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에 정말로 댐이 사라진다면 발생하는 일은?
‘토건’이라고 다 같은 ‘토건’이 아님을 역설하다
저자에 따르면, 아파트와 공동주택을 향한 복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의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친환경성’에 대한 해묵은 오해가 있다. 이 사회적 오해와 단단한 반감을 풀지 않고서는 ‘토건 사업’을 향한 우리 사회의 피상적이고 비생산적인 분열이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 인프라에 관한 발전적인 에너지를 결집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선 토목 구조물과 사회기반시설인 인프라 건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 과거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토건이라고 다 같은 토건이라 몰아붙일 수 있는가? 저자는 전문기관에서 오래전부터 연구 및 검토된 후 최근 서초구청장이 다시 내세운 경부고속도로 시점부 지하화 프로젝트를 상기하고, 이러한 적극적인 상상력이 우리 사회에 널리 수용되지 못하는 여러 맥락을 살피고 있다.
저자가 “아파트가 어때서?”라고 아파트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묻는 일을 시작하며, 이처럼 한 국가에서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는 일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인프라가 줄 수 있는 사회적 혜택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 힘과 가치에 대하여 더욱 전환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겨울왕국2]를 살펴보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자 1,374만 명이라는 놀라운 관객 수를 기록한 [겨울왕국2]에선 주인공들이 정령의 힘을 동원해 콘크리트 아치형 댐을 허물어버리고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저자는 묻는다. 그런데 정말로 댐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 작품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노르웨이는 댐을 통해 한 자릿수 미세먼지 농도의 청정한 환경을 누리며 국가 전체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댐만 그런 게 아니다. 스위스의 터널도 마찬가지다. 알프스산맥에 세계에서 가장 긴 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을 뚫은 스위스는 늘 지속가능성 및 환경성과지수에서 전 세계 1, 2위를 다툰다. 저자는 묻는다. 터널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스위스 정부가 산을 구불구불 넘어가는 아리랑 도로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훨씬 더 많은 이산화탄소로 알프스가 시달리지 않았을까?
『아파트가 어때서』의 저자가 책에서 들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충분히 깔아놓지 않았다면, 2019년 강원도 속초의 산불에서 전국의 수많은 소방차가 한밤중에 산불 현장으로 집결하여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을까? 책에 따르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인프라는 그만큼 한 사회를 지탱하는 훌륭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물론 토건 사업을 둘러싼 무분별한 개발 열풍과 투기 세력, 비리와 담합 등에 대해선 충분히 경계할 만하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인프라의 힘은 여전히 구성원들의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담보한다. 십 년 넘게 토목 엔지니어로 현장을 지켰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학기술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지 치열하게 논증하며, 인프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자연과 인공에 대한 새롭고 획기적인 관점
‘인공적인 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말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콘크리트 문명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우리는 한 사회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혁명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지에 관하여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책의 1부에서 서울 연남동의 ‘연트럴파크’와 광화문의 보도블록, 한강의 월드컵대교를 두루 세심하게 살피던 저자는 2부에선 국내와 전 세계를 아우르며 시민들의 편리한 생활을 담보하는 ‘인공의 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자연 호수로 알고 있는 백운호수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과정을 톺아보고, 고려 시대 이후 강화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대규모 간척 사업이 남긴 유산을 되짚는다. 조선의 신도시, 수원 화성에 관해 말하면서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말하던 저자는, LA항과 인도 뭄바이로 눈을 돌려 방파제라는 구조물이 지닌 문명적인 가치를 설파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과학혁명의 역사적 유산과 가치, 그 공학적 비전을 성숙하게 긍정하는 일이다. 저자는 『아파트가 어때서』에서 한 사회가 공학기술을 발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인프라적인 접근을 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과 일상적인 생활 수준을 고취하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역설한다. 예컨대 우리는 산업화에 따른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고 있고 이는 기술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연결되기도 쉽지만, 막상 선진국과 후진국 대표 도시들의 미세먼지 농도에는 격심한 차이가 존재한다. 미세먼지에 관한 엄격한 규제와 친환경 에너지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이미 선진국들은 미세먼지를 억제하는 놀라운 결과물들을 내놓고 있다. 한 사회의 공학적 자원과 첨단기술이 집대성된 교통 인프라, 방재(防災) 인프라 또한 마찬가지다. “다리 하나를 짓는 일이 뭐 대수인가?”, “그건 쓸데없는 토건 사업 아닌가?”라고 묻기엔, 여전히 우리나라엔 전라남도 신안의 천사대교를 비롯해 지역의 물류와 의료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2020년 여름 강과 하천의 범람을 막지 못해 전국에 많은 사상자를 낸 홍수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물 부족에 시달리며 인프라적인 고민과 투자를 멈추지 않는 싱가포르의 사례, 사장교 하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국가들의 생생한 사례들을 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국토 곳곳에는 인간 문명을 풍요롭게 만드는 과학기술의 흔적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덕을 입으면서 살아가며, 앞으로도 이에 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우리는 흔히 ‘회색빛의’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비판하지만, 그런 겉모습에 속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아파트가 어때서』의 저자 양동신은 오히려 저 철근 콘크리트야말로 인류의 축복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보편화 된 하수도 시설 덕분에 인류는 수인성 전염병에서 해방되었고 평균수명이 약 35년가량 늘어날 수 있었는데, 이러한 하수 처리 인프라는 콘크리트가 없었다면 결코 개발될 수 없었던 기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심하게 주목하고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면, 콘크리트를 비롯한 인공적인 기술과 시설들은 앞으로도 인간의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판상형 아파트’의 진보적인 가치를 되짚다
‘아파트 공화국’의 관점이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인프라의 본질과 역할, 그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차분하게 조망한 저자는 이제 3부에서 한 국가의 도시 문제,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 관해서 분석하고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한다. 저자는 서울과 안양, 화성과 세종, 제주와 홍콩을 종횡하는 폭넓은 시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계획의 전망을 밝히며, 과거 도시와 현재 도시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건폐율과 용적률의 차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시화’를 둘러싼 여러 오해와는 정반대로, 고층 아파트처럼 ‘낮은 건폐율’과 ‘높은 용적률’의 구조물은 한정된 자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가장 진보한 방식일 수 있으며, 현대 도시는 앞으로도 건물의 용적률을 높이고 건폐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녹지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역설한다. 나아가 그런 방향만이 우리에게 ‘입체적이고도 빛나는 도시’를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많은 이들의 섣부른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진 않은가? 우리는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살던 ‘덕선이네’의 풍경을 기억한다. 어느 주거 지역에 단층 혹은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을 돌아보면서, 30여 년 전 우리네 삶의 터전이 간직했던 아련한 향수에 잠긴다. 그렇지만 1인당 주거면적은 물론이요, 녹지 확대와 주차 문제, 환경 보호 등 그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러한 주거 양식은 아파트 단지와 비교하면 더 나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는 고압으로 유틸리티가 공급되어 전기, 수도, 가스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교통의 관점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출 수 있다. 『도시의 승리』를 쓴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주장처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게 사실이다. 요컨대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사는 것이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것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이란 관점에서 나오는 아파트에 관한 반감에 대해선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반론 격으로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세계 건축계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예의 구상을 꺼내든다. 코르뷔지예는 1920년대에 주창했던 부아쟁 계획(Plan Voisin)에서 파리의 도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대건축의 5원칙으로 필로티(pilotis), 옥상 정원(roof garden), 자유로운 파사드(free facade), 자유로운 평면(free plan), 가로로 긴 창(horizontal window)을 꼽았던 바 있다. 양동신은 대한민국 신도시의 판상형 아파트엔 놀랍게도 이러한 요소들이 거의 다 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프랑스의 공공주택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 형성된 아파트 중심 문화 및 도시 형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프랑스의 아파트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실패한 정책의 대명사라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는 『아파트 공화국』을 쓴 프랑스 지리학자의 비판 중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그릇된 일인지를 이 책에서 조목조목 설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가치를 설파하는 역작
어느 엔지니어의 탁월하고 혁신적인 통찰!
『아파트가 어때서』의 저자 양동신은 20년 전부터 도시계획과 토목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후 인도, 이라크, 베트남, 남아공, 카타르, 우즈벡, 오만, 덴마크 등등 십여 개의 국가들을 오가며 해저터널, 지하철, 발전소, 해상교량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건설 엔지니어다. 그는 2018년부터 중앙 일간지(《서울신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며, 지금도 여전히 국경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인프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현직 엔지니어다. 우리는 보통 과학과 공학, 인프라의 중요성을 머릿속으로 이해하지만, 그는 10여 년간 침매함체와 가설 호이스트를 넘나들며 현장에서 몸으로 그 인프라의 가치를 속속들이 체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책에 적혀있듯 위험천만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말이다.
결국, 이 책의 작가 양동신은 우리에게 인프라의 가치를 치열하게 강조한다. 일부 건축가들과 같이 도시를 미적으로만 보는 관성적 사고를 거부하며, 실용적인 관점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행복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흔히 근거 없는 거부감을 느끼거나, 막무가내로 비판 혹은 비하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 문명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지속가능성, 충분한 강점과 가치들을 발견한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주거 형태이면서도 여전히 “비인간적이다”, “반자연적이다”, “성냥갑 같다”라고 묘사되기에 십상인 공동주택, 특히 판상형 아파트에는 분명 억울한 것이 많다. 저자에 따르면, 르 코르뷔지예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우리의 공동주택 양식이 지닌 잠재력과 친환경성, 그리고 사회 인프라의 힘과 가치를 예견했던 건축가였다.
이번 책의 추천사를 쓴 명지대 경제학과 김두얼 교수의 말처럼, 저자는 터널과 교량, 댐과 공공주택을 ‘직접 만들어봄으로써’ 우리를 진정한 성찰로 이끄는 획기적인 관점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중교통을 매일 2시간이 넘게 직접 이용함으로써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 관점에서 더 필요한 인프라에 관하여 논할 수 있었으며, ‘남들이 걷는 도시’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무엇인지를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더 이상 중앙집권 권력이 ‘전진 앞으로’ 하는 인프라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녹아 들어가 개선되는 인프라 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오래도록 현직을 지키고 직접 콘크리트를 타설해보았던 어느 엔지니어의 통찰을 듣는 일이 필수적일 것이다.
아파트라고 해서 완벽한 건축 구조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도시를 비롯한 전 세계의 메트로폴리스는 저마다의 문제로 고통을 앓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랬듯, 인간은 현재의 불안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 답을 찾아낼 때 오랫동안 해저터널을 만들고, 지하철을 만들고, 공동주택을 만들고, 해상교량을 만들어 온 어느 엔지니어의 독창적인 시선을 참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파트]의 노랫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위로 별빛이 흐르고, 그 곁에는 바람 부는 녹지가 가득하며,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존재가 그 터전에 함께하길 바란다. 저자의 말처럼 용적률이 높은 아파트 및 공동주택은 바로 그러한 생활 양식을 담보해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진심으로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가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