로운 싸움」 중에서

촉이 좋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문제를 맹아처럼 품고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눈에 보이게 솟아오른다. 어느 분야든 프로불편러의 피드백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 p.216, 「이영돈 PD가 간다 그런데 어디로?」 중에서

과거의 올림픽이 정해진 규칙 안에서의 기록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여성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그동안 의문시되지 않았던 남성 중심적인 올림픽의 권위가 도전받는 순간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 순간을 담아내는 주류 미디어의 언어가 「남편의 사랑의 힘」 따위의 빈곤한 수준이라는 건 민망한 일이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힘차게’ 세상을 읽진 못할지언정, 눈앞의 변화도 따라가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올림픽에 가장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 p.238, 「올림픽 중계, 더 느리고 더 낮고 더 무기력하게」 중에서

잘못된 과거를 깔끔하게 바꾸는 통쾌함은 여기에 없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교차하는 시간은 해영의 시점에서 본 과거인 동시에 재한의 입장에서 본 미래이기도 하다. 재한의 아버지는 수현에게 미결된 사건도 그다음 세대가 해결할 거라던 재한의 말을 전한다. 재한이 현풍역 근처에서 주부를 구해낸 덕에 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현재의 작은 희망은 과거의 누군가가 절망을 견디며 만들어낸 미래다. 과연 현재의 우리도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을 남길 수 있을까. 드라마 바깥의 신호들을, 작은 흐느낌을 놓치지 않으며.
--- p.268, 「응답하라, 시그널에」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별의 풍경은 똑같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선 지평이 절대적인 기준이라 생각하며 저 모든 별을 객체로 보는 것과, 내가 선 지평이 유동적이고 움직이는 저 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별을 보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진정 성실한 비평이란 내가 움직이는 행성 위에서 관측하고 있다는 자각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세상은, 그렇게 넓어진다.
--- p.272, 「〈대니쉬 걸〉과 〈캐롤〉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중에서

몸에 좋고 입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경 써서 머리를 하고, 큰마음 먹고 예쁜 운동화를 사며 세상을 견뎌내는 것처럼, 마냥 좋고 귀여운 풍경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대한 비판적 관심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걸 먹고 좋은 걸 입고 좋은 걸 보며 나의 일상을 즐겁게 유지하는 것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다.
--- p.309, 「기쁘다 〈요츠바랑!〉 오셨네」 중에서

하지만 칠봉이 정말 좋은 남자라면,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라며 자기연민에 징징대거나,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라고 자기만족에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순간도 선의라는 이름으로 나정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 내기에서 이겨 야구 경기에 응원하러 와달라고 할 때도 ‘소원’이 아닌 ‘부탁’을 들어달라고 말한다. 비싸지만 촌스러운 화장품 세트를 산 쓰레기와 달리 샤넬 향수를 나정과 나정 어머니에게 선물해 점수를 딴 작은 에피소드에서 증명되는 건 서울 남자로서의 센스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얼마나 비싼 돈을 쓰고 얼마나 선의를 품었는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의 차이이기도 하다.
--- p.317, 「칠봉이, 좋은 사람 좋은 남자」 중에서

일부러 팬클럽 컬러에 맞춘 옷을 입고 온 김연경이 「고마워요」 한마디만 해도 「꺄악」 비명소리가 나오고, 「윙크해주세요」, 「언니 사랑해요」 같은 외침이 들리며, 김연경이 터키로 떠난다는 사실에 눈물 흘리는 이 장면은 아마 그동안 실체 없이 소비되던 걸 크러시라는 개념이 예능, 아니 방송을 통틀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순간일 것이다. 여성에게 열광하는 여성, 그리고 그런 열광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여성. 많은 연예인이 여성과 여성 사이의 감정적 교류를 콘셉추얼한 차원으로만 국한시키기 위해 ‘걸 크러시’ 개념 뒤에 숨었다면, 김연경은 자신의 인기에 당혹해하지도 뭐라고 부연하거나 단서를 달지도 않는다. 하하, 여자들에게 인기 많다니 좋군.
--- p.342, 「김연경, 한국 예능에 대한 크러시!」 중에서

야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깟 공놀이’겠지만,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싹이 트는 걸 보는 것은 공놀이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변화는 가능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 p.351, 「이 죽일 놈의 LG 트윈스」 중에서

엄청난 업적을 거두고 본인의 네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고도 일종의 ‘콩라인’으로 분류되고 자주 희화화되는 그의 캐릭터는 메시의 메시아적인 느낌보다 더 인간적이고 흥미롭다. 결코 금욕적이지 않으면서도 그토록 강철 같은 육체를 유지하는 이 독특한 프로페셔널을 나는 항상 안쓰러운 마음으로 응원할 것 같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게 호날두 걱정이겠지만.
--- p.360, 「우리 호날두 까지 마요」 중에서

하지만 평범하다고 해서 혹은 그 이하라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거의 언제나 탁월한 이들의 것이겠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그 무대는 탁월하지 않은 다수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만들어가는 하루하루 위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이 충분히 고귀하다고 믿는다.
--- p.368, 「심수창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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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겐
섬세하고 치열한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


엄정하게 애쓴 시간의 기록

위근우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각인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거슬러 올라다가 보면 ‘원나블’로 소년만화의 알파와 오메가를 분석했던 순간도 기억나지만,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2013년 ‘일베’를 “새 시대의 야만”으로 지칭하고 이들의 비정상적 혐오를 자신 있게 논리적으로 실명 비판했던 그때였다. 그 이후 3년 반, 그의 글은 꾸준히 치열하고 섬세하게 세상을 향했다. 아니, 설마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상황들, 약자에 대한 기득권자의 존중은 연민이 아닌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증한 최근 페미니즘 담론 확산 양상 및 정치적·문화적 올바름을 위한 한국 사회 많은 이들의 투쟁은 그의 글을 더욱 날카롭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새 시대의 야만’ 앞에서 외려 ‘내 안의 야만’을 유의해야 한다며 몇몇 진보적 인사들이 실천적으로 무책임하게 파시스트적 언술의 공적 발화에 대한 실질적 제재를 주장하길 기피할 때, 논쟁을 마다하지 않고 현실적인 힘이 있는 한계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대충 맞는 말만 하면 지킬 수 있었던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세월호 참사 이후) 훨씬 근본적으로” 시험받았던 순간들에 화려한 미문보다도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끝 간 데 없이 후퇴한 믿음의 전선을 자기 발밑으로부터 다져 올리는 작업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좋은 걸 먹고 입고 보며 나와 우리의 일상을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위근우라는 사람의 글을 모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정말로 유의미한 것이라고 확신한 건 정치적 올바름과 생활에 대한 사랑이 공존한다는 것을 느꼈던 그 순간이었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제 책이 출간되었다. 대중문화를 주로 다루는 웹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가 엄정하게 살아내기 위해 애쓴 시간을 기록한 여든다섯 개의 글 모음, 『프로불편러 일기: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긍정의 언어, ‘프로불편러’
‘프로불편러’를 포털에서 검색하면 여전히 “언냐들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말이 가장 위에 보인다. 뭔가 그 존재가 찜찜하고 불쾌하다는 멸시의 언어. 하지만, “꼭 여성혐오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을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순응하고 참으며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당당하게 나와 우리의 불편함은 정당한 것이며 불합리함과 부당함에 무릎 꿇지 않는 ‘프로불편러’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자기 스스로를 긍정했다. 저자 위근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은 직업적으로 “필연적인 프로불편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문제의식이란 예민함의 다른 말이며 이것을 논리와 실증, 정돈된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자 사회적 분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웹툰, 영화, TV 프로그램, 주간지, 인터넷사이트를 넘나들면서, 일베로 시작하여 윤서인, 뷰티풀 군바리, 송곳, 미생, 메갈리아, 시사IN, 평양냉면, 박근혜·최순실, 마녀사냥, 어쩌다 어른, 맥심, 걸 그룹(들), JTBC, TV조선, 엑스맨, 시그널, 요츠바랑!, 백종원, 칠봉이, 김연경, 유아인, 호날두, 심수창을 거쳐 김성근까지. 때로는 비판적인 시선으로 비평하고, 때로는 비판 이후에 만들어 나갈 긍정적인 모델들을 상상하며 우리의 삶을 둘러싼 여러 풍경들을 ‘프로불편러’의 일관된 관점에서 바라보고 언어로 정돈해 제시했다.

야만의 시대, 저는 레드라이트입니다
“#1 새 시대의 야만”, “#2 프로불편러 일기”에는 다양한 분야와 소재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의 글들을 모았다.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무지와 악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방식의 폭주’(윤서인과 〈조선〉, 이토록 후안무치한 세상)가 난무하고 ‘깨어 있는 남성은 여성의 입장에 서는 것조차 여성을 능가’한다는 생각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개저씨’라는 말이 싫어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주변부로 내몰린다. ‘구타당하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국내 최대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는 사회’(〈뷰티풀 군바리〉, 이토록 어글리한 만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박근혜·최순실 게이트보다 오래된 병) 싶을 정도로 봉건적인 사회를 그대로 두고선 생산적 논의의 합의된 지평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마땅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고, 누군가 조명을 꺼버리고 음험하게 숨긴 것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한 합리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문명적 상황을 확보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 계몽’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문명인이 됩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1 새 시대의 야만”에서는 동시대의 시민이 ‘프로불편러’로 거듭나는 배경과 맥락을 살피고, “#2 프로불편러 일기”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야만적 상황(#2-1 문명인이 됩시다), 여성혐오·성불평등 문제(#2-1 저는 레드라이트입니다), 언론·방송 분야의 문제(#2-3 언론이라는 이름의 환자)를 다뤘다.

여기에서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AngerWins’라고도 이야기할 만한 메갈리아의 활동이다. 앞으로 고민해야 할 여러 지점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수많은 싸움이 증명하는 건 도와주겠다는 이들의 선심보다는 내 손에 쥔 몽둥이가 훨씬 믿을 만한 것”이고, 분노 이후를 말하고 싶다면 그 이전에 “말로 해도 알아먹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우선인 상황에서 이들은 “우리도 분노하고 ‘지랄’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임을 선언하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메갈리아 사이트 등장으로 상징되는 온라인 기반의 대중적인 페미니즘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나랑 너, 너랑 나. 우리가 함께 만드는 ‘희망’이라는 풍경
“#3 그들과 나와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불편함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의 단초가 될 긍정적인 모델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꼰대 비판을 넘어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나보다 어린 이들의 안전망이 되어주고 그들의 행동을 응원해주는 것’(〈무빙〉, 날아오를 아이들을 위하여), ‘과거의 과오를 멈추겠다는 욕망에 멈추지 않고 자유로운 주체로 살아갈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것’(〈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과 같은 세계와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3-1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와 함께 ‘필요 이상을 하되 필요 없는 것을 하지 않고’(기쁘다 가스파드 오셨네), ‘자신을 위해 직접 칼과 도마를 쓰고 뭔가를 끓여보는 경험’(백종원의 집밥 개혁)을 하고, ‘유혹적이기 이전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며’(“라면 먹을래요?”라는 마법의 주문), ‘좋은 걸 먹고 입고 보며 일상을 즐겁게’ 유지하는 삶의 이야기(#3-2 한낱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라도)를 통해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드는 희망어린 풍경에 대해 조화롭게 이야기했다.
“#3-3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4 이 죽일 놈의 공놀이”에서는 앞선 글들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대중문화 및 스포츠 스타(팀)를 통해 풀어냈다. 저자가 한국 드라마 ‘서브 남주’의 세계에서 기록해둬 마땅한 인물로 평가하는 칠봉이로부터 페미니즘 대중문화 비평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배구선수 ‘크러시’ 김연경을 거쳐, 논쟁적 인물 야구감독 김성근까지 16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넓어진 길은 모두를 위한 것이 될 테니,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조금씩 앞으로!
사실, 어떤 불편함은 ‘불평’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불편함’인지, 아니면 과도한 ‘불평’에 불과한 것인지를 공론장에서 대중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소위 몇몇 권위자들의 지식과 입을 통해 판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식, 질서, 담론은 말 그대로 ‘구성’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는 주체인 대중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대중 스스로가 참여하는 공론장에서 이를 성의 있게 논의하고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세상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불편러’들의 치열한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물며 ‘헬조선’이라는 말이 시대를 관통하고 천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온 사회의 적폐 청산을 외치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불편함을 함께 느끼고 함께 이야기 나눠야 한다.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섬세하고 치열한 프로불편러가 필요하다. 불편하고 부당한 것들을 쉴 새 없이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사람,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고 독려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프로불편러가 부수며 만든 보다 넓어진 길은, 결국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만인의 통로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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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상이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다. 게다가 사안들은 복잡해서 짜장이나 짬뽕이냐를 고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실 짜장도 짬뽕도 틀린 건 없어 우리는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대신 생각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고지식하게 성실하게 예민하게 우직하게 쓰는 사람, 스스로의 저울이 기울었는지 항상 돌아보며 쓰는 사람, 그런 위근우의 글이 필요하다.
- 오지은 (음악인, 작가)

우리의 삶은,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불편함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우리의 사회는 더욱 나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불편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위근우의 글은 지금 누군가 불편히 여기는 지점을 명료하고 쉬운 언어로 정리하여 전달한다. 그의 글이 까탈스럽다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 잘하고 있다.
- 황인찬 (시인)

내가 본 위근우의 분노는 종종 과하여, 분노가 자신의 이성적 자본을 잠식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닮은 존재들의 자신과 닮은 부분에만 분노하는 일반적인 판단력 부도 상태의 위선자로 그가 퇴화할까 봐, 이따금 걱정했다. 불편의 실체를 정의 내리는 전장에서, 그보다 효율적이고 날카로우며 퇴각을 모르는 맹장은 드물다. 소심한 내가 보기엔 외부의 공격도 문제지만 스스로의 정신에도 위험한 싸움인데, 그는 변함없이 준수했다. 뭔 사람이 그래.
- 유승균(UMC) (팟캐스트 방송사 XSFM 설립자, [그것은 알기 싫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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