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교회 역사에는 유감스럽게도 교황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해 교회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 이들도 있었습니다. …… 시몬 베드로의 약함과 허물이 교회 역사에서 재현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시몬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던 주님은 여전히 교회를 보살펴 주시면서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면 필요한 인물을 보내시어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 시대의 교황들에게서도 그런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의 손길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 p.18, 「시몬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 중에서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하느님의 특별한 손길을 감지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돈과 자본이 하느님을 밀어내고, 생산성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세상에 대해 교회는 복음의 메시지, 곧 돈보다 하느님을 앞자리에 모셔야 하고 경제적 이익보다는 인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이전보다 더욱 분명하고 강력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당면 과제에 합당한 인물을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표현한 대로 거의 ‘세상 끝에서’ 불러내어 교회의 으뜸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 p.21~22, 「프란치스코」 중에서
비오 12세 교황은 세계사적 격동기라는 격랑 속에서 ‘베드로의 배’가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키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임무는 그가 아니라 후임자인 요한 23세 교황의 몫이었습니다.
두 교황은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됩니다. 요한 23세가 베네치아 대교구 교구장이었을 때부터 임종 때까지 10년간 개인 비서로 일했던 로리스 카포빌라 추기경(1915년 출생)은 두 교황을 이렇게 비교했습니다. “비오 12세가 위대한 교황이었다면, 요한 23세는 좋은 교황이었다. 비오 12세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면, 요한 23세는 위대한 마음씨의 소유자였다. 정신은 사람을 납득시키지만 마음은 사람을 정복한다.”
--- p.57, 「비오 12세」 중에서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요한 23세 교황의 나이는 77세였습니다. 추기경단은, 비오 12세가 20년간 강력한 통치를 해 왔기 때문에 후임자는 그렇게 장기간 교황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 강력한 통치를 하지 않을 인물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로한 교황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단지 새로운 방향이 설정될 때까지 ‘숨 고르기 시간’을 벌기 위해 지나가는 인물, 과도기적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요한 23세는 자신에 대한 그런 평가를 듣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이 지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지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요한 23세 교황을 ‘별 볼 일 없는’ 과도기적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느님은 교황을 다른 의미의 과도기적 인물로 만드셨습니다. 한 시대를 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물로 만드신 것입니다.
--- p.67~68, 「요한 23세」 중에서
아마도 바오로 6세 교황이 요한 23세 교황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고 해도 그가 공의회를 소집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전임자가 시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큰 인내심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공의회 이후에는 급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교회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에 모든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흔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과 영광을 요한 23세에게 돌립니다. 하지만 공의회의 진행과 그 이후의 모든 어려움과 혼란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는 바오로 6세가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프란츠 쾨니히 추기경은 바오로 6세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순교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오로 6세는 2014년 10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 p.114~115, 「바오로 6세」 중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어느 지역을 방문하든지, 방문지에 도착 즉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는 교황이 사제로서 첫 본당에 도착했을 때부터 한 행동으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에게 본받은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교황은 엄청난 군중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도전적인 연설을 했는데, 연극배우 출신다운 재능, 즉 다양한 언어 구사 능력, 대중 친화력, 유머 감각 등으로 군중의 마음을 휘어잡았습니다.
--- p.141, 「요한 바오로 2세」 중에서