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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리뷰 총점9.0 리뷰 58건 | 판매지수 124,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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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87위 | 국내도서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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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00g | 140*200*15mm
ISBN13 9788965964230
ISBN10 896596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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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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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가 기록한 마지막 흔적들. 환자들과 가족들이 그려가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과 죽음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 에세이 MD 김태희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가 기록한 마지막 흔적
우리의 선택이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서울대 암 병원 18년차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가 만난 암 환자와 그 곁의 사람들, 의사로서의 솔직한 속내를 담은 에세이.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남은 시간을 채운다. 누군가는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담담하게 삶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시시각각 찾아오는 죽음을 미루기 위해 고집을 부리기도 하며, 어떤 이는 암을 이겨내고 다른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 곁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사후 뇌 기증 의사를 존중하는 아들, 의식 없는 어머니가 심폐소생술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어머니를 놓지 못하는 남매,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를 외면하는 딸, 연인이 암 환자인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선택한 남자 등 환자 곁의 사람들 모두 각기 다른 선택을 한다. 그 같은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의 선택을 되돌아보며 저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라고 자문한다.

저자는 환자들과 가족들이 그려가는 마지막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곱씹어보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렇게 얻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저자가 틈틈이 남겨온 기록이다. 책의 1, 2부는 저자가 만나온 환자들의 이야기로 환자와 가족들이 예정된 죽음과 남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3, 4부는 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고민과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책 속의 사람들의 모습에는 지금 여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과 죽음에 태도는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1부. 예정된 죽음 앞에서
너무 열심히 산 자의 분노 / 내 돈 2억 갚아라 / 특별하고 위대한 마지막 / 혈연이라는 굴레 / 사후 뇌 기증 / 저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 / 10년은 더 살아야 / 대화가 필요해 / 믿을 수 없는 죽음 / 임종의 지연

2부.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인생 리셋 / 기적 / 학교에서 잘렸어요 / 잔인한 생 / 아이의 신발 / 오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 요구트르 아저씨 / 말기 암 환자의 결혼 /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3부. 의사라는 업
별과 별 사이: 600대 1의 관계 /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 파비우스 막시무스 / 너무 늦게 이야기해주는 것 아닌가요 / 3월의 신부 / 윤리적인 인간 / 이기심과 이타심

4부. 생사의 경계에서
각자도생, 아는 사람을 찾아라 /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하여 / 울 수 있는 권리 /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 마지막 뒷모습

이야기를 마치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환자가 의사를 먹여 살리는 셈이고,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치료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환자들의 선택이, 그들이 꾸려가는 시간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고 정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환자 들은 삶과 죽음으로 살아 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았 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 p.6

장애물이 있으면 어떻게든 치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존재 이유를 찾는, 앞만 보며 이 악물고 달려온 삶. 그에게 삶은 열심히 싸워 야만 하는 투쟁의 장이 아니었을까? (…) 나중에 호스피스 실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떠났을지, 가족들의 외면 속에서 쓸쓸히 떠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켜봐왔던 그의 삶을 생각해보면 후자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죽은 뒤에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 p.24

내가 목격한 수많은 혈연관계도 참담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생각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 p.39

어쨌든 의사조차도 낯선 사후 뇌 기증을 팔순의 환자가 미리 신청해두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웠다. 아마도 그는 장기 기증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고 암 환자의 장기 기증이 불가능 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방법을 찾아본 끝에 이 사후 뇌 기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얼마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거쳤고 준비를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p.50

암에 걸리는 것은 허허벌판을 지나다 예고 없이 쏟아 붓는 지독한 폭우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우산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고스란히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뿐이다. (…) 어차피 맞을 비라면 맞으면서 걸어가는 것이 낫다. 물론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시덤불에 긁힐 수도 있다. 그러나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혹은 비를 가려줄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내린 비와 그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내공이라는 게 생긴다.
--- p.56

어차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면 임종이 지연될 때 대답할 수 없는 환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알아내서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평탄하지 않았을 삶과 지난한 투병 끝에 떠나는 길만큼은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의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바라게 되는 것이다.
--- p.84

암 투병은 환자도 가족도 모두 지치는 일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이어져가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랑도 남루해지기 쉽고 희망도 쉽게 잃는다. 어쩔 수 없이 긴 투병의 모든 끝이 상처만 가득한 폐허로 남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니 희망 없는 속에서도 그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암 덩어리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기적이었다.
--- p.106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일은 부모로서 결코 담담해질 수 없는 일이다. 암 병원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암 환자라고 하면 나이 든 중년, 노년의 환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암은 나이를 가려 덮쳐오지는 않는다. 당연히 어리고 젊은 암 환자들이 많고, 그중 에서는 완치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결국 그 부모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 p.121

· 환자와 의사를 떠나 서로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본디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너의 상황을 짐작해보건대 너는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짐작한다’는 선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고, 완벽히 같은 상황과 처지에서의 똑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 p.163

나도 때로는 파비우스와 같은 전략을 택한다. 암세포가 싸움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 종종 최대한 시간을 끌며 버틴다. 종양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 장기의 기본적인 기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환자가 좀 더 오래 숨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아프지 않도록 만든다. 정면승부를 피하고 버텨보는 식이다. (…) 이 같은 전략의 목적은 암이 자라는 것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환자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 작전도 언젠가는 무의미해질 테지만 적어도 독한 항암치료로 힘든 상황은 피할 수 있고 나름대로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있는데다가 버티면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 환자가 다른 유용한 일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 p.176

마지막까지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데는 또 다른 요인이 뒤섞이기도 한다. 항암치료 중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은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병원 수익 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항암치료도 하고 CT 검사도 하고 여러 의료 행위를 하면 병원에 수익이 발생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하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병원에는 0원의 수익이 발생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사망 2주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여러 요인들이 얽힌 결과다.
--- p.183

누군가를 돌볼 때에는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이타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스스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이기심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보호자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나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스스로의 보호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먼저 돌볼 사람은 나뿐이다.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을 때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여력이 생긴다. 이타적이기만 하려다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도 돌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바람적인 일이 아니다.
--- p.210~211

모두들 보호자와 가족들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호자가 오면 주치의는 나가서 보호자와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가족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면 쇼피알 연극은 끝나고 주치의는 사망을 선언할 수 있다. 환자의 저승 가는 길은 그렇게 힘들고 험난했다. 가족들과 의료진은 환자에게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고 환자는 너무 힘들게 저승길로 떠났다. 나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자꾸 되묻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고.
--- p.232

나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환자의 산소 공급과 승압제 주입을 중단했고 그는 사망했다. 2018년 2월 이전이었다면 나는 살인자가 됐을 것이고, 2018년 2월 이후라면 합법적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의료진이 된다. 행위는 같으나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애매하고 인간의 판단은 인위적이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할수록 현장은 혼란스럽다. 법의 모호성은 권력을 낳고 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법을 논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진정 환자를 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법을 따지려는 이들은 현장에 발들이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심판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책상머리에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현장에서는 늘 일어난다.
--- p.240

더 슬픈 것은 이 같은 시스템이 우리를 길들인다는 점이다. 비정상이 오래되면 무엇이 정상인지 알기 어렵다. 시스템은 더욱 공고 해지고 이 시스템 속에 있다 보면 환자나 보호자도, 의사도 컨베이어벨트처럼 3분에 한 명씩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당연 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짧은 시간이 끝나면 울고 있는 환자를 보호자가 끌고 나가고, 밖에서 울음소리는 새어 들어오고, 그 옆에서 오래 기다린 대기자들은 화를 내는 이상한 현실을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슬퍼하거나 울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걸까? 이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권리를 논한다는 게 과욕인 걸까? 이 시스템의 변화는 불가능한 걸까? 복잡한 시스템 속 작은 톱니바퀴는 오늘도 여지없이 돌아가면서도 좀처럼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다.
--- p.245

내가 목격한 마지막 뒷모습은 때로는 정리되지 않은 돈이었고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뒤얽혀 고인에 대한 슬픔을 넘어 분노로, 지리멸렬함으로 끝나고는 했다. 고인이 정리하지 못한 관계들이 남아 있는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지켜보면 무엇이든 간에 정리되지 않고 남은 것들은 대개 아름답게 기억되지 못할 것들이었고, 남은 사람 들이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인의 뒷모습으로 남았다.
--- p.258~259

삶을 잊고 있을 때 떠나간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를 향해 묻는다. 언젠가 당신도 여기에 다다르게 될 텐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당도하고 싶은가?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생의 감각이 팽팽해진다. 어쩌면 죽음만큼이나 삶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61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삶에는 수많은 처음과 마지막이 있지만 우리 인생의 가장 처음과 가장 마지막은 탄생과 죽음이다. 이 시작과 끝만큼은 내가 아닌 타인의 기억으로 남는다. 탄생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맞는 것이지만 죽음만큼은 준비할 수 있다. 언젠가 분명히 ‘죽음’의 순간이 온다는 건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이 몹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이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을 ‘어쩌다 갑자기 맞는 죽음’으로 끝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4부. 〈마지막 뒷모습〉 중에서

서울대병원 18년차 종양내과 의사가 기록한 암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
“남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19년 기준 암 사망자 수는 7만 8863명으로 2018년에 비해 1만 명 가까이 증가했고, 한국인이 사망하는 장소로 병원은 1996년 25.2퍼센트에 비해 2019년 77.1퍼센트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는 2017년 대비 2019년 2만 건 이상이 늘었다. (시사인 ‘죽음의 미래’ 참조) 이 같은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암 환자들의 죽음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도 바로 병원이라는 이야기이고,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18년차 종양내과 의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2016년 대한민국에서 사망한 28만 명 중 21만 명이 병원에서 사망했고, 말기 암 환자는 90퍼센트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수많은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선택과 그들이 보내는 시간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사이자 한 인간으로서 깨닫게 된 삶의 의미와, 옳고 그름의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을 통해 자신이 배우고 느낀 바를, 그리고 환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일종의 비망록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환자들의 선택이, 그들이 꾸려가는 시간이,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내게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고 정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환자 들은 삶과 죽음으로 살아 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들의 죽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에게는 기억되는 죽음이라는 것, 나아가 누군가의 죽음이 어떤 이에게는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6-8쪽)

죽음 앞에 선 환자와 가족의 선택,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게 하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 언급되는 환자들은 모두 암 환자이지만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 저마다의 선택을 하고 각자 다른 모습으로 종착역을 향해 간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끊어진 혈육의 정을 회복하기보다 빌려준 돈 “2억 갚아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 직전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10년만 더 살기만을 바라기도 한다. 칠순의 한 노인 환자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며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또 다른 노인 환자는 의사도 모르게 ‘사후 뇌 기증’을 신청해놓고 떠난다. 모두가 “앞으로 남은 날이 ○○ 정도 됩니다”라고 기대여명에 대해 듣지만 그 남은 시간을 채워가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환자들이 남은 삶과 예정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묻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를 다 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빈칸으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운 일이다”(62-63쪽)라고 적는다.
또한 환자가 종착역으로 가는 여정에는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가족이 함께다. 원발부위불명암을 앓는 남편이 완치되기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아내가 있고,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를 끝내 외면하지 못해 혈연을 저주하면서도 마지막을 책임졌던 딸이 있다. 각자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혼한 부모를 돌보느라 병원과 일터를 전전하는 아들도 있으며, 암과 치매를 앓는 88세의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예순에 가까운 딸도 있다. 저자가 지켜본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만큼이나 저마다의 선택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환자와 그 가족의 모습은 우리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고, 반려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은 어떻게 내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가, 그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들며 또 다른 의미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환자의 남은 삶과 죽음을 함께 고민하다


암 환자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병원이고, 이곳에는 그 마지막까지 환자, 가족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의사가 있다. 한 사람의 생사와 남은 날을 지켜보고 치료해야 하는 의사의 고민은 깊다. “선생님에게는 제가 600명 중 한 명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선생님 한 분뿐이거든요”라고 말하는 환자 앞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생각하고, 완치 되었으나 암 환자라는 이유로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젊은 암 환자들을 보며 사회의 역할을 되묻고,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항암치료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치료를 요구하는 환자들을 안타까워한다. 팔순 노모에 대해 연명의료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사남매로 인해 온몸이 붓고 의식을 잃은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순간에도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는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 의료진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를 되묻는다. 환자도 병원도 싫어하는 완화 의료에 대해서도 그것이 환자의 남은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신념을 고백하기도 하며, 어쩔 수 없이 ‘시속 10명’으로 환자를 만나야만 하는, 한국의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에 대해 씁쓸함을 털어놓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들려주는 몇 가지 사연들은 ‘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환자가 살아는 있으나 죽음보다도 못한 상태일 때, 존엄과는 멀어지고 있는 경우에 보호자와 의료진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환자를 떠나보내야 할지,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이승에 붙들어 놓을 것인지.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이야기 속에서 환자의 아들은 아버지가 편히 돌아가실 수 있게 임종방에 모셨지만 아버지는 점차 사람의 외형을 잃어가고 악취를 풍기면서도 돌아가시지 않는다. 그 곁을 지키던 아들은 차라리 보내드리는 게 낫겠다며 오열하고 담당 의사인 저자는 산소호흡기를 떼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법으로는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그 순간 의사도 보호자도 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고,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 선택의 무게를 토로한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저자는 환자의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존엄한 죽음을 위해 깊이 고민한다. 우리 대부분은 독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며, 사람이기에 병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마주한 환자와 보호자의 자리에 언젠가 우리가 앉게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우리도 함께 해야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의사로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히 ‘의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유다.

김범석 교수는 이 책에서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암 환자와 가족, 의사인 저자의 선택과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죽음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또한 거기에서 나아가 언젠가 나와 내 가족에게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종착역으로 향해 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회원리뷰 (58건) 리뷰 총점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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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뽀* | 2021.10.29 | 추천24 | 댓글42 리뷰제목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p.7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은 죽음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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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고, 언젠가는 찾아올 '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p.7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은 죽음과 거리가 먼 것처럼 생활하는 사람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례식장에 여러 차례 가보았으나 나와 죽음은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젊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며, 아픈 곳 없이 건강하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그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음이 자명하다. 그렇기에 이 책이 나에게 더 크게 와닿았다. 죽음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고,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종양의 크기는 계속 커졌고 항암치료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이제 쓸 수 있는 약이 없었다. 인생이 더는 자신의 통제하에 흘러가지 않고 모든 것이 암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 찾아온 '끌려가는 순간.' 그는 아마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중략-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너무 열심히 산 자의 분노' 중에서

주위를 보면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 없이 주어진 일에만 몰두하며 잘 살고 있다 착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 그것을 지금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지를.

가끔 상담을 하다 보면 돈을 벌기 위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관계가 틀어진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럴 경우 돈을 버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를 위해서라고 답변한다. 뭔가 이상하다. 아이와 함께 행복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데 관계는 점점 멀어지다니?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 이제 엄마와의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나 봅니다. 이제는 제가 엄마를 놓아드려야 하는 때가 온 것 아닌가 해요. 아버지와 저희 가족을 아프시기 전처럼 똑같이 챙기시던 대단한 엄마가 자꾸 약해져 갑니다.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갈까요, 하고 선생님께 물었을 때 선생님이 엄마에게 딸 옆에 꼭 붙어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셔서 저랑 함께 아이들 등원시키고 사우나도 가고 산에도 가고 했던 1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가 봐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너무 없네요. 불과 20일 전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특별하고 위대한 마지막' 중에서

삶의 마지막이 눈앞에 놓인 상황에서 일상의 소중함은 몸소 느껴질 것 같다. 1년도 아닌 그저 20일 전 엄마와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게 되다니. 이런 글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이들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큰딸을 앞에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참담했다. 어쨌든 환자가 죽음으로써 이 '부녀'라는 관계의 굴레가 드디어 종결된다는 것이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보였다. 부친의 죽음이 그녀의 삶에 찾아오는 첫 번째 행운 같았다.

-'혈연이라는 굴레' 중에서

나는 특별히 유명해지거나 훌륭하다고 찬사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주위 사람들이 나로 인해 불행하다는 이야기만 듣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일까?'를 고민했다. 아무래도 아내와 아이들을 낳기 전 훈육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기에 그저 무서운 아빠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 노력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다. '이런 나의 노력을 언젠가는 아이들이 알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일흔 살의 노인 암 환자가 있었다. 그는 내게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의사로서 볼 때 6개월 이상 장기 생존은 어려워 보였다. 에둘러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때 그 환자는 담담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외래에 와서 말하기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떠나야겠다며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그 후로 그는 정말 매주 하나씩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 시작했다. 들어보면 거창한 일들은 아니었다. 아내와 바닷가로 여행 가서 해산물 요리 먹기, 종일 바다 보기, 좋아하는 노래를 모아 자식들에게 선물하기, 손주들에게 편지 쓰기, 고향 친구들에게 밥 사 주기, 예전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하기 같은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한 일들이었다. 그는 매주 병원에 올 때마다 지난주에 자신이 했던 일을 소상히 늘어놓으며 즐거워했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고, 사는 게 즐거워졌는데 얼마 남지 않아서 몹시 아쉽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그가 들려주는 별것 아니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중략-

"자, 당신의 남은 날은 00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물론 이 문제를 다 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빈칸으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운 일이다.

-'10년은 더 살아야 해요' 중에서

건강을 해치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가 어려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지금 다양한 경험을 하자고.

그 결심을 하고 나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핸드폰에 아이와 함께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저장해 둔 것이 있는 데 그걸 모두 인쇄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여행하고 싶은 곳'이라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역별로 나누고 키워드를 정리했다. 다녀오고 나서 아이와 함께 감상평&사진을 올리는 것이 목적. 하나씩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나는 간혹 환자 곁에 있는 보호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가요?"

"아버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럴 때면 가족이어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만큼 서로 모르는 존재도 없지 싶다. 타인은 모르는 대상이기에 예의를 갖추고 서로 알기 위해 대화하지만 가족은 날 때부터 가족이었으므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착각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 결국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상처 주기 십상이다. 언제나 '가족이니까'와 '가족인데 뭐 어때' 그 언저리에서 누구보다 가장 모르는 존재가 되기 쉬운 것이 가족인 것만 같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 환자도 자기 몸 상태에 대해 가족에게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 이유가 두려워서였던 가족을 위한 배려였든 결과적으로는 상처가 됐을 뿐이다. 늘 '죽음'으로 오는 관계의 끝을 지켜보는 의사로서 그것이 떠나는 사람에게나 남는 사람에게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필요해' 중에서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빠는 무엇을 하면서 생활하는지. 자주 연락은 드리지만 세세한 것은 모른다. 충청도 특유의 답답함? 나도 그렇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이다. 나중에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아이들을 보자 나는 그가 버티던 이유를 단박에 알았다.

아이들이 문가에서 주춤거렸다. 병실은 아이들에게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한참 동안 무거운 병실 공기를 탐색하던 아이들이 아빠 옆으로 다가왔다. 둘 중 큰 아이가 환자를 가만히 보다가 제 엄마를 돌아보고 물었다.

"아빠 머리에 혹 나서 아픈 거야?"

환자 머리에는 밤톨만 한 덩어리가 있었다. 혹이 아니라 암이 피부에 전이해서 뭉친 것이었는데 입원하면서 덩어리가 커져 밤톨만 해졌다. 아버지와의 영원한 이별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하는지 나조차도 난감했다.

"엄마, 아빠 이제 죽는 거야?"

아빠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여섯 살, 여덟 살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병실에는 침묵이 가득했고 환자의 부인과 아버지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흐느낌은 깊어졌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은 이상했을 것이다. '아야 아야'해서 병원에 갔다는 아빠는 자기들이 왔는데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고, 놀아달라고 아빠한테 안기고 싶은데 아빠 몸에 이상하게 생긴 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안기지도 못하겠다.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눈도 뜨지 않는다. 숨 쉴 때마다 그르렁거리며 꺽꺽 소리만 낸다. 엄마는 아빠 손을 붙잡고 주저앉아 엉엉 울고 할아버지는 벽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다.

환자의 부인이 환자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여보, 눈 좀 떠 봐. 눈 좀 떠 보라고. 애들 왔잖아. 얼굴 한 번 봐야지. 부인은 점점 더 세게 환자를 흔들었다. 그의 부친도 아들을 흔들었다. 내가 먼저 가야지, 네가 어떻게 저 어린 것들을 두고 먼저 가니, 이놈아. 이 매정한 놈아. 아이들의 눈에는 엄마와 할아버지의 울부짖음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미동 없이 누운 아빠가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환자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아이들이 다녀가고 한 시간쯤 뒤에 환자는 숨을 거뒀다. 그제야 나는 이 환자의 늦어지던 임종이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아이들이 올 때까지 버텼던 모양이었다.

-'임종의 지연' 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일까? 이 부분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죽게 된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아내한테도 늘 말하지만 지금 죽게 된다면 난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적어도 아이들이 20대는 되어야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아이들로부터 상처도 좀 받고 해야 아이들을 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즘.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자식들이 있기에 난 더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소아과 의사로부터 백혈병을 앓던 한 소아 환자와 보호자인 그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치료가 실패했고, 의료진도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는 임종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느 날 아침, 간호사가 아이의 혈압을 재러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보호자인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는 보자마자 아이가 이미 호흡을 멎은 것을 알았다. 아이의 얼굴이 이미 푸른빛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 의료진이 아이의 시신을 데려갈까 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간호사가 나중에 말하길, 마지막 온기를 나누고 있는 그 모습이 흡사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 같았다고 했다. 지난밤 아이는 열이 펄펄 끓고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고 마지막으로 "엄마..."라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몇 시간 뒤 서서히 숨이 멎었다고, 아이 엄마는 나중에야 털어놓았다.

-중략-

나는 그때 알았다. 죽은 아이의 신을 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기도 한다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가슴에 아이를 묻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환자의 어머니도, 학생의 어머니도 매년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겨울 점퍼를 새로 사서 태우지 않을까? 더운 여름이 되면 아이가 입을 시원한 여름 옷을 사서 태우지 않을까? 아니, 그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어리고 젊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대개가 그러하지 않을까.

-'아이의 신발' 중에서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픔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식이 죽는다는 것만 상상해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데, 실제라면 어떨까?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더 행복하게 느껴진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입으로 도덕을 외치고 윤리를 말하는 일도 참 쉽다. 똥 치우며 병수발하고 비용 부담하긴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을 뿐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혹은 인지 기능 없이 단순히 숨만 쉬는 상태가 된다면 그런 상태로 몇 년 더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될까?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중에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생사의 갈림길,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몇 번 접했다. 특히 할머니의 죽음이 기억에 남는다. 90살이 넘으실 때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손수 밥도 지어먹으시고, 물레로 실도 짜시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걸 봤다. 충격으로 치매에 걸리셨고, 오랜 기간 투병하실 때 자식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봤다.

사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자식이라면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려웠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식들이 돌아가며 모시기 어려워했고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끔 정신이 바로 돌아오실 때면 할머니 스스로도 힘들어하셨다. 과연 이게 올바른 걸까? 인간의 존엄이 무너질 만큼 무너진 상황에서 삶을 유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난 개인적으로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까이서 본 죽음은 너무나 참혹했기에.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나아질 방법이 없어 더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 속에서 나에게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이를 슬기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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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죽음이 노래하는 삶의 찬가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나****기 | 2021.10.13 | 추천23 | 댓글32 리뷰제목
1.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한림대에 입원했을 때였다. 갑자기 무슨 수치가 안 좋아졌다고 다른 과로 협진을 가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입원이 결정되었다. 사실 어디가 막 아팠던 건 아닌데, 혈액수치가 갑자기 너무 떨어져서 이대로라면 길에서 쓰러질 수도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수님이 겁을 주려고 하신 말씀은 아닐테지만, 난 겁을 좀 집어먹고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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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한림대에 입원했을 때였다. 갑자기 무슨 수치가 안 좋아졌다고 다른 과로 협진을 가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입원이 결정되었다. 사실 어디가 막 아팠던 건 아닌데, 혈액수치가 갑자기 너무 떨어져서 이대로라면 길에서 쓰러질 수도 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수님이 겁을 주려고 하신 말씀은 아닐테지만, 난 겁을 좀 집어먹고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하니까 당연히 이북리더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제일 처음 읽은 책이 이 책이다. 서울대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이신 김범석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 내가 입원한 과가 혈액종양내과라서 흠....참 기분이 이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혈액종양내과는 암환자들이 대부분인 과라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11층이 메인층이었는데,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던 10층 입원실로 결정되었다. 이 책에서는 죽음의 판정을 받고 죽음으로 향하는 환자들의 갖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덤덤히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에피소드는 '요구르트 아저씨'

석달마다 외래 진료를 올 때마다 요구르트를 사오는 암환자 아저씨는 항상 즐겁고 긍정적이다. 극단적 장기 생존자, 암 환자인데 극단적으로 오래 사는 사람들이 희귀하게 존재하는데, 이 분들의 특징은 '한결같은 긍정성'이라 한다. 감사와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차 있는 것이다. 요구르트 아저씨의 보너스로 사는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야말로 죽었던 인생인데 예수님의 보혈로 보너스로 영생을 얻었으니 '한결같은 긍정과 감사'로 살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주어진 시간들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고 멋지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요구르트 아저씨 멋져요!

2. 인상적인 구절

"내가 목격한 마지막 뒷모습은 때로는 정리되지 않은 돈이었고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뒤얽혀 고인에 대한 슬픔을 넘어 분노로, 지리멸렬함으로 끝나고는 했다. 고인이 정리하지 못한 관계들이 남아 있는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지켜보면 무엇이든 간에 정리되지 않고 남은 것들은 대개 아름답게 기억되지 못할 것들이었고, 남은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인의 뒷모습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종종 그조차도 책상 정리를 하듯이, 집을 치우듯이 평소에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흔적들을, 나의 관계들을, 나의 많은 것들을 오늘 집을 나서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지금의 내 흔적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덜 어지르게 된다. 좋은 관계는 잘 가꾸게 되고 그렇지 못한 관계는 조금 더 정리하기가 쉬워진다. 홀가분하게, 덜 혼란스럽게 자주 돌아보고 자주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3. 감상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생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내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남은 사람들은 남아 있는 나의 뒷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게 될거라 생각하니, 저자의 이런 다짐이 쉽게 이해된다. 평소에 오늘 당장 하늘 나라에 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저자의 말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덜 어지르고, 잘 치우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삶도 잊고 산다는 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다. 정말 나는 삶고 잊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죽음을 통해 내가 숨쉬고 사는 것에 감사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숨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었구나. 건강 말고는 가진게 없었는데, 갑자기 아프니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피멍으로 가득한 팔을 들여다보며 나는 정말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그런데 또 다시 삶으로 돌아온 나는 삶을 잊고 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원했던 그 하루를 살고 있는데, 이렇게 대충 아무렇게나 살다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저자는 우리보다 먼저 죽음에 다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묻는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걸까? 저자의 마지막 질문에 한참을 골몰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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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음에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눈* | 2021.11.30 | 추천6 | 댓글0 리뷰제목
몇 달을 벼른 끝에 읽게 된 책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서울대학교 병원 암병동에서 근무하시는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이 암환자를 진료하면서 얻은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고인이 된 올리버 색스는 19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진료현장에서의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의사들의 습관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서구의 이런 경향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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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을 벼른 끝에 읽게 된 책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서울대학교 병원 암병동에서 근무하시는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이 암환자를 진료하면서 얻은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고인이 된 올리버 색스는 19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던 진료현장에서의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의사들의 습관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서구의 이런 경향과는 달리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진료현장에서의 경험을 전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진단기술의 발전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항암제, 방사선 치료, 면역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어 암을 완치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수명이 늘고, 암이 완치된 이후에도 치료와 관련하여 혹은 별도로 다른 암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암환자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같은 암을 앓는다고 하더라고 환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암환자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오래 전에 암을 진료하시는 종양내과 교수님의 은퇴를 하고 제가 근무하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오셔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평생 해오던 암환자 진료와는 무관한 일을 해보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그만큼 부담이 컸던가 봅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를 쓴 김범석 교수님 역시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삶과 죽음으로 살아있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환자들의 가르침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는데, 어떤 죽음들은 자신을 무겁게 짓눌렀고, 어떤 죽음은 몸시 가슴 아프게 했으며, 또 어떤 삶은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 나오는 환자들 대부분은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입니다. 세상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절대로 없는 것처럼 죽음을 맞는 모습들도 참 다양합니다. 저자는 그런 죽음들을 크게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의사라는 업’, ‘생사의 경계에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사연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어쩌면 특별한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죽음일 뿐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미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옛날 제가 했던 일이기도 해서 사후뇌기증을 하신 폐암환자의 사연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죽은 뒤에 자신의 뇌를 뇌은행에 기증을 하는 일인데, 이는 생전에 미리 기증의사를 밝혀 등록을 하신 분이 돌아가셨을 때 바로 뇌은행에 연락을 해서 뇌를 적출해서 뇌은행에 기탁하는 일입니다. 사회적 부담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를 일으키는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방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분들의 뇌와 정상적인 삶을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뇌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서울대학병원 같이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서도 사립병원들과 마찬가지로 박리다매식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입니다. 그런 상황을 외래환자 진료를 시속 15명으로 내달려야 겨우 맞출 수 있는 형편이고, 환자들이 원하는 시속 5명으로 진료를 하는 경우에는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의료체계임이 틀림없습니다.

 

읽다보면 이렇게 죽음을 맞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김범석 교수님이 만난 환자들은 분면 반면교사이거나 정면교사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책을 읽고나면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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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지막 시간들의 다양한 모습이 생각할께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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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2021.10.12
구매 평점4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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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 | 2021.10.07
구매 평점4점
모르고 있던 것들과 알면서도 놓쳤던 것들을 일깨워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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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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