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토끼》의 아기 토끼처럼 원하던 곳의 문을 두드리고 나니, 나에게도 꿈같은 시간이 펼쳐졌다. 일주일에 한 번 육아를 잠시 멈추고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들과 그림책을 읽고 토론하던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운영진들은 여러 면에서 나를 놀라게 했는데, 특히 동료들이 보여준 창작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원하는 서사를 다룬 그림책이 없어서 아쉬워할 때면 “지민 선생님이 직접 만들면 되겠네요”라며 매우 자연스럽게 창작을 권했다. (…) 창작이 이미 삶의 일부분을 차지한 사람들 곁에 있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서도 ‘진짜 내가 한번 그림책을 만들어볼까?’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고 흥분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자극했다. 평소 글쓰기보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먼지 쌓인 아이패드를 꺼내 드로잉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 「아이가 클 때까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중에서
계절이 순환하듯 생명도 순환한다. 그림책 《쨍아》를 보면 잠자리 한 마리가 과꽃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개미들이 장사를 지낸다고 까맣게 몰려와서 잠자리를 잘게 쪼개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가을 햇볕과 함께 잠자리의 온몸은 알록달록 오색 빛으로 흩어진다. 하나의 생명이 빛 알갱이로 낱낱이 나뉘어 퍼져 나가는 그 모습이 눈부시게 찬란하다. (…)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은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삶과 죽음 가운데에 순환하며 살아간다. 생명력을 가진 죽음이기에 아프지만 슬프지 않고, 애틋하지만 허무하지 않다.
--- 「애도의 방식」 중에서
샘과 데이브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나는 크게 위로를 받았다. 도대체 샘과 데이브는 무엇이 멋졌다는 것일까? 애초에 그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보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독자만 안타까운 마음에 마음이 벌렁거렸을 뿐, 그 누구도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 보석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샘과 데이브는 ‘땅을 파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그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함께 땅을 파는 ‘과정’ 그 자체였던 것이다. 친구와 함께 땅을 파고, 간식을 먹고, 잠이 들었던 그 순간들 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보석’을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으로 판단해버린 걸까? 결과를 바라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결과인 ‘보석’을 당연하게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 「근육은 없지만 액티비티가 하고 싶어」 중에서
달리기를 경험하기 전의 나는 《로지가 달리고 싶을 때》의 로지를 보러 경기장에 온 사람들처럼 오직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옆 사람을 제치고 빨리 도착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도착점에 가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젠 인생의 마라톤에서도 나와 남을 비교하고 누가 더 앞서는지를 재기보다는 내 속도가 때로는 느리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좌절했던 나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 뛰었어.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 「오늘도 내가 달리는 이유」 중에서
그렇다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노동의 가치란 무엇일까? 그림책 《오, 미자!》에는 열심히 일하는 다섯 명의 미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은 모두 미자이지만, 아무도 이들의 이름을 신경 쓰지 않으며, 이를 증명하듯 그림책 속에서 미자라는 이름은 아주 작은 귀퉁이에 표시되어 숨은 그림 찾듯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노동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자 하찮은 일로 조명되는 것은 아니다. (…) 나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람들이 나의 노동에 고마워한다는 것. 그것이 노동의 보람이자 가치다. 서로가 전하는 고마움의 표시는 커다란 선물이거나 엄청난 액수의 돈이 아니어도 된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반가운 인사, 작은 귤 하나 등 소박하고 작은 것이어도 충분하다.
--- 「먹고사는 일에 관하여」 중에서
그때의 혼란스러웠던 내가 이 그림책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여태껏 《때》만큼 몸에 대한 상쾌한 충격을 선사한 그림책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허리가 고부라진 할머니, 손과 얼굴이 쪼글쪼글한 할머니, 고약한 할머니와 자애로운 할머니 등 다양한 할머니를 그림책 세계에서 충분히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완전히 벌거벗은 할머니가 그림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 이태리타월이 때가 통통 잘 불어난 넓적다리에 찰싹 붙어 때를 밀어내는 장면을 상상하며 페이지를 넘기니, 할머니의 굵은 곡선이 돋보이는 보디라인이 그림책의 양면을 가득 채운다. 대담한 연출에 감탄한다. 푸짐하고 나이 들고 출렁이는 몸이 이렇게 탐스럽고 아름다운 거였어?
--- 「몸들의 속사정」 중에서
공감의 핵심은 《가만히 들어주었어》의 토끼처럼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때’에 상대방의 ‘방식’으로 그 존재를 존중해주며,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었다. 때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공감의 핵심이었다. (…)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어 책장을 뒤졌다. 《적당한 거리》가 어디에 있었더라. 이 책은 식물을 키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 관계의 숨통을 위해 필요한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분갈이를 하면서 우리의 관계에 대해 통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 「존재로 가만히 귀 기울이기」 중에서
우리 엄마가 마흔 살 후반에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 것처럼 화가 윤석남도 마흔 살에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윤석남의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의 등장인물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 자연스레 성장해나가는 생명을 믿고, 그저 곁에서 지켜보고, 보듬어주는 일. 이 따뜻한 손길 덕분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모순과 얼룩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선선히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를 보듬어주던 존재는 개운한 심정을 느낄 것 같다. 힘차게 뻗어가는 초록 잎을 보면 개운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꼭 자식을 낳아 키우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기르고 가꾸는 이라면 그 흔쾌한 심정을 알 것이다.
--- 「식물성 인간」 중에서
일 년에 한 마디만 성장하는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 느껴지지만, 열심히 몸집을 키우는 삼나무를 보면 여름 한 계절도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구나 싶다. 식물들의 시간 의식을 보고 있으면, 작은 들풀, 커다란 나무, 울창한 숲 등 자연은 그 누구 하나 계절을 쉬이 보내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잎을 떨어내고, 꽃을 피우고, 씨를 뱉어내며 각자만의 방식으로 계절의 변화를 있는 힘껏 맞이한다. 자연의 조용한 변화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숭고한 기운이 내게도 전달되어 나의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에서 주인공이 식물의 성장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 「계절을 보는 일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