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나무 아래서 뛰어 놀았다.
햇살이 비칠 때도 비바람이 불 때도.
가지 끝에 달려 있던 의업이라는 열매를 맛보며 자라났다.
그리고 커서야 보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나무에 새겨진 인고의 옹이들을.
그리고 커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살구나무였음을.
--- p.11
“행림(杏林)이라고 들어봤니? 남강 할아버지가 잠깐 이야기했던 살구나무 이야기다. 중국 삼국시대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으면 돈 대신 살구나무를 받았단다. 그 의사가 어찌나 명의였는지, 나중엔 그 주변 산이 살구나무로 가득 찼단다. 살구나무 숲은 명의이기도 하고 인술을 베푸는 의사이기도 한 거야.”
--- p.39
세 명이 함께 작두질을 해 원형의 얇은 절편으로 만드는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제 이틀 동안 잘 건조하는 작업만 남았다. 안채에 들어가 방을 따뜻하게 하고, 녹용을 쭉 깔아 놓았다.
오후부터 시작해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녹용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녹용 하나 만드는데도 이렇게 수작업으로 정성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구나. 방안 가득히 꽃이 핀 듯한 녹용 절편을 보니 절로 뿌듯했다.
--- p.107
아버지는 업권 때문에 진맥 또한 공식적으로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위 세대의 고수들에게 몸으로 직접 배우셨던 분이다.
“지금 내 맥이 긴맥(緊脈)이다. 새끼줄이 꼬인 듯한 느낌, 뻑뻑한 느낌의 맥이다. 기억해라.”
20대의 나의 맥과 비교하니 확연히 비교되었다. 부드럽게 힘이 있는 나의 맥에 비해, 몇 가닥의 실이 꼬인 듯한 아버지의 맥.
“다시 맥을 잡아보아라. 왼쪽, 오른쪽 맥을 비교해봐라. 어디가 세게 뛰냐?
긴장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제지간이기도 했다.
--- p.120
“인생 어렵게 살지 마라. 평범히 살아라. 남들처럼 살아!”
아버지는 배낭을 멘 아들을 만류했고, 호통을 쳤고, 애써 달래기도 했다. 나는 나대로 여러 번 설득했지만,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당신의 허락을 받고 떠나면 더 좋았겠지만, 이건 나의 인생이었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새벽, 아버지께 마음속으로 큰 절을 드린 후 첫차로 고향을 떠났다.
--- p.147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를 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고름을 짜내던 수녀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이 세상에 내려온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달 먼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선배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면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해질 수 있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 p.154
나는 아버지의 경험과 혜안에 감탄을 거듭했다. 학생 때는 이론으로만 공부하고, 무작정 외우기만 했다. 하지만 한의대 졸업 후 환자들을 실제 보면서 이론대로 잘 되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말씀으로 비로소 이유가 선명해졌다. 특히 육미지황탕에 관한 설명은 입을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 p.187
“재규야, 놀라지 마.”
거기까지 말해놓고 누나는 울먹였다.
“아빠가 암이래, 그것도 당장 수술해야 할 만큼 위급하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화기 너머 누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난 담담했다. 아니 담담한 척을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이제 아버지 연세에 암 발병할 수 있을 수도 있지. 어느 부위래? 자세히 얘기 들었어?”
누나는 훌쩍이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을 했다.
“조직검사를 또 해봐야 된대. 서울대병원 쪽에 담도암 전문으로 하는 교수님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가보려고 해. 크기가 5센티 정도 되는데, 위치가 안 좋아서 간을 크게 절제해야 된다고.”
아……. 탄식과 함께 주위가 휘청이는 느낌을 받았다.
--- p.225~226
병마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 집을 덮치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잉태되었다.
당신의 철없는 막내아들이 이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손녀를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당신의 품에 안겨드렸다.
그 아이가 백일이 되고, 조촐한 백일잔치를 하며 아름다운 새 생명을 축하하던 그날, 아버지는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들어가셨다. 며칠이면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정된 퇴원 전날 고열과 급성황달로 담관에 관을 꽂게 되었다. 다시 호전이 되어 퇴원하던 날, 앰뷸런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담즙배액관이 빠져 응급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엔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 p.241~242
귀향을 결정했다.
앰뷸런스를 섭외하고, 젊은 의사 한 명이 동승했다. 나는 가족을 대표해 앰뷸런스에 올랐다. 비상시를 대비해 의료인인 내가 아버지 곁을 지키는 게 낫다는 형제들의 판단이었다.
2월 1일 저물 무렵, 앰뷸런스는 경광등을 켜고 고향으로 출발했다.
석양이 서울대병원 건물을 아스라이 비추고 있었다. 당신이 병마와 사투했던 지난 두 달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사투, 그리고 옆을 지켰던 나의 분투가 떠올랐다.
앰뷸런스 창밖으로 병원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시원섭섭했다.
이제 고향으로 간다. 길 위에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할 순 없다. 반드시 아버지를 점촌까지 모시고 갈 것이다. 이건 나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 p.252~253
아버지의 맥을 잡았다.
느리게 힘없이 뛰고 있었다. 서맥(徐脈)이었다. 또한 불규칙적이었다. 부정맥인데, 가끔 튀는 듯한 맥이 나왔다. 산맥(散脈)이었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가라앉고 느린 맥, 찰흙같이 식고 가라앉은 느낌의 맥이었다. 촌관척이 약간씩 다르게 뛰고 있었다. 이런 맥은 처음 잡아보는 것이었다.
“아버지, 서맥(徐脈), 허맥(虛脈), 부정맥 중의 산맥(散脈)이 잡힙니다. 하나 더, 가라앉고 촌관척이 따로 뛰는 듯한 느낌의 맥이 있습니다. 이게 아마…….”
사증(死症)의 맥이리라.
아버지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