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미리보기 공유하기

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026이동
리뷰 총점9.8 리뷰 29건 | 판매지수 1,398
정가
18,800
판매가
16,920 (10% 할인)
YES포인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4월 전사
4월 혜택모음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16g | 135*210*20mm
ISBN13 9788950993788
ISBN10 895099378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중세의 견고한 성벽을 부수고
‘근대를 연 최후의 중세인’이 된 루터의 길을 따라가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단순히 낡은 종교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켜 세운 운동이라기보다는 성서와 신앙의 세계에 대해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해석권을 찾아오려고 한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 운동은 철저하게 성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렇게 되찾아 온 해석권으로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페스트라는 가공할 전염병의 시대를 배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우리 역시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사회적 대변혁을 예비하고 있다. 여러모로 루터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오버랩되는 이때,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 초대교회의 영성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종교개혁의 정신은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이며 깊이 되새겨 볼 만하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Prologue 인간, 신과 단독으로 만나다
01 중세의 끝에서
02 모든 것의 시작
03 개혁의 심장부
04 위대한 독서 혁명
05 또 다른 개혁의 현장
06 미디어 혁명
Epilogue 중세의 끝에서 근대를 부르다

루터 사상의 키워드
루터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루터의 개혁은 종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가 의도한 개혁은 직제와 조직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는 당시 가톨릭교회가 독점하고 있는 신앙에 대한 해석을 바꾸기를 원했다.
--- p.11

히스토리 채널은 이 종교개혁의 영웅을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인간이 직접 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말은 종교개혁의 모토이기도 하다. 루터가 그토록 힘주어 외쳤던 ‘오직 성서 sola scriptur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총 sola gratia’의정신이 바로 이 한 문장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루터는 신앙을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이때 인간은 집단이 아닌 ‘단독자’다.
--- p.12

루터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하여 지속해서 신을 찾았다. 남들보다 몇 배 이상 많은 시간을 고해실에서 보낼 정도로 그는 신에게 집착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신은 엄중한 심판자의 모습으로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뿐이다.
--- p.52

루터 역시 회중과 멀어진 전문가의 음악은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예배에 참여한 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따라 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가락의 노래를 기대했다. 그래서 그는 일반 회중이 부르기 어려운 기법으로 만든 교회 노래는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능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루터의 노래는 결코 어려워질 수 없었다.
--- p.61

그는 보았고, 읽었다! 어쩌면 종교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미 이때 시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루터의 개혁은 ‘읽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 p.73

성서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성서는 당시 교회와 사제 계급을 무엇이라고 증언할까? 기대와는 다르게 조직과 직제의 연원과 정당성을 성서에서는 명백한 문구로 확인할 수 없었다. 성서에는 교황이라는 직제와 그를 위한 자리도 찾기 어려웠다. 오직 신과 그가 베푸는 구원의 다양한 사례가 적혀 있을 뿐이다.
--- p.74

읽음을 통한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 이렇게 진정한 종교개혁의 서곡은 젊은 루터의 성서 읽기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성서를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충실히 암송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견고한 직제와 조직으로 무장한 가톨릭교회와 대결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였다.
--- p.75

그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서 연구에 전념하던 그는 신의 의가 가진 새로운 면을 찾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면이 아니라 처음부터 신의 의가 가지고 있는 본디 뜻이라 하겠다. 관점의 전환이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한 것이다. 이제 새롭게 이해된 신의 의는 신을 ‘목적’으로 삼고 거기에 인간이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놓고 재고 따지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족한 인간을 어떤 비용도 청구하지 않고 의롭다고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즉 신의 의는 심판을 위한 판사의 언어가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것이었다.
--- p.104~105

루터 역시 이런 전통적인 성서 해석 방법을 십분 수용했으나 점차 그만의 고유한 주해법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적 성서 해석’이라 부른다. 루터가 보기에 성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성서를 해석할 때 언제나 그 핵심에 그리스도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16

이제 성서 해석의 권위는 교황이나 교회 같은 외부의 직제나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서 그 자체에 있다. 성서의 원문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제대로 본문을 이해했다면 누구도 해석의 권위를 훼손할 수 없게 된다. 성서의 본문을 읽거나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아무리 교황이라도 해석의 권위를 독점할 수 없다. 이렇게 루터는 일개 수도원의 수사요 독일 작은 도시의 신설 대학 교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상의 어떤 권위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 p.119

루터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고독의 세월을 그는 다시 무엇인가로 채워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또 다른 ‘읽음’이었다. 누군가 알려 준 내용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읽어 그 내용을 확인하고 성서에서 말하는 신앙의 핵심을 스스로 깨우친 뒤, 그것을 다시 글로 옮겨 이웃에게 전한 것이 루터가 행한 개혁 운동의 요체였다. 그러니 루터는 종교라는 조직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 조직이 독점한 믿음과 신앙에 대한 해석을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 p.178

사회 전방위로 퍼져 나간 루터의 개혁 정신은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까지 바꾸어 버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 제도였다. 사제였던 루터는 마침내 결혼했고, 심지어 아내로 맞이한 카타리나도 수녀 출신이었다. 부부간의 성적 결합마저 상스럽게 여기며 억압하고 독신을 구원의 표상처럼 받아들이던 중세에 사제와 수녀가 만나 결혼하는 것만큼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사건이 있었을까?
--- p.189

그래도 우리는 저물어 가는 중세의 끝자락에서 올곧게 한목소리로 신의 은총을 기리는 주체적 자아를 외친 루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성서를 읽으면서 찾아낸 진리를 이웃으로 확장하려 했던 그의 투지도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먼저 알았다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사제여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웃이요 친구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또한 자신이 깨우친 방식대로 생활 세계의 모든 이들도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서를 돌려주었다.
--- p.23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성서를 통해 신과 직접 만나고자 했던 자유인 루터

서양 종교의 역사는 16세기에 이르러 마르틴 루터라는 한 탁월한 인물에 의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 간 페스트와 100년 이상 지속된 전쟁으로 도처에 죽음이 넘실거리던 시대에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모토로 깃발을 든 루터의 종교개혁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정치, 경제 등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근대를 여는 강력한 교두보가 되었다. 이는 종교개혁을 가리킬 때 ‘종교’라는 단어는 빼고 그냥 ‘개혁Reformation’이라고 하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세 사회에서는 인간이 신을 만나려면 반드시 교회라는 조직과 사제라는 직제 같은 매개적 존재가 필요했다. 교회와 사제야말로 신의 은총을 대리할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존재이며, 그것 없이는 신앙을 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루터는 직접 성서를 읽고 연구하면서 구원을 위해서는 어떤 매개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성서에서는 조직이나 직제의 연원과 정당성을 맹백한 문구로 확인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오직 신과 그가 베푸는 구원의 사례만 있을 뿐이었다. 이로써 루터는 신앙은 신과 단독자로서의 나 사이의 문제이지, 조직이나 직제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성서를 통해 신이 가진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전까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준엄한 심판의 신이 아니라 허물 많은 인간을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롭다고 칭해주는 사랑과 자비의 신이었다.

루터가 당시 무분별하게 발행되고 있던 면벌부에 반대하면서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내건 것은, 또한 사제와 평신도의 구별을 해체하고 만인이 하느님의 사제라고 외친 것은 바로 면밀한 성서 읽기를 통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당시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제대로 접할 수 없었고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성서를 자국의 민중 언어로 번역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배경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놓여 있었다. 인간이 신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성서를 읽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성서를 옮겨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생활 독일어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삽화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성서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훨씬 힘 있고 또렷하게 전달했다. 루터의 성서 번역은 독일 민중에게 자국어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독일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있었지만 루터의 이와 같은 탁월한 소통 능력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소통 지향적 태도는 교회 내에서 전문가 집단의 것으로 전락한 음악 대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회중 찬송을 부활시킨 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듯 신 앞에 ‘단독자’로 서려는 열정으로 루터가 들어 올린 개혁의 기치는 비록 신앙의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중세의 ‘집단’을 일깨워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의 개혁 정신은 사회 전방위로 퍼져 나가 민주적 요소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결혼 같은 개인의 은밀한 영역의 풍속까지 바꾸어 놓았다(가령 독신을 구원의 표상으로 여기던 당시, 루터도 그 자신이 사제이면서 수녀 출신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여 세간의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루터의 길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었던 루터는 사실상 독일 전역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오늘날 그곳에는 ‘루터의 길Lutherweg’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500년 전 그의 자취를 따라 다시 걷고 있다. 서울신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이길용은 수많은 루터의 길 중에서도 개혁의 중심부였던 독일 북동부를 중심으로 여행하며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루터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오래도록 유지되어 오던 견고한 중세라는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촉매가 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집단으로 채워진 중세 의식을 허무는 데 필요했던 것은 바로 ‘주체적 자아의식’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기행은 루터가 어떤 계기를 통해 주체적 자아를 찾고 확신하게 되었는지에 주목할 것이다. 이를 위해 루터의 삶에 커다란 전기를 가져온 여러 체험을 추적할 것이다.(19쪽)

이에 저자는 루터의 생가와 사가가 있는 아이슬레벤, 그의 유년 시절을 품고 있는 만스펠트, 난생 처음으로 온전한 형태의 성서를 접했고 수도사의 길을 걷기로 서원한 에르푸르트, 면벌부에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발표함으로써 개혁을 주도한 비텐베르크, 신성로마제국 황제 앞에서 심문을 받았던 보름스, 제국 추방령을 받고 숨어 지내며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옮기는 데 매진했던 첩첩산중의 비텐베르크성, 개혁의 또 다른 동력이 되어 준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도시인 마인츠 등을 밟았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단순히 낡은 종교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켜 세운 운동이라기보다는 성서와 신앙의 세계에 대해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해석권을 찾아오려고 한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 운동은 철저하게 성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렇게 되찾아 온 해석권으로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페스트라는 가공할 전염병의 시대를 배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우리 역시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사회적 대변혁을 예비하고 있다. 여러모로 루터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오버랩되는 이때,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 초대교회의 영성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종교개혁의 정신은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이며 깊이 되새겨 볼 만하다.

회원리뷰 (29건) 리뷰 총점9.8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루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r*****7 | 2021.03.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애를 보며 또 책을 읽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집에 20권이 넘는 시리즈가 있다. 거의 다 사 모았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가기 전 이 책으로 배경지식을 익히는게 좋은 것 같아서 또 기본 상식을 위해서 읽고 있다.    중세시대 마지막. 사실 그 때를 산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구분짓는 시대 마지막에 산다는 생;
리뷰제목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애를 보며 또 책을 읽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집에 20권이 넘는 시리즈가 있다. 거의 다 사 모았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가기 전 이 책으로 배경지식을 익히는게 좋은 것 같아서 또 기본 상식을 위해서 읽고 있다. 

 

중세시대 마지막. 사실 그 때를 산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구분짓는 시대 마지막에 산다는 생각을 못했겠지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져 간 페스트와 100년 이상 지속된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기아와 고통이 가속화되면서 도처에 죽음이 넘실거리던 시대에 오직 믿음과 신의 은총 그리고 오직 성서에 기반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정치, 경제 등 당시 서양사회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근대를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독일 곳곳에 그의 삶을 따라 추적해 가며 그를 기억한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루터가 태어났다. 페스트가 몰고 온 죽음의 피바람이 여전히 잊히지 않을 즈음, 100여 년을 끌어온 전쟁이 겨우 끝나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전쟁의 소문이 일어나던 때,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절망하는 민중을 희망으로 인도할 종교계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권에 대한 집착으로 혈안이 되어 인도할 종교계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권에 대한 집착으로 형한이 되어 있을 때, 세상에 고개를 내민 것이 바로 루터였다. 

게다가 생업에 집중하느라 자상한 자식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엄한 부모 밑에서 루터는 혹독한 불안의 시절을 이겨내야만 했다. 

 

루터는 일찍부터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에 대한 소양과 감수성을 키웠다, 그는 입버릇처럼 신학을 하지 않다면 음악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놀라운 면이...음악 같은 것 안 좋아하게 생겼는데...

음악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화합과 평화에 기여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교회내 음악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많은 찬송가를 써서 쇠락했던 회중 찬송의 부활을 위해 힘썼다. 

그리하여 1524년 첫 번째 찬송가집 <여덟개의 그리스도교 찬송가>를 펴냈고, 이와 같은 해에 스물여섯편의 찬송가를 담은 두 번째 찬송집 <에르푸르트 찬송가>를 출간했다. 

 

서양 종교의 역사는 16세기에 이르러 마틴 루터라는 한 탁월한 인물에 의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 간 페스트와 100년 이상 지속된 전쟁으로 도처에 죽음이 넘실거리던 시대에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모토로 깃발을 든 루터의 종교개혁은 비단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정치, 경제 등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근대를 여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그런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책이다. 읽다보면 그가 활약한 독일과 스위스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일어난다.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과 같은 일상을 찾았으면 좋겠다. 

떠나고 싶다.

 

우리는 저물어 가는 중세의 끝자락에서 올곧게 한목소리로 신의 은총을 기리는 주체적 자아를 외친 루터를 잊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성서를 읽으면서 찾아낸 진리를 이웃으로 확장하려 했던 그의 투지도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먼저 알았다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사제여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웃이요 친구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또한 자신이 깨우친 방식대로 생활 세계의 모든 이들도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서를 돌려주었다. 그것도 어려운 라틴어로 적힌 성서가 아닌 누구라도 쉽게 배우고 읽을 수 있는 독일어 성서를! 

첩첩산중 외로운 성안에서 약 10개월을 버텨가며 민중의 언어로 성서를 번역해 낸 그의 인내가 없었다면 , 아픈 몸을 이끌고도 제자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글을 쓰던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시대를 바꾼 이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시대를 앞서간 현자요, 열정적 혁명가였던 마틴 루터의 삶을 통해 오늘날 뿌리깊이 있는 사회 부정과 적폐를 청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독일에서 그의 발자취를 느껴보리라.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파워문화리뷰 [21-01] 종교개혁, 인쇄술이 낳은 변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w******f | 2021.03.01 | 추천19 | 댓글14 리뷰제목
  사냥꾼[루더]에서 자유인[루터]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하 ‘루터’)은 엄격한 부모의 훈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가 살던 시기는 페스트라는 절망적인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때였다. 그 결과 루터를 비롯한 그 시대 사람들은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영원한 구원을 갈망” [p. 52];
리뷰제목


 

사냥꾼[루더]에서 자유인[루터]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하 ‘루터’)은 엄격한 부모의 훈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가 살던 시기는 페스트라는 절망적인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던 때였다. 그 결과 루터를 비롯한 그 시대 사람들은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영원한 구원을 갈망” [p. 52]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음의 춤>


 

출처: <루터>, pp. 34~35

 

그래서일까?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와 집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벼락 체험’을 계기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하여 종교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컴(Occam, 1280~1349)의 유명론(唯名論),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은총론(恩寵論), <한 독일인의 신학(이하 ‘독일신학’>의 신비주의적 요소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신앙에서 ‘개인적 경험’을 강조(하고), 가톨릭교회의 견고한 위계적 세계관에 대한 거부” [pp. 95~97]했다.

 

수도사 루터


 

출처: <루터>, p. 87

 

그렇기에 그는 독일 지역 면벌부(免罰符) 판매의 실무와 홍보를 담당하고 있던 요하네스 테첼(Johann Tetzel, 1465~1519)의 “돈궤 안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p. 123]는 등 지나치게 자극적인 선동에 반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루터는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그 유명한 ‘95개조 논제’를 걸었다.

 

 

시대가 낳은 변화, 인쇄술과 종교개혁

 

루터에게 유명세를 안긴 ‘95개조 논제’는 일종의 대자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저 글은 그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잊혀졌을 것이다. A대학에 대자보가 걸리더라도 그것을 정성 들여 읽고 분석한 후 다른 대학에 동일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거나 그것을 베껴서 다른 대학의 교수, 학장, 나아가 총장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경우가 드문 것처럼.

하지만 “루터는 행운의 사람이었다. 15세기 무한정 영역을 확장하고 있던 유럽의 독서 시장, 점점 늘어나고 있던 세속 문서와 그것을 다루는 시민계급의 성장, 곳곳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던 필사 공방,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인들의 독서 수명을 연장한 시력 교정용 안경의 발명,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까지! 이 모든 것이 루터라는 한 시대정신을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p.223]

즉, 인쇄술의 발달로 대표되는 시대의 변화가 ‘95개조 논제’라는 루터의 작은 불씨를 종교개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루터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이로 인해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10세기 말 클루니(Cluniac) 수도회 이후 1세기 마다 반복된 교회의 세속화와 성직자의 타락에 대한 내부혁신인 ‘수도원 운동’과 달리 종교개혁은 교황이 독점하고 있던, 성서에 대한 해석 권한을 탈취해서 민중에게 넘기는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의 경계인

 

루터는 서양 종교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여기에는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모토로 깃발을 든 루터의 종교개혁이 종교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정치, 경제 등 인간사의 모든 영역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근대를 여는 강력한 교두보가 되었다는 점도 작용한다. 이는  “중세의 끝자락에서 신앙의 옷을 입기는 했지만 힘차게 주체적 자아를 불러냈다는 점에서 그는 근세를 맞이한 문지기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 [p. 237]이라는 저자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벽한 사람이라거나 전적으로 진보적인 개혁가인 것은 아니다. 그는 꽤 보수적인 수도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농민들의 편에 서지 않았고, 주로 영주들의 힘을 빌려 자신의 개혁 사업을 완수하려 했다. 당시 농민들은, 가톨릭교회에 당당히 저항하며 만인사제주의를 외친 루터가 자신의 후원자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루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농민의 요구 중 수탈과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지지를 표명했지만 목회자 선임권과 노예해방에 관한 것은 단호히 거부했다.

(나아가 그는) 1525년 5월에 <폭도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씀으로써 농민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에 서게 되었다. 그 글에서 루터는 제후들에게 무력으로 농민을 제압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이어 시작된 진압군의 폭력으로 수천 명의 농민군이 학살당했다. 농민전쟁 동안 희생된 농민은 약 10만 명에 달했다. 루터 역시 이 끔찍한 학살극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제후들의 무력 사용을 용인해 준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중세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pp. 232~234]

 

이런 점에서 루터는 중세적 ‘집단’에서 근대적 ‘개인’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촉매였지만, 중세와 근대의 경계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세운 ‘주체적 자아의식’은 15~16세기의 독일과 유럽 사회뿐 아니라 현재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화두(話頭)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arte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클래식클라우드 #루터 #이길용 #종교개혁

댓글 14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구매 루터_ 클래식 클라우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r*****7 | 2021.02.1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코로나로 여행을 못가는 요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대신 여행갑니다.   이 책의 저자 이길용 선생님은 종교개혁이 단순히 낡은 종교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켜 세운 운동이라기보다는 성서와 신앙의 세계에 대해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해석권을 찾아오려고 한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 운동은;
리뷰제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코로나로 여행을 못가는 요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대신 여행갑니다.

 

이 책의 저자 이길용 선생님은 종교개혁이 단순히 낡은 종교 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켜 세운 운동이라기보다는 성서와 신앙의 세계에 대해 가톨릭이 독점하고 있던 해석권을 찾아오려고 한 일종의 해석학적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 운동은 철저하게 성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렇게 되찾아 온 해석권으로 기존의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제2의 종교개혁이 절실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페스트라는 가공할 전염병의 시대를 배경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우리 역시 코로나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사회적 대변혁을 예비하고 있다. 여러모로 루터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오버랩되는 이때, 제도화된 종교를 넘어 초대교회의 영성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종교개혁의 정신은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이며 깊이 되새겨 볼 만하다.

 

성서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까? 성서는 당시 교회와 사제 계급을 무엇이라고 증언할까? 기대와는 다르게 조직과 직제의 연원과 정당성을 성서에서는 명백한 문구로 확인할 수 없었다. 성서에는 교황이라는 직제와 그를 위한 자리도 찾기 어려웠다. 오직 신과 그가 베푸는 구원의 다양한 사례가 적혀 있을 뿐이다.

 

루터 역시 이런 전통적인 성서 해석 방법을 십분 수용했으나 점차 그만의 고유한 주해법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적 성서 해석’이라 부른다. 루터가 보기에 성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성서를 해석할 때 언제나 그 핵심에 그리스도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터가 당시 무분별하게 발행되고 있던 면벌부에 반대하면서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내건 것은, 또한 사제와 평신도의 구별을 해체하고 만인이 하느님의 사제라고 외친 것은 바로 면밀한 성서 읽기를 통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당시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제대로 접할 수 없었고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성서를 자국의 민중 언어로 번역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배경에도 같은 문제의식이 놓여 있었다. 인간이 신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성서를 읽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통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성서를 옮겨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생활 독일어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삽화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성서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훨씬 힘 있고 또렷하게 전달했다. 루터의 성서 번역은 독일 민중에게 자국어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독일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있었지만 루터의 이와 같은 탁월한 소통 능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답답한 일상이 계속되는 요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미리 유럽 여행 떠나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좋은 날이 빨리 오기를.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13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클클 중 디자인은 제일 예뻐. 그래요, 일단 루터.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책****곰 | 2021.04.09
구매 평점5점
클래식 클라우드는 진리죠! 루터를 따라가면 서양 중세를 이해합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r*****7 | 2021.02.14
구매 평점4점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h****n | 2021.01.23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6,92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