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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452이동
정현우 | 창비 | 2021년 01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10건 | 판매지수 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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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198g | 128*188*9mm
ISBN13 9788936424527
ISBN10 8936424521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나는 흐릅니까. 누워 있는 것들로 흘러야 합니까”
말해질 수 없는 슬픔을 노래하는 정현우의 첫 시집
생과 생의 여분을 고해하는 낯선 목소리의 탄생


2021년 ‘창비시선’의 문을 여는 첫번째 시집으로 정현우 시인의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출간되었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첫 시집이다. 등단 이전 가수로 데뷔했던 시인은 작년 ‘시인의 악기 상점’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앨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내고 뮤지션으로 문학과 음악 양쪽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기도 하다. 2019년 제4회 동주문학상(윤동주서시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미래의 시단을 이끌어갈 젊은 시인으로 주목받았다.

등단 6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선명하고 참신한 이미지와 세련되고 감성적인 언어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성찰과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묻는 시적 사유의 깊이와 활달하고 개성적인 문장이 돌올한 시편들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는 서정적 정감의 깊은 울림 속에서 애잔하면서 뭉클한 감정을 자아낸다. 동주문학상 수상작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를 비롯하여 68편의 시를 갈무리하여 4부로 나누어 실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부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

세례

소라 일기
여자가 되는 방
귀와 뿔

여백
오르골
유리 주사위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눈 깜빡거릴 섬(?)
이팝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하면 처음이 될까요
꿈갈피
컬러풀
겨울의 젠가
꿈과 난로

제2부 시간과 그늘 사이 턱을 괴고

달팽이 사육장 1
점(占)
해감
진화
침례 1
도화(桃花)
달팽이 사육장 2
파랑의 질서
주말의 명화
도깨비바늘
신이 우리를 죽이러 올 때
각도의 비밀
묘묘
The Sounds of Silence
로즈 빌
오르톨랑
배꼽의 기능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제3부 소년과 물보라

인면어
밥알을 넘기다 수저를 삼키면
강신무
용서
항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
사람은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 쉴 수 없나요
기원
서랍의 배치
소금 달
침례 2
유리의 서
손금
인어가 우는 숲
스노우볼
문조(文鳥)
사랑의 뒷면
수묵
오,라는 말은

제4부 여름의 캐럴

적화(摘花)
겨울 귀
툰드라의 유령 1
툰드라의 유령 2
묻다
거인
소멸하는 밤
늦잠
뱀주인자리
옷의 나라
종언
빙점
목화가 피어 살고 싶다고
소년의 태도
여름의 캐럴
후쿠시마

해설|김언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얼음나무 숲을 쓰러뜨려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이
갈비뼈에 진주알로 박혀 있다는 생각
그것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
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의 절반은
전염병에 눈이 없어진 불구로 가득했다.
---「세례」중에서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두 귀,
두개의 깃.
인간의 귀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었을까.
---「귀와 뿔」중에서

두 눈은 울기 위해 만들어졌지,
인간은 가장 말랑한 슬픔을 가지고 있어서

(…)

죽은 이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내겐 운,
슬픔을 가진다는 것 또한 인간이 되기 위한
경우의 수,

천사는 생각해, 마음껏 울어도 돼 그래도 돼
얼마나 많은 슬픔을 깨뜨려야
사람이 인간이 될까
---「유리 주사위」중에서

간밤의 꿈을 모두 기억할 수 없듯이, 용서할 수 있는 것들도 다시 태어날 수 없듯이, 용서되지 않는 것은 나의 저편을 듣는 신입니까,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용서할 수 없는 것들로 나는 흘러갑니다. 검은 물속에서, 검은 나무들에서 검은 얼굴을 하고, 누가 더 슬픔을 오래도록 참을 수 있는지, 일몰로 차들이 달려가는 밤, 나는 흐릅니까. 누운 것들로 흘러야 합니까.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중에서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
폭설을 내려주시어
들어갈 수 없는 길을 알게 하소서.
한토막의 슬픔으로
무너진 사람이
혼자 걷는 눈길을
사랑이라고 말하게 하소서.

눈과 눈 사이 거스를 수 없는 빛을
눈빛이라 부릅니까.
서로의 눈을 닫으면
슬픔만을 가져갈 수 없음을
---「겨울의 젠가」중에서

우리는 수저 없이 밥을 떠먹습니다.
손이 없어도 나는
가장자리 잎을 흔들 수 있고
밥상에 달그락거리던 저녁을 훔칠 수 있고
모든 고백이 떠밀려오는 겨울밤
아무 일 없이 마주 앉아
식은 뭇국을 떠먹으면,
죽은 그대를 불러와
나란히 수저에 얼굴을 올리면
나는 목이 멥니다.
배고픈 나의 심장을 내밀어보면서
오른손으로 수저를 들어보면서
고개를 숙여 목구멍으로 허겁지겁
주검들을 넘기다가
아, 나는 뜨거워
왼쪽과 오른쪽 슬픔의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창가에 날리는 쌀알만
꼭꼭 씹어 뱉어내고 싶었습니다.
---「밥알을 넘기다 수저를 삼키면」중에서

깨진 거울은 나무가 되고 잠들이 무너지는 밤, 조등이 내게 걸어오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휘파람을 붑니다. 밤과 잠을 그리며 새들은 나와 나란해집니다. 설명되지 않은 것 따위 겁이 나지 않느냐고 돌아와야 하는 거실은 불이 켜지는데 창밖, 영혼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그믐은 나의 이마를 씻깁니다.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별자리로 떠돌다 목을 맨 유성으로 떨어집니다. 서걱서걱 눈발 소리를 견디려 밤새 귀를 기울여도 무너지는 것들만 있어, 이파리들이 눈송이를 비비는 밤길, 양손으로 두 귀를 막고 서서 몇개의 잎사귀가 남았는지 나를 더듬어 확인합니다.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혼은 잎이 진 채 겨울을 납니다. 당신의 잠은 무엇이냐고, 다시 꿈을 꾸어도 되느냐고 사륵, 사륵 눈 결정이 서린 나무가 입술을 글썽이던 삼일이 이내 지나갔습니다.
---「소멸하는 밤」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정현우의 시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지울 수 없는 슬픔”(「오,라는 말은」)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잘못을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드러나는 순간 사라지거나 부정되고 마는 슬픔의 존재만 느껴질 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세상의 절반은/전염병에 눈이 없어진 불구로 가득했다”(「세례」)고 말하는 시인은 심지어 “본 적 없는 장면을 슬퍼”(「세례」)하기도 한다. 그렇듯 “슬픔을 가진다는 것”이 “인간이 되기 위한/경우의 수”(「유리 주사위」)라면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꿈과 난로」)라고 되묻는 시인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할 수밖에 없는 슬픔”(김언, 해설)으로 가슴에 새기며 삶의 고통과 슬픔을 참고 견디어낸다. 그리하여 “각자의 슬픔으로 고여 있는 웅덩이와 그림자일 뿐”(「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인 삶의 그늘진 풍경 속에도 “불탄 혀로 슬픔을 핥”는 “사랑과 기쁨”(「겨울의 젠가」)의 온기가 스며들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슬픔을 깨뜨려야/사람이 인간이 될까”(「유리 주사위」). 시인은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할 길 없는 내면의 슬픔 속에서 “잘못 태어난 것들을 떠올”(「빙점」)리며 자신의 기원을 찾아 어두컴컴한 미로의 세계를 탐색해 들어간다. “잠은 둘이 자는데/왜 두가지 성을 가질 수 없을까”(「침례 1」),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여자가 되는 방」)라는 의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시인의 번민은 종내 그치지 않는다. 시인은 기존의 체계와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색” 중에서 ‘나’로서 “살아 있으려는 색”(「컬러풀」)을 품고자 한다. 그것은 시인의 당면한 현실이자 가장 절실한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인은 “빛을 오리는 검은 가위질”로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시간”(「인면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문득문득 “사려 깊은 여성이 되어”(「항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보기도 한다.

정현우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는 “멍든 것들로 가득 차 있”(「멍」)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비가(悲歌)이자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고해록이다. 시인은 이 시집으로 “믿지도 않는 신”에게 드리는 “죄 없는 기도”(「용서」)로써 고해의식을 마친 셈이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서거나 여기서 멈춰서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은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지는 밤”(「여자가 되는 방」)처럼 암울하고, 고통의 연속인 삶은 “빛이 들지 않는 미래”(「세례」)라 할지라도 “위태로운 것은 아름답”(「항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기에 시인은 “덫에 걸린 나의 안쪽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덫」)면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거룩한 천사의 음성으로 슬픔을 노래할 것이다. “이름을 받지 못해 엉킨 채로 서글프게 떠도는 허공의 회로들과 한 몸이 되어 쓰고, 서로를 태우고 살아갈 것이다.”(이병률, 추천사)

정현우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질의: 편집자)

―첫번째 시집을 출간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만지지 못하는 사람과 존재 들을 시 속으로 모두 불러낼 수 있어서 기뻤고,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뭉클합니다.

―문학과 음악 두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소 시를 쓰는 일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시인의 악기 상점’이라는 팀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시가 안 써지면 음악으로 음악이 안 써지면 시로 이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엔 시인의 정체성이 강하다보니 작곡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이참에 작곡은 저의 다른 팀원에게 맡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웃음)

―첫 시집을 엮으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호명받지 못하고 소외받는 존재들을 대신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가난에 편을 들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고, 가난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오면서 느꼈던 감정과 환상들이 시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처음에 시작하는 「세례」라는 시와 마지막 「후쿠시마」라는 시 입니다. 지금 사회는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헐벗은 상태잖아요. 인간의 가장 강한 무기는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돌이나 나무가 아닌, 인간이니까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잖아요. 힘들 때는 죽을힘을 다해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종교적인 의미를 초월해 지금 상황이 빨리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많이 뭉클해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시를 오래도록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잠시 멈춰있는 음반 작업도 열심히 하게 될 것 같고요.

시인의 말

죽지 마 떨어지지도 마 아무것도 없는데
한여름에 먹는 수박 맛도 느낄 수 없잖아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어떤 마음을 선택해야 하고
밤이 되면 슬픈 눈을 갖게 되는 것도
천국이 있다는 아름다운 말을 믿는 것도
너는 아니, 인간에게 울음은 왜 있는 걸까, 네 슬픔에 기대도 될까
버스를 타고 오는 창문에 입김을 불었어
네 눈동자를 그려봤어 자꾸 지워지는데 그런 슬픔은 잔인하지

(…)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공간은 어디에서 끝날까
어둠과 빛 사이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것들
찬란한 애수, 검은 기쁨들……
내가 듣고 말하는 것이 모두 썩어 없어진다면
그냥, 서글픈 이파리, 눈이 부시다가
바람결에 날아가도 좋아
그냥, 이런 하찮은 마음 같은 거, 그러니까
이건 나의 마지막 편지
더이상 네게 묻지 않을게
네 슬픔을 기도하는 것도 안도하는 것도

나는 아직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
너는 그래서 사람이 되었어?
네가 있는 곳에도 눈이 올까?
나는 미친 듯이 궁금해
너는 아니, 어떤 질문이든 뭐가 필요해
됐어, 견뎌내느라 애썼어, 너의 눈동자 같은 기쁨으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시집은 고해록이다. 생의 여분을 거역할 수 없기에 청년 이전의 시간들에 대해 고해하고, 태어났으되 갇혀버린 몸과 명점(命點)에 대해 고해한다. 시인은 조준선 끝에, 그리고 감각의 연장선 위에 신(神)의 선택을 받거나 받지 못한 자신의 운명을 배치한다. 그와 그와는 다른 낯선 자신, 그 둘은 공모하여 그에게 사람의 일이 아닌, 시를 쓰라고 책상에 앉혔다.

시 속에 ‘엄마’가 수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신을 빚어놓은 대상에게 붙들려 살지도, 대상을 폐기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일 것이고, “신을 받지 않는 내가”(「인면어」) “작두날을 얼굴에 대고 연풍을 돈다”(「강신무」)는 진술은 시인이 첫 시집으로 지은 세계가 발광하는 빛으로 지붕을 올린 날것의 사원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위태로운 것은 아름답”(「항문이 없는 것들을 위하여」)기에 “나의 안쪽을 오래도록 들여다”(「덫」)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따뜻하고 부드럽게, 억세고 질기게 자신의 혈맥에 호소한다. 그 호소력은 자기다움의 소실점을 따르고 있다.

정현우 시인은 이 시집 한권으로 고해의식을 마치고도 경로를 지속하여 더 낮은 것들을 노래할 것이다. 이름을 받지 못해 엉킨 채로 서글프게 떠도는 허공의 회로들과 한 몸이 되어 쓰고, 서로를 태우고 살아갈 것이다.
- 이병률 (시인)

회원리뷰 (10건) 리뷰 총점9.6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남성의 여성-되기와 지상의 천사,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c*****3 | 2022.02.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정현우의 시를 읽었다. 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는데, 그 중, 특이하게도 '신춘문예풍'의 시가 많이 실렸다는 평이 보였다. 그것은 좋은 말로 최근에 소통되는 시의 첨단을 정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고, 나쁜 말로 유행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시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악한 표현이 있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상징으;
리뷰제목

정현우의 시를 읽었다. 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는데, 그 중, 특이하게도 '신춘문예풍'의 시가 많이 실렸다는 평이 보였다. 그것은 좋은 말로 최근에 소통되는 시의 첨단을 정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고, 나쁜 말로 유행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시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악한 표현이 있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상징으로 난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이해되거나 상투적이지도 않은, 절묘한 균형이 있다. 마치 남사당패의 어름산이가 요령 있게 줄을 타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보니 너무 젊은이라 놀라게 되듯.

 

약간 멋부린 듯한 시구가 없지는 않다. "눈꺼풀을 닫으면 / 죽음이 필요해진다."(「용서」), "배교가 없는 새들은 / 발목이 없다"(「오르톨랑」)과 같은 시를 마무리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시의 문맥을 다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시의 주제 의식을 살리기 위해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런 면모가 유행하는 시 스타일로 보이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시집 4부의 툰드라 연작은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현재 시집을 4부까지 읽고 있는데, 시인의 배치를 추측해보건대 1부에 가장 큰 공을 들인 듯하다. 1부에 시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포진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천사 이미지가 가장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적인 투시가 돋보이는 '남성의 여성-되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상해서 나는 화장을 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여자를 벗은 것 같아

누나의 검정 치마를 입었다.

 

거울 속에서 숨죽인 내가

립스틱을 쥔 채로

매달려 있었다.

 

아랫입술을 잃어버렸다.

쏟아지는 검은 가시들

누나의 마스카라는

나의 베갯잇에 물들고,

 

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얼굴이 되는 걸까.

 

누군가 방문을 열까봐

우는 얼굴로 저녁을 닫았다.

 

나는 내 몸을 만지면서

눈을 감고 얼굴을 그린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흩어지고 싶은 구름

가슴이 없는 까마귀떼

나의 몸에서 풀이 자란다.

금방 풀이 죽는다.

풀숲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훔쳐보는 마음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지는 밤에는

나는 여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방문을 잠그고 나와

반성문을 썼다.

 

방문을 삐져나온 뱀들은

악몽에 목이 베였다.

밤을 켜면 벼랑은 나를 떨어뜨렸다.

여자를 흉내 내고

깨진 유리를 삼키고

바람의 목을 쥔 채로 길어지는 밤

잘린 손가락들은 유리의 성을 쌓고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런 존재는 나의 가랑이 밖에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개들이 나의 얼굴을 더듬거리고

웃을 수 없다.

아름다운 얼굴이 지워질까봐

 

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

 

끝없이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얼굴 없는 여자가

또각또각 걸어나간다.

 

나와 멀어진 나를

사랑할까봐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고.

- 「여자가 되는 방」 전문

 

남성 동성애자가 여장을 한 것을 드랙퀸이라 한다. 나는 정현우의 시를 평한 어떤 글에서 드랙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알았다. 그렇지만 정현우의 시에서 읽은 것은 퀴어적 감수성은 아니었다. 남성 화자가 여성이 되려고 하는 시도들은 성정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고뇌, 고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위에서 인용한 시에서도 여장을 하는 까닭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해서",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서"이다.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결핍 때문에 갈구하는 것이다. 화자는 남성/여성으로 분기하기 이전의 상태를 상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또는 남성/여성의 경계에 있는 자를 생각한다.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생명은 개체발생적으로 기관의 분열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데, 거꾸로 이 시에서는 분할 이전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퇴행의 욕망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결핍감을 분열 이전의 완전성으로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멀어진 나"는 내가 남성이 되면서, 분할되면서 잃어버린 반쪽이며, 그것에 대한 사랑이 나를 고뇌하게 하고 위협하며 뒤흔든다. 상실감을 보충하기 위한 마조히즘적인 고통("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을 수락하려고 하지만 잃어버린 충일성은 '얼굴 없는 여자'로 나타날 뿐이다. 결국 남성의 여장은 실패한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게 되는 것이다.

 

경계에 대한 탐색은 시인의 주된 테마 중 하나이다. 신내림과 영매를 탐구하기도 하고, 툰드라의 야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기도 하며, 남성/여성 구분 이전으로 퇴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경계의 탐구가 시인의 시적 기교와 맞물리면서 아름다운 시구를 탄생시킨다. '천사' 이미지는 지상/천계의 경계에 있는 이미지로서 시인의 상상 세계 속에서 흥미롭게 제시된다.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두 귀,

두개의 깃.

인간의 귀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었을까.

- 「귀와 뿔」 부분

 

언제부터인가 천사는 신과 더불어 성스러움의 퇴화 흔적, 신성함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로 현대시에 등장하는 것 같다. 천사는 숲 속에 쓰러질 수 없지만, 시인의 시적 세계 속에서 천사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천사는 지상/천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아마 천사와 대응하는 현실의 오브제는 예술작품, 시일 것이다. 천사에게 말을 배우는 존재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는 다름 아닌 시인이다. 그래서 천사도, 시인도 모두 경계에 있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존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경계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식을 고문하면서 스스로를 순수한 상태로 증류시킨다. 우리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은 걸까. 아마 자기를 순수로 증류하려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시인에게 천사와 여성-되기는 더 근원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통로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는 더럽고 추한 것까지도 미화하는 시인의 상상력과 만나는 것 같다. 이 역시 순간적인 직관일 뿐이라, 시집을 다시 정독하여 읽어봐야 직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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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보라색처럼 여리고 슬픈 정서이지만, 그 슬픔을 승화한 뒤의 훼손되지 않은 인간성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우 | 2021.11.26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I   모든 시집들을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비 시선은 종종 '어나더 커버'라고 해서 원래 표지 위에 또 하나의 표지를 덮어 씌운 시집들을 출간한다. 이 경우엔 보랏빛의 '어나더 커버'를 원래 표지(원래 표지도 같은 계열의 색을 썼다)에 덧씌웠는데, 전반적으로 겨울 느낌과 슬픔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데 시;
리뷰제목

I

 

모든 시집들을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비 시선은 종종 '어나더 커버'라고 해서 원래 표지 위에 또 하나의 표지를 덮어 씌운 시집들을 출간한다. 이 경우엔 보랏빛의 '어나더 커버'를 원래 표지(원래 표지도 같은 계열의 색을 썼다)에 덧씌웠는데, 전반적으로 겨울 느낌과 슬픔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데 시들을 읽다 보면 딱 이 표지 같다. 첫 눈을 볼 때의 정서. 아름답지만 언젠간 녹거나 때가 탈 걸 알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는. 그런 양가적 감정이 지배적인 시집이다.

 

II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는 이 시집의 1부의 제목인데, 1부에 실린 시들이 하나같이 다 좋아서 한 편의 시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쌀쌀한 계절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정도다.

 

1부의 시들도 좋았지만, 2부의 시들도 한결같이 좋다. 등단 6년만에 나온 첫 시집이다 보니, 시인도 고심해서 시들을 추린 걸까? 주변에서 이 시집을 많이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정현우 시인은 시인이면서 가수이기도 하단다. 밴드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시들은 어떤 면에선 화가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파랑의 질서」라는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브 클라인(Yves Klein)이 블루로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물론 정현우의 시풍에는 이전의 화풍에서 신성시되었던 블루의 느낌도 있지만(예를 들어 성화에서 예수나 마리아의 옷은 블루이다), 그보다는 좀더 모던한 느낌이랄까.

 

모든 질서는 왜 파랗게 질려 있는가?
양파와 질서 사이를 열고
몽상을 꺼낸다.

(...)

파란이 파랑보다 먼저 쓸려가고
액자 속이 잠잠하다.
두꺼운 멜랑꼴리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다.

 

- 정현우,  「파랑의 질서」 부분

 

III

 

대체로 '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은 젊을 가능성이 크고,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은 그들의 모든 가능성과 심혈을 가득 담아 새롭고도 난해하고 낯설고도 도전적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첫 시집'을 읽는 건 그런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첫 시집'이나 '첫 소설'을 읽는 건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늙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취향에 맞아서 읽는 경우보다는 공부하듯 읽는 경우도 다분하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MZ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정현우 시인의 시들은 시를 읽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동년배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이 시를 읽자마자 저절로 흡수되고 이해된다. 그 정서나 감정, 그가 표현하는 방식 등을 이해하는 데 따로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읽자마자 바로 '느끼게 된다'.

그런 점이 참 좋다.

 

IV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 게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는 데 수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아마 정현우의 시는 거의 모든 세대가 보편적으로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을, 역시 모든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과 언어로 전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본인에겐 그게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타의 젊은 시인들과 같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건 시인만이 가진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도 장벽 없이 그의 시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3부의 시로는 「서랍의 배치」를 들고 싶다.

짧고 간결한데 힘이 있다. 수묵 정물화를 보듯 시 앞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

 

이 시집의 마지막 챕터인 4부의 시들 역시 시집을 끝내는 게 아쉬울 만큼 한 편 한 편이 아름다웠다.

한동안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만 시집들이 많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다 좋아서 기쁘다.

 

전반적으로 보라색처럼 여리고 슬픈 정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을 승화한 뒤의 훼손되지 않은 인간성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게 이 시인의 가장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4부의 제목은 '여름의 캐럴'인데, 같은 제목의 시를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다.

 

V

 

이 시집은 김언 시인의 해설로 마무리된다.

시인의 첫 시집의 해설을 김언 시인이 썼다는 것도 시집의 의미랄지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병률 시인이 추천평을 쓰고 김언 시인이 해설을 썼는데, 각각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가 떠오르는 시인들이지 창비가 연상되는 시인들이 아니다. 그런 두 시인이 (자발적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꺼이') 이 시인과 시집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과 시인이 가진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김언의 해설은 아니나 다를까 '정현우의 시에는 유독 ‘슬픔’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로 시작된다. 시인의 말대로 이 시집은 슬픔에 대한 시이다. '슬픔'이라는 단어 자체도 많이 나오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단어들로 표현하고 드러내고 말한다. 그래서 그 감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익숙한 것인지 새삼 깨닫고 느끼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그래서라도 이 시집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된다.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김언 시인의 표현대로 아름답고 슬픈 시집이다. 슬프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정화는 아마도 이 두 감정이 함께 하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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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관심을 둬야 할 시인이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f***2 | 2021.07.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보랏빛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꺼풀 벗고 나면 기존의 창비시선과 닮은 모습이 나온다. 이 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집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며칠 전 겨우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시어들도 많지만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시인의 감성이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분명 오독도 많을 텐데 가슴 한 곳이 무겁다. 그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이, 다름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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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꺼풀 벗고 나면 기존의 창비시선과 닮은 모습이 나온다. 이 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집을 받은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며칠 전 겨우 시집을 펴고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시어들도 많지만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시인의 감성이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분명 오독도 많을 텐데 가슴 한 곳이 무겁다. 그가 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의 모습들이, 그 때문에 겪어야 했을 상황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성 정체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시집의 1부와 2부에서 가장 많이 느꼈다.

 

이 시집의 제목은 시의 제목이 아니다. <귀와 뿔>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성 정체성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기독교다. 성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무속 신앙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가족의 종교가 서로 갈리는 것일까? 그가 성당에 가는 이유는 신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강권이 더 큰 이유라고 분명히 말한다. 시집 속에서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은 신앙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성이 담긴 시어들은 단어들을 곱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 한 번, 대충 읽은 듯해서 한 번. 이렇게 시를 읽다보면 어떤 시에서는 슬픔이란 감정이 전해지기도 한다.

 

“잘못이 들키면 잘못이 되고,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라는 문장을 계속해서 읊조린다. 이 미묘한 말의 차이가 마음에 와 닿지만 머릿속에서는 정확한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을 지우고 나서야 나는 / 웅덩이 속, / 나무를 베고 잠이 들었다”<달팽이 사육장 1>고 말할 때 그의 아픔이 가슴에 문을 두드렸다. <인면어> 속 이야기는 단순한 카스트라토 사연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가 경험한 일이 아닐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용서>고 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것들만 고통을 준다는 / 신은 / 없다.”라고 말한다. 이 용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엄마가 시에서 자주 보이는 반면에 아버지는 그 빈도가 훨씬 떨어진다. 첫 시에 잠시 나왔다가 다시 나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중간에 내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제4부에 등장한 아버지는 낚시와 사냥 같은 행위의 선배 역할을 한다. “천사가 오기까지 내기해 / 눈을 감은 사람이 지는 거야 /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 누구라도 따라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여름의 캐럴> 이 시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어디서 이 슬픔이 온 것일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정말 자유롭게 형식을 변주한다. 기존 형식을 깨트리고 자신의 슬픔과 기억을 풀어내는데 크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관심을 둬야 할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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뗑**지 |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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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처럼 여리고 슬프지만 그 슬픔을 승화한 뒤의 훼손되지 않은 인간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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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 |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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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슬픔 고요 영혼 비밀 신비로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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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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