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보호자에 이어서 계속 CPR을 실시했다. 나는 아이가 이송될 병원 응급실로 CPR을 통보해주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엄마가 CPR을 했으니 꼭 살았으면 좋겠다. 9살이면 우리 쌍둥이와 동갑이다. 아직 더 놀고, 행복하고, 즐거워해야 할 나이인데.
--- p.34
며칠 동안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조대원 2명을 수색했고, 드디어 시신을 찾았다. 그들의 영결식이 끝나고, 그들을 국립묘지로 모셨다. 늘 이런 일이 생기면 안타깝고, 슬프다. 내게도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이 슬픔을 통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사명감만으로 일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구나.
--- p.55
회사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동기들은 다들 진급하는데 나만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후배가 진급을 더 빨리하니 기분도 별로 좋지 않다. 마흔 전까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갔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가는 길의 목적지가 정확하지 않으니 불안함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 p.62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아이들 아침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메추리알 장조림을 하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게다가 소파를 들어내서 청소를 했다. 아. 허리가 아프구나.
--- p.89
누군가가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라고 말했다. 온유는 단지 슬픔 감정을 격하게 표현했던 것뿐이었다. 아빠인 나는 슬픈 감정의 온유를 이해 못 했고, 온유보다는 남들의 시선을 더 신경 썼다. 나는 못난 아빠였다. 혹시 나는 아이들의 소중한 감정을 통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들의 감정과 느낌을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 과정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앞으로 니체의 말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아이들이 야생(감정)을 잘 풀어놓을 수 있도록 말이다.
--- p.126
그렇게 첫 아이 써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고, 그 친구를 가슴에 묻은 지 12년이 다 되어간다. 만약 써니가 함께 있었다면 초등학교 6학년에, 사춘기를 막 겪고, 남자 아이들에게 인기도 좀 있었겠지. 나를 닮아가 좀 시니컬했을 것 같기도 하다.
--- p.143
나는 착한 아빠니까 혼내는 것은 혜경스의 몫이다. 쌍둥이들은 무지 혼나고, 방에 들어가서 그동안 돼랑이에서 빼간 돈을 적으라고 했다. 꽤 많았다. 돼랑이가 엄청 가벼워졌다. 도대체 얼마를 빼다가 쓴 건지 모르겠다. 왜 돈을 가져갔냐고 물으니, 자기네가 저금한 돈을 가져간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보다는 더 가져간 것 같다. 솔과 율에게 공동의 것을 몰래 가져가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벌로 심부름 5번과 쓰레기를 버리라고 시켰더니, 솔이가 쓰레기봉투 하나를 두 번 왔다 갔다 하면 두 번의 심부름으로 쳐 주냐면 거래를 한다. 이런,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
--- p.190
이렇게 ‘남자 넷, 훌쩍 떠난 부산 여행’이 끝났다. 원래는 2박 3일 예정이었으나 하루 더 연장하여 부산에 머물렀다. 우리가 여행한 부산은 참 매력적인 곳이었고, 외국 같았다. 여행 내내 아이들과 함께 웃다가도, 혼내기도 하고, 다시 친해지기를 반복했다. ‘친구를 알고자 하면 사흘만 같이 여행해 보아라’ 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온유, 솔, 율의 대해서 전에 몰랐던 부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 p.206
오후 1시 40분입니다. 6년 전 쌍둥이가 태어나 1년간 육아 휴직을 해서 알고는 있었으나 집안일은 정말로 끝이 없고, 티도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시간도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지금부터는 제 자유시간인데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끝나 저에게 놀자고 합니다. 다행히 제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들은 거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주부 9단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 p.248
요즘 소방관이 참 힘든 직업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힘든 일을 30년 동안 어떻게 버텨오셨나요? 저는 하루라도 불평불만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15년이 지났는데 끊이지가 않아요.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집에서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네요. 그때는 지금보다 환경이 더 안 좋았을 텐데 어떻게 꾹 참고 버티셨는지.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사실 소방관 아들이 소방관 아버지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생각나지 않네요.
---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